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제193장 쥐뿔도 없으면서 당당 堂堂
드넓은 산동악가의 대장원, 그곳의 남쪽에 위치한 응접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그곳에 앉은 악천후는 우선,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천마신교의 소교주, 위극신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우선, 내 여식을 이곳까지 데려다주어서 고맙소. 하지만 그렇다고 그대들의 행동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호통을 치고 쫓아내고 싶었지만 상대가 상대다 보니 악천후는 마음에도 없는 감사 인사를 건네었다.
그러면서도 결국 마지막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티를 내고 말았다.
그러한 악천후의 인사에 위극신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고마워하는 태도군요.”
살짝 비꼬면서 말이다.
그러한 위극신의 대답에 악천후는 고개를 들었고,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위극신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가주.”
“말하시오.”
자식뻘인 위극신의 거만한 부름.
그 부름도, 호칭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악천후가 아니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위극신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거 아시오?”
“무엇을 말이오?”
위극신의 물음에 악천후가 대답했다.
“후우…….”
그에 위극신은 얕은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고개를 돌려 방선을 바라보았다.
“계속 같이 있을 건가요?”
“제가 있으면 실례가 될까요?”
위극신의 물음에 방선이 대답했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묻는 방선의 모습에 위극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해가 된다는 뜻이었다.
그에 방선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산동악가의 안주인.
충분히 이곳에 자리할 수 있는 위치였다.
헌데 손님인 그가 방해가 된다고 나가 달라 하다니?
이것은 집주인을 무시한,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이보시오!”
그에 방선이 당혹스러워하고, 악천후가 언성을 높였다.
“형님…….”
갑작스러운 위극신의 행동에 위천 또한 당혹스러워하며 그를 말렸지만 위극신은 위천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런 감정 없는 두 눈으로 악천후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한 위극신의 반응에 분노한 악천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대고 천마신교의 소교주라 하더라도 이곳은 우리의 집이오! 그녀는 우리 가문의 안주인! 충분히 이곳에 있을 자격이 되오, 어서 사과하시오.”
“사과라…….”
악천후의 외침과 사과 요구에 위극신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손깍지를 끼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우웅!
산동악가의 응접실에는 패도적이면서 강력한 기운이 내려앉았고, 그와 동시에 위극신이 고개를 들었다.
움찔!
어느새 붉어진 위극신의 두 눈.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악마와도 같은 그의 두 눈에 악천후가 움찔했다.
그런 악천후의 위아래를 훑어본 위극신. 그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본교가 웃긴가?”
살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이다.
* * *
“짜증 나는군.”
호북 무한에 위치한 무림맹.
아직 정마회동이 끝이 나지 않았기에 사마천 일행들은 천마신교에 배정된 전각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였다.
“조금만 참아, 곧 출발하잖아.”
불편한 표정으로 차갑게 중얼거리는 단진의 모습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사마천이 단진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에 단진이 눈가를 찌푸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산동으로 달려가 위극신을 만나고 싶었던 단진이었기에 이렇게 헛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야 얼음, 우리도 같은 마음이니까 표정 풀지?”
그런 단진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두 개의 단창을 마른 수건으로 닦고 있던 야율민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단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피식.
피식 미소를 지었다.
가소롭다는 듯 말이다.
“이 자식이!”
그에 야율민이 울컥하며 단창을 강하게 쥐었다.
서역에서 다양한 무공을 접하며 성장해 온 그들.
그들 중 가장 먼저 초절정의 벽을 뚫은 단진은 야율민을 향해 항상 저런 미소를 지었다.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는 미소를 말이다.
그에 자존심이 상한 야율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던 사마천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둘의 모습이 지겨웠던 것이다.
그때.
“왔군.”
야율민을 노려보던 단진이 입을 열었고, 그와 동시에 야율민이 재빠르게 몸을 돌려 방문을 열었다.
“아…….”
그러자 보였다.
막 방문을 두드리기 위해 손을 들고 있는 왕일이 말이다.
“출발하는 건가?”
그런 왕일의 모습에 단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그에 왕일이 놀란 기색을 지우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 그럼 어서 청도로 가지.”
왕일의 대답에 단진은 검을 허리춤에 걸며 말했고, 야율민 또한 두 개의 단창을 양쪽 허리춤에 걸었다.
“우선 다른 곳에 들러야 할 것 같습니다.”
꿈틀.
그때.
왕일의 입에서 나온 말에 단진과 야율민의 두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와 동시에.
우웅!
그들의 몸에서 매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한시라도 빨리 위극신을 만나고 싶었던 둘이었기에 계속해서 말이 바뀌는 왕일의 행동이 짜증 났던 것이다.
“성격이 급하군.”
그런 둘의 기세에 왕일과 함께 이곳을 찾았던 남궁정 또한 기운을 내뿜어 기세를 막아섰다.
물론 단진과 야율민의 기세를 막아서기에는 부족한 기운이었지만 남궁정 또한 어엿한 절정고수.
비벼 볼 정도는 되었다.
그런 남궁정의 행동에 단진과 야율민이 더욱더 기운을 끌어 올리려던 순간!
“극신 형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왕일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에 모두가 행동을 멈추었다.
우우…….
그와 동시에 살벌하게 공기를 달구던 기운이 가라앉았고, 그에 한결 말하기 편해진 왕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진주언가, 산동악가로 오기 전에 그곳을 정리하라고 합니다.”
“재미있겠군요.”
진주언가.
산동성에 위치한 가문으로 제법 명문가라고 알려진 가문을 정리하라는 왕일의 말에 사마천이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에 왕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모든 증거는 준비가 되어 있고, 맹주님에게 보고를 하여 명분 또한 만들어져 있습니다.”
“호오?”
완벽하게 준비한 왕일의 모습에 사마천은 물론 단진과 야율민 또한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고, 이내.
“지금부터는 여러분들에게 맡기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취향대로 조지시면 됩니다.”
이어진 왕일의 말에 그들 모두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잠시 후.
콰앙!
무림맹의 손님들에게 배정된 전각에 세 명의 사내가 들이닥쳤고 이내.
“누구냐! 놓아라! 나는 진주언…….”
퍼억!
“시끄러 죽겠네.”
한 중년 사내를 제압하고는 그대로 끌고 나갔다.
“…….”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이 상황에 중년 사내의 친우들은 물론 호위무사들이 벙 찐 표정을 지었고 이내.
“비상이다!”
“맹주님에게 알려라! 가주님이 납치되셨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비상이라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 * *
“내…… 내가 언제…… 귀교를 우습게 생각했단 말입니까…….”
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서운 기운과 붉은 두 눈동자.
그에 압도되었을까?
하오체를 사용하며 싸가지 없게 굴던 좀 전과 달리 제대로 된 존대를 사용하며 악천후가 대답했다.
‘겁쟁이 새X.’
나의 기운 한 번에 겁을 먹고 목소리는 물론 몸까지 떨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창협 槍俠?
지X하고 있다.
저렇게 두려움이 많은 사내가 무슨 창협이란 말인가?
보나 마나 자신보다 약한 마인들만 골라 상대하며 명성을 쌓아 왔겠지.
그에 나는 대놓고 혀를 한 번 더 차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사색이 된 방선의 옆에서 기운을 내뿜어 보호하고 있는 서은설의 모습이 말이다.
끄덕.
고개를 돌린 나와 두 눈이 마주치자 서은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고 계속하라는 뜻이었다.
그에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다시 악천후를 바라보았다.
“우선, 가장 먼저 악여화가 너희 가문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홀로 다녔다. 그 모습이 불안하여 네 여식의 친우이자 나의 동생이 위천이 동행했지.”
“…….”
“그래도 아직 어린 둘이라 나는 걱정되어 일부러 동행을 했고 이곳에 안전하게 데려다주었다.”
“…….”
“헌데, 왜 너는 그렇게 싸가지가 없지?”
움찔!
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악천후가 다시 움찔했다.
“그리고.”
하지만 아직 나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이어진 나의 말에 악천후는 나의 눈치를 살폈고,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서장, 신강의 지배자이며 천마신교의 교주이자 천마의 아들이다. 그런 우리에게 고작 한 개의 성도 지배하지 못하고 있는 가문의 주인이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하게 행동하지?”
“…….”
나의 물음.
진정으로 궁금하다는 나의 물음에 악천후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한 성의 지배자인가?”
“아닙니다…….”
비웃음이 가득 담긴 나의 물음.
그 물음에 악천후가 대답했다.
조금 전과는 달리 상당히 고분고분한 모습이었다.
전형적인 약강강약의 모습을 보여 주는 악천후를 보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는 무공이 뛰어난가?”
“아닙니다…….”
절정고수.
제법 괜찮은 고수지만 고작 한 성에서 인정받는 수준.
절대의 경지를 넘어선 나에게 비한다면 태양 아래의 반딧불에 불과했다.
“그러면 집안이 뛰어난가?”
“아닙니다…….”
고작 한 개의 성도 지배하지 못하고 다른 가문과 대치를 이루고 있는 산동악가.
세 개의 성을 합친 크기보다 더 큰 신강의 주인인 본교와는 급이 달랐다.
“전통이 깊은가?”
“아닙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신강을 지배해 온 본교에 비해 산동악가는 고작 백 년밖에 되지 않은 가문이었다.
물론 싸움이 끊이지 않는 무림인의 특성상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가문은 많았다.
그렇기에 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가문을 지켜 온 것이라면 제법 괜찮은 전통이었지만 아쉽게도 상대는 본교다.
급이 달랐다.
“그럼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한 거지?”
모든 질문이 끝이 나고.
나는 다시, 의문 섞인 어조로 물었다.
그에 악천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자신도 알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눈치 없이 굴었는지 말이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부인.”
“말……하세요…….”
그래도 자기 남편이라고 악천후의 모습이 안쓰러웠을까?
악천후를 바라보던 방선이 고개를 돌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시 한번 정중하게 말하겠소, 나가 주시겠소?”
“알겠습니다.”
나의 축객령.
그 축객령에 방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에 서은설이 그녀를 부축하였고 이내 곧 방문을 나섰다.
악여화와 위천 또한 그런 둘을 따랐고 말이다.
쾅.
그렇게 방문이 닫히고.
나는 나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악천후를 바라보았다.
“악가주.”
“예…….”
나의 부름에 그래도 염치가 있는지 악천후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자기 자신도 부끄러울 것이다.
쥐뿔도 없는 게 그렇게 까불었으니 말이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무릎 꿇으세요.”
“!!”
나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악천후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무릎 꿇고 정중하게 예를 차리세요, 멸문당하기 싫으면.”
“아…….”
나의 경고에 악천후가 탄식을 내뱉었다.
나의 입에서 나온 멸문.
그 단어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에.
털썩.
악천후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부디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지요.”
그러고는 그의 입에서 진심 어린 사죄가 튀어나왔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용서해 드리지요.”
이제야 제대로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