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8화
제228장 감찰 監察 (1)
“귀엽네.”
사마천과 왕일이 가지고 온 서류.
무당파의 모든 생필품 유통 자료와 제자들의 사생활이 적힌 서류를 전부 읽은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내려놓았다.
장문인과 장로들, 그리고 그 아래 제자들 중 비리가 적힌 인물은 하나도 없었다.
끽해 봤자 어린 시절 사제들을 괴롭혔던 것 정도?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 지금은 잘 지낸다는 보고가 적혀 있었다.
산속에 박혀 산 도사들이라 그런가 아주 청렴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어디든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무당파의 인물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지만 그 이외의 인물들이 문제가 있었다.
무당산에 위치한 무당파.
그곳에서 무당파의 인물이 아닌 외인들에게 문제가 있다?
상당히 재미있는 경우가 아닐 수 없었다.
“어떡하죠? 속가제자야 그 수가 너무 많아 우선 넘어가더라도, 무당파의 생활을 담당하는 외부인들, 즉 무림인이 아닌 일반 백성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무공을 배우지 않은 인물들인가?”
“어느 정도는 익혔습니다. 어린 시절 무당파에서 수련을 하고 거기서 무재가 떨어진 인물들 중 무당산에 남아 그 이외의 일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림인이지.”
“무당파에서 아마 본 파의 무인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말에 사마천이 대답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어쩌라고, 무공 배웠으면 무림인. 우리가 충분히 감찰할 자격은 되는 거야.”
“알겠습니다.”
나의 결론에 사마천이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 수호 감찰대.
일반 백성을 감찰하기에는 솔직히 조금 애매하다.
무림을 수호하기 위해 발족된 조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무공을 익혔다?
그럼 다 무림인이지 뭐.
“허면 그들 전부를 감찰하실 생각입니까?”
사마천의 옆.
가만히 서 있던 왕일이 물었다.
그에 나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이걸 어째야 할까.
우리가 나서서 그들을 벌하기에는 충분한 명분이 있지만…… 솔직히 귀찮았다.
그렇다고 무당파에게 일을 넘긴다?
“무당파가 일을 제대로 하려나.”
제대로 그에 맞는 벌을 내릴지 의문이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런 나의 의문 섞인 중얼거림에 함께 보고서를 읽던 서은설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맑은 목소리로 나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태진 도장에게 말해 봐.”
“그놈에게?”
“응, 그의 성정이라면 필히 제대로 된 벌을 내릴 거야.”
태진의 꽉 막힌 성격을 언급하며 서은설이 말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무당파의 도맥을 이은 녀석이기 때문일까?
그 누구보다 엄격하고 꽉 막힌 녀석이었다.
전생에서는 안 그랬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런 성격의 녀석이 이 자료를 보게 된다면 두 눈에 불을 켜고 속가제자들을 벌하고 외인들에게 죄를 물을 것이다.
확실히 녀석이라면 그럴 것 같았다.
“몇 대째 무당파를 위해 일해 오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섞여 있습니다. 아무리 태진 도장이 엄격하다 하더라도 장로들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한 나의 모습에 왕일이 만류하듯 나에게 조언했다.
그에 나는 서은설의 조언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왕일 녀석의 말도 맞았다.
태진, 그 녀석이 무당파의 실질적인 행동권자인 일대제자라고는 하지만 그래 봤자 장로 아래에 위치한 일대제자, 그중에서도 막내였다.
즉, 그 녀석보다 윗사람인 존재가 많다는 뜻이었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태진이 올바른 성정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 성정대로 행동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서은설과 왕일의 조언에서 갈등하는 나의 모습에 사마천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특유의 여유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선 태진 도장에게 알리시지요.”
“지금?”
“네.”
“그 이후는?”
“그냥 지켜보시지요.”
나의 물음에 사마천이 대답했다.
그에 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지켜보자는 녀석의 의견이 흥미로웠던 것이다.
그러한 나의 시선에 사마천이 의문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무당파의 일입니다. 자기들이 알아서 해야지요.”
“알아서 못하면?”
“그때는 족쳐야지요.”
“내가?”
“네.”
확고한 녀석의 대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래, 족쳐야겠지.
근데…… 조금 귀찮았다.
“너희들이 해 봐.”
그렇기에 나는 이번에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이때까지는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나서서 해결했으니 말이다.
무림 감찰 수호대가 발족된 이후 세간의 사람들에게 대주인 나의 이름만 계속 나오고 대원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왕일을 들 수가 있었다.
수호 감찰대에서 솔직히 일을 제일 많이 하는 놈이 바로 왕일이다.
하지만 사파의 중축인 하오문의 소문주라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녀석을 안 좋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뒷골목의 건달이 무슨 감찰을 하냐고 말이다.
물론, 왕일 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그 소문을 고칠 수야 있겠지만 녀석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단진과 야율민, 사마천도 마찬가지이다.
본교의 아이들이기 때문일까?
중원인들은 아이들에 대한 소문을 언급하기를 꺼려 했고, 그로 인해 아이들은 실력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오죽하면 혈승이라 불리는, 살인을 허락받은 소림의 땡중을 더 좋아하는 모습을 보일까?
진짜,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그러한 나의 복잡한 심정이 전해졌을까?
나의 말에 사마천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옆에 있던 왕일까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그에 사마천과 왕일이 물러났고.
“어디 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서은설을 향해 물었다.
그러한 나의 물음에 서은설의 푸른 두 눈이 나를 향했다.
그러고는 그녀의 아름다운 눈이 부드럽게 접혔다.
“아미파에 가 보려고.”
* * *
“사실입니까?”
태진의 거처가 존재하고 있는 산봉우리.
그곳에서 사마천이 건넨 서류를 읽은 태진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그러한 태진의 물음에 사마천이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아…….”
그에 태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손에 들린 서류.
그 서류에는 자신의 스승과 깊은 관계를 맺었던 벗, 본 파의 식자재와 의류 등 모든 생필품 유통의 총책임자인 왕 노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스승인 청학과 어린 시절부터 벗이라 했던 왕 노인.
무재가 없어 무당파의 입적을 포기하고 무당파를 돕겠다며 상인의 길로 뛰어든 왕 노인은 뛰어난 상재로 무당파의 살림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인물로 장로 못지않은 권한을 지녔으며, 동시에 스승이 사라지고 자신을 돌보아 준 은인과 같은 분이다.
그러한 왕 노인의 이름이 비리가 적힌 서류에 올라와 있었기에 태진은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친하다고 들었습니다.”
“가족과 같습니다.”
그러한 태진을 보며 사마천이 묻자 사마천이 낮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에 사마천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태진에게 있어서는 좋은 소리로 들리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은공께서 나시는 것입니까?”
“저희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렇군요.”
사마천의 대답에 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도와주시겠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태진이 사마천을 향해 물었다.
그에 사마천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물론입니다.”
* * *
“왔느냐.”
무당파 정문을 넘어 무당파를 위해 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어진 작은 마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긴 세월 동안 이곳에 살아온 왕 노인은 자신을 찾아온 청년, 태진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간 격조했습니다.”
“되었다, 손님과 함께 왔구나.”
격식을 차리며 고개를 숙이는 태진을 향해 왕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옆에 함께 온 사내, 사마천을 보며 말했고, 그에 사마천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사마천입니다.”
“오…… 반갑습니다. 미래의 마뇌를 보게 되다니. 저도 무림인이기는 한가 봅니다.”
약 이십 년 정도의 내공을 지닌 왕 노인.
일류의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한 왕 노인이 스스로를 낮추며 말하자 사마천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무당파를 위해 뒤에서 애를 쓰시니 무림인이 맞으시지요.”
“그거 좋은 말입니다.”
사마천의 대답에 왕 노인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태진과 사마천에게 자리를 권하였고, 둘은 거절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왕 노인은 친히 차를 내려 태진과 사마천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늙은 손으로 차를 직접 우린 왕 노인.
그의 정성에 태진과 사마천이 정중히 감사를 표하고는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차 한 잔을 전부 마시는 동안 세 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일다경(약 15분).
그 시간 동안 침묵이 계속 감돌았고, 태진과 사마천은 계속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둘의 모습에.
“허허, 편하게 잡아가십시오.”
왕 노인이 웃으며 먼저 말을 꺼내었다.
이미 그들이 어떤 이유로 이곳을 찾아왔는지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왕 노인의 말에 태진은 고개를 숙였고, 사마천은 왕 노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뒤로 빼돌린 자금. 그 자금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제대로 확인하려 합니다.”
왕 노인의 되물음에 사마천이 대답했다.
그에 왕 노인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처럼 무재가 없어 입적하지 못한 아이들을 후원하는 데 쓰였습니다.”
“충분한 근거는 있습니까?”
“저를 통해 훌륭하게 자라 온 녀석들이 근거지요.”
사마천의 날카로운 물음에 왕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한 점 부끄럼도, 후회도 없는 그런 왕 노인의 대답에 사마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정상참작은 될 것입니다.”
“허허,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미 저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노인네니까요.”
사마천의 위로에 왕 노인이 미련 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에 사마천이 고개를 들어 왕 노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왕 노인이 죄를 받아 죽게 된다면 태진 도장이 힘들어하지 않겠습니까?”
“…….”
“그러니, 목숨은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
이어진 사마천의 말에 왕 노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에 사마천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내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이 이후에는 태진과 왕 노인의 시간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사마천이 밖으로 나오자.
“어떻게 됐어요?”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야율민이 다가와 의문 어린 어조로 물었다.
궁금해 죽겠다는 듯 발까지 동동거리는 야율민의 모습에 사마천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잘.”
“수고하셨습니다.”
사마천의 짧은 대답에 모든 것이 잘 풀렸다는 것을 알게 된 야율민.
그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사마천을 격려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오문 그 뺀질이는 어디 갔습니까?”
“집법당에.”
“오? 그 녀석이요?”
사마천의 대답에 야율민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에 사마천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집법당이 존재하고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녀석이라면 잘할 거야.”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자신을 뛰어넘을 정도로 비상한 아이.
마뇌 魔腦 가 인정한 사마천.
그러한 사마천이 인정한 아이가 바로 왕일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