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화
제196장 무림 수호 감찰대 武林守護監察隊
“후우…….”
“괜찮아요?”
늦은 밤.
방선에게 손님맞이를 부탁하고 홀로 침실에 들어 휴식을 취하던 악천후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방선이 말이다.
“손님맞이는 잘하셨소?”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가주인 악천후를 대신하여 손님들을 정중하게 맞이한 방선.
그녀가 대답하다 악천후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고맙소, 고생 많으셨소.”
힘없는 악천후의 웃음과 말에 방선이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소교주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힘이 많이 없어 보여요.”
한 개의 태산과 같던 평소와는 달리 너무나도 왜소해 보이는 악천후의 모습.
그 모습에 방선이 물었다.
그에 악천후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뜻이었다.
“말해 봐요.”
말없이 고개만 가로젓는 악천후를 보며 방선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다독였다.
방선, 그녀는 감이 좋은 여인이기에 직감적으로 알았다.
악천후와 소교주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방선의 계속된 물음에 악천후는 걸음을 옮겨 침대 옆에 놓인 작은 탁자 앞, 의자에 앉았다.
그에 방선 또한 악천후의 맞은편 빈자리에 앉았다.
“오늘, 진주언가에 혼약을 파기한다는 일방적인 서신을 보내었소.”
“정말인가요?”
악천후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방선이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에 악천후는 가만히 방선을 바라보았고, 이내 피식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여화의 혼약 상대로 진주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구려.”
그동안 아무런 말이 없기에 방선 또한 자신과 생각이 같을 줄 알았던 악천후.
그는 자신의 이야기에 반색하는 부인을 보며 자조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에 방선이 가만히 악천후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흔들림 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여화가 바라는 혼인이 아닌, 당신이 바란 혼인이었잖아요.”
“그것은 모두 여화를 위해…….”
정곡을 찔렀을까?
악천후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방선은 단호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여화를 위해서였나요?”
변명하듯, 늘 여화를 위해서라는 말은 내뱉는 악천후.
그런 그를 향해 방선이 단호하게 묻자 악천후는 순간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정말 여화를 위해서 진주언가와 혼약을 맺었을까?
정말 여화를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그녀에게 무공과 각종 학문을 가르쳤던가?
아니다.
모두 다 자신을 위해서였다.
친한 친구와 사돈이 되고 싶었으며, 진주언가와 관계를 돈독히 맺어 진주언가는 하북성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여 산동성의 지배자가 되고 싶었다.
또한, 자신의 여식이기에 어디 하나 부족하지 않은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랐다.
오로지 자신의 여식이니까.
방선의 물음과 눈빛.
그것이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를 후비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악천후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여화의 의견을 존중해 주세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인 악천후의 모습, 그 모습에 방선이 그를 위로하듯 단호했던 조금 전과는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언을 했다.
그런 방선의 목소리가 효과가 있었을까?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악천후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마인에게 시집을 보내자는 말이오?”
악천후의 입에서 나온 것은 방선이 원하는 대답이 아닌, 분노가 어린 목소리였다.
그에 방선은 굳어진 얼굴로 악천후의 두 눈을 마주했다.
“여화가 원하잖아요.”
“여화의 아비인 나는 원하지 않소. 주변 가문들이 뭐라 생각하겠소?”
결국.
악천후의 언성이 높아지고 말았다.
마인과는 절대 안 된다는 듯 악천후가 언성을 높이자 방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악천후를 바라볼 뿐이었다.
움찔!
아무런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방선의 눈빛에 악천후는 그제야 본인이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깨달았다.
그에 악천후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까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부끄러운 말을 내뱉고 말았다.
정말 구제 불능도 이런 구제 불능이 없었다.
그에 악천후가 고개를 숙이자 방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당신을, 그리고 가문을 위해서 여화를 희생시키지 마세요.”
“…….”
“먼저 주무세요.”
방선의 말에 악천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에 방선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한 다음 침실을 나섰다.
부부 간에 큰 갈등이 있었을 때.
방선은 지금처럼 침실을 나서서 개인의 방에서 잠을 자고는 했다.
“하아…….”
그렇게 방선이 나가고, 홀로 남게 된 악천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었다.
“멍청한 놈.”
멍청했다.
그리고 찌질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무재와 미색이 뛰어난 여식을 이용하려고 했던 자신.
그런 자신이 혐오스럽기까지 했으며 그것을 가장 들키기 싫은 사람에게 들켜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하아…….”
그에 악천후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었다.
똑똑.
그때.
악천후의 침실 밖에서 문소리가 났다.
그에 악천후는 의문 섞인 표정을 지었다.
“부인이오?”
조금 전에 나갔던 방선.
혹시 그녀가 다시 돌아온 것은 아닐까 내심 기대한 악천후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악훈입니다.”
악천후의 기대와 달리 돌아오는 대답은 중저음의 사내 목소리였다.
악훈.
산동악가의 총관이자 사사로이는 자신의 사촌 동생인 그의 방문에 악천후가 입을 열었다.
“나가지.”
이곳은 악천후와 방선이 사용하는 침실.
이곳으로 악훈을 들이기에는 옳지 않았기에 악천후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가벼운 장포를 입고는 문을 열었다.
“늦은 밤, 죄송합니다.”
그러자 보였다.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악훈이 말이다.
늦은 밤, 쉬는 시간을 방해한 자신의 행동에 사과하는 악훈을 보며 악천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세, 안 그래도 찬 바람을 쐬고 싶었거든.”
복잡한 머리와, 부끄러움으로 인해 화끈한 얼굴.
그것을 식히고 싶었던 악천후가 괜찮다 대답하자 악훈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렇게 악천후와 악훈은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무슨 일인가?”
어느 정도 걸음을 옮기며 생각 정리를 마친 악천후가 물었다.
그에 가만히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악훈이 입을 열었다.
“풍권대주가 돌아왔습니다.”
“그렇겠군. 진주언가에서는 뭐라던가?”
풍권이라는 별호로 알려진 고수 악현.
풍권대주인 그를 통해 태중혼약 파기서를 전했던 악천후였기에 살짝 긴장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많이 화내던가?”
자신이 보낸 파기서는 아무런 이유 없는, 일방적인 통보였으며 동시에 진주언가를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입장 바꿔서 만약 자신이 진주언가의 입장이었다면 분노를 토하며 상대 가문을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필시 원수 사이가 되었겠지.
이미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할 생각이었던 악천후가 묻자 악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이었다.
“정말인가……?”
그에 악천후가 걸음을 멈추고는 의문 섞인 음성으로 물었다.
그에 악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진주언가의 모든 수뇌부들이 투옥되었다고 합니다.”
“투옥……?”
놀란 악천후의 물음에 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불법 비자금, 인신매매, 마약 유통 등, 각종 불법적인 일을 한 것이 적발되었습니다.”
“!!”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소가주인 언간이 있었으며, 모든 수뇌부가 언간에게 동조한 것으로 이미 증좌가 모두 밝혀졌습니다. 풍권대주가 진주언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무림맹에서 파견된 감찰대에 진주언가가 탈탈 털린 상태였습니다.”
“…….”
너무 놀라면 말문이 막힌다는 말, 지금이 딱 그러했다.
지금 당장 악천후가 그러했으니 말이다.
너무나도 놀라 말문이 막혀 그대로 굳어 버린 악천후.
그런 가주를 보며 악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언가주는 조사를 받고 있지만, 그분이 연관된 증좌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
악훈의 말.
그 말에 악천후가 언성을 높였다.
그에 악훈 또한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언가주는 그럴 분이 아니시죠.”
진주언가의 가주, 언진게.
권협이라는 별호가 잘 어울리는 무인 중의 무인이 바로 그였다.
그에 악훈도 동의하는 바.
악천후의 말에 동의를 하자 악천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찌 그 친구 모르게…….”
“아마, 언간의 짓이겠지요.”
악여화의 약혼자인 언간.
자신이 그토록 좋아했던 언간이 사실은 무서운 미친놈이었다는 사실에 악천후가 이마를 짚었다.
그에 악훈이 악천후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소교주가 우리를 살린 것 같습니다.”
“뭐라……?”
자신을 무릎 꿇리고 멸문당하기 싫으면 태중혼약 파기 서류를 작성하라던 소교주.
그가 본가의 은인이라는 악훈의 말에 악천후가 눈가를 꿈틀거리며 말했다.
그에 악훈이 입을 열었다.
“풍권대주의 말로는, 감찰대원 중 한 명이 말했다고 합니다. 소교주는 이미 진주언가의 비리를 모두 알고 있었고, 동맹 가문인 본가가 공범으로 엮일 수가 있기에 그것을 잘라 내기 위해 태중혼약 파기 서류를 보내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
“혹, 소교주가 가주님에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서류 작성을 강요했습니까?”
놀란 악천후를 보며 악훈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에 악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패도적인 마공의 기운을 내보이며 멸문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며 협박을 하던 위극신.
극단적인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악천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악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시가 급한 일이다 보니 소교주가 극단적인 행동을 했나 봅니다.”
“그럼 정말로…….”
“예, 물론 기본적인 조사는 받아야겠지만 무림맹에서는 본가를 공범으로 보지는 않고 있습니다.”
“허어…….”
소교주인 위극신의 의중이야 어쨌든, 그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에 악천후가 탄식을 내뱉었고, 악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마회동의 첫 번째 결과물. 바로 무림 수호 감찰대라는 조직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곳에는 천마신교 장로들의 자제와, 남궁세가의 소가주. 그리고 사파 하오문의 소문주가 대원으로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듣기만 해도 놀라울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
그 조합으로 이루어진 조직의 이야기에 악천후가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그에 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서 현재 무림이 떠들썩합니다. 처음으로 정 사 마가 힘을 합쳐 한 조직을 만들었으니까요.”
“허어…….”
“하여 모든 무림인들, 정사마 통틀어 모든 무인들과 민초들이 그들의 행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어진 악훈의 설명에 악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자신만 하더라도 그 조직에 흥미가 갔으니 말이다.
“그에, 무림맹주와 천마는 그들에게 독자적인 권한을 부여했고, 감찰대주로는 소교주이자 수라협성으로 이름이 드높은 위극신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
“예, 소교주는 감찰대주로서 진주언가의 비리를 먼저 알고, 본가를 살려 준 것입니다.”
“허어…….”
악훈의 자세한 설명에 악천후는 다시 탄식을 내뱉었다.
악훈의 설명을 들으니 확실했다.
소교주인 위극신이 본가를 위해 극단적인 행동을 했고, 본가를 위기에서 살려 준 은인이라는 것이 말이다.
“내가 무슨 짓을…….”
본가를 살려 준 은인, 소교주.
그를 원망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악천후는 얼굴을 쓸었다.
그러고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 높이 떠 있는 둥근 달을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부끄럽구나…….”
처음부터 끝가지 너무나도 이기적이었으며 상대의 배려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원망만 했던 멍청이.
그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악천후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편, 그 시각.
산동악가의 귀빈실에서 기분 좋게 목욕을 마치고 침실에 들어선 위극신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서신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이거.”
그에 위극신은 서신을 집어 들어 펼쳤고, 이내.
“이 시X, 짬 겁나 때리네.”
서신에 적힌 글귀를 확인하고는 그대로 바닥에 집어 던져 버렸다.
위극신으로 인해 볼품없이 바닥에 내팽개쳐진 서신.
그 서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무림 수호 감찰대주 임명장
武林 守護 監察隊主 任命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