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화
제208장 천마군림보 天魔君臨步
“대충 정리가 끝난 것 같네.”
“…….”
제압된 창천단원들과 전의를 상실한 남궁무.
그런 이들의 모습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한 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답이 없는 남궁준광.
제법 분한지 두 주먹을 강하게 쥐고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봐요, 남궁세가주.”
“뭐지?”
나의 부름에 날카로운 어조로 대답한 남궁준광.
그런 남궁준광을 보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가문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존재로서, 무인으로서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살아온 사내. 맞나요?”
“그렇다, 나는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하다. 그러니 조사를 받을 것도 없지.”
나의 물음에 남궁준광이 가슴을 쫙 펴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자기 입으로 말하기에는 부끄럽지 않나요?”
“나는 정말 당당하니 부끄러울 일도 없지.”
웃음기 어린 나의 어조에도 남궁준광은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정말로 당당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로 인해 부끄러운 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에 나는 웃음을 지웠다.
그러고는 남궁준광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조금 전과는 다른,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자식들을 방치했나?”
“방치한 적 없다.”
나의 차가운 물음에 남궁준광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에 나는 서늘한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어린 시절, 가주가 방치를 하여 남궁정은 남궁영에게 지독한 괴롭힘을 당해 왔다.”
“그것은 방치가 아니었다.”
“그럼 뭐지?”
남궁준광의 당당한 대답에 내가 물었다.
그에 남궁준광이 입을 열었다.
“수련이었다. 남궁세가의 직계로서 어울리는 무재 武才를 보여 준 남궁정. 뛰어난 무재와 달리 녀석은 너무나도 심약한 심성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을 미워하기는커녕, 지나가는 벌레도 못 죽일 정도였지.”
“그래서 그냥 방치했다?”
“다시 말하지만, 방치가 아니다. 일종의 수련과도 같은 것이었지. 남궁영이 남궁정을 괴롭힐수록 녀석은 남궁가에 어울리는 무인이 되어갔다. 쓸데없는 감정을 버리고 날카로운 하나의 검. 진정한 무인이 되었지.”
“지X하네.”
진짜, 지X하고 자빠졌다.
남궁준광의 입에서 나온 궤변 詭辯에 나는 결국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그에 남궁준광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지만 나는 그런 녀석의 두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 망할 수련, 그 수련 때문에 정이는 괴로운 시간을 보내어왔고, 긴 세월 동안 끔찍한 정신적 고통을 겪어왔다.”
“나약하군.”
“그게 나약하다고?”
“나약하지. 그것 하나도 극복 못 하고. 쯧. 이번에도 내심 남궁영의 목을 칠 것을 기대했건만 그냥 풀어 줬다지? 한심하기 그지없군.”
“남궁영은 너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 쓰레기를 아들로 둔 적은 없다.”
“남궁정은?”
“꽤 괜찮은 소가주지.”
“남궁연화는?”
“가문에 도움이 될 아이다.”
여기까지.
더 이상은 저런 쓰레기와 대화를 나누지 못하겠다.
더 이상 나누기에는 남궁준광의 입에서 나는 쓰레기 냄새 때문에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스르릉.
그에 나는 검을 뽑았고.
챙!
남궁준광 또한 검을 뽑았다.
천천히 뽑는 나와 달리 짧고 강렬하게 검을 뽑아 든 남궁준광.
그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남궁가의 중검 重劍. 네가 감당할 수 있겠나?”
“…….”
“후후, 겁먹었나 보군.”
저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다 지X인가 보다.
우웅!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진짜 내가 겁먹었다고 생각했는지 남궁준광이 보란 듯이 폭발적으로 기운을 끌어 올렸다.
남궁준광이 기운을 끌어 올림과 동시에 불안정하게 떨려오기 시작한 주변의 공기.
그 불안한 움직임을 느끼며 나는 남궁준광을 바라보았다.
씨익.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씨익 미소를 지은 남궁준광.
그거 검을 똑바로 든 채 입을 열었다.
“이제 이곳은 나의 공간이다.”
웅!
남궁준광의 말과 동시에.
모든 기운이 멈추었다.
새하얀 공간.
이 공간의 주인인 마독에게서 주도권을 빼앗아 온 것이다.
“남궁가의 검법인가?”
“제왕검형이다.”
나의 물음에 남궁준광이 대답했다.
그러고는 다시 여유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대 남궁세가의 최종 오의지.”
“공간을 지배하는 것인가?”
“그렇다, 이 공간의 지배자는 바로 나. 나의 허락 없이는 숨도 쉬지 못하지.”
“그렇군.”
남궁준광의 설명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나의 모습에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은 남궁준광.
그가 돌연 얼굴을 굳혔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던 모습과 달리, 경악스러운 것을 발견했는지 굳어버린 남궁준광의 모습.
“왜 그래?”
그런 남궁준광의 모습에 내가 물었다.
한껏 여유로운 어조로 말이다.
그러한 나의 물음에 남궁준광이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 어찌, 말을 한단 말이냐?”
남궁준광의 눈동자만큼이나 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 그 물음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내 입으로 내가 말하는데 왜?”
“나는 허락한 적이 없다!”
나의 대답, 그 대답에 남궁준광이 언성을 높이며 대답했다.
마치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아 떼를 쓰는 어린아이의 모습과도 같은 그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검을 들어 한쪽 어깨에 걸쳐 올렸다.
“내가 허락하면 그만이지.”
“그럴 수가! 이곳은 나의 공간! 그 누구도 나의 허락 없이는 움직이지도! 숨도 쉬지 못한다!”
“지X.”
남궁준광의 소리침에 나는 피식 웃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검을 들었고, 이내 가볍게 사선으로 그었다.
그러한 나의 행동과 동시에.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하늘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에 남궁준광이 놀란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빛의 하늘 대신, 푸른색의 드넓은 하늘이 보였다.
“와아! 돌아왔다!”
나의 검격 한 번에 남궁준광의 제왕검형의 기운을 무효화시킨 것은 물론, 마독의 술법까지 깨져 버렸던 것이다.
“이럴 수가!”
그런 나의 행동에 마독은 경악하며 나를 바라보았지만 그것은 넘어가고.
새하얀 빛이 아닌, 푸른 하늘이 존재하는 현실.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온 나는 북적대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시선을 느끼며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준광을 바라보았다.
“야.”
“…….”
나의 부름에도 남궁준광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단 일격에 자신의 기운이 무효화 된 것이 믿기지가 않았나 보다.
그에 나는 천마신공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강력한 기파와 동시에 나의 등 뒤로 뿜어져 나온 칠흑색의 강기.
유형화된 강기가 나의 몸을 두르자 남궁준광이 정신을 차렸는지 또렷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고, 이내 한 발자국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너는 당당한 무인이 아니다.”
우웅!
“크윽!”
나의 한 걸음.
그 한 걸음에 남궁준광이 비틀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그에 나는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궤변으로 너의 행동을 정당화한 전형적인 쓰레기, 찌질이가 바로 너다.”
“크헉!”
나의 두 번째 걸음.
그 걸음에 남궁준광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커헉!”
제법 내상을 입었는지 피까지 토하면서 말이다.
전투 불능으로 보이는 남궁준광의 모습, 하지만 아직 나의 걸음은 끝나지 않았다.
“너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입었다.”
세 번째 걸음.
털썩!
그 걸음에 결국 남궁준광의 나머지 한쪽 무릎마저 꿇려졌다.
“그……, 그만…….”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나의 기운.
자신이 펼친 제왕검형과는 압도적으로 다른 기운에 남궁준광이 괴로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직 마지막 한 걸음이 남았다.
그에 나는 다시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너는 무인도, 아버지도 아니다.”
쿠웅!
나의 마지막 걸음.
천마군림보 天魔君臨步 의 모든 정수가 담긴 마지막 걸음에 남궁준광은 이마를 바닥에 처박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완벽한 복종의 자세, 바로 오체투지의 자세였다.
단 네 걸음.
그 네 걸음에 제압당한 남궁준광을 내려다보며 나는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감찰 조사를 시작하겠다.”
* * *
“으음…….”
약초 내음이 가득한 방.
죽은 듯이 누워 있던, 피골이 상접한 노인이 의식을 차렸는지 신음을 흘렸다.
그에 옆에서 난을 그리던 노인, 무림맹주 천진이 붓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이보게, 정신이 드는가?”
“아……. 아…….”
천진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의식을 되찾은 듯 노인이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그러고는.
파르르.
눈가를 파르르 떨기 시작했고, 이내 천천히 그의 두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여……, 여기는……?”
오랜 시간 동안 수분을 섭취하지 못하였는지 심각하게 갈라진 노인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천진은 옆에 있던 젖은 천을 들어 노인의 입술에 적셔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천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날세.”
“천……진…….”
“그래, 이 친구야. 나 천진일세!”
노인의 말.
그 말에 천진이 울컥하며 대답했다.
그에 노인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자네 죽은 건가?”
“자네가 살아 있는 걸세.”
“그런가?”
천진의 대답에 노인이 말했다.
그러기를 잠시.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언간은?”
“극형 極刑에 처하였네.”
“그런가…….”
천진의 대답에 노인이 묘한 어조로 대답했다.
시원해하면서도 슬픈, 묘한 어조였다.
그러한 노인의 어조에 천진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래도 제자라고 씁쓸해하는 건가?”
“…….”
“자네는 여전히 멍청하군.”
자신의 물음에 대답 못 하는 노인을 보며 천진은 비난 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에 노인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쩌겠나. 이렇게 못난 성정인 것을.”
“이 친구야. 왜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나? 아무리 내공을 금제 당했다 하더라도 선천지기를 조금만 사용했더라면 뇌선이 그대의 위치를 알려 주었을 텐데.”
모든 사람에게는 선천지기라는 것이 존재했다.
다르게는 생명력이라고도 불리며, 내공을 금제 당했다 하더라도 선천지기는 사용할 수 있었다.
인위적으로 수련한 내공과 달리, 선천지기는 사람이라면 자연히 가지고 있는 기운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것을 사용하면 생명, 즉 수명을 소모하는 것과 같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사용하는 것이 평생을 감옥에 갇혀 있는 것보다 나았다.
그것을 언급하며 천진이 노인을 탓하자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자네가 언간을 죽일 것이 아니던가.”
“하아…….”
노인의 대답에 천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보다 더 멍청한 친구.
이 친구는 예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군. 녀석은 극형을 당했고, 나는 살아남았어.”
“나를 원망하는가?”
“아니, 이것 또한 운명이겠지.”
천진의 물음에 노인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천진을 올려다보았다.
“조금 더…… 자도 되겠는가?”
“길게는 자지 말게. 할 이야기 많으니.”
“훗.”
천진의 대답에 노인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고 두 눈을 감았다.
“고맙네.”
두 눈이 감겨진 노인에게서 나온 말.
그 말에 천진은 가만히 자신의 친우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지 규칙적인 호흡을 하고 있는 노인.
그런 노인을 보며 천진은 입을 열었다.
“바보 같은 녀석, 원의 마지막 황태제 皇太弟 라는 녀석이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