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제198장 남궁정 南宮正
“그럼 편하게 이야기 나누십시오.”
산동악가의 귀빈실.
그곳으로 친히 안내해 준 악천후가 나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한 다음 밖으로 나섰다.
직접 문까지 닫아 주면서 말이다.
‘거참, 부담스럽네.’
하인 시키면 될 것 가지고 가주인 그가 직접 이런 행동을 하니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곧 사돈이 될 집안이기에 더더욱 부담스러웠다.
“사이가 좋아 보이십니다.”
“시끄러.”
그런 악천후의 모습에 마독이 웃으며 말했고, 나는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그에 마독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래,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역시 저놈은 괴롭히는 맛이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마독의 입을 다물게 만든 나는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세 명의 아이, 아니. 이제는 너무나도 듬직해져 버린 벗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았다.
짜식들, 여전히 잘생겼다.
확실히 본교가 무림맹이나 사황성보다 외모가 한 수 위였다.
속으로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것도 잠시.
“파사국에 갔다지?”
“네, 좋은 경험을 쌓고 왔습니다.”
나는 가장 먼저 이들 중 가장 연장자인 사마천과 두 눈을 마주하며 물었다.
그에 사마천이 자신감 어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자신 있나 보네?”
자기 입으로 당당하게 좋은 경험을 쌓고 왔다는 사마천을 바라보며 나는 장난스레 물었다.
저 정도로 당당한 것을 보면 얻은 것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한 나의 물음에 녀석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뭐, 이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뜻깊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이 아이들을 키웠으니 말이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사마천의 왼쪽에 앉은 익숙한 놈을 바라보았다.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 야룡아.”
나와 두 눈이 마주치자 기다렸다는 듯 사랑 고백을 하듯 절절하게 말하는 야율민, 일명 야룡이.
그 녀석의 고백 같은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저 녀석, 갈수록 부담스러워진다.
말이 없는 편인 삼장로 창마와 달리 야율민은 상당히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어릴 때는 안 저랬는데…….’
언제부터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조금은 부담스러운 녀석을 보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서양의 창술을 배웠다지?”
“네, 운이 좋게도 훌륭한 스승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스승이라…….”
녀석의 대답에 나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본교의 무인이자 삼장로의 아들인 야율민.
본교의 오대마가 중 한 곳의 소가주인 그가 타 세력의 무인에게서 무공을 배웠다?
솔직히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마, 야율창가에서 알게 된다면 녀석은 징계를 받겠지.
하지만.
“잘했네.”
나는 싱긋 웃으며 야율민을 칭찬했다.
누구에게 배웠든, 훌륭하게 자랐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막말로, 지나가는 사람 세 명 중 한 명은 충분히 스승이 될 그릇이 있다는 옛말이 있지 아니하던가?
아닌가? 아무튼.
내가 괜찮으면 된 것이다.
“네!”
녀석도 내가 괜찮으면 된 듯하고 말이다.
나의 칭찬에 야율민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나 또한 다시 살짝 미소를 지어 준 다음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흐음…….”
가만히 신음을 흘렸다.
‘저 미친놈…….’
단진의 나이는 나보다 다섯 살 위.
금년 스물일곱, 곧 여덟이 된다.
헌데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섰다?
그것도 완숙한?
피식.
미친놈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한 것보다 더 미친놈이었다.
믿기지 않는 성취를 이룬 단진을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이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군……?”
“소교주다.”
그런 나의 행동에 단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에 나는 녀석에게 호칭 주의를 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따라 나와.”
“네, 알겠습니다.”
짜식, 바로 알아듣네.
걸음을 옮기며 따라 나오라는 나의 말에 단진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며 나의 뒤를 따랐다.
* * *
“나도 형님 보고 싶은데…….”
“우리는 얼마 전에 보지 않았느냐.”
“그건 그렇죠…….”
산동악가의 연무장.
위극신과 만나지 못해 남궁정과 대련이라도 하기 위해 나온 왕일.
그의 투덜거림에 남궁정이 인자하게 말했고, 그에 왕일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왕일,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은 얼마 전에 형님을 보았고, 그자들은 정말 오랜만에 형님을 본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내심…… 섭섭했다.
부웅!
그런 왕일의 마음과 같았을까?
남궁정이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마치 잡생각을 날려 버리겠다는 듯, 평소보다 더 강하게 말이다.
“형님, 그래 가지고 생각이 날아가겠습니까?”
그런 남궁정의 모습에 왕일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그에 남궁정이 휘두르던 검을 멈추었고, 왕일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남궁정에게 목검을 겨누었다.
“대련이나 하시죠.”
“좋구나.”
왕일의 장난스러운 제안.
그 제안에 남궁정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왕일은 자세를 낮추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공 금지인 거 아시죠?”
“물론이다.”
왕일의 말에 남궁정은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타앗!
왕일이 빠른 속도로 남궁정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비록 무공보다는 정보를 다루는 것에 더 관심이 많고,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왕일이었지만 그 또한 일류 경지의 뛰어난 무인.
동년배 중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훌륭한 무인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왕일의 동작.
그 동작에 남궁정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턱!
그러고는 목검을 비스듬하게 들어 왕일의 목검을 막아섰다.
숙!
그에 왕일은 기다렸다는 듯 손목을 비틀었다.
퍽!
하지만, 남궁정의 발이 더 빨랐다.
왕일이 손목을 비틀어 공격한다는 것을 짐작한 남궁정이 무게중심이 흐트러진 왕일의 발목을 걷어차 버린 것이다.
“어어!”
그에 왕일은 세상이 가로 기울어지는 것을 느끼며 놀란 음성을 내뱉었고, 결국.
철푸덕!
그대로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야야…….”
남궁정에게 일격을 허용당한 왕일.
그가 땅바닥에 철푸덕 앉은 채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다.
그에 남궁정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체 훈련을 더 해야겠구나.”
“후우…… 그럴 시간이 있어야지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건네는 남궁정.
그런 남궁정의 손을 잡으며 왕일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래, 너는 정보를 다루는 것에 능통하니 무공을 수련하는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겠지.”
“네,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저 정도면 어디 가서 안 꿀립니다?”
동년배의 나이 중 제법 강한 편에 속하는 왕일.
그가 가슴을 쫙 펴며 당당하게 말하자 남궁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왕일은 다시 입술을 삐죽였다.
“진짠데…….”
“믿는다.”
“아, 예.”
어찌 저렇게 믿음이 없을 수가.
믿는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남궁정을 보며 왕일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에 남궁정이 다시 입을 열려고 했지만.
“형님!”
자신의 뒤쪽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 왕일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차가운 인상의 사내, 단진이라는 사내와 나란히 이곳으로 오고 있는 자신의 의형, 위극신이 말이다.
“여기 있었구나.”
자신과 왕일을 발견한 위극신.
그의 웃음기 어린 말에 남궁정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네, 일이와 대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 그래?”
남궁정의 말에 위극신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 남궁정은 괜히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어미에게 칭찬을 받은 아이처럼 말이다.
“잘 가르쳐 줘. 왕일 저 녀석, 무공에도 제법 소질이 있잖아?”
“네, 알겠습니다.”
장난스러운 위극신의 말.
그 말에 남궁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자신의 의형인 위극신은 가볍게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자신은 그냥 흘려듣기가 싫었다.
그에 남궁정은 왕일을 제대로 훈련시키리라 다짐했고, 가만히 웃고 있던 왕일은 영문 모를 한기에 몸을 떨었다.
“그나저나, 잠깐 비켜 줄래?”
“연무장 사용하시게요?”
“그래.”
위극신의 부탁에 왕일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에 위극신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뒤에 있던 단진을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이랑 한판 하려고.”
“오오! 바로 물러나겠습니다!”
위극신의 말에 왕일이 호들갑을 떨며 뒤로 물러났다.
생각지 못한 재미있는 광경에 기대가 되었던 것이다.
“형님, 뭐 해요?”
그렇게 후다닥 뒤로 물러나던 왕일.
그는 자신과 달리 가만히 서 있는 남궁정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한 왕일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남궁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오만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단진을 마주할 뿐이었다.
“둘이 뭐 하냐?”
그런 둘의 모습에 위극신이 어이가 없다는 어조로 물었다.
그에 남궁정이 입을 열었다.
“저도 저자와 대련…….”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단진의 말이 더 빨랐다.
단진과 대련을 하고 싶다고 말을 내뱉으려던 남궁정은 자신보다 한 발 앞서 말한 단진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한 남궁정의 눈빛에.
피식.
단진은 가소롭다는 듯 피식 미소를 지었다.
꽈악.
그에 남궁정은 분노를 느꼈고, 이내 검 손잡이를 강하게 쥐었다.
금방이라도 단진에게 달려들 듯 말이다.
하지만.
“그만.”
차가운 위극신의 목소리가 금방이라 부딪칠 것만 같았던 단진과 남궁정을 막아섰다.
“자세 풀어.”
“죄송합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자세를 낮춘 남궁정.
그는 위극신의 차가운 목소리에 황급히 자세를 바로 하며 사과했다.
그러한 남궁정의 사과에 위극신은 고개를 돌렸다.
“가벼워졌구나.”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단진을 향해 말했고, 그에 단진이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했다.
“경지에 올라섰다고 가벼워진 것이냐?”
“아닙니다.”
“아니기는.”
단진의 대답에 위극신이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남궁정을 바라보았다.
“정아 물러나거라.”
“네, 형님.”
위극신의 목소리에서 항거할 수 없는 위엄을 느낀 남궁정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한 다음 뒤로 물러섰다.
“형님, 참으세요.”
그렇게 남궁정이 뒤로 물러서자 가만히 눈치를 살펴보고 있던 왕일이 남궁정에게 다가와 위로했다.
그에 남궁정은 괜찮다는 듯 미소를 살짝 지어 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위극신과 단진을 바라보았다.
꽈악.
부러웠다.
자신 또한 위극신과 마주하고 대련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부족했기에 위극신과 동등하게 대련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형님과 동등하게 대련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형님의 오른팔이며, 어린 시절부터 동고동락해 온 벗이었다.
물론 본인은 수하라고 생각하지만 술을 마시면 형님인 위극신이 늘 말하고는 했었다.
저 사람, 단진을 포함한 네 명의 사내들 모두가 자신의 벗이라고 말이다.
그에 남궁정은 괜히 질투가 났다.
자신 또한 형님에게 그런 동생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며 남궁정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그때.
스르릉.
단진이 허리춤에 걸려 있던 진검을 뽑아 들었다.
스윽.
위극신은 품속에서 옥색의 섭선을 꺼내 들었다.
‘뇌선.’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옥색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섭선.
그 섭선의 이름이 뇌선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에 남궁정은 속으로 뇌선을 중얼거리며 그 둘에게 집중했고. 곧.
두 눈을 크게 떴다.
우우웅!
거대한 기운과 동시에 하늘을 가득 채운 수십 개의 검.
분명 환영 幻影 이다.
조금 전까지 한 개밖에 없는 검을 확인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두 다 진실 眞實이다.’
모두 다 진실이었다.
하나하나 검의 예리함과 무서운 살기를 담고 있었기에 남궁정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저자,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검을 강하게 쥐며 무표정한 얼굴로 위극신을 응시하고 있는 단진을 보며 자괴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남궁정은 평생을 수련해도 저자의 발치를 못 따라갈지도 몰랐다.
그리고.
‘형님…….’
위극신에게 있어서 소중한 동생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