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7화
제207장 검 劍
“이럴 수가…….”
단 일 다경 (약 15분).
차 한 찬 마실 시간이라 하여 짧은 시간을 일컫는 시간 단위.
바로, 남궁세가의 최정예 무력대인 창천단 오십 명이 무림수호감찰대원에게 제압당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최전방에서 핏빛 강기에 휩싸인 주먹을 휘두르는 승려답지 않은 승려, 소리 없는 화살을 마구 쏘아대며 창천단원들의 공격은 물론 움직임까지 차단해버렸던 푸른 눈의 미녀, 짧은 두 개의 단창을 빠르게 휘두르며 초토화시키는 청년과 수십 개의 환영을 만들어 단원들을 제압한 미청년. 마지막으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창천단원 한 명 한 명씩을 제압한 유한 인상의 청년까지.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창천단원들을 제압해버린 젊은 무인들을 보며 남궁무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도 놀라 그대로 굳어버린 남궁무의 모습에 젊은 대원들 중 수많은 환영검을 사용하던 미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그대만 남았군.”
앞머리를 길게 길러 한쪽 얼굴을 가린, 신비스러운 미남자가 차가운 어조로 남궁무를 향해 말하자 그제야 남궁무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미청년을 바라보았다.
“이름이?”
수많은 환영 검을 만들어 수하들을 제압하던 미남자.
자신과 같은 초절정의 기운을 내뿜고 있는 미남자의 모습에 남궁무가 검을 뽑아 들며 물었다.
“단진.”
그에 미남자, 단진이 특유의 차가운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검마의 자제인가?”
“곧 검마가 될 사내이다.”
남궁무의 물음에 단진이 차갑게 대답했다.
그에 남궁무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검마는 노나? 새파란 젊은이에게 자리를 빼앗길 정도로 호락호락한 인물을 아닐 텐데 말이야.”
“열심히 수련하겠지.”
“그런데 곧 검마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될 것이다.”
남궁무의 비웃음이 어린 물음에도 불구하고, 단진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대답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는 의지가 가득 담긴 단진의 대답.
그 대답에 남궁무가 비웃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진중한 표정으로 흔들림 없는 단진의 두 눈을 응시했다.
“무인이군.”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는 무인.
의와 협을 따르는 무인도 좋지만, 자신의 신념을 올바르게 세우고 그것을 지키는 무인 또한 좋아했던 남궁무. 그가 예를 갖추며 진지하게 말하자 단진이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무인이 아니다.”
“그럼?”
“나는 그저 검, 소교주님의 검이다.”
“그렇군.”
단진의 대답에 남궁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세를 낮추어 단진을 바라보았다.
“나는 남궁세가의 검이다.”
남궁무의 말.
자신과 같은 맥락을 한 그 말에 단진이 마음에 든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흡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좋군.”
단진의 말이 끝이 남과 동시에.
타앗!
단진과 남궁무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파지직!
푸른 뇌전이 가득 담긴 남궁무의 검.
그리고.
우웅!
콰앙!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수백 개의 검 중 하나가 지상으로 떨어져 뇌전을 가득 머금은 남궁무의 검과 부딪혔다.
파지직!
쿠웅! 쾅!
파직!
쿠웅! 쾅!
푸른 전류가 가득한 남궁무의 검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우 流星雨 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단진의 환영검.
그 검과 검이 부딪힐 때마다 강력한 기파와 함께 매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와 기파에.
“와아…….”
“미친.”
마독은 감탄을, 야율민은 욕설을 내뱉었다.
하루라도 빨리 단진을 따라잡아 초절정에 오르고 싶었던 야율민.
그의 두 눈에는 초절정 경지의 무인, 남궁무와 단진의 대련이 너무나도 대단해 보였고, 또 아득해 보였던 것이다.
쿠웅! 쾅!
“단 공자가 실력으로 따지면 부대주를 해야 했군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환영검의 주인 단진.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계속해서 검을 내리꽂는 단진을 보며 공진이 억눌린 음성으로 말했다.
그에 옆에 있던 서은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죠. 그의 실력은 후기지수의 수준을 한창 벗어났으니 말이에요.”
“허어…… 이것 참.”
완숙한 절정을 넘어 초절정의 경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공진.
그는 서은설의 설명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분명 자신과 같은 또래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멀리 있는, 너무나도 아득해 감히 짐작도 가지 않는 경지에 있는 단진의 모습에 힘이 빠짐과 동시에.
소림의 축복이라 불리며, 스승과 사숙들에게 온갖 기대를 받고 자라온 자신. 그런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해졌던 것이다.
그러한 공진의 모습에 서은설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그를 위로하기 위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단 공자는 공 부대주님 보다 나이가 많아요.”
“그렇소?”
“네, 다섯 정도 많을 거예요.”
“그나마 다행이군.”
오 년이라는 시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의 공백이 생기자 공진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스물둘인 공진.
그는 과연 오 년 후에 단진과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글쎄, 그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절정과 초절정의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존재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심란해진 공진을 뒤로하고.
파지직!
푸른 뇌전에 휩싸인 검을 강력하게 휘두름에도 불구하고 남궁무는 계속해서 밀려났다.
자신의 뇌전 검을 막아서는 단진의 검. 그리고 그 빈틈을 향해 하늘에서 떨어지는 환영검까지.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흐아아압!”
그에 짜증이 난 남궁무는 큰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갑작스럽게 강해진 힘에 단진이 뒤로 살짝 물러나 거리를 벌렸고, 그에 시간을 번 남궁무가 검을 높게 들었다.
그러자.
우르릉!
아무것도 없던 새하얀 하늘에 먹구름이 생성되었다.
“어라……?”
갑작스러운 먹구름의 등장에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마독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이곳은 자연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신의 공간.
그 공간에 인위적으로 먹구름을 생성 해내 다니?
물론 아주 작은 먹구름이었지만, 그래도 먹구름은 먹구름.
이곳의 주인인 마독이 허락하지 않은 기운이었다.
그에 마독이 서둘러 지팡이를 들었지만.
“내버려 둬.”
옆에 있던 왕일이 그런 마독을 만류했다.
그에 마독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아…….”
진한 미소를 짓고 있는 단진의 얼굴이 보였던 것이다.
“자네만 하늘에 뭘 소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남궁세가의 무인 중 선택받은 자만이 익힐 수 있다는 천뢰기 天雷氣.
그것을 익히고 세가에서 유일하게 대성한 남궁무가 하늘에서 괴상한 소리를 내뿜는 먹구름을 힐끔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에 단진이 입을 열었다.
“벼락이라도 내려치나?”
“아닌 것 같은가?”
단진의 물음.
그 물음에 남궁무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한 남궁무의 대답에.
우르릉!
먹구름에서 일렁이던 푸른 전기가 더욱더 강한 소리를 내뿜었다.
마치 단진을 위협하듯 말이다.
그러한 먹구름의 모습에 단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위험하군.”
“맞으면 제법 아플 걸세.”
“과연 맞을까?”
남궁무의 말에 단진이 대답했다.
그에.
번쩍!
새하얀 공간에서 잠깐의 밝은 빛이 터졌다.
“억!”
갑작스러운 새하얀 빛.
그 빛에 마독과 왕일은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쾅!
“!!”
두 귀로 들려오는 강력한 소리에 조심스럽게 두 눈을 떴다.
그러자 보였다.
“호오……?”
단진의 바로 앞.
돌바닥이었던 연무장의 바닥이 완전히 박살 난 모습이 말이다.
파지직!
너무나도 강력했기 때문일까?
완전히 박살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바닥에 남아 있는 잔 전류들을 내려다보며 단진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대는 남궁세가의 검이 아닌가?”
“맞다.”
“흠…….”
남궁무의 대답에 단진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푸욱!
콰앙!
하늘에 떠 있던 검 중 한 개가 빠른 속도로 남궁무의 머리 위에 떠있는 먹구름을 향해 날아가 꽂혔고, 그와 동시에 폭발했다.
그러자.
“…….”
남궁무의 머리 위에서 제법 괜찮은 존재감을 뿜어내던 먹구름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에 남궁무가 당황해하며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검을 들어 남궁무를 겨눈 단진이 입을 열었다.
“남궁세가의 검이 아닌, 벼락같군.”
타앗!
그 말을 마침과 동시에 단진은 다시 남궁무에게 달려들었다.
파지직!
그에 남궁무가 황급히 천뢰기를 끌어 올렸지만.
스윽.
이미 단진의 검은 남궁무의 목 앞에 겨누어진 상태였다.
“이, 이럴 수가…… 쾌검 快劍 이라니…….”
자신의 천뢰기보다 더 빠른 단진의 검.
환영검을 익힌 단진에게서 볼 수 없는 엄청난 속도의 쾌검에 남궁무가 믿을 수 없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무림의 검사들에게는 각자의 속성이 있었다.
빠른 속도를 중시하는 쾌검 快劍.
환영을 만들어내는 환영검 幻影劍.
강력한 힘으로 압도하고 찍어 내리는 중검 重劍.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힘을 역이용하는 유검 流劍 까지.
이 네 가지의 속성 중 하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바로 보통의 검법이다.
그렇기에 한 무인 당 한 개의 속성을 익히는 것이 정설.
두 개의 속성을 익힌 무인은 별로 없었다.
물론 모든 속성을 사용할 줄 안다면 좋겠지만 각 문파와 가문의 무공은 한가지의 속성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또 두 개의 속성을 익히기에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검사가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무림의 무인들은 한 개의 속성만을 선호했다.
그러한 일반적인 무인들과는 달리 두 개의 속성을 보여준 단진.
그런 단진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무의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검사가 맞는가?”
“그렇다.”
“꼭 환마장로를 보는 것 같았다.”
“사술과 다르다!”
단진의 말에 남궁무가 발끈하며 대답했다.
그에 마독 또한 발끈했지만 그것은 넘어가고.
단진은 발끈한 남궁무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술법은 사술이 아니다, 그리고 너는 술법사와 같았다.”
“벼락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말이더냐? 그렇다면 너도 술법사구나.”
단진의 말에 남궁무가 대답했다.
분노가 가득한 어조로 말이다.
그에 단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검사다.”
“어째서지? 너의 논리로 인해 내가 술법사라면 너 또한 술법사. 왜 부정하는 것이냐?”
남궁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단진이 쾌검을 사용할 줄 안다지만 주로 사용하는 속성은 환영검.
환영검은 검술이라 하기에는 상당히 애매한 부분이었다.
그러한 남궁무의 지적에 단진이 검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남궁무를 바라보았다.
“검을 들어라.”
“…….”
목에서 검을 거둔 단진의 말.
그 말에 남궁무가 검을 들었다.
그에.
타앗!
단진이 검을 들었다.
그에 남궁무 또한 황급히 검을 들어 올렸고.
채챙!
구웅!
“크억!”
자신의 검을 짓누르는 강력한 힘에 남궁무가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남궁무를 찍어 내리는 강력한 힘.
바로 남궁세가에서 중점으로 두고 있는 속성, 중검 重劍이었다.
스윽.
그렇게 강력한 중검으로 남궁무를 찍어 내린 단진이 다시 검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남궁무에게 검을 겨누었다.
“들어와라.”
“크윽…….”
단진의 명령과도 같은 말.
그 말에 남궁무가 신음을 흘렸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단진이 마치 지도 대련을 해주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에 남궁무는 이를 악물었고.
파지직!
이내 모든 천뢰기를 끌어 올려 단진에게 달려들었다.
파지지직!
파괴적인 전류의 힘을 담은 남궁무의 검.
그의 검이 무거운 힘과 함께 단진을 향해 찍어 내려갔다.
그에 단진이 검을 들었다.
그리고.
수욱.
“!!!”
단진의 검과 부딪힘과 동시에 훅 꺼지는 기분을 느낀 남궁무!
갑작스러운 기분에 남궁무가 두 눈을 크게 떴다.
파지직.
“크아아악!”
그러고는 다시, 자신의 팔로 되돌아오는 전류에 괴성을 내질렀다.
챙그랑!
전류의 힘이 두 팔을 감싸며 공격하자 그만 검을 놓쳐버린 남궁무.
그가 황급히 천뢰기를 끌어 올려 팔을 괴롭히는 전류를 흡수했다.
그러자 푸른 전류가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가듯, 되돌아갔다.
거멓게 탄 남궁무의 팔만이 조금 전까지 푸른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이럴 수가…….”
단진으로 인해 되돌아온 전류에 검을 놓친 남궁무.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네 가지 속성을 모두 사용한 단진을 바라보았다.
그러한 남궁무의 눈빛.
그 눈빛을 마주 응시하며 단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천마신교, 아니 소교주님의 검이다.”
하나의 잘 벼려진 검과 같은 단진의 기세.
그 기세에 남궁무는 깨달았다.
자신은 남궁세가의 검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