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5화
제225장 장로직, 받아가겠습니다 承繼
“누구십니까.”
신강에 서쪽의 큰 성 마림 魔林 에 위치한 구양권가 九陽拳家.
현재 이 장로인 권마 拳魔 가 가주로 있는 가문으로서 대대로 권마를 배출해온 가문임과 동시에 천마신교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오대마가 五大魔家 중 한 곳인 그곳의 정문을 지키는 수위무사는 너덜거리는 포대기를 둘러쓴 거대한 덩치의 사내를 보며 경계 어린 어조로 물었다.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 그리고 덩치. 묘하게 낯익은 그 모습이 괜히 수상했던 것이다.
그러한 수위무사의 물음에.
“푸하하!”
포대기 사이로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경계 어린 음성에 대한 대답으로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
수위무사는 포대기 사내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소가주님?”
이 세상에서 저렇게 괴상하게 웃는 덩치는 가주와 소가주 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한 수위무사의 물음에.
“푸하하! 그래 나다!”
사내, 아니 구양적이 포대기를 집어 던지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수위무사 너머로 보이는 문을 향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장로 권마는 나오시오!”
쩌렁!
갑작스러운 구양적의 소리침에 수위무사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신음을 흘렸지만 구양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인기척이 없는 정문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권마! 나와서 한 판 붙자! 푸하하!”
자신의 아버지인 권마.
마친 친구를 부르듯 도발하며 한 판 붙자는 구양적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구양권가는 조용했다.
그에 이상함을 느낀 구양적이 웃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수위무사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안 계신가?”
“본전에 가 계십니다.”
이제 와서 가주의 존재 유무를 묻는 구양적의 모습에 수위무사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이 시간에?”
그러한 수위무사의 대답에 구양적은 의문 어린 표정으로 되물었다.
현재 시각은 막 해가 뜬 이른 아침이다.
자신이 아는 아버지는 술을 퍼먹고 늦잠을 자다가 해가 중천은 되어서야 머리를 긁으며 본전으로 넘어가는 양반이다.
한데 이렇게 일찍 넘어가 있다고?
그럴 리가.
“이틀 전, 교주님과 함께 중원에서 돌아오시고 계속해서 본전에 머물고 계십니다.”
“왜?”
“뭐, 일이 많으신가 보죠.”
구양적의 물음에 수위무사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다른 가문에서는 볼 수 없는 상당히 건방진 대답이었지만.
“푸하하! 맞네! 너는 모르네!”
구양적은 유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수위무사 또한 귀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잊고 미소를 지었다.
단순하면서도 유쾌한 구양적.
그의 묘한 매력에 그만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만 것이다.
“다른 애들은?”
“엥? 공자님들과 같이 안 있었습니까?”
“그래, 그놈들이 날 버렸어.”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또 소가주님 혼자 딴 길로 샌 거죠?”
“푸하하! 귀신이다! 귀신!”
마치 실제로 본 것마냥 사실을 집어내는 수위무사의 대답에 구양적이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귀신같이 자신의 행동을 알아챈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었던 것이다.
그런 구양적의 모습에 수위무사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입을 열었다.
“우선 들어오세요. 오늘 저녁에는 돌아오실 겁니다.”
“아버지가?”
“네, 아마도요.”
구양적의 물음에 수위무사가 대답했다.
그에 구양적은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고, 이내.
“간다.”
“어디 가십니까!”
“본전에!”
미련 없이 돌아선 다음 무사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파앗!
“……?”
노란 빛을 뿜어냄과 동시에 구양적의 신형은 사라졌다.
순식간에 사라진 구양적의 신형.
그 빈 공간을 수위무사는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대마가의 정문.
그곳을 지키는 수위무사의 경지는 최소한 절정으로 한가락 하는 고수들을 그 자리에 앉힌다.
그러다 보니 수위무사라는 직책은 ‘나는 오대마가의 정문을 지키는 무인이다!’ 하며 당당하게 자랑할 정도로 신강에서는 제법 명예직으로 통하는 것이 바로 정문 수위무사이다.
아무튼, 그런 절정의 고수인 구양권가의 수위무사가 구양적의 기척을 놓치고 말았다.
이제 이십 대 중반인 그의 기척을 말이다.
“미쳤네.”
진짜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가 보다.
* * *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천마신교의 天魔神敎 본전 本殿 을 이루고 있는 삼궁 三宮 중 지마궁 地魔宮 에 위치한 장로전.
가장 상석에 위치한 의자의 옆에 서서 회의를 주관하던 마뇌가 앉아 있는 장로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한 마뇌의 인사에.
“자네가 고생이 많았지. 정말 수고했네.”
사 장로 환마가 싱긋 웃으며 마뇌에게 공을 돌렸다.
그에 마뇌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역시 사장로 환마는 사람이 너무 좋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웃으며 환마에게 감사를 표한 마뇌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이곳에 참가하지 않은 우호법과 함께 본교를 지킨 일 장로, 검마를 바라보았다.
“우호법 어르신과 함께 보낸 시간은 어떠셨습니까?”
이틀 동안 마정회동에 있었던 안건과 그로 인한 교역권 확보 등을 회의하며 시간을 보내었기에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를 못하였다.
그렇기에 마뇌는 오랜만에 모인 장로들이 반가웠고, 그로 인해 친근한 어조로 물었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 했겠지만 지금은 달라졌으니 말이다.
그러한 마뇌의 친근한 물음에.
“별거 없었다.”
역시나, 검마는 특유의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그렇군요.”
떠나기 전과 다름없는 검마의 차가운 모습에 묘하게 안도감이 들었던 마뇌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권마를 바라보았다.
재미없는 검마 대신 하나하나 반응해주는 권마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왔더군.”
그렇게 마뇌가 권마를 보며 막 말을 걸려던 찰나.
검마의 차가운 음성이 마뇌의 입을 막아섰다.
그에 마뇌는 다시 고개를 돌려 검마를 바라보았고, 모든 장로들 또한 마뇌와 마찬가지로 검마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자 검마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서역에서 제법 강해져서 돌아왔더군.”
“아, 맞습니다.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더군요.”
검마의 말에 마뇌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무림맹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정보를 접해왔던 마뇌였기에 그들의 행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서역의 대제국, 파사국의 기사들에게 서역의 무술을 배웠다는 것도 말이다.
아무튼, 그런 마뇌가 검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호호, 제법 사내다워졌던걸요? 본교의 미래가 밝아요.”
오 장로 혈화가 웃으며 마뇌의 말을 도왔다.
특유의 간드러진 웃음과 함께 색기 어린 목소리는 뭇 남성의 심금을 울릴 정도였지만.
“푸하하! 우리 아들은?”
아쉽게도 이곳의 사내들은 평범한 사내들이 아니었다.
오 장로 혈화의 색기 어린 목소리를 가볍게 넘긴 장로들과 마뇌.
그중 거대한 덩치를 지닌 이 장로 권마가 검마를 보며 물었다.
그래도 장로 중에서 아들을 가장 챙겼던 인물이 권마였기에 그의 질문에 마뇌와 다른 장로들은 의문을 가지지 않고 검마를 바라보았다.
천마신교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을 뽑으라 하면 단연코 권마를 뽑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그를 빼다 박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닮았다.
그러다 보니 장로들과 마뇌가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어이가 없는, 미친 짓을 했을까 하고 말이다.
그렇게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자 검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없었다는군.”
묘하게 불퉁한 검마의 대답.
“푸하하! 역시! 특별해!”
그러한 검마의 차가운 대답에 권마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둘 사이로.
“네 아들이 초절정에 올랐더군.”
창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질투가 조금 담긴 창마의 눈빛.
그 눈빛을 받은 검마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 라는 듯이 말이다.
그런 창마의 말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에 검마에게 집중되었다.
“정말입니까?”
그중, 유일하게 이성적인 마뇌가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그에 검마가 뜸 들일 것 없이 속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초절정의 경지야.”
“대단하군요!”
“꽤 완숙하더군.”
“제법이군.”
마뇌의 놀람에 검마가 다시 말했다.
그에 삼 장로 창마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감탄했다.
설마, 이제 이십 대 중반인 검마의 아들이 벌써 완숙한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을 줄이야.
‘멍청한 놈.’
그런 단진에게 밀려 아직도 절정에 머물러 있는 야율민을 떠올리며 혀를 찬 것도 잠시.
“천마신의 직계를 제외하고는 최초야.”
또다시 들려오는 검마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묘하게 웃음기가 섞인 검마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장로들은 묘한 표정을 지었고, 마뇌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단합니다.”
검마의 말에 호응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호응을 해주며 다시 고개를 돌리려던 마뇌.
“환천마검의 경지는 나를 웃도는 것 같더군.”
그는 뒤이어 들려오는 검마의 목소리에 시선을 검마에게 고정했다.
이 상황에서 다른 장로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검마에게 무례였으니 말이다.
“본가의 무인들이 녀석을 보며 초대 검마의 재림이라 하더군.”
“…….”
“유성 검을 제법 많이 띄우는 모양이야.”
“…….”
“그 나이대의 나보다 나은 것 같더군.”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
차가운 표정으로 계속해서 자신의 아들을 자랑하는 검마.
차가운 모습과 다르게 신난 듯한 그의 목소리에 마뇌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잊고 있었다. 검마.
그 또한 이장로 권마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들을 생각한다는 것을 말이다.
가만두면 끝이 없다고 판단이 되었던 마뇌 그가 검마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하지만.
-이 장로! 권마 너 나와!-
쩌렁쩌렁!
지마궁의 장로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
갑작스러운 이 장로 권마의 소환.
그 무례한 소환에 장로들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감히 세상에 어떤 존재가 천마신교의 본전에서 저렇게 큰 목소리로 소리치겠는가?
그리고 구양권가의 가주이자 이 장로인 권마를 저렇게 건방지게 불러낼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장로들과 마뇌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푸하하! 망할 놈이 왔구나!”
그러한 장로들과는 달리.
익숙한 큰 목소리에 자신의 아들이 온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권마가 소리 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푸하하! 나와! 나오라고! 한판 뜨자!-
“푸하하! 남자다운 녀석이군!”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구양적의 도전.
그 도전이 만족스러웠던 권마가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장로 전을 나섰다.
구양적의 도전에 응해주기 위해서였다.
“…….”
그렇게 권마가 장로 전을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잠깐의 침묵이 장로 전에 감돌았다.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인지 짐작도 되지 않아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다.
“그…… 일단 나가보심이…….”
그렇게 장로들의 침묵에 정신을 차린 마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한 마뇌의 말에.
“나가지.”
“그래.”
“네.”
“그래요, 그 미친 곰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검마를 시작으로 창마와 환마, 그리고 혈화가 동의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장로들이 장로전을 나서자마자.
“장로직, 제가 받아 가겠습니다!”
당당하게 선 채로, 이 장로의 자리에 도전하는 젊은 사내, 구양적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