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2화
제212장 원망 怨望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다.
하지만.
“당장 꺼지라고!”
핏발이 선 붉은 두 눈.
그 속에는 분노는 물론 원망과 슬픔, 처절함 등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의 눈빛과 절규 어린 소리침.
그 목소리에 느껴지는 깊은 슬픔에 남궁연화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워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굳어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남궁연화의 모습에 왕일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남궁연화를 뒤로 숨긴 후 분노가 가득한 노인을 바라보았다.
“어르신, 우선 진정하시지요.”
“당정 꺼지라고!”
“부탁드립니다!”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는 노인의 모습.
그 모습에 왕일 또한 언성을 높였다.
아주 약간의 내공을 실어서 말이다.
그에 왕일은 노인이 겁을 먹고 진정할 줄 알았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응당 그러하니 말이다.
하지만.
채앵!
“역시 더러운 남궁가 놈들! 바로 내공을 사용하는구나!”
이미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던 노인은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작은 단검을 뽑아 들며 왕일에게 들이밀었다.
그에 왕일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렇게나 대화가 안 통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당장 꺼져!”
그러한 왕일을 향해 날카로운 단검을 들이밀며 노인은 다시 소리쳤고, 왕일은 뒤에 있는 남궁연화를 보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러나겠습니다. 그러니 진정하세요.”
“꺼지라고!”
“…….”
왕일의 침착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그에 왕일은 오늘은 그만 물러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었다.
그에 왕일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노인을 안심시킨 다음, 뒤에서 자신을 꼭 붙잡고 있는 남궁연화와 함께 천천히 옆으로 움직였다.
“으아아앙!”
그때!
혜화의 맑은 울음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갑작스러운 혜화의 울음소리에 왕일은 걸음을 멈추었고.
“…….”
붉어진 두 눈으로 칼을 들이밀던 노인 또한 멈칫했다.
“할아버지 하지 마! 하지 마!!”
날카로운 단 검을 들고 협박하는 노인의 모습.
붉어진 두 눈으로 화를 내는 노인의 모습에 깜짝 놀란 혜화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런 혜화의 소리침에 노인의 붉은 두 눈이 차츰 가라앉아졌고, 이내 자신이 어린아이의 앞에서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에 화들짝 놀란 노인이 황급히 단 검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쭈그려 앉아 혜화와 두 눈을 맞추었다.
“혜화야, 미안하다. 진정하거라.”
“할아버지 나빠! 좋은 언니, 오빠란 말이야!”
노인의 부드러운 음성에도 불구하고 울음이 가라앉지 않은 혜화.
그녀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소리치며 왕일과 남궁연화를 옹호하자 그에 노인이 다시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혜화야! 저자들은 남궁의 사람들이야! 아주 나쁜 사람들!”
“아니야! 아니야!”
다시 무서워진 노인의 울음에 혜화는 울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혜화야!”
그런 혜화의 울음에 노인이 엄한 목소리로 호통쳤지만, 이미 남궁연화에 깊은 호감을 느끼고 있었던 혜화는 계속해서 울었다.
그에 노인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왕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혜화의 울음 덕분에 급박했던 상황이 조금은 진정되었으니 말이다.
그에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이 된 왕일이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두려움에 질려 덜덜 떨리고 있는 남궁연화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주었다.
“연화, 진정해.”
“…….”
어느 정도 무공을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처절한 분노와 절규에 기가 눌리고 말았던 남궁연화.
그녀는 자신을 위로하는 왕일의 목소리와 맥을 통해 들어오는 부드러운 기운에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그렇게 잠시 후.
하염없이 떨려오던 남궁연화의 손이 진정되었고, 이내 그녀가 앞으로 다시 나섰다.
흠칫!
그러자 노인이 다시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다행히 조금 전과는 달리 원망과 살기가 가득한 눈빛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남궁연화는 움찔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내공을 끌어 올려 가볍게 순환시키며 마음을 진정했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노인을 다시 바라보았다.
“반갑습니다, 남궁연화라고 합니다.”
“…….”
남궁연화의 소개.
혜화의 울음 때문일까?
남궁연화의 소개에도 노인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죽일 듯이 그녀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녀의 이름에 있는 남궁이라는 성.
그 증오스럽고 끔찍한 성을 직접 들으니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자신의 옷깃을 꼭 잡고 있는 혜화 때문에 노인은 가까스로 분노를 참았다.
“죄송합니다.”
그러한 노인을 향해.
남궁연화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그러한 남궁연화의 사과.
진심이 가득 담긴 그녀의 사과였지만 노인의 원망과 분노를 풀기에는 부족했다.
그에 노인이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가시오. 아이 앞에서 더 이상의 못난 모습은 보기 싫으니까.”
남궁연화의 사과를 받을 마음이 전혀 없다는 듯 노인이 차갑게 말하자 남궁연화가 멈칫했다.
“나가라니까?”
멈칫하며 나갈 기색이 보이지 않는 남궁연화의 모습에 노인은 다시 언성을 살짝 높이며 말했다.
그에.
스윽.
남궁연화가 두 무릎을 꿇었다.
“연화!”
“!!”
갑작스러운 남궁연화의 행동.
그녀의 무릎 꿇음에 옆에서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왕일을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말렸고, 노인은 멈칫하며 남궁연화를 바라보았다.
화들짝 놀란 왕일의 만류를 무시하고.
남궁연화는 다시 정중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이마가 더러운 바닥에 닿았고, 그와 동시에 남궁연화의 입이 다시 열렸다.
“따님의 고통과 그로 인한 어르신의 상처는 제가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용서를 구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숙인 남궁연화의 입에서 나온 절절한 음성.
단어 하나하나에 진심이 가득한 그녀의 사과에 노인이 침음을 흘렸다.
대 남궁세가의 여식으로 보이는 이가, 용서를 구하며 무릎을 꿇자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에 노인이 침음을 흘리며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자.
“저도 사과드리겠습니다.”
왕일 또한 무릎을 꿇은 후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했다.
“……?”
“네가 왜!”
갑작스러운 왕일의 사과.
그 사과에 노인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고, 남궁연화는 화들짝 놀라며 왕일에게 말했다.
하오문의 소문주이며 무인이기도 한 왕일.
그와 전혀 상관없는 이 일에 그가 자존심을 굽히는 것이 싫었다.
그에 남궁연화가 소리치며 그를 말렸지만 왕일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진지한 두 눈으로 노인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남궁가의 사람인가?”
“아닙니다.”
노인의 물음에 왕일이 대답했다.
그에 노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찌, 자네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단 말인가? 남궁세가와 도대체 무슨 사이이길래?”
“…….”
노인의 물음에 왕일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에.
“어서 일어나라니까!”
남궁연화가 그녀의 어깨를 때리며 말했다.
이렇게 무릎을 꿇고 있는 왕일의 모습.
그 모습에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그러한 남궁연화의 행동에 왕일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노인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였다.
“제가 좋아하는 여인입니다.”
“……?”
“…….”
왕일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그의 어깨를 때리던 남궁연화는 두 눈을 크게 떴고, 노인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왕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부디, 제가 좋아하는 여인의 무릎을 피게 해주십시오.”
“!!”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마를 바닥에 대며 왕일이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그에 남궁연화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왕일의 무릎 꿇은 모습에 가슴이 아팠던 남궁연화.
왕일 또한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고, 또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
그 이야기에 남궁연화는 계속 멍한 표정을 지었고, 남궁연화는 물론, 왕일의 사과까지 받게 된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고민하기를 잠시.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일어나시오.”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왕일은 고개를 들었고, 노인은 그런 왕일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알겠으니 일어나시오. 불편하니 말이오.”
“예.”
노인의 이어진 말에 왕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일어나.”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궁연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왕일이 손을 내밀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하는 남궁연화.
일견 멍청해 보이기도 하는 그녀의 모습에 왕일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내민 손을 흔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니까?”
“아? 어…….”
왕일의 재촉에 남궁연화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왕일이 건넨 손을 잡고 일어났다.
“앉으시겠소?”
그렇게 두 명이 일어나자, 걸음을 옮긴 노인이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며 말했다.
그에 왕일은 남궁연화를 잡아 이끌었고, 이내 노인의 맞은편에 앉았다.
더러운 바닥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이다.
그에 노인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사과하러 오셨군.”
“예.”
무공을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고, 자존심을 세우지 않는 그들의 행동.
그 행동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낀 노인이 말하자 왕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어르신에게는 위로가, 또 치유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저희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십시오.”
“반성 말이오?”
“예. 어르신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또 고인이 되신 따님에게도 용서를 구할 기회를요.”
“…….”
왕일의 간절한 어조에 노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에 왕일은 팔을 들어 남궁연화의 옆구리를 살짝 쳤다.
그에 왕일을 빤히 바라보던 남궁연화가 정신 차렸다.
왕일의 발언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멍해졌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 스스로를 다독인 남궁연화가 고개를 돌려 노인을 바라보았고, 이내 다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
그렇게 왕일과 남궁연화가 다시 고개를 숙이자 노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할아버지……?”
자신의 품에 안겨 무릎에 앉은 혜화의 등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노인의 손길에 혜화는 의문 어린 표정으로 노인을 올려다보았다.
순수한 혜화의 눈빛.
그 눈빛을 가만히 바라본 노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근에, 남궁세가에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
“보아하니, 소저만이 남궁의 성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그 악마 같은 자와는 무슨 사이오?”
악마라 언급할 때 잠깐 입술을 꽉 깨문 노인.
그의 물음에 남궁연화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송구스럽다는 듯 두 눈을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친동생입니다.”
“허어…….”
남궁연화의 말.
그 말에 노인이 탄식을 내뱉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에 남궁연화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오라버니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는 남궁연화의 행동.
솔직히 말하면 노인은 알고 있었다.
남궁연화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자신의 한이 너무나도 깊었다.
자신의 이 끓어오르는 원망.
이것을 도대체 어디에 풀으란 말인가?
그에 노인이 복잡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자신의 손을 잡는 혜화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자는?”
“죽었습니다.”
노인의 물음에 왕일이 대답했다.
그에 노인은 고개를 들었고, 왕일은 노인의 두 눈을 마주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손에 죽었습니다.”
“……?”
왕일의 대답.
그 대답에 노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이 여인을 사랑한다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근데 자네가 직접 죽였다고?”
“그자는 이 여인의 가족이 아닙니다. 끝까지 이 여인의 목숨을 담보로 어떻게든 살아나려는 비겁한 자였지요.”
“…….”
왕일의 대답에 노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노인이 복잡한 표정을 짓자 이번에는 남궁연화가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아요, 그자는 쓰레기였으니까요. 그자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
“그만.”
왕일의 편을 들기 위해서일까?
남궁연화가 자세하게 이야기를 꺼내자 노인이 손을 들어 남궁연화의 말을 막아섰다.
그에 남궁연화와 왕일이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보다 더 남궁영을 증오하는 존재가 바로 노인이다.
그런 존재가 남궁영에 대한 욕을 차단하다니?
오히려 들으며 즐거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게 두 사람이 의문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노인은 그런 둘의 시선을 무시하고 품에 앉아 있던 혜화를 일으켜 세웠다.
“할아버지……?”
갑작스러운 노인의 행동.
그 행동에 혜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노인은 혜화의 몸을 돌려 남궁연화를 바라보게 하였다.
“이 아이는 올해 여섯이네.”
“그런……가요…….”
네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혜화.
하지만 그녀는 태어난 지 육 년이나 흐른 아이였다.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성장을 하지 못한 혜화의 모습.
또래보다 작아 보이는 혜화의 모습에 남궁연화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신의 오라비가 아니었으면 이 아이는 맛있는 것을 먹으며 풍족하게 자라왔을 것이다.
그에 남궁연화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표정을 짓자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의 조카이기도 하겠군.”
“……?”
“그게 무슨?”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남궁연화가 두 눈을 크게 떴고 옆에 있던 왕일이 놀란 음성을 내뱉었다.
그에 노인은 혜화의 손을 잡았고, 이내 입을 열었다.
“혜화야. 고모에게 인사하거라.”
“고모?”
아직 어렸기 때문일까?
고모라는 뜻을 이해하지 못한 혜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한 혜화의 물음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낮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래, 네 아버지의…… 여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