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4화
제234장 마지막 명령 末命令
“왔어?”
“응.”
사황성에서 마련해 준 전각.
특급 귀빈 대우를 해 주며 모든 대원들이 한곳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거대한 전각에 들어서자, 듣기 좋은 아름다운 목소리가 나를 반겨 주었다.
그 목소리에 기분이 좋아진 내가 고개를 돌리니 보였다.
나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서은설이 말이다.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미소를 지은 것도 잠시, 나는 오른손에 푸른 거궁 巨弓 을 들고 땀을 흘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수련 중이었어?”
“응.”
오랜만이었다.
그녀가 수련을 하고 있는 모습이 말이다.
전생에서 나에게 지지 않겠다며 매일같이 수련을 해 왔던 서은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매일같이 패배하여 분해했고, 또 열심히 수련해서 도전해 왔다.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기를 잠시, 괜스레 그녀에게 미안해진 내가 한 번 져 주니 그녀는 불같이 화를 냈었다.
자기를 무시하냐고 말이다.
그 이후로 나는 최선을 다했고, 서은설은 늘 분해하면서도 또 열심히 수련해 왔었다.
나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아 그녀와의 대련을 늘 즐거워했고 말이다.
전생에서 나를 즐겁게 해 주었던 아름다운 추억.
그 추어 속 서은설의 모습이 겹쳐 보이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땀 흘리는 것도 예쁘네.”
“뭐래, 나 안 예뻐.”
나의 말에 서은설이 피식 웃으며 나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후후, 우리 은설이.
꼭 예쁘다고 칭찬하면 부정하면서도 저렇게 좋아하더라.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말과 행동이 다른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짓던 것도 잠시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랑 대련 한번 할까?”
오랜만에 전생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았다.
그런 나의 제안에.
“아니.”
“왜?”
서은설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조금…… 섭섭했다.
칼같이 거절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짐짓 상처받은 표정을 지으며 거절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에 서은설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우리 극신이 얼굴 다치면 안 돼.”
“……?”
음…….
내가 다칠까?
전혀,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단 한 수에 그녀를 제압할 수 있었다.
전생의 모든 무학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이십 년간 수련을 해 와 절대의 경지에 오른 나였으니 말이다.
‘아니 근데 왜 얼굴……?’
이상했다.
화살은 분명 몸에 쏜다.
얼굴보다 몸이 더 컸기에 조준하기 쉬웠으니 말이다.
헌데 왜 얼굴이 다친단 말인가?
“혹시라도 얼굴이 쓸리면 어떡해, 우리 극신이는 얼굴이 최고인데…….”
“……?”
“얼굴 말고는 볼 게…….”
“저기요.”
이 사람이.
당사자를 눈앞에 두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대놓고 내 얼굴이 중요하다는 서은설을 보며 나는 어이없는 어조로 물으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에 그녀가 장난스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기분 나빠?”
“아니, 나 얼굴 말고도 매력 넘치거든?”
“그중에서 얼굴이 제일이야.”
“아니…….”
“극신아.”
“왜.”
기분 나쁘다.
얼굴이 아닌 다른 매력은 쳐다도 안 보는 듯한 그녀의 말에 내가 불퉁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서은설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너 잘생겼어.”
“…….”
“그래서 난 너 좋아.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어.”
“크흠.”
“너보다 잘생긴 남자는 없을걸?”
“크흐흠!”
뭘까.
왜 기분이 좋지?
잘생겼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분명히 기분 나빴다.
하지만, 세상 진지하게 나를 잘생겼다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에 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일까?
내가 이렇게나 단순했었나?
알다가도 모르겠다.
“헤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을까?
그녀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에 나 또한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정말, 요물 같은 여자였다.
그에 나는 고개를 돌려 서은설을 바라보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은설이도 엄청 예뻐?”
“그렇지?”
“응, 다른 매력은 그저 그런데 얼굴이 너무 예뻐.”
“……?”
“진짜, 땀 흘리는 얼굴도 예뻐. 완전 최고야!”
“…….”
“……?”
뭐지?
왜 싸늘해지는 걸까?
나의 칭찬에 점점 얼굴이 굳어 가는 그녀를 보며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그녀의 외모를 칭찬한 것뿐이다.
헌데 왜 저런 무서운 표정을 짓는단 말인가?
그렇게 내가 당황해하자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움찔!
도대체 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차가운 눈빛에 움찔하기를 잠시.
나는 천천히 열리는 그녀의 입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 얼굴만 예쁘고 다른 매력은 전혀 없네?”
“응?”
“성격도 별로고, 목소리도 별로네?”
“아니, 별로라는 말은 안 했는…….”
“얼굴만 보고 나 좋아하는 거야?”
“아니…….”
“나 못생겼으면 안 좋아했겠네.”
“아니…….”
“나 못생겼으면 쳐다도 안 봤겠구나. 왜냐? 그냥 내 얼굴이 예뻐서 좋아하는 거니까.”
“…….”
말렸다.
속사포같이 매서운 말을 내뱉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지가 먼저 얼굴 어쩌고 이야기해 놓고 왜…….
“호호!”
그때.
그녀의 반응에 곤란해하던 것도 잠시, 나는 나의 귀로 들려오는 맑은 웃음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였다.
입을 가린 채 소리 내어 웃고 있는 서은설의 모습이 말이다.
그제야 나는 그녀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 서은설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미안하면 다야?”
“안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것도 그렇네.
말은 참 잘한다.
누구 닮았는지 참…….
묘하게 나와 비슷하게 말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피식 미소가 나올 것 같았지만 가까스로 웃음을 참아 내었다.
그러고는 짐짓,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장난치지 마.”
“화났어?”
그런 나의 서늘한 눈빛에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묻는 그녀.
나는 그녀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화났다는 뜻이었다.
그런 나의 행동에 서은설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스윽.
나의 팔을 살며시 감싸 안으며 나에게 안겨 왔다.
“화났어?”
나의 팔에 닿는 그녀의 부드러운 살.
그리고 품 안에서 훅 하고 들어오는 그녀의 향기.
수련을 했기 때문일까?
열기까지 느껴지는 그녀의 향기에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훅 들어온 그녀의 행동에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그녀가 더욱더 몸을 밀착했다.
그러고는.
“나 씻으러 가려고.”
“!!”
“같이…… 갈레?”
“응!”
이런.
넘어가 버렸다.
그녀의 은밀한 유혹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해지자.
어느 누가 감히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런 나의 솔직하고 격정적인 긍정에.
찰싹!
“안 돼!”
서은설은 그런 나의 등을 한 대 후려치며 단호하게 말했다.
솔직히 아프지 않았지만 아팠다.
가슴이 말이다…….
샐쭉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서은설을 보며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참, 어색한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그에 당혹스러웠던 것도 잠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저 멀리서부터 가까워지는 익숙한 기운에 나는 반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예……?”
그러자 보였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마천과 왕일이 말이다.
기가 막힌 순간에 딱 등장한 녀석들.
그런 기특한 녀석들을 보며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이야!”
“아…… 그 소교주님…….”
“형님…… 맹에서 연락이…….”
“그렇구나! 자 어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중요한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당황해하며 말을 이어 가는 녀석들의 말을 끊은 나는 양쪽으로 그들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전각 안, 방 안으로 이끌었다.
그에 녀석들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의 손에 이끌려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은설아 나중에 봐!”
그에 나는 아직도 샐쭉한 표정으로, 아니 이제는 자기도 웃긴지 피식 웃으며 나를 보고 있는 그녀를 향해 웃으며 말했고, 그녀는 그런 나의 인사에 화답해 주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녀석들과 방 안에 들어섰고.
“뭔데?”
아무 자리에 대충 걸터앉으며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아…….”
귀찮다는 표정으로 귀를 후비는 나의 모습.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녀석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참.
왜 안도하는 거야?
기분 나쁘게 말이다.
“앉아.”
“네.”
아무튼, 그런 녀석들을 보며 나는 귀찮다는 어조로 말했고, 그에 녀석들이 짧게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잠시 후.
쪼르르.
“자.”
나는 녀석들의 앞에 놓인 찻잔에 맑은 액체를 따라 주었다.
그런 액체를 보며 사마천은 눈을 반짝였고, 왕일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형님…… 아직 대낮인데…….”
“이 자식, 대낮이나 한밤이나 다를 게 뭐야?”
눈치 빠르군.
본능적으로 내가 따라 준 것이 술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왕일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나의 강력한 주장에 왕일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내가 따라 준 술을 한 번에 들이켠 사마천이 나의 옆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었다.
아니 집어 들려고 했다.
“됐다.”
“……?”
“할일이 많은데 뭔 술이야. 나중에 마셔야지.”
이 녀석들 개념이 없다.
젊은 청춘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대낮부터 술을 마신단 말인가?
아주 죽으려고 환장했다.
그런 나의 짜증 어린 질책에 녀석들은 순간 벙 찐 표정을 지었고,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똑똑한 놈들 놀리는 게 가장 재미있었다.
왜냐고?
생각해 보아라, 만약 다른 사람이 이놈들을 놀린다면 그 사람은 몇십 배로 된통 당할 것이다.
이 녀석들이 어떤 기발한 계획으로 엿 먹일지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천마신교의 소교주, 그리고 감찰대의 대주다.
즉, 내가 놀려도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뜻!
이 녀석들은 나에게 복수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나한테 맞아 죽을 테니 말이다.
‘크으~!’
짜릿했다.
“그래, 무슨 일이야?”
아무튼, 장난은 잠깐 접어 두고.
나는 녀석이 따라 주는 술을 한 잔 받으며 입을 열었다.
그에 사마천이 입을 열었다.
“무림맹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연락?”
“감찰대의 해체와, 대원들의 귀환을 요한다는 연락이었습니다.”
“……?”
뭔 개소릴까.
사마천의 입에서 나온 말.
갑작스럽기 그지없는 녀석의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 옆에 있던 왕일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본 문에서 급한 연락이 왔었습니다. 북원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하더군요.”
“그래서?”
“북원의 경계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화산파의 요청으로 무림 회의가 시작했고, 그 결과 일반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 각 문파의 무인들을 차출하기로 했답니다.”
“황궁에서는?”
“물론, 황궁에서도 움직입니다. 하여 무림맹에서는 협동을 위해 연락을 취하였지만…….”
“지만?”
“답장이 없습니다.”
왕일의 대답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 무림맹이 자진해서 도움을 주려고 한다.
헌데, 그 도움을 받아야 할 황궁에서 아무런 답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에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돌려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황궁의 소식은?”
“죄송합니다. 아시다시피 현 황제가 즉위한 이후, 본교의 세작이 전부 사라진 상태입니다.”
“즉, 황궁의 상황을 알 수 없다?”
“죄송합니다.”
진정으로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사마천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왕일을 바라보았다.
“하오문도 마찬가지인가?”
“죄송합니다.”
“무림맹도?”
“네.”
나의 물음에 왕일이 짧게 대답했다.
그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윤문과 따로 연락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에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각 대원들에게 소식은 전했나?”
“아직입니다.”
“모두 부르도록.”
“알겠습니다.”
이제는 대주로서 내리는 마지막이 될 명령.
그 명령에 사마천과 왕일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