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4화
제224장 다르지만 같다 他人本人
“아미타불……. 이 멍청한 공진아…… 어찌 위 대주를 의심했단 말이냐……. 그 좋은 사람을…….”
감찰대원들에게 안내된 전각의 앞.
그곳의 마당에 쭈그려 앉은 공진은 불호를 읊으며 멍청했던 과거의 자신을 탓했다.
그렇게 자책하는 공진의 옆에는.
“미안해…….”
“누구세요?”
“진짜 미안…….”
“흥!”
토라진 남궁연화를 달래주는 왕일과.
“헤헤, 형님들. 저 잘했지요?”
“그래, 역시 본 교의 신도 같았다.”
“이 자식! 기특해!”
“잘했다.
“헤헤.”
위극신을 믿고 공진에게 지팡이를 들이밀었던 마독, 그런 마독을 칭찬하는 천마신교의 삼인방이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대원들 사이로.
“하아…….”
공진은 다시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여장은 푸셨는지요?”
그런 대원들의 사이로.
인자한 미소를 지은 젊은 도인, 태진이 다가와 물었다.
미소만큼이나 부드럽고 온화한 태진의 물음에 쭈그려 앉아 있던 공진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아미타불…… 덕분에 여장을 잘 풀었습니다.”
손을 모아 합장을 하며 무당파의 환대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그런 공진의 예의 바른 행동에 태진 또한 마주 고개를 숙인 다음,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행입니다. 천년 소림을 지켜 줄 권 拳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태진입니다.”
공진의 정체를 알고 인사를 건넨 태진.
혈승 血僧 이라는 괴이한 별호를 언급하지 않고, 예를 갖추며 인사를 하는 태진의 모습에 공진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배려해주는 그의 배려심이 기특하고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자신의 동생과 또래로 보이는 태진. 어쩌면 동생과 좋은 벗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하며 공진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저 또한 차기 무당 제일 검, 정투검 正鬪劍 도장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마대회에서 보여주었던 태진의 모습.
전신에 피를 흘리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그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정투검 이라 불렀다.
바른 싸움을 행하는 검, 뭐 그런 뜻으로 말이다.
“거참, 재미없네. 그치 얼음?”
그렇게 서로 예를 차리며 인사하는 공진과 태진의 사이로.
빈정거리는 야율민의 음성과.
“음.”
야율민을 무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의하는 대답을 하는 듯한 단진의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 둘의 음성에 공진과 태진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하, 자네들도 나에게 실망하였는가?”
여정을 함께하는 동안 믿고 있는 신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예를 갖추며 행동을 한 덕분에 그들과 친해진 공진이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고.
“당신들이 은공의 수하들이군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태진이 부드러움 속에 날 선 기운을 감추며 그들을 향해 말했다.
자신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은공.
그런 은공과 늘 함께하는 수하들을 보니 괜히 질투심이 일어났던 것이다.
“호오?”
그러한 태진의 눈빛에 야율민과 사마천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고.
“…….”
단진은 아무런 말 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태진을 바라보았다.
“하하! 왜 이러시나! 자자. 자네들도 어서 인사 나누게!”
그들의 사이에 묘한 기류가 일렁이자 귀신같이 그것을 눈치챈 공진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듯 웃으며 말했지만.
“눈, 똑바로 뜨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뽑아 버릴 거 같으니까.”
피식 미소를 지은 야율민이 손가락 두 개로 눈을 가리키며 경고했다.
태진의 눈 속에 있는 날 선 감정.
그것이 상당히 건방지다 생각했던 야율민이 도발하듯 경고하자 태진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특유의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기분 나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은공의 수하라고 들어 기대를 크게 했나 봅니다. 못난 모습을 보여 죄송합니다.”
“이 새X 보소?”
말의 형식은 사과였지만 그 속은 은공의 수하라 강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막상 만나 보니 기대에 못 미치지 못해 실망했다는 뜻이다.
즉, 사과하는 척하면서 한 방 먹인 것이다.
그의 뭐 같은 화법에 야율민이 어이가 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러고는.
철컥! 슥!
“정파 새X 아니라 빙빙 돌려 말하기는. 그냥 한 판 하자는 거지?”
허리춤에서 두 개의 단창을 꺼내 결합한 야율민이 창을 태진에게 겨누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무량수불…… 설마 그것이 무기인지는 몰랐습니다.”
허리춤에 짧게 걸린 단 창.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저 허리춤에 걸린 장식품으로 보였다.
게다가 등에 메고 있던 장창을 제출했던 야율민이었기에 그것이 또 다른 무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무당파의 규율을 어기고, 예를 차리기는커녕 오히려 골탕 먹인 듯한 야율민의 행동에 태진은 웃음기를 지우고는 노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한 태진의 노한 눈빛에.
“내가 원래 말 좀 안 듣는 편이야.”
야율민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러고는.
“야룡아, 놀자.”
자세를 낮추며 보란 듯이 장창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야율민의 이러한 행동은 태진을 약 올리기 위한 것이었지만.
“병이군.”
“병이야.”
어린 시절 야율민의 모습을 떠올리며 사마천과 단진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한 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야율민은 애써 무시했다.
아무튼, 그러한 야율민의 도발 어린 행동이 먹혀들었을까?
“본 파의 전통을 무시한 그대는 귀빈으로 분류할 수 없겠군요.”
태진이 싸늘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들며 응수했다.
“어? 이렇게 싸운단 말이오?”
갑작스러운 둘의 모습에 공진이 당황해하며 말리려 했지만.
“부대주님,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현재 천마신교의 인물 중 유일하게 자신을 상대해주던 마독이 말리며 말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무당파의 규율을 어긴 이 상황에서 자신이 나서기에는 애매했다.
‘그 친구가 알아서 다 해주겠지.’
분명 지금쯤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아주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이다.
그렇게 그의 모습을 떠올린 공진이 뒤로 물러나고, 단진과 사마천, 그리고 왕일과 남궁연화 또한 물러나며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대원들에게 둘러싸여 마주하게 된 야율민과 태진.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 몇 살이냐?”
“나이가 무엇이 중요합니까.”
“너는 윗사람에 대한 공경도 없냐? 내가 너 보다 열 살은 많을 텐데.”
“당신이 본 파의 불청객인 이상, 제가 예를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야율민의 빈정거리는 말에도 불구하고 태진은 흔들림 없는 어조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런 태진의 당돌한 대답에.
“이야, 이거 꽉 막힌 놈이네. 너 재미있다.”
야율민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태진을 바라보았다.
얼음 탱이인 단진만큼이나 특이한 놈이었기에 괜히 호감이 갔던 것이다.
그러한 야율민의 모습에.
“변태 새X.”
멀리서 단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야율민은 애써 무시하며 태진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형이라 부를레? 형이 잘해 줄게.”
“싫습니다.”
“왜? 신교인 이라서?”
“사상이 다른 이상, 형이라 부르기는 힘듭니다.”
“사상이 뭐가 중요해?”
태진의 대답에 야율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태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걷는 길이 다른 존재를 어찌 형이라 부른단 말입니까?”
“헐…… 그럼 나랑 성별이 다른 엄마를 왜 엄마라 불러? 세대가 달라서 나와 가치관이 다른 아빠를 왜 아빠라 불러?”
“…….”
“할 말 없지?”
생각지 못한 야율민의 물음.
그 물음에 태진은 순간 말문이 막혀 오는 것을 느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관점을 지닌 야율민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태진의 모습에 야율민은 약 올리듯 웃으며 물었다.
마치 자신의 말이 맞늦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말이다.
그에 태진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 어떠한 도발에도 흔들림 없던 태진.
아직 어려 경험이 미숙했던 태진은 야율민이 미처 깨닫지 못한 틈을 파고들며 까불거리자 짜증이 났던 것이다.
“저는 엄마, 아빠가 없습니다.”
“응……?”
그런 태진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야율민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
“저는 천애 고아였습니다.”
“아…… 그러냐……?”
지금의 분위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아무 말.
그런 태진의 아무 말에 야율민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는.
“그…… 미안하다.”
볼을 긁적이며 태진에게 사과를 건네었다.
“……?”
그런 야율민의 사과에 태진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가 사과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부모가 있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야. 나도 아버지랑 사이가 안 좋거든. 어릴 때는 아버지에게 살기를 보이기도 했어. 그러니 기죽지 말고…….”
그러한 태진의 시선에 자신의 과거를 꺼내면서까지 입을 연 야율민.
마치 자신을 위로하려는 듯한 야율민의 모습에 태진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기 멋대로에 직설적인 화법을 사용하는 천마신교의 무인.
그런 무인이 부모가 없다는 자신의 말에 당황해하며 위로하는 모습은 상당히 신선했던 것이다.
“아, 몰라! 야! 말 함부로 해서 미안! 그러니 넘어가자!”
그렇게 주절주절하며 위로의 말을 꺼내던 것도 잠시.
야율민은 짜증을 내며 머리를 흔들었고, 이내 태진을 향해 말했다.
그냥 넘어가자고 말이다.
그에 태진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야율민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걷는 길이, 생각하고 있는 가치관과 가지고 있는 사상이 다르다 하더라도 친하면 형 동생이고, 나를 낳아주었으면 엄마! 나를 만들었으면 아빠야! 그러니 편하게 생각해!”
“…….”
“길이 뭐가 중요해? 다 같은 사람인데.”
“아…….”
야율민의 입에서 나온 신경질적인 음성.
그 음성에 태진은 탄성을 내뱉었다.
야율민의 말이 맞았다.
세력이 다르다, 그리고 걷는 길이 다르다.
그렇게 따지면 같은 세력이더라도 가지고 있는 사상이 다르다. 그리고 사상이 같다 하더라도, 그들이 생각하는 가치관이 다르다.
즉 어떤 사람이더라도 모두가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모두가 생각을 하는 똑같은 사람이다.
야율민의 말에 태진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다르면서 같은 것을.
어찌 자신은 선을 긋고, 다르다며 형이라 부르기를 꺼려했단 말인가?
도대체 왜?
과거의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태진이 홀로 생각에 빠져들자.
“이거 뭐냐?”
생각지 못한 부모 욕을 하여 미안했던 것도 잠시. 갑자기 멍해지는 녀석을 보며 야율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안 오면 내가 간다?”
무당의 도사와 한번 붙어보고 싶어 해검을 하지 않았던 야율민.
그가 자세를 낮추며 태진에게 말했다.
그러한 야율민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멍한 태진에게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그에 야율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이런 무시는 기분이 나빴다.
그에 화가 난 야율민이 발에 힘을 주었고,
타앗!
빠른 속도로 허점을 보이고 있는 태진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날카로운 야율민의 창끝이 태진에게 막 닿으려던 찰나!
덥석!
“……?”
한 개의 새하얀 손이 야율민의 창을 잡아 막아섰다.
그에 야율민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고, 이내.
“소교주님……?”
자신의 창을 잡은 존재를 알아채고는 놀란 음성을 내뱉었다.
야율민의 장창을 손에 쥐고 그런 야율민을 내려다보고 있는 위극신.
그는 놀란 야율민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잠깐 기다려.”
“네?”
위극신의 갑작스러운 명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련을 시작 하기 직전이다.
한데, 갑자기 기다리라니?
야율민이 영문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위극신을 바라보자. 그가 신경질적인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깨달음이 온 거야. 그러니 기다리라고.”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