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6화
제226장 태양 太陽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군.”
본전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천마궁.
그곳에 마련된 천마의 거처, 천마각에서 천마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왜요?”
그런 천마의 맞은편.
차를 마시며 천마와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천소화가 의문 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그에.
“새끼 곰이 돌아왔다.”
천마가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이름이 아닌 격한 호칭으로 표현을 한 천마의 대답.
그러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천소화는 새끼 곰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챘고, 반가운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적이가 왔군요!”
위극신을 좋아하고, 따르는 장로들의 아이들.
사실상 수하들이라고 볼 수 있지만 위극신은 늘 천소화에게 말했다.
수하가 아닌, 자신의 벗들이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천소화는 아이들을 아들의 벗으로 대했고, 아이들 또한 그런 천소화를 잘 따랐다.
그중 순박한 모습으로 웃음을 주고는 했던 구양적의 모습을 떠올리며 천소화가 반가운 어조로 말하자 천마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는 새끼 곰이 아니군.”
“네?”
천마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천소화가 의문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후기지수의 나이인 구양적이다.
헌데 이제는 새끼가 아니라니?
그러한 천소화의 되물음에 천마는 대답 대신.
스윽.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 보지.”
“지금요?”
“그래.”
아무리 오대마가의 소가주라 하더라도 구양적은 천마신교에 직책 하나 없는 후기지수에 불과했다.
헌데 그런 구양적을 만나기 위해 천마가 직접 행차한다?
말이 되지가 않았다.
천마는 천마신교 그 자체. 그가 오라 하면 와야 하는 것이 구양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직접 움직이려는 천마를 보며 천소화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덥석.
복잡한 생각은 접어 두고는 천마가 내민 손을 잡았다.
천마가 쓸데없는 행동을 할 사내는 아니니 말이다.
그렇게 천소화는 천마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고, 곧 천마와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걷기를 잠시.
“푸하하!”
“푸하하!”
지마궁에 위치한 장로전의 연무장에 도착하자 권마와 구양적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존을 뵙습니다!”
갑작스러운 천마의 등장에 권마를 지켜보며 혀를 차던 장로들은 화들짝 놀라며 예를 갖추었고, 한참을 웃던 권마와 구양적 또한 몸을 돌려 예를 갖추었다.
“구양적.”
“예! 교주님!”
천마의 싸늘한 어조.
그 어조에 이제는 익숙해진 구양적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에 천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권마의 자리에 도전한다고?”
“네! 그렇습니다!”
천마의 물음에 구양적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구양적의 모습에 장로들은 한숨을 내쉬었고.
“푸하하!”
권마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 장로들을 보며 천마는 살짝 미소를 지었고, 이내.
“앉지.”
눈치 빠른 시녀, 유화가 가져다준 의자에 앉은 천마가 옆자리를 가리키며 천소화에게 말했다.
그에 천소화는 아무 말 없이 천마의 옆에 앉았고, 그녀가 앉은 것을 확인한 천마는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자신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구양적을 바라보았다.
“구양권가의 구양적. 너의 도전을 허한다.”
“지존!”
“교주님!”
천마의 입에서 나온 허락.
그 허락에 장로들과 마뇌가 화들짝 놀라며 만류했지만.
“시끄러.”
천마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마기에 가슴이 서늘해졌던 것이다.
그렇게 모두의 불만을 순식간에 잠재운 천마는 다시 고개를 돌려 구양적과 권마를 바라보았다.
장로들의 불만을 잠재웠으니 더 이상 질질 끌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어서 빨리 대련을 시작하라고 명을 내리려던 찰나.
“교주님, 적이는 아직 어린아이예요.”
천마의 옆, 천소화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움찔!
“……?”
천마가 움찔했고, 장로들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마치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말이다.
“극신이보다 고작 두 살 많은 아이예요. 헌데 권마 장로와 대련이라니요. 게다가 제가 알기로는 장로에 대한 도전은 곧 목숨을 건 것과 같은 것 아닌가요?”
“맞다.”
“저 어린아이에게 그 무서운 대련을 허락한다는 말인가요?”
천마의 대답에 천소화가 다시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이다.
그러한 천소화의 물음에.
“살생은 금한다.”
천마가 권마를 보며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존명!”
그에 권마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고.
“고마워요.”
천소화가 싱긋 웃으며 자신의 말을 들어준 천마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그렇게 살생을 금하는 것으로 대련이 성사되었고, 구양적은 정식으로 이장로 권마에게 도전하게 되었다.
만약 구양적이 승리한다면 구양적은 권마 拳魔 라는 명예를 이어받게 될 것이고, 권마가 이긴다면 구양적은 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터질 것이다.
도전 실패의 벌로 가혹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모르는 소리.
천소화의 부탁으로 이번만 한정적으로 수정을 한 것이다.
원래라면 패배자에게는 죽음뿐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대련은 성사가 되었고, 곧 장로들이 물러나 내공이 없는 천소화를 위해 기를 둘러 보호막을 펼쳤다.
“푸하하! 아들아! 죽고 싶나 보구나!”
“푸하하! 살고 싶습니다!”
“푸하하! 그런데 까부냐?”
“푸하하!”
“푸하하!”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주고받기를 잠시.
권마는 주먹을 쥐며 자세를 낮추었고, 구양적 또한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
타앗!
둘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고.
콰앙!
주먹에서 일어난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와 동시에.
“크흑!”
콰앙!
구양적이 뒤로 세 걸음 물러나며 신음을 흘렸다.
그러한 구양적의 모습에 장로들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 겁대가리 없는 무식한 새끼 곰.
지주제도 모르고 권마에게 까불었으니 저럴 만도 했다.
그렇게 구양적을 보며 한심함에 혀를 차던 것도 잠시.
이내 장로들은 두 눈을 부릅떴다.
“푸하하!”
바로, 구양적을 물러나게 만든 권마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채 웃고 있었던 것이다.
이십 대 중반의 구양적.
그가 천마신교의 서열 오위인 권마를 뒤로 물러서게 만든 것이다!
그 믿기지 않는 모습에 장로들이 놀란 것도 잠시.
파앗!
옆에서 들려오는 낯선 기운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따뜻함이 가득한 노란색의 기운이 말이다.
구양적의 주먹에 모인 노란색의 기운.
“뭐냐.”
그 기운에 허구한 날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고 다니던 권마가 처음으로 정색을 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권마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 강기가 아닌 낯선 강기를 선보이는 구양적의 모습에 화가 났던 것이다.
그러한 권마의 낮은 음성에 구양적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이제부터 내가 장로입니다!”
콰앙!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권마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 둘러진 노란색의 권강 拳堽.
불안전하지만 확실히 권강이었다.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화경의 경지, 천하십대고수들의 상징과 같은 그 강기 말이다!
그러한 구양적의 권강에 모든 장로가 두 눈을 부릅떴고.
“아아…….”
아직 화경의 경지에 접어들지 못한 오장로 혈화가 탄식을 내뱉었다.
까마득하게 어린 후기지수.
자신의 제자와 비슷한 나이인 구양적이 자신을 넘어섰으니 혈화의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우우우웅!
그러한 혈화를 뒤로하고. 구양적의 주먹에 둘러진 불안전한 노란색의 권강에서는 따사로운 태양 빛과 같은 따뜻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강력한 기운을 자랑하는 구양권가의 기운과 달리 따뜻한 기운이 가득 담긴 그 권강에 권마는 기분이 나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자식이 뛰어난 성취를 보이고 있지만 그것이 본가의, 그리고 자신과 같은 기운이 아니었기에 불편했던 것이다.
그러한 감정을 느끼며 권마는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우웅!
그러고는 강력한 기운을 폭발적으로 터뜨리며 순식간에 완벽한 권강을 만들어 냈고, 이내 붉은 권강은 이글거리는 태양과 같이 거대한 모습으로 변화하여 구양적을 덮쳤다.
“권마!!”
“이 미친놈이!”
그런 권마의 모습에 검마와 창마가 화들짝 놀라며 권마를 불러 만류했다.
화경의 경지에 들어선 그들. 그들의 눈에 지금 권마의 일격은 최선을 다한 일격필살이었으니 화들짝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하나뿐인 아들을 죽이려는 권마의 모습에 검마와 창마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달려들려고 했지만.
지잉!
거대한 붉은 태양 사이로 묘하게 느껴지는 작은 기운에 신형을 멈추어 세웠다.
그러고는.
파앗!
지이이잉!
작은 기운이 점점 빠른 속도로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붉은 태양을 깨트리고 모습을 드러내더니 주변을 밝게 빛내었고.
“푸하하!”
그 속에서 권마와 같은 거대한 태양, 색깔만 다른 노란 태양을 주먹에 소환한 구양적이 입가에 피를 흘리며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러고는.
쿠웅!
하늘에서 태양이 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주먹을 내려쳤고, 권마는 다시 강하게 말아 쥔 주먹을 위로 들어 올렸다.
거대한 붉은 태양과 노란 태양.
그 둘은 금방이라도 서로를 삼켜 버릴 듯한 기세로 어울렸고 곧.
파앗!
붉은 태양이 노란 태양을 잡아먹고 말았다.
그런 노란 태양의 힘을 먹고 더 강해졌을까?
붉은 태양은 강력한 기운을 내뿜으며 구양적에게 날아갔고.
“푸하하!”
그런 붉은 태양을 보며 구양적은 시원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피를 토하며 말이다.
그렇게 붉은 태양이 구양적을 막 덮치려던 순간!
챠자작!
바닥에서 얼음벽이 생성되어 붉은 태양을 막아섰다.
하지만 얼음벽이 태양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붉은 태양은 얼음벽을 빠른 속도로 녹인 후 다시 앞으로 나아갔고.
차자자작!
얼음벽을 생성한 본인.
유화가 모든 기운을 끌어 올리며 다시 내공을 일으켰다.
그렇게 다시 얼음벽이 생성되었고, 곧 그 벽은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빠른 속도로 녹아내렸다.
하지만 유화의 노력이 헛수고는 아니었는지 붉은 태양의 기운은 눈에 띄게 약해졌고, 속도 또한 느려졌다.
그에 천천히 기운을 빼며 다른 장로들에게 기막을 맡긴 검마가 안으로 나섰고.
사악!
거대한 붉은 태양을 그대로 반으로 갈라 버렸다.
콰앙!
갈라진 붉은 태양은 애꿎은 돌바닥만을 때렸고, 이내 거대한 폭음과 함께 태양은 사라졌다.
“…….”
그렇게 다급한 상황이 일단락이 되고.
“쿨럭!”
“유화 누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피를 토하는 유화의 모습에 구양적이 화들짝 놀라 그녀를 부축했다.
“누이! 괜찮으시오? 누이! 누이!”
창백한 피부의 유화.
자신의 품 안에 안긴 그녀를 보며 구양적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한 유화의 모습에.
“으아아!”
구양적은 괴성을 내지르며 분노를 표출했다.
콰콰쾅!
구양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란색의 강력한 기운!
그 기운에 검마가 경계 어린 표정을 지었고, 창마와 환마, 그리고 혈화가 천마를 보호하기 위해 엄호했다.
“권마!”
분노를 넘어 살기까지 담긴 구양적의 음성.
그 음성에 내공을 갈무리하던 권마가 매서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사람 좋은 권마라 하더라도 자식이 자신에게 살기를 보이는 것은 용서하지 못했다.
그에 권마는 무서운 표정으로 구양적을 노려보았고 이내.
“아…….”
그의 품에 안긴 낯익은 여인을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들의 품에 안긴 여인.
소교주의 시녀임과 동시에 소수마공을 익힌 무인이었다.
어린 나이에 뛰어난 성취를 보여 제법 인정받는 고수였고, 소교주가 지극히 아끼는 시녀였다.
그리고.
‘미치겠군.’
자신의 아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의 뒤꽁무니를 맨날 따라다녔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창백한 표정으로 피를 흘리고 있는 그녀를 안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권마는 순식간에 사태 파악을 했고, 복잡해진 상황에 인상을 찌푸렸다.
“권마!”
그런 권마를 보며 구양적은 다시 언성을 높였고, 검마는 검을 들었다.
“제압한다.”
“부탁하지.”
지금 정리하지 않으면 주화입마에 들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검마의 말에 권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검마는 구양적을 바라보며 검을 강하게 쥐었다.
그러고는 막 달려들려던 순간!
빠악!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고.
“시끄러워 곰 새끼야…….”
“누이!!”
아름다우면서도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안도감이 가득한 구양적의 울먹임이 장로전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