제235화
제235장 아스나 사파비 公主
“모두 이곳에 오면서 대충 이야기는 들었지?”
전각에 위치한 넓은 회의실.
그곳의 상석에 앉은 내가 자리하고 있는 대원들을 빙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 나의 물음에 녀석들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고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뭐냐 이 찌질한 모습들은?”
어린아이처럼 대놓고 실망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이 웃겼던 것이다.
나름 한 동네에서 한가락 하는 놈들이 말이다.
“솔직히, 조금 섭섭합니다.”
그들의 모습이 웃겼던 나의 물음에 가장 침울해하고 있던 마독이 힘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평생 이별하는 줄 알겠다.
과장되게 섭섭함을 표현하는 마독을 보며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예의 장난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너, 본교로 돌아가서 더 수련해야지. 조금 재능 있다고 까불지? 아주 배가 불렀어?”
“아닙니다! 열심히 수련할 것입니다! 저 재능 없습니다!”
장난스러운 나의 말에 화들짝 놀란 마독이 언제 침울했냐는 듯 펄쩍 뛰며 대답했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는 다시 피식 미소를 지었고, 곧.
공진, 왕일, 남궁연화 순으로 한 명 한 명씩 둘러보며 눈을 맞추었다.
뭐 본교의 애들이나 은설이는 나랑 계속 같이 움직일 테니 굳이 이별의 인사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주는 못 만나겠지.’
거리도 거리에다가, 소속된 세력도 다르다.
과연 저들이 천산에 올 수 있을까?
글쎄.
가문의 반대로 인해 절대로 오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갈 수 있을까?
‘귀찮지.’
존X 귀찮았다.
그렇기에 나는 속으로 빨라도 일 년 후에서나 볼 것이라 생각하며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와 눈이 마주친 모두가, 아니 남궁연화를 제외하고 공진과 왕일이 아쉽다는 표정을 넘어 절망 어린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뭘 저렇게까지…….’
과장되기 이를 데 없는 녀석들의 모습.
그 모습에 나는 우선 민머리의 땡중, 공진을 바라보았다.
“야 공진.”
“말하시게.”
나의 부름에 침울한 어조로 대답하는 공진.
녀석의 대답에 나는 오랜만에 녀석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에 괜히 미안해진 나는 코를 한 번 훔치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술 한잔하자.”
“알겠네. 내 대주가…… 아니 자네가 좋아하는 공명주를 준비해 놓겠네.”
코를 훔치며 말한 나의 행동에 공진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는 부대주가 아닌, 벗으로서 나를 대하겠다는 공진의 호칭.
그 호칭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너는 남궁세가에 있을 거냐?”
“아니요. 천산으로 따라가겠습니다.”
왕일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 나의 물음에 왕일이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대답했다.
그런 녀석의 행동에 옆에 앉아 있던 남궁연화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녀석을 노려보았지만 왕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랑을 포기하고 의리를 택한 남자, 왕일.
아주 의리가 넘치는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미쳤지?”
부리부리한 눈으로 녀석을 노려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움찔!
그런 나의 욕설을 생각지 못했을까?
나의 위협과도 같은 말에 녀석이 움찔했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게 미쳐 가지고, 네 여자 옆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연히 남궁연화의 옆에 있어 줘야지. 가까스로 남궁연화를 붙잡았으면 놓치지를 말아야지. 이거 완전 파혼당할 놈일세?”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다.
아니, 남궁연화의 마음을 돌리려고 상담까지 했던 놈이 고작 잠깐 헤어지는 것 가지고 그녀를 방치해?
이거 완전 쓰레기였다.
자칭 사랑꾼으로서 그 모습을 볼 순 없었던 내가 매서운 어조로 몰아붙이자 녀석이 당혹스러워하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 그…….”
하지만, 난 녀석의 변명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시끄럽고, 넌 그냥 남궁세가로 돌아가서 쟤 데려다줘. 그러고 나서 하오문으로 돌아가든지 아님 남궁세가에 눌러 살든지 알아서 하고.”
“제가 천산으로…….”
“꺼져, 다른 세력 안 받아.”
어떻게든 천산으로 오려는 녀석을 향해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거절했다.
그에 녀석이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저거,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나 보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주먹이 울었지만 나는 애써 참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야.”
“네, 대주님.”
“이제 대주 아니야.”
“네 소교주님.”
나의 정정에 남궁연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칭을 정정했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정이랑 왕일. 네 주변에 있는 사내는 모두 믿음직스러운 놈들이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그들에게 믿음을 줘.”
“알겠어요.”
“대답은 잘해요.”
대답하는 남궁연화를 보며 내가 말하자 그녀가 입술을 삐죽였다.
처음에는 분명 되게 여성스러웠던 것 같았는데…… 왜 이렇게 애 같지?
왕일과 남궁정이 나를 형으로 모시기 때문일까?
이상하게 나를 편하게 대하는 남궁연화를 보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한번 때릴까…….’
진지하게 고민이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인사를 마무리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빙 돌려 녀석들과 눈을 맞추었고, 곧.
“해산!”
공식적으로 해산을 명했다!
그에 녀석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절대 잊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주고받는 녀석들.
거참.
정사마를 떠나서 어느덧 친해진 녀석들을 보며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무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만들어진 무림 수호 감찰대.
짬 처리 한다며 싫어했던 처음과 달리 제법 즐거웠던 추억으로 인해 아쉬움을 담은 조직은 감숙에 위치한 사황성에서 해체가 되었다.
* * *
“처음 뵙겠습니다, 파사국의 왕녀, 아스나 사파비라고 합니다.”
“…….”
천마궁에 위치한 천마대전.
천마신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파사국의 공주인 아스나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어 왔다.
일국의 공주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는 우아한 자세로 인사를 건네 온 아스나.
그녀의 모습은 흠잡을 곳이 없는, 아니 오히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일게 할 정도로 완벽했다.
하지만, 아스나의 인사를 받은 천마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인사를 건네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그에 의문을 느낀 아스나가 고개를 들었다.
“……?”
그러자 보였다.
자신을 향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천마의 모습이 말이다.
그러한 천마의 모습에 아스나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자 천마는 언제 놀랐냐는 듯 다시,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낮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파사국의 방문을 환영한다. 왕족이 이곳에 온 것은 처음이군.”
“늘 와 보고 싶었습니다. 본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천마신교에.”
아스나의 예의 바른 대답에 천마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소감이 어떻지?”
“네?”
천마의 물음.
그 물음에 아스나가 당혹스러운 어조로 반문하자 천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와 보고 싶었던, 천마신교. 막상 와 보니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감히 천마의 입을 두 번이나 열게 한 아스나의 무례한 행동에 장로들이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옆에 있던 키에프와 앤서가 그런 장로들의 시선을 가려 주었다.
아스나가 편하게 천마의 물음에 대답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둘의 모습에 장로들은 눈을 반짝였지만, 이것은 넘어가고.
예의상 대답했던 아스나는 생각지 못한 천마의 물음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흐음…….”
천마가 대놓고 실망이라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큰일이다!’
어떤 말이라도 해야 했다.
그에 아스나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교주님이 엄청 잘생기셨습니다!”
“……?”
“아…….”
“하아…….”
천마신교에 방문하고, 천마의 잘생긴 외모에 깜짝 놀랐던 아스나.
그때의 놀란 감정을 언급하며 말하자 장로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고, 옆에 있던 키예프와 앤서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지 못한 아스나의 대답.
그 대답에 드넓은 천마대전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망했다.’
그에 아스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공주로서 처음으로 업무를 맡았다.
그것도 파사국에 큰 도움이 되는 천마신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사신의 업무를 말이다.
그 업무를 성공하기는커녕, 첫 단추부터 실수를 연발하는 자신의 행동에 아스나는 절망했다.
하지만.
“재밌군.”
뒤이어 들려오는 천마의 목소리에 아스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였다.
진정으로 재미있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천마가 말이다.
“공주, 나이가 어떻게 되지?”
“스물둘입니다.”
“그 녀석과 같군.”
아스나의 대답에 천마가 짜증 나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런 천마의 어조에 아스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게 천마의 짜증 어린 어조에서 숨길 수 없는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아스나의 반응을 무시하고, 천마는 다시 입을 열었다.
“본교는 파사국의 방문을 환영한다. 연회를 준비하였으니 충분히 즐기도록. 그리고 아스나 공주.”
“네, 천마 교주님.”
“그대에게 지마궁은 물론, 천마궁에 들어올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
“!!”
천마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장로들과 마뇌가 두 눈을 부릅뜨며 천마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놀란 시선에도 불구하고 천마는 그저 아스나를 바라보았고, 천마궁의 입궁 허락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모르는 아스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 감사합니다!”
천마가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곧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아스나의 양옆에 서서 지키고 있는 두 명의 노인.
백발과 푸른 눈이 인상적인 키예프와 앤서를 바라보았다.
“그대들. 제법 강하군.”
“감사합니다.”
“허허, 감사합니다.”
천마의 말에 키예프와 앤서가 웃으며 정중하게 대답했다.
천마신교의 교주.
일국의 왕과 같은 위치였기에 아스나는 물론 그들까지도 예를 갖추었던 것이다.
그런 둘의 대답에 천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들에게는 지마궁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해 주지.”
“……?”
“원한다면 장로들과 언제든지 겨루어도 좋다는 뜻이다.”
천마의 말에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것도 잠시.
뒤이어 들려오는 이야기에 키예프와 앤서가 두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호전적인 눈빛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다섯 명의 장로들을 한번 훑어보고는 천마를 다시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잘 배워 가겠습니다.”
천마의 배려에 감사를 표한 키예프와 앤서.
그런 둘을 보며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마뇌를 바라보았다.
“군사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존명!”
천마의 명에 마뇌가 짧게 대답했다.
그에 천마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정말, 닮았군.’
붉은 머리칼을 지닌 활발한 여인.
아스나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