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화
제205장 소교주의 개 犬
검왕 劍王.
천하제일가의 가주이자, 명문가의 수장으로서 그 누구에게도 부끄럼 없이 당당한 인생을 살아온 남궁준광.
“후우…….”
그가 자신의 개인 연무장에서 애검이자 역대 가주들이 사용하는 창천검 蒼天劍을 휘두르고 있었다.
숨을 짧게 한 번 내뱉으며 남궁준광이 검을 들었고, 그와 동시에.
우웅!
주변의 공기가 일렁였다.
우우우웅!
주변 공기를 일렁이며 하늘에 떠 있던 것도 잠시.
남궁준광의 검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고, 그와 동시에 수많은 기운이 폭발하듯 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마지막을 향해 내려와서는.
스으으…….
거짓말처럼 소리가 사라졌다.
마치 무공이 부자연스럽게 끝이 난 듯한 모습이었지만 오히려 남궁준광은 마음에 드는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것으로 제왕검형은 끝이로구나.”
제왕검형 帝王劍形.
남궁세가의 대표 무공임과 동시에 근간을 이루고 있는 창궁무애검법의 최종 오의.
오로지 가주만이 익힐 수 있는 그 검형을 대성한 남궁준광은 흐뭇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가주님.”
그렇게 흐뭇해하던 것도 잠시.
남궁준광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늘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던 창천단의 단주, 남궁무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말이다.
“무슨 일이지?”
남궁무의 표정에서 심각함을 인지한 남궁준광이 검을 집어넣으며 물었다.
그에 남궁무가 입을 열었다.
“잠시, 본가의 연무장에 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외원에 위치한 연무장을 말하는 것이더냐?”
남궁무의 보고.
그 보고에 남궁준광이 의문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직계가 기거하는 내원이 아닌 방계와 손님, 그리고 사용인들을 위해 마련된 넓은 외원, 그곳의 정중앙에는 드넓은 연무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곳은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위해 마련된 연무장으로 수백, 수천 명은 거뜬하게 수용이 가능한 연무장이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그곳은 행사장으로 쓰이기도 했기에 가주인 남궁준광 또한 서너 달에 한 번씩은 가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갈 곳이 아니다.
“네.”
“왜지?”
자신이 알기로 오늘 있을 행사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남궁준광의 다시 묻자 남궁무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무림 수호 감찰대가 본가에 왔습니다.”
“…….”
남궁무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남궁준광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림 수호 감찰대.
남궁세가의 소가주로서 가문의 이름을 드높여야 할 소가주인 남궁정이 속해 있는 조직이었다.
사실,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준광은 정도의 인물로서 다른 세력과 어울리는 남궁정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 한 번 날을 잡아 본가로 불러 경을 칠 생각이었지만, 무림맹과 천마신교의 회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조직원이 되어버렸다.
당장이라도 남궁정을 불러 경을 치고 무림맹으로 항의 서신을 보내어 조직에서 탈퇴시키려 했지만 웬걸?
오히려 그 조직에 속한 것이 본가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남궁준광이 그토록 바랐던, 명예와 위상이 한없이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궁준광은 남궁정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굳이 찾아볼 정도로 반갑지는 않은 조직이었다.
그에 남궁준광이 불편한 기색을 나타내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남궁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본가를 감찰하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뭐라?”
남궁무의 입에서 나온 말.
감히 자신의 가문을 감찰하겠다는 말에 남궁준광이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 남궁무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소가주님을 앞세워 이곳을 찾은 것을 보니 아마 형식적인 조사일 것 같습니다.”
“남궁정이 앞장섰다?”
“네.”
남궁무의 대답에 남궁준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신의 자식이라면 그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 정도는 해 줘야 했다.
멍청하게 대주도, 부대주도 하지 못하고 일개 대원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조직에서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고 영향력이 있는 것 같았다.
‘가문의 이름에 먹칠은 하지 않겠군.’
남궁정 개인보다 남궁세가 자체가 중요했던 남궁준광은 다행히 영향력이 있는 듯한 남궁정의 모습에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가자.”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궁무에게 말했다.
그에 남궁무는 옆으로 물러났고, 남궁준광은 익숙하게 그런 남궁무를 지나 앞장섰다.
잠시 후.
내원을 지나 외원에 도착한 남궁준광은 자신의 두 눈 앞에 펼쳐진 모습에 눈가를 찌푸렸다.
당당한 자세로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가주, 남궁정과 그런 남궁정을 지원하듯 뒤에서 딱 버티고 있는 한 명의 여인과 사내들.
이상할 게 없는 그림, 오히려 남궁준광이 원하던 그림이었다.
하지만.
“뭐지?”
남궁정의 옆.
팔 하나가 잘린 채 대역 죄인처럼 포박당하여 무릎을 꿇고 있는 창천단 조장들의 모습에 눈가가 꿈틀거렸다.
불편한 기색이 가득 담긴 남궁준광의 물음.
그 물음에 남궁정이 정중히 포권을 취하였다.
“무림수호감찰대원 남궁정이 남궁세가의 가주님을 뵙습니다.”
“…….”
남궁세가의 일원이 아닌, 감찰대원으로서 인사를 올리는 남궁정.
그런 남궁정의 모습에 남궁준광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에 남궁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주님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받아 이곳을 조사하게 되었으니, 부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본가에 조사할 것이 있나?”
양해를 구하는 남궁정의 말에 남궁준광이 물었다.
그에 남궁정이 남궁준광의 두 눈을 피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예.”
“무엇이 있지? 내가 가주로 있는 한 본가는 한 점 부끄럼 없는 당당하고 청렴한 가문이다.”
남궁정의 대답에 남궁준광이 물었다.
그에 남궁정이 옆에 무릎 꿇고 있는 무인들을 한 번 내려다보고는 다시 남궁준광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남궁가의 무인들은 남궁 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힘없는 백성들을 핍박하였으며, 그들은 의와 협, 그리고 약자를지키기 위해 사용해야 할 힘을 힘이 없는 노인을 괴롭히고, 조롱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뭐라?”
“거기에 그치지 않고, 억울하게 죽은 고인을 모욕하였으며, 거짓으로 가문의 시녀들을 희롱하는 비인륜적인 행동을 하였습니다.”
남궁정의 이야기가 끝이 나자 남궁준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움찔!
남궁정의 옆.
어느새 정신을 차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무인들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러한 남궁준광의 모습에 남궁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두 번째!”
“……?”
남궁정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남궁준광은 고개를 돌려 남궁정을 바라보았다.
그에.
“남궁세가의 대공자, 남궁영이 저지른 비인류적이고 끔찍한 잘못들 모든 것을 남궁세가에 물을 것이며, 남궁영으로 인해 피를 보고, 끔찍한 기억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남궁세가를 벌할 것입니다.”
“네 이놈!”
우웅!
남궁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궁준광이 무서운 표정으로 호통을 쳤고,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절대의 경지, 화경에 들어선 고수의 분노가 담긴 기운.
그 기운에 남궁정이 신음을 흘렸지만 피하지 않았다.
그에 남궁준광은 무서운 표정으로 그런 남궁정을 노려보았다.
“감히! 대 남궁세가에 벌을 내리겠다니! 네 놈이 미쳤구나!”
“우리는 무림맹, 천마신교, 사황성의 명을 받고 이곳에 온 감찰대입니다! 예를 갖추십시오!”
강력한 기파가 담긴 남궁준광의 호통에 지지 않겠다는 듯 남궁정 또한 절정의 경지에 들어선 기운을 내뿜으며 대답했다.
완숙한 절정에 이르러 제법 힘 있는 기파.
본인의 기파에 비하면 어린아이의 장난과도 같은 가소로운 기파였다.
하지만 그런 기파에 남궁준광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스물의 나이에 완숙한 절정.
자신의 뒤를 이어, 본가를 이끌어갈 남궁정이 생각보다 뛰어난 성취를 보여주니 미친 듯이 끓어올랐던 분노가 조금 진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남궁준광이 흥분을 가라앉히자 남궁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합니다. 본 감찰대는 귀하의 세가를 조사할 것이며, 만약 이에 불응할시 무림맹은 물론 천마신교와 사황성의 제재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본 감찰대의 조사, 응하시겠습니까?”
“지금 협박하는 것이냐?”
“그저 가주님께 보다 좋은 선택지를 권할 뿐입니다.”
남궁준광의 불편한 물음에 남궁정이 또렷하게 대답했다.
“웃기는군.”
그러한 남궁정의 대답이 웃겼을까?
남궁준광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에 남궁정은 눈가를 찌푸렸다.
그러고는 남궁준광을 바라보았다.
“불응하시는 것입니까?”
웅성웅성.
남궁정의 물음.
그 물음에 외원, 연무장에 모여든 수많은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의 가문인, 본가를 조사하겠다는 소가주가 말이다.
그러한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뒤로하고.
분노를 전부 가라앉힌 것일까?
평소의 차가운 표정을 돌아온 남궁준광이 남궁정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첫 번째의 조사, 그것은 본가가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
“불응하시는 것입니까.”
“본가의 무인이다. 본가의 규율대로 처리하고 본가 자체에서 무인들을 조사하겠다. 그러니 물러가라.”
“…….”
남궁준광의 차가운 대답.
그 대답에 남궁정이 고개를 돌려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그에.
스윽.
위극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응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에 남궁정은 다시 고개를 돌려 남궁준광을 바라보았고 이내 입을 열었다.
“용납할 수 없습니다.”
꿈틀!
남궁정의 대답. 그 대답에 남궁준광의 눈가가 다시 꿈틀거렸다.
용납할 수 없다는 대답 때문이냐고?
아니다.
“소교주의 개가 되었구나.”
대주임과 동시에 천마신교의 소교주인 수라협성 위극신.
대 남궁세가의 소가주인 그가 마치 마교의 마인처럼, 위극신에게 의중을 물어보고, 그 대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남궁준광의 말에 남궁정이 흔들림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제 상관입니다. 따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저는 감찰대원입니다. 예를 갖추어 주십시오.”
감찰 대원이 아닌 아들을 대하는 듯한 남궁준광의 대답에 남궁정이 차갑게 경고했다.
그에 남궁준광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
위극신의 깊은 두 눈.
그 두 눈과 마주친 남궁준광은 순간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늪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꽈득.
그러한 자신의 행동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제왕검형을 대성한 자신이 저런 어린 사내에게 순간 겁을 먹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했던 것이다.
“가주님께 다시 권고하겠습니다. 본 감찰대의 조사에 응해주시겠습니까?”
그러한 남궁준광의 뒤로.
남궁정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에.
“거절한다.”
남궁준광은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스릉!
우웅!
허리춤에 걸려 있던 애검, 창천검을 뽑아 들었고 기운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남궁정의 옆.
포박되어 있는 본가의 무인들에게 달려갔다.
남궁세가의 무인으로서 명예를 저버린 자.
그들을 벌할 자는 무림맹도, 감찰대도 아니다.
바로, 가문의 주인인 자신!
그에 남궁준광은 빠른 속도로 그들에게 달려들었고, 이내 그들의 목을 베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챙!
검으로 사람의 목을 베는 서걱 이라는 소리 대신, 맑은 검명이 울려 퍼졌다.
남궁준광의 무시무시한 검.
그것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위극신이 나서서 막아섰던 것이다.
그것도 한 손으로 가볍게 검을 들어서 말이다.
“소교주…….”
그러한 위극신의 행동에 남궁준광은 분노가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고, 위극신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호칭 제대로 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