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7화
제227장 반항, 포용 反抗, 包容
“정신이 좀 드냐? 마인 앞에서 정신 빠지는 짓을 하다니 아주 죽고 싶어서 안달 났지?”
산뜻한 바람과 함께 주변의 기운을 빨아 당기듯 흡수한 태진.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삐딱한 표정으로 따지듯 녀석에게 말했다.
그에.
“아…… 은공.”
두 눈을 뜬 태진이 나를 알아보았고 이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또 은혜를 입었군요.”
“시끄럽고, 야룡이랑 한판 붙을 거지?”
눈뜨자마자 낯간지럽게 감사를 표하는 녀석의 행동에 나는 손을 가볍게 흔들며 넘긴 후 뒤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야율민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에 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야율민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본 파의 규율을 어긴 것은 변함없습니다.”
“그래서 뭐? 죽이기라도 하게?”
“본 도는 함부로 살생을 하지 않습니다.”
야율민의 배 째라는 식의 당당한 대답에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태진은 전혀 짜증이 나지 않는다는 듯,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응수했다.
묘하게 현기 玄機가 섞인 녀석의 대답에 야율민은 본능적으로 흠칫했고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것 참 이 둘, 은근히 재미있는 조합이었다.
생각지 못한, 묘한 둘의 조합에 웃기를 잠시 나는 걸음을 옮겨 둘의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했다.
이제 재미있는 싸움 구경이나 해야겠다.
“지금이라도 사죄를 하고 해검을 하신다면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오?”
생각지 못한 태진의 융통성 있는 제안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미파의 앞에서 세상 혼자 살아갈 놈처럼 꽉 막힌 모습을 보여 줬던 녀석이 반나절 만에 다른 모습을 보이니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깨달음을 얻긴 얻었나 보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보여 주었던 부드러운 미소.
그때는 없었던 여유로움을 미소 속에서 발견한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도 난놈은 난놈이었다.
저 나이에 저 정도의 깨달음을 얻다니 말이다.
어쩌면 정말 후기지수 중 최강은 남궁정이 아니라 저 녀석일지도 몰랐다.
비록 남궁정이 소림의 공명에게 패했지만 나는 녀석의 실력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남궁정이 제대로 했다면 공명이 패배했을 것이라는 것도 말이다.
아, 물론 공진은 후기지수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 녀석은 공식적인 후기지수가 아닌, 그저 소림을 지키는 문이면서 주먹일 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도 저도 아닌 불쌍한 놈이었다.
아무튼, 그러한 태진의 부드러운 제안에도 불구하고 야율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완벽한 거절의 표시였다.
그렇게 거절을 표하고는 다시 자세를 낮추며 입을 열었다.
“우선 싸우자. 그러고 나서 해검을 하든 사과를 하든 할게.”
“둘 다 하셔야 합니다.”
“아 알았어, 임마!”
귀찮게 하는 태진의 모습에 야율민이 인상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에 태진은 싱긋 미소를 지었고, 이내.
스윽.
검을 뽑아 들고는 아래로 비스듬히 세우며 자세를 갖추었다.
무당의 시작이자 근본인 태극 太極.
바로, 태극검 太極劍 의 시작 자세였다.
태진이 자세를 잡음과 동시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앞 머리칼을 흔들자 야율민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 바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자신의 취향은 아니었다.
자신의 취향은 바로!
우웅!! 휘잉!!
폭풍과도 같은, 날카로운 바람이었으니 말이다.
태진과는 정반대의 기운을 지닌 바람.
펄럭!
그 바람이 태진의 도포를 펄럭이게 만들었다.
생각지 못한 강력한 바람에 태진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야율민은 그런 태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재미있겠지?”
봄바람과 같은 부드러운 바람인 태진과, 폭풍과도 같이 강력한 야율민의 바람.
같으면서도 다른 기운을 느끼며 야율민이 말하자 태진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우웅!
검을 가볍게 휘둘러 야율민의 날카로운 바람의 기운을 돌려 하늘로 올려 보내었다.
콰앙!
태진의 검을 따라 자연스럽게 하늘 위로 올라간 야율민의 강력한 기운의 바람.
그 바람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폭발하며 흩어졌고, 다시 검을 비스듬히 세워 자세를 갖춘 태진이 진한 미소로 야율민을 바라보았다.
“들어오십시오.”
무당의 근본과 같은 태극으로 야율민의 바람을 무 無로 되돌린 태진.
그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도발하자 야율민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건방지네.”
“혼내 주십시오.”
“아주 눈물 콧물을 쏙 빼 주지.”
태진의 농담에 야율민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응수했다.
그러고는.
철컥!
한 개의 장창을 분리하여 단창을 만들었고, 이내 양손에 하나씩 쥐었다.
그러고는.
“간다.”
날카로운 경고와 함께 야율민이 빠른 속도로 태진에게 달려들었다.
웅웅웅!
빠른 속도로 회전을 하며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는 두 개의 단창.
왼쪽 오른쪽, 양쪽에서부터 중간으로 좁혀 들어와 압박하는 강력한 기운에도 불구하고 태진은 여유로운 듯 천천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우웅!
강력한 힘을 자랑하던 야율민의 기운과 대비될 정도로 부드러운 기운을 지닌 태진의 기운.
그 기운이 마치 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손길로 야율민의 기운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콰앙!
한창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십 대 중반의 아이처럼 격렬하게 반항한 야율민의 기운은 태진의 부드러운 기운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러한 기운의 강력한 반항에도 불구하고.
우웅!
태진의 기운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쿠웅!
우웅!
거세고 폭발적인 아이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태진의 기운은 부모와도 같이 여전히 부드러웠고, 거센 바람을 품에 안았다.
자신의 기운을 소멸해 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태진의 기운은 야율민의 기운에 공격을 허용하며 조금씩 힘을 잃어 갔다.
하지만.
우웅.
야율민의 기운을 보드랍게 감싸 안아 주는 부드러운 손길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한 태진의 기운에 야율민의 기운이 멈칫했고, 그에 태진의 기운은 기다렸다는 듯이 야율민의 기운을 품에 가득 안았다.
우웅!
거센 아이와도 같은 폭발적인 야율민의 기운.
그 기운을 태진의 기운이 품에 안았고 이내 아이를 진정시키듯 부드러운 손길로 토닥여 주었다.
하지만.
콰콰쾅!
야율민의 기운은 어린아이라 하기에는 너무 강력했다.
야율민의 기운을 품에 안고 동화 同化를 시키려던 것도 잠시.
태진의 기운은 자신보다 강력한 야율민의 기운을 이겨 내지 못했고, 이내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그리고.
“그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태진의 목을 노리고 날아든 야율민의 창을 막아섰다.
“허억…… 허억…….”
“후우…… 후우…….”
그러한 나의 중재에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바라보는 야율민과 태진.
그들의 주변은 이미 싸움의 여파로 인해 초토화가 되어 있을 정도로 강력한 싸움이었다.
웅성웅성!
강력한 기운에 무당파의 제자들과 아미파의 손님들까지 이곳을 찾아왔을 정도로 말이다.
“후우…… 감사합니다.”
격렬했던 대련으로 인해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던 것도 잠시.
안정을 되찾은 야율민이 창을 거두며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태진 또한 검을 내리며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덜덜.
“…….”
야율민과의 대련 여파로 인해 떨려 오는 녀석의 두 팔.
그 팔을 가만히 내려다본 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돌려 야율민을 바라보았다.
“창.”
“네.”
나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두 개의 단창을 건넨 야율민.
철컥!
흠칫!
나는 녀석이 건넨 창을 받아 들고는 장창으로 합쳤다.
그러자 앞에 서 있던 무당파의 도사들과 아미파의 제자들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넘어가고.
나는 내 손에 쥐어진 장창을 태진에게 내밀었다.
“자.”
“감사합니다.”
해검을 진행하라는 나의 뜻을 알아차린 태진은 군말 없이 내가 건넨 창을 받아들였다.
그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무당파의 인물들 중 가장 선두에 위치하고 있는 선풍도골의 노인.
무당파의 장문인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는군요.”
장문인과 눈이 마주치자 장문인이 먼저 나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나의 뒤에 있는 야율민을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수하가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태진에게 있어 좋은 경험이 아니었겠습니까.”
나의 말에 초토화된 연무장을 둘러본 장문인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에 나는 넙죽 장문인의 말을 받았다.
괜찮다니 빨리 넘어가야지.
괜히 꼬투리 잡았다가는 귀찮아지니 말이다.
그러한 나의 대답에 당황했을까?
장문인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은 넘어가고.
“야율민!”
“넵!”
“벌이다. 태진을 따라다니며 무당파의 일을 돕도록!”
“네……?”
나는 녀석에게 강력한 어조로 벌을 내렸다.
이러한 벌은 생각지 못했을까?
무당파를 도우라는 나의 벌에 야율민은 벙 찐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지만 나는 녀석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는 태진을 바라보았다.
“녀석을 데리고 다니며 써. 빨래를 시키든, 어린 제자들 허수아비를 시키든 말이야. 말 안 들으면 바로 나한테 말하고. 아주 반 죽여 놓을 테니까.”
“아니 소교주님…….”
“알겠습니다.”
나의 말에 야율민이 불만 어린 어조로 나를 향해 말했지만 깔끔히 무시하고, 태진은 나를 향해 웃어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에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이내 고개를 돌려 장문인을 바라보았다.
“나는 정말 괜찮으니 편하게 쓰세요. 그리고 그것으로 해검 안 한 건 넘어갑시다.”
“껄껄, 그럽시다.”
애초에 문제를 삼을 생각이 없었던 것일까?
나의 제안에 장문인이 소리 내어 웃으며 흔쾌히 수락했다.
아무래도 좀 전에 보여 주었던 놀란 표정은 그냥, 넙죽 받아들이는 내 모습이 의외였나 보다.
다행히 뒤끝 없어 보이는 장문인과 눈을 마주치며 나 또한 살짝 웃어 보였다.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표시였다.
그렇게 웃음 짓기를 잠시,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사마천.”
“네.”
“감찰 준비는?”
“호북에 들어와 있을 때부터 준비는 끝나 있었습니다.”
나의 물음에 사마천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고, 옆에 있던 왕일이 동의한다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장문인을 바라보았다.
“장문인만 괜찮다면 지금 당장 감찰을 시작…….”
“아닙니다!”
“……?”
어서 빨리 처리하고 이곳을 떠나려 했던 나.
그렇기에 대충 감찰하고 떠나기 위해 당장 시작하겠다는 나의 말을 막아선 다급한 장문인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한 나의 모습에 장문인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허허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천천히 머물다 가시지요. 대주…… 아니, 소교주가 이곳에 머무는 것만 해도 저희 제자들에게 좋은 경험입니다.”
“하하, 아닙니다. 마인이 어찌 이곳에 더 있겠습니까?”
장문인의 말에 나 또한 웃어 보이며 말했다.
아주 강하게 말이다.
스스로 마인이라 언급하며 빨리 감찰을 마치고 이곳을 떠나겠다는 나의 말에 장문인은 얼굴을 굳혔고, 그 모습에 나는 직감했다.
아무래도 뭐 구린 게 하나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런 나의 마음과 같았을까?
사마천과 왕일이 반짝이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 참.
아무래도 이 순진한 노친네들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판 것 같았다.
멍청한 건지, 때가 묻지 않아 순수한 것인지 모를 장문인과 그 뒤의 장로들을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음, 하는 짓이 귀여우니 조금은 봐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