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0화
제220장 암천, 그리고 흑화. 暗天黑火
스윽…….
실망이군.
나의 목소리에 전신을 부르르 떨며 천천히 몸을 숙여 검을 집어 든 현화.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명문, 아미파의 제자라는 자가 저런 못난 모습을 보이다니. 명문이라는 이름이 아까웠다.
“소교주!”
“물러나.”
“정녕, 본 파와 전쟁을 원하는 겁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전쟁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꺼내며 말하는 아연 사태를 보며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전쟁?
나쁘지 않았다.
명분은 우리에게 있으니 말이다.
그런 나의 대답에 아연 사태가 움찔했다.
그래, 머리가 있다면 전쟁 나면 자기만 손해라는 것을 알 것이다.천마신교와 아미파.
구대 문파 중 한 곳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아미파지만 긴 세월을 단일 세력으로 굳건하게 보내온 천마신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당장, 천마신교의 오대마가 중 한 곳만 나서더라도 아미파는 멸문할 것이다.
무림맹의 사람들이 들었다면 경악할 평가였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작금의 천마신교는 초대 천마가 살아 있었을 때와 같은 강성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림맹이 가만히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까? 절대 두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본교도 가만히 있지 않지. 야, 먼저 시비 걸은 건 그쪽이야. 우리가 한 번 봐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말이야.”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자기가 피해자인 척 소리치는 아연 사태를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나의 말에 아연 사태는 움찔했고,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대화가 일단락이 되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싸늘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미파의 어린 제자, 현화를 바라보았다.
“만약 네가 나의 검을 받는다면 아미파의 모든 죄를 용서하겠다.”
“……?”
나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현화가 두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그에 나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받아들이겠나?”
“…….”
“흐음…… 만약 내가 아미파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아미파는 멸문일 거야. 그건 내가 약속하지.”
“!!!”
우물쭈물하며 망설이는 현화의 모습에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가볍게 말했다.
그런 나의 말에 현화가 두 눈을 부릅뜨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장난스레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미파는 본 교의 적이 되는 거야. 무림맹은 본교와의 관계를 위해서, 또 잘못 또한 너희가 했으니 제대로 나서지 못할 것이야. 명분은 우리에게 있으니 말이야.”
“…….”
어리더라도 무림의 정세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것 같았다.
명분이라는 단어에 그녀 또한 나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숙였으니 말이다.
“어떡할까? 네가 나의 일 검만 받으면 돼. 뭐 죽을 수도 있겠지만.”
움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이 없는 현화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물었다.
그에 현화가 움찔거렸다.
아무리 어린 나이더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의 일 검을 받는다는 것은 고작 이류에 불과한 그녀에게 있어서 사망 선고와 같다는 것을 말이다.
그에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인 채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현화를 바라보았다.
‘쩝, 재미없네.’
고개를 숙인 채, 떨어지는 눈물로 바닥을 적시고 있는 현화.
그런 현화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린 여제자의 기개를 보고 싶어 일부러 못된 사람처럼 행동해봤다.
하지만 어린 여제자는 내가 원하는 기개가 없었고, 이 재미없는 상황을 끝내기 위해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냥 아연 사태의 머리를 한 대 때리고 이 상황을 마무리해야겠다.
더 이상 현화를 핍박했다가는 서은설에게 차일 것 같으니 말이다.
점점 날카로워지는 서은설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연 사태를 바라보았다.
나의 눈길에도 여전히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연 사태.
그런 그녀에게 한 대 맞고 끝내자고 막 말하려는 순간!
“제가 나서도 되겠습니까?”
“호오?”
한 여인이 앞으로 나섰다.
현화라는 어린 제자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소녀.
“처음 뵙겠습니다. 아미파의 아진이라고 합니다.”
한화검봉이라는 거창한 별호로 불리는 아미파의 후기지수……. 아니, 최연소 장로를 보며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내가 아미파에게 원했던 젊은 기개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사숙…….”
“조용히 해.”
위극신의 흥미로운 눈빛.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 순수하기까지 한 그의 눈빛을 마주하며 긴장한 아진.
그녀는 자신의 손을 잡으며 만류하는 현화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위극신의 두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부디, 못난 제자 대신 제가 소교주님의 일 검을 받을 영광을 주십시오.”
“흐음…….”
아무래도 저 악마의 흥미를 끌어내지는 못했나 보다.
처음의 흥미로움과 달리, 자신이 대신 받겠다는 말에 위극신은 흥미로운 기색을 지우며 턱을 쓰다듬었다.
마치, 이 장난감을 돈 주고 살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평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에 아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졸지에 자신의 가치를 내보여야 하는 장난감이 되어버렸으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분이 나빴던 것도 잠시, 그녀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의 흥미를 이끌어야 해.’
그래야 자신의 아미파, 그리고 제자들이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타앗!
그렇게 생각을 하며 내공을 끌어올린 아진. 그녀가 바닥을 박차며 전속력으로 움직였다.
턱!
“헙!”
허참의 손에 들려 있던 아진의 검.
그 검이 다시 아진의 손에 들려왔다.
순식간에 손에 들려 있던 검을 빼앗겨 버린 허참.
그는 놀란 음성을 내뱉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두 눈 뜨고 물건을 빼앗겼으니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게 무당파의 전통을 존중하여 해검하였던 아진은 내공을 전력을 내보이며 검을 다시 뺏어왔고.
스르릉.
검을 뽑아 위극신을 향해 겨누었다.
“호오?”
그런 아진의 행동이 고민하던 위극신의 흥미를 이끌었을까?
턱을 쓰다듬던 위극신이 턱에서 손을 떼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 아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화와 아미파를 위해 저 악마의 관심을 이끌어야 했던 지금.
성공적으로 그의 관심을 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검 二 劍.”
그때.
아진의 귀로 웃음기 어린, 가벼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숨을 건 자신과는 달리 이 상황이 그저 즐거운 듯 미소를 짓고 있는 위극신.
얄밉게도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소교주를 보며 아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검 二 劍.
일류에서 절정인 자신이 각 세력의 절대자 삼황 三皇 과 비견되는,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그의 일 검을 받아 낼 수 없다.
받아 내기는커녕, 일 검에 자신은 바로 한줄기 고혼 孤魂 이 될 터.
한데 이 검이라니?
어림도 없는, 절대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시체마저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말이구나…….’
일 검에 자신은 죽을 것이고, 이 검에 자신의 시체는 산산조각 날 것이다.
위극신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 그 뜻은 곧 일부러 저런 말을 한다는 뜻이었다.
‘수라협성이라더니…….’
수라협성이라는 거창한 별호와 달리 너무나도 잔혹한 위극신의 모습.
그런 위극신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아진이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아진아!”
“사숙!”
그런 아진의 대답에 아연과 현화가 화들짝 놀랐지만 아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그 둘을 바라보았다.
“아미파의 장로로서, 아미파의 명운을 짊어지는 일은 제가 하는 것이 맞습니다.”
“아니다, 너보다 위인 내가…….”
“사형.”
아진을 말리며 대신해서 나서려는 아연 사태.
아진은 그런 아연 사태를 나지막하게 불렀다.
그러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사형이 없으면 아미파는 정말 끝이에요. 그러니 제가 나서게 해주세요.”
“아진아…….”
“부탁해요, 사형.”
“…….”
아진의 진심 어린 부탁.
그 부탁에 아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고,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아연 사태의 모습에 아진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아연을 향해 감사를 표하고, 금방이라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현화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겨 위극신의 맞은편에 섰다.
“저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내공을 끌어 올려 전신에 순환시켜 언제든 반응할 수 있도록 몸을 달구었다.
비록 일 검을 받아 내는 것조차 힘들겠지만 자신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래야 억울하게 죽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죽음을 각오하며 아진은 두 손으로 검을 강하게 쥐었다.
그에 위극신은 살짝 미소를 지었고.
이내.
스르릉!
우웅!
그가 검을 뽑아 들었다.
“아…….”
그가 검을 뽑아 들자 거대한 마기가 폭발적으로 뿜어 나와 주변은 물론, 맑은 하늘까지 집어삼켰다.
사라진 햇빛, 그로 인해 어두워진 주변. 그런 주변 사이로. 검을 뽑아 든 채 고고하게 서 있는 위극신의 모습이 보였다.
일렁!
그런 위극신의 뒤.
유형화된 검은색의 마기가 마치 불꽃처럼 일렁거렸다.
위압감을 넘어 원초적인 감정, 공포를 일으키는 위극신의 모습에 아진은 두 다리가 쉴 새 없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마왕.’
그는 말 그대로 마기를 다루는 악마들의 왕, 마왕 그 자체였다.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위극신의 모습에 겁을 먹은 것도 잠시.
스윽!
푹!
그녀는 자신의 머리칼에 꽂혀있던 작은 비녀를 뽑아 허벅지를 찔렀다.
짜릿!
“크윽…….”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고통.
그 고통에 아진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자세를 흩트리지는 않았다.
쉴 새 없이 떨려오던 다리.
너무나도 무섭고 강력한 기운에 움직이지 않는 다리의 통제권이 고통으로 인해 돌아왔기 때문이다.
“시작하지.”
그렇게 아진이 다시 자세를 똑바로 하자 위극신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기가 가득한 그의 목소리.
마왕과 흡사한 그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사람을 홀리는 듯한 아름다우면서 퇴폐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위극신.
그가 검을 들었다.
스윽.
화악!
그러자 뒤에 있던 검은색의 불꽃이 아진을 덮쳐들었고, 아진은 이를 악물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불교를 근간으로 둔 아미파의 무공.
항마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여래신공 如來神功 을 끌어올렸지만.
화륵!
역부족이었다.
검은색의 불꽃과도 같은 강기는 아진의 가녀린 몸을 집어삼켰고.
스윽!
하늘 위에 있던 위극신의 검이 내려왔다.
“아진아!”
“사숙!!!”
“안 돼!”
검은색의 감기에 집어삼켜져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아진.
별안간 그녀의 기운마저 사라지자 아미파의 제자들은 물론, 무당파의 제자들과 무림 수호대의 대원들까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고.
씨익.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위로 치솟은 검은 불꽃을 보며 위극신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로 따뜻한 햇빛이 가득했던 하늘.
하지만 위극신의 기운으로 인해 깊은 밤이 찾아오듯 어두워졌으며, 그 중심으로 검은색의 불꽃이 하늘을 뚫을 듯 치솟아있었다.
지옥이 있다면 지금의 모습과도 같을까?
너무나도 두렵고 끔찍한 모습이었다.
그에 이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공포 어린 표정을 지었고, 이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
위극신은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벼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날씨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