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제200장 자식 농사 子息農事
“슬프더냐?”
나의 앞.
허망하게 두 동강이 난 검을 내려다보고 있는 단진을 향해 물었다.
그에 단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스윽.
한쪽 무릎을 꿇어 두 동강이 난 환영검의 검날을 집어 들었다.
“죄송합니다. 소교주님께서 주신 검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
내가 두 동강을 낸 건데 왜 네가 미안해하냐.
사람 미안해지게.
나의 과격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탓하며 용서를 구하는 단진을 보며 나는 신음을 흘렸다.
“이 검 날을 소중히 간직하여 자만에 빠지려 할 때 마다 이것을 보고 오늘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래.”
맞다, 이런 녀석이었다.
나의 앞에서 나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즉각 수정하겠다는 녀석을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린 시절.
검마에 의해 나에게 충성을 바치며 검이 되고 싶어 했던 단진.
그는 지금 나의 수하이자 검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녀석은 절친한 벗이다.
그에 나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일어나.”
“감사합니다.”
나의 말에 단진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은 잘 간직하고 있어.”
단진의 손에 들린 환영검의 조각.
그것을 보며 내가 말하자 단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늘 이것을 보며 경계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
나의 훈육이 제대로 먹혔는지 알아서 고치고 경계하겠다는 녀석을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뭐, 다행이었다.
자만심으로 가득 찼던 녀석의 두 눈이 훨씬 맑아졌으니 말이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얼음탱이, 소교주님에게 감사하게 생각해라.”
그렇게 나와 단진의 대화가 끝이 나자 기다렸다는 듯 사마천과 야율민이 다가왔다.
사마천은 나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고, 야율민은 고개를 돌려 단진을 타박했다.
그에 단진은 고개를 돌려 야율민을 바라보았다.
“뭐? 한판 해?”
자신을 바라보는 단진의 행동에 움찔한 야율민.
그가 허리춤에 걸린 두 개의 단창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언제라도 대련을 받아 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러한 야율민의 행동에 단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미안했다.”
“엉……?”
단진의 입에서 나온 말.
처음 들어 보는 말에 야율민이 벙 찐 표정을 지었다.
그에 단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동안 너를 너무 무시했다. 미안하다.”
“어…… 어, 그래…….”
단진에게 듣는 첫 사과이기 때문일까?
야율민은 당황해하면서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단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부족하고 싶어서 부족한 것이 아닐 텐데…… 나의 능력에 비해 너무나도 부족해 보여 그만 무시하고 말았다. 내 사과를 받아 줘.”
“…….”
“미안하다. 너는 그저 부족한 것일 뿐이거늘…… 내가 너를 너무…….”
“이런 미친놈이!”
계속되는 단진의 사과에 그제야 이상함을 깨달은 야율민이 소리를 지르며 두 개의 단창을 뽑아 들었다.
그에 단진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에휴, 짜증 나는 얼음탱이.”
살짝 미소를 짓는 단진의 사과.
그 사과에 야율민은 한숨을 내쉬고는 단창을 집어넣었다.
“진아, 한 명 더 있다.”
그런 둘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짓던 나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 남궁정과 왕일을 발견하고는 단진에게 말했다.
그에 단진은 고개를 돌렸고, 이내 얼굴이 굳어져 있는 남궁정과 두 눈이 마주쳤다.
“무시를 해서 미안하다.”
“…….”
남궁정과 두 눈이 마주친 단진은 깔끔하게 사과를 건넸고, 그에 남궁정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에 단진은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용서가 되지 않나?”
“아닙니다.”
“그럼?”
남궁정의 대답에 단진이 의문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남궁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와 대련해 주십시오.”
“나와?”
“네.”
“왜지?”
남궁정의 제안에 단진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런 둘을 지켜보았다.
마음은 따뜻하고 정이 많지만 겉으로는 차가운 두 놈.
비슷한 것이 참 많은 두 놈을 보니 괜히 재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나와 같았을까?
어느새 사마천과 야율민은 물론, 마독과 왕일까지 나와 같은 자세로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이유는?”
“극신 형님과 대련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응? 나랑?
남궁정의 입에서 나의 이름이 나오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그냥 대련 신청하면 되지. 왜 나랑 대련하고 싶어서 저 녀석과 대련을 하는 거야?
무슨 각개격파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군.”
그런 남궁정의 마음을 대번에 이해한 듯 단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습에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이건 뭐. 천생연분이 따로 없었다.
“둘이 한번 붙을 거냐?”
“네.”
“네.”
나의 물음에 두 녀석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뒤로 물러섰다.
“여기 앉으세요!”
그때, 어느새 의자를 가져온 마독이 나에게 자리를 권했고,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열, 마독이. 눈치 빨라졌어?”
“헤헤.”
좋댄다.
장난스러운 나의 칭찬에 녀석이 부끄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녀석이 가져온 의자에 앉았다.
“사마 형.”
“여기.”
내가 자리에 앉자 단진이 사마천을 불렀고, 사마천은 기다렸다는 듯 허리춤에 있던 검을 풀어 녀석에게 주었다.
“!!”
그런 사마천의 거리낌 없는 행동이 놀라웠을까?
남궁정과 왕일, 그리고 마독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인에게 있어서 자신의 병기는 목숨과도 같은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러한 물건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빌려준다?
피가 섞인 가족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고맙습니다.”
“뭘, 우리 사이에.”
사마천의 검을 받아 든 단진이 감사 인사를 건네자 사마천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에.
“야, 단창은 필요 없냐?”
“필요 없다.”
“싸가지하고는.”
야율민이 두 개의 단창 중 한 개를 내밀었고, 단진이 거절했다.
그에 야율민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단창을 집어넣었다.
거참, 야율민.
저 녀석은 분명 어릴 때는 단진을 싫어했다.
아마 혐오했다는 표현이 잘 어울릴 것이다.
헌데 지금 보면 야율민 저 녀석이 단진을 더 좋아하고 있었다.
마치 한 살 터울 아래 동생을 대하듯? 약간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단진이 검을 뽑아 들었고, 나를 향해 정중히 이야기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곧 단진과 남궁정이 마주했다.
“마음껏 들어와라.”
“그럴 겁니다.”
단진의 입에서 나온 차가운 목소리와, 남궁정의 입에서 나온 차가운 목소리.
공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차가웠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얼음탱이가 하나 더…….”
야율민은 남궁정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채채챙!
그렇게 얼음탱이 둘은 검을 맞대었고, 나는 어느새 나의 옆으로 다가온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뭔데?”
할 말이 있는 듯 조심스럽게 나의 옆으로 다가온 사마천.
그런 녀석을 보며 내가 물었다.
그에.
“대주직을 수락하시는 겁니까?”
사마천이 물었다.
나에게 서신으로 온 무림 수호 감찰대주 임명장.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냐는 녀석의 물음에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무림맹과 본교의 첫 결과물이지?”
“네.”
“그럼 해 줘야지 뭐.”
솔직히 귀찮았다.
그래서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내가 본교의 소교주이다.
게다가 무림맹과 본교의 첫 결과물.
그것을 귀찮다는 이유로 거절한다는 것은 상당히 보기 흉했다.
물론 겸사겸사 여러 문파에 들르며 서은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고 말이다.
“은설도 대원에 넣어 주나?”
“부대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나의 물음에 사마천이 대답했다.
짜식, 척 하면 척이었다.
사황성주의 제자이자 성주의 후계자로 알려진 서은설.
그녀에게 있어 어울리는 직함이 필요했기에 내가 물었고, 그런 나의 의중을 파악한 녀석이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 대답한 것이다.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해.”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서신을 보내기 위해 잠깐 물러나겠습니다.”
“그래.”
자리에서 일어난 사마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녀석들의 대련에 집중해야지.
“아, 소교주님.”
사마천을 보내고 단진과 남궁정의 대련에 집중하려던 나는 깜빡했다는 듯 입을 연 사마천의 행동에 고개를 돌렸다.
“다음 행선지는 남궁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남궁세가?”
“예.”
나의 물음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왜?”
“남궁세가에서 연회가 열린다더군요.”
“근데 내가 왜 가?”
사마천의 대답에 내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남궁세가에서 열리는 연회가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움찔!
저 녀석은 왜 또 움찔거리는 거야?
음흉한 미소를 짓는 사마천의 옆.
우리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지 왕일이 움찔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사마천은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다시 입을 열었다.
“공개 약혼식이 있다고 합니다.”
“남궁세가에서?”
“네.”
세가에서 이루어지는 약혼을 공개적으로 행한다?
아무리 천하제일가인 남궁세가라 하더라도 가솔의 결혼도 아닌 약혼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손님으로 받아야 하기에 막대한 재화가 소모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정이 약혼하냐?”
직계가 약혼한다는 뜻이었다.
그에 나는 남궁정이 약혼을 하냐고 물었다.
움찔!
얼씨구?
그런 나의 모습에 왕일이 다시 움찔거렸다.
어느새 녀석의 상체는 우리를 향해 기울어 있었다.
그런 녀석의 모습과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녀석을 힐끔거리는 사마천.
그런 둘을 보며 나는 곧 깨달을 수가 있었다.
“아! 남궁연화?”
남궁정의 동생이자 남궁세가의 직계 여식.
동시에 왕일과 묘한 관계로 지내고 있는 여인, 남궁연화를 말이다.
이것 참.
산동악가의 혼례를 해결하니 이번에는 남궁세가다.
게다가 둘 다 내 동생.
못난 놈들.
이 형이 다 해결해 줄게.
아무래도 사랑의 해결사인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았다.
“명분은?”
“여기서 말해도 됩니까?”
나의 물음에 사마천이 대답했다.
그에 나는 눈을 돌려 어느새 우리 옆으로 다가온 왕일을 바라보았다.
“일아, 명분 만들 수 있냐?”
“……힘들 것 같습니다.”
나의 물음.
그 물음에 왕일이 굳은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왜?”
“남궁세가주. 검왕 劍王 남궁준광은 남궁세가를 위해 평생을 바친 무인 중의 무인.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사내로 유명합니다. 그런 사내가 가주로 있기에 가문의 비리도 없고, 그의 개인적인 문제도 없습니다.”
감찰대주인 나에게 내려진 권한.
그것은 바로, 사소한 것이더라도 심증만 있다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준광은 사소한 심증도 제공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사내.
아니, 정확히는 무공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내였다.
그에 왕일은 고개를 숙였다.
‘녀석.’
아무래도 사마천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무룩해하면서도 사마천을 힐끔거리는 녀석을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명분은?”
“왕 소협의 말이 맞습니다. 남궁세가주는 깔끔한 사내이지요.”
“있냐고.”
길어지는 녀석의 대답에 나는 살짝 짜증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에 사마천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남궁세가주. 그는 무공도 가문을 이끄는 능력도,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유일하게 단 한 가지, 바로 자식 농사는 잘하지 못했지요.”
“아……?”
“예, 바로 남궁세가의 망나니였던 대공자. 남궁영이 우리의 명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