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2화
제222장 혼원 混元
우우웅!
검은색으로 뒤덮인 어두운 하늘.
그 하늘의 가운데, 치솟아 있었던 검은 불꽃에서 회색빛이 뿜어져 나왔고 잠깐 일렁이더니 곧, 회색빛에 삼켜지며 검은 불꽃이 사라졌다.
그렇게 검은 불꽃이 사라지고.
“아진!”
“사숙!”
죽은 것이라 생각했던 아진.
그녀가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나타났다.
생각지 못한 그녀의 등장에 아연 사태는 물론 아미파의 제자들이 그녀를 불렀고, 그 외침에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올.”
혼원 混元 의 기운이 가득한 그녀의 회색 눈동자.
나의 두 눈에 비추어진 그녀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니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진여래신공 眞如來神功.
불교의 가르침에서 느껴지는 항마의 기운에 정신이 팔려 도교의 가르침을 등한시했던 아미파.
도교의 가르침에서 부드러움을 배워 여래의 뜻을 완성시키려했던 초대 제자들과 달리 불교 하나에 꽂혀버린 그들로 인해 아미파를 대표하던 무공이 사라지고 말았다.
나중에는 약하된 여래신공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복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뭐, 결과는 알다시피 폭망.
수많은 제자가 잘못된 무공해석으로 인해 목숨을 잃어 나갔고, 그로 인해 아미파는 결국 한세대 일찍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헛 다리를 짚으며 세월을 보내다 보니 진여래신공의 비밀을 아는 존재는 오로지 당대 천마뿐이게 되었다.
참 재미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아미파의 절세신공인 진여래신공의 비밀을 정작 아미파는 모르고, 마도의 지존인 천마는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내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기운을 살피자 혼원의 기운으로 가득 찬 아진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뭐가?”
“일부러 순수한 마기에 뒤덮인 곳으로 저를 보내 주지 않았습니까.”
맞다.
혼원의 기운을 깨닫게 하기 위해 일부러 불교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인 기운.
그러면서도 근원은 같은 순수한 마기가 가득한 곳으로 보내긴 했다.
한데 이렇게 내 의중을 한 번에 파악하다니.
“뭐래, 꺼져.”
괜히 부끄러웠다.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감사를 표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후후.”
그녀는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 상당히 거슬리는 웃음이었다.
‘그냥 죽일까.’
숙제도 달성했으니 그냥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던 것도 잠시.
“은공……?”
“대주……?”
“역시, 소교주님은 생각이 다 있으셨어…….”
수많은 사람의 의문 어린 음성과 시선, 그리고 사마천의 쾌재와 같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아진이 살아나옴과 동시에 나를 향해 감사를 표하자 모두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했다.
그러고는 다시 아진의 회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자, 그럼 나머지 이 검. 막아봐야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머지 이 검을 받으라는 나의 장난스러운 물음, 그 물음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인자한 미소를 지은 아진이 대답했다.
거참.
나보다 어릴 텐데 마치 누나를 대하는 것 같네.
진여래신공의 깨달음 덕분일까?
확 달라진 인상을 보이는 그녀를 보며 나는 혀를 찼다.
그러고는 다시 검을 들었고.
우웅!
검을 버린 그녀.
그녀가 앞으로 내민 손바닥에 회색의 강력한 기운이 회오리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진여래장!”
그런 아진의 기운과 손바닥의 모습에 무릎을 꿇고 있던 아연 사태가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아미파의 숙원과도 같았던 무공.
그 무공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당연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아연 사태의 소리침에 뒤에 있던 제자들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들어 아진을 바라보았고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은은한 미소를 지은 아진이 손바닥을 살짝 뒤로 뺐다.
그러고는.
“잘 부탁드립니다.”
검을 들고 있는 나를 향해 말했다.
그와 동시에 회색의 폭풍과도 같은 그녀의 손바닥이 앞으로 뻗어졌고.
“지X.”
나의 검도 밑으로 떨어져 내려왔다.
나의 일 검 一 劍과 아진의 일 장 一 掌.
검은색의 기운과 회색의 기운이 부딪혔고, 그와 동시에.
“커헉!”
아진이 각혈을 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진여래신공.
뭐 뛰어난 무공이긴 했다.
하지만.
“약하네.”
천마신공에 비한다면 새 발의 피와 같았다.
한쪽 무릎을 꿇고 피를 토한 아진.
그녀를 내려다보며 나는 장난스레 말했다.
그러한 나의 말이 자존심도 상할 법 하건만.
“네, 그러네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은 아진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긍정했다.
거참, 기괴한 모습이었다.
* * *
벌떡!
따뜻한 태양이 비추어지던 평화로운 무당파의 내원.
연무장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장문, 그리고 장로들과 함께 몸을 풀고 있는 일대제자들을 보며 미소를 짓던 것도 잠시.
하늘을 뒤덮은 검은 기운과 전신을 소름 돋게 만드는 강력한 마기에 태극검왕 청수진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정문 쪽입니다!”
그런 청수진인의 옆.
차를 마시던 무당파의 장문이 경악 어린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고,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장로, 집법당주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그에 장문인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사제 지금 당장…….”
무당파의 최고 고수인 태극검왕 청수진인.
그에게 당장 정문으로 갈 것을 부탁하려 했던 장문인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부탁을 들어야 할 청수진인.
그가 이미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장문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검을 거둔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무당파의 실질 적인 일을 맡고 있는 태자 배의 일대제자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나를 따르도록.”
“예!”
자리에서 일어난 장문인.
그가 오랜만에 뒤에 걸려 있던 검을 집어 들며 말했고, 그에 모든 제자들이 짧게 대답했다.
그렇게 내원의 연무장에서 귀한 손님을 기다리던 무당파의 장로들과 일대제자들 모두가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타앗!
‘제발…….’
어두워진 하늘과 매서운 살기에 반응한 청수진인.
그는 정문을 향해 전력으로 신법을 펼치며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태진아…….’
이제는 자신의 제자가 된 태진.
부디 그 아이가 이 강력한 마기에 영향을 받아 마천살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기를 말이다.
그렇게 잠시 후.
순식간이었지만 청수진인에게 있어서 억겁과도 같았던 시간이 흐르고.
“태진아!”
청수진인은 무당파의 정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자 보였다.
천마신교의 무인으로 보이는 창을 든 사내에게 제압당한 태진이 말이다.
우웅!
그에 청수진인은 모든 기운을 끌어 올려 푸른 검강을 만들어 내었고.
“네 이놈!”
그와 동시에 폭발적인 살기를 내뿜으며 태진을 제압한 젊은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
강력한 살기와 함께 자신을 향해 짓쳐들어오는 푸른 검강.
그 검강에 야율민은 두 눈을 부릅떴다.
생각지도 못한, 화경의 고수에게 공격당하게 생겼으니 놀랄 수밖에.
“제길!”
자신을 향해 짓쳐들어오는 검강에 놀란 것도 잠시 야율민은 손에 들린 창을 강하게 쥐었다.
그러고는.
“소교주님 살려주십시오!”
창을 바로 세우며 절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신은 죽기 싫었다.
하나뿐인 여동생에 시집가는 것을 봐야 했고, 그녀가 낳는 아기를 봐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하늘과도 같은 위극신이 무림을 제패하는 것도 봐야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제일 강한 소교주, 위극신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타앗!
팟!
그리고 그런 야율민의 행동은 옳았다.
푸른색의 강기가 넘실거리던 청수진인의 검.
그 검을 막아섬과 동시에 위극신은 마기를 내뿜어 청수진인의 검강을 그대로 흩어버렸다.
강력한 기운을 내뿜었던 모습과는 달리 초라한 모습으로 사라진 푸른색의 검강.
그 기이한 광경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네 이놈! 감히! 내 제자에게!”
청수진인은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강력한 살기와 마기.
그리고 제압당한 제자의 모습에 눈이 돌아간 청수진인은 다시 내공을 끌어 올렸고, 그에 위극신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재밌네.”
진정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짓는 위극신의 모습.
너무나도 여유로운 그의 모습에 청수진인은 분노하며 검을 휘둘렀다.
콰콰쾅!
조금 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력한 청수진인의 검.
그 검에 위극신은 발을 들어 야율민을 밀쳤고, 그 힘에 야율민은 뒤로 물러났다.
“멍청한 놈.”
그런 야율민을 잡아당기며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단진.
그가 차가운 표정으로 야율민에게 핀잔을 주었고, 야율민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소교주를 지켜야 할 창인 자신이 소교주에게 보호를 받았으니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더 강해져라.”
그런 야율민을 위로하는 것일까?
단진이 가볍게 말했고, 옆에 있던 사마천이 말없이 야율민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아무튼, 그렇게 야율민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위극신은 다시 검을 들었다.
그러고는.
우웅!
그의 검에서 칠흑색과 같은 검은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우웅!
콰콰쾅!
거대한 해일과도 같은 기운을 내뿜으며 폭발적으로 휘둘러지는 청수진인의 검.
도저히 무당파의 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강력한 힘에도 위극신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가 검을 들어 청수진인의 검을 막아섰고, 그와 동시에 위극신의 검에 둘려 있던 검은 기운이 청수진인의 푸른 검강을 집어 삼켜버렸다.
말 그대로 강기 자체를 집어 삼켜버린 위극신의 마기.
그에 청수진인이 황급히 검을 떼었지만.
“어딜.”
씨익 미소를 지은 위극신이 장난스레 말하고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콰앙!
그와 동시에 위극신의 손바닥에서 강력한 마기가 뿜어져 나와 청수진인의 복부를 때렸고, 그 강력한 힘에 청수진인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날아갔다.
타닥!
그래도 화경의 경지에 오른 것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물러서면서도 자세를 바로 하여 멈추어선 청수진인.
제법 내상이 있었을까?
한줄기 선혈을 입가에 흘린 그가 다시 검을 들었다.
그러고는 위극신을 노려보았다.
“나는, 너를 죽일 것이다.”
“무당파의 도사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살인 막 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살기 어린 청수진인의 말.
그 말에 위극신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청수진인은 두 눈을 치켜세웠다.
그러고는.
“내 제자를 해하지……?”
자신의 제자를 가리키며 소리쳤…… 아니, 치려고 했다.
멀쩡한 자신의 제자와 두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 말이다.
언제 무릎을 꿇었냐는 듯 당당하게 서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태진.
그런 태진의 모습에 청수진인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제!”
“사숙!”
그런 태진의 뒤로.
무당파의 장문인과 장로들, 그리고 일대제자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곧.
“어……?”
묘한 자세로 서 있는 청수진인과 태진, 그리고 허자 배의 제자들.
그리고 한 여인을 부축하고 있는 아미파의 제자들과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림의 승려, 그런 승려를 보며 혀를 차고 있는 젊은 남녀들을 보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세상 복잡한 광경.
그 광경 하나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