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0화
제190장 수하들과 동생들 手下, 弟
“언간이라…….”
무림맹이 위치한 호북성의 무한.
그곳의 청하객잔에서 업무를 보던 왕일은 특급 편으로 온 서신을 보며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진주언가의 소가주.
현현공자 玄玄公子라 불리며 뛰어난 머리와 의협심으로 명성이 자자한 후기지수였다.
뭐 하나 흠잡을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소문을 지닌 사내.
그 사내의 조사를 하라는 위극신의 부탁에 왕일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 모르겠지만 이놈은 이제 죽었네.’
자세히는 모르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놈이 자신의 의형한테 찍혔고, 그로 인해 이놈은 나락으로 갈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에 왕일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언간이라는 놈에 대해서 아주 샅샅이 조사하겠다고 말이다.
“왜? 뭔데?”
그렇게 깊은 생각에 빠진 왕일의 옆.
가만히 턱을 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름다운 여인이 흥미를 보이며 왕일의 옆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챠락.
그에 상념에서 벗어난 왕일은 인상을 찌푸리며 서신을 접었고, 이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여인, 남궁연화를 바라보았다.
“안 가냐?”
“심심해.”
“근데 왜 여기 있어? 친구 없어?”
“응.”
“…….”
남궁연화의 대답에 왕일은 입을 다물었다.
아니, 거기서 왜 긍정이 나온단 말인가.
사람 무안하게 말이다.
그에 왕일은 당황했지만 이내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남궁세가의 외동딸이 친구가 없다는 게 말이 되냐? 당장 무림맹만 가도 다 친구 하자고 달려들 텐데.”
“영양가가 없잖아.”
“영양가는 무슨.”
남궁연화의 대답에 왕일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자기도 영양가가 없으면서 영양가가 있는 친구를 찾는다?
완전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그 표정, 짜증 난다?”
그러한 왕일의 속마음이 표정에 드러났을까?
남궁연화가 눈을 샐쭉하게 뜨며 말했다.
그에 왕일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탁자 위에 있던 종을 들었다.
딸랑.
왕일의 손에 들린 종이 가볍게 흔들리자 맑은 소리가 울렸고, 곧.
똑똑.
왕일의 집무실 맞은편에 위치한 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그에 왕일은 종을 내려놓으며 말했고.
벌컥.
곧 문이 열리며 한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응?”
문을 열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선 중년 사내.
그 사내의 모습에 왕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일을 봐주는 사내가 아닌 의외의 사내가 이곳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에 왕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내를 반겨 주었다.
“삼장로님이 어쩐 일인가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왕일을 바라보는 사내, 바로 하오문의 삼장로 필현이었다.
생각지 못한 그의 등장에 왕일이 반가운 어조로 말하자 필현 또한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조카 보러 왔지.”
공식적으로는 삼장로와 소문주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지만 사사로이는 어릴 적부터 왕일을 친조카처럼 대하며 애정을 준 필현.
그의 인사에 왕일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여기는 제 친구예요.”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연화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런 왕일의 소개에 필현은 고개를 돌렸고, 그와 두 눈이 마주친 남궁연화가 정신을 차리고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남궁세가의 남궁연화라고 합니다.”
“그래, 반가워.”
“삼장로님, 초면에 반말은…….”
천하제일가라고도 불리는 남궁세가의 여식이다.
그런 남궁연화에게 초면에 반말을 하는 필현의 행동에 왕일이 화들짝 놀라며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필현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더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남궁연화에게 다가갔다.
“우리 일이. 잘 부탁해.”
“아…… 네!”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필현의 말.
그 말에 남궁연화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에 필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왕일을 바라보았다.
“우리 조카, 다 컸어.”
“삼촌!”
그런 필현의 장난에 왕일인 어린 시절 불렀던 호칭을 부르며 소리쳤고 그에 필현이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하아…… 왜 오신 거예요? 나는 비익조장을 부른 건데.”
그런 필현의 모습에 이마를 짚은 왕일.
그가 한숨을 내쉬며 필현에게 물었다.
그에 필현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이요?”
“그래.”
필현의 대답에 왕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손님이 누구길래 삼장로인 필현이 직접 움직인단 말인가?
그에 왕일이 계속 의문 어린 표정을 짓자 필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볼을 긁적였다.
“천산.”
“!!”
“천산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설마…….”
필현의 대답에 왕일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만나 보고 싶었지만, 서장으로 떠났던 사내들.
왕일은 필현에게 그 사내들을 부탁했고, 필현은 웃으며 수락했었다.
그에 왕일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필현이 여전히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소교주의 수하가 될 사내들. 천마신교의 후기지수들이 찾아왔어.”
* * *
“…….”
“…….”
무한의 청하객잔.
하오문의 연락을 받고 청하객잔으로 온 남궁정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세 명의 사내를 한 명 한 명씩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와, 경계 어린 표정의 사내. 그리고 차가운 표정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미남까지.
위극신만큼이나 잘생긴 미남의 모습에 남궁정은 살짝 놀랐지만 애써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다.
“형님!”
그때.
어색한 공기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남궁정이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먼저 와 계셨네요.”
“응, 연락받고 바로 온 거야.”
자신의 앞으로 후다닥 달려와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왕일.
그런 왕일을 보며 남궁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왕일의 뒤에 있는 익숙한 인영을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부터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구나.”
이른 아침부터 사라졌던 자신의 동생.
남궁연화를 보며 남궁정이 말하자 남궁연화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왕일인가?”
그때.
낯선 목소리가 남궁정과 왕일, 그리고 남궁연화의 귀에 들려왔다.
앞머리를 길게 길러 한쪽 얼굴을 가린 미남자.
바로, 검마의 아들 단진이었다.
그의 물음에 왕일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네, 단진 소협, 맞으신가요?”
끄덕.
왕일의 물음에 단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남궁정을 바라보았다.
“당신도 주군의 의동생인가?”
“그렇습니다만?”
단진의 물음에 남궁정이 대답했다.
그에 단진은 남궁정의 위아래를 훑어보았고, 이내.
피식.
가소로운 듯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에 남궁정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무례하군요.”
“글쎄, 약한 놈에게는 무례해도 되지 않나?”
단진의 차가운 말에 남궁정이 울컥했고, 왕일과 남궁연화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단진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던 사내가 단진의 앞을 막아섰다.
“하하, 분위기가 이상해졌네요. 반가워요 남궁 소협, 왕 소협, 그리고 남궁 소저까지. 저는 사마천이라고 합니다.”
“아! 마뇌의?”
“예.”
미소의 사내, 사마천의 소개에 왕일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에 사마천은 싱긋 미소를 지었고, 이내 왕일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오문의 소문주라고 들었습니다.”
“네.”
사마천의 물음.
자신의 의형이 항상 말했던 천마신교의 천재, 사마천을 보며 왕일이 긴장하며 대답했다.
그에 사마천은 싱긋 미소를 지었고, 이내 손을 내밀었다.
“잘 지내봐요.”
“……?”
잘 지내자는 사마천의 말.
그 말에 왕일이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에 사마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주군이 무림에서 이름을 차츰차츰 알리면서 동시에 본교의 인식을 자연스럽게 좋아지도록 만든 것이 왕 소협의 작품이라 들었습니다.”
“아…….”
사마천의 칭찬에 왕일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사마천은 다시 싱긋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내민 손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제법이더군요. 왜 주군이 당신을 의동생으로 삼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아…… 예, 잘 부탁드립니다.”
사마천의 말에 왕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마주 잡았다.
그에 사마천은 손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같군요.”
“……?”
갑작스러운 사마천의 말.
그 말에 왕일은 고개를 들어 사마천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였다.
끝도 없이 깊은 사마천의 두 눈이 말이다.
“저라면, 차츰차츰보다는 우선 소교주라는 직책을 먼저 알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빵! 하고 터트리는 거죠, 사람들이 정신도 못 차리게.”
“하지만 그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첫인상이 끝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이 처음에는 좋은 인상을 심어 주어 차츰 조금씩 풀어 나가면서 세뇌시켜야지요.”
사마천의 말에 왕일이 두 눈을 피하지 않으며 대답했다.
그에 사마천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첫인상이 강한 것은 맞지만, 그것을 잊을 정도로 강한 인상이 있다면 오히려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죠.”
“…….”
“뭐, 그래도 제법이었습니다. 아직 약관이 되지 않았다지요? 훌륭합니다.”
“…….”
사마천의 대답에 왕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에 사마천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뭐, 주군의 무림행이 즐거운 것 같아 다행입니다. 여러분들이 있어서 주군께서도 즐거우셨겠지요?”
왕일의 손을 놓은 사마천.
그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경계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야율민과 단진의 가운데 서서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거 아시나요?”
“무엇을 말입니까?”
여유로운 사마천의 어조에 왕일이 아닌 남궁정이 대답했다.
그에 사마천은 고개를 돌려 남궁정의 두 눈을 응시했다.
“우리가 주군의 수하이자, 벗이라는 것을.”
“…….”
“주군이 어떤 변덕이 들어서 그대들을 의동생으로 삼았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수하로서 조금 아쉽군요.”
울컥!
사마천의 입에서 나온 비웃음 어린 말.
그 말에 남궁정이 울컥하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왕일이 그런 남궁정을 막아섰다.
자신을 막아서는 왕일의 행동에 남궁정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길게 숨을 내뱉으며 다시 물러났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은 자신보다 왕일이 더 잘했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요?”
사마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왕일은 흥분하지 않고 침착했다.
그렇기에 사마천의 묘한 두 눈을 보며 물었고 그러한 왕일의 모습에 사마천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없습니다.”
“…….”
사마천의 대답에 왕일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왕일의 모습이 재미있었을까?
사마천이 다시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 한 가지 있습니다.”
“뭐죠?”
사마천의 말에 왕일이 아닌, 남궁연화가 나서서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
아까부터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던 남궁연화.
그녀는 저 무뢰배 같은 천마신교의 인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오라비는 물론, 왕일을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아랫사람 보듯 하는 저 오만방자한 태도.
너무 싫었다.
그에 참다못한 남궁연화가 물었고, 그에 사마천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흐음…….”
그러고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고,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왕일을 바라보았다.
그에 남궁연화가 울컥했다.
자신을 무시하는 사마천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사마 소협!”
그에 남궁연화가 언성을 높였지만 사마천은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왕일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마천의 깊은 두 눈을 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마주하는 왕일.
그런 왕일의 행동에 사마천은 살짝 미소를 지었고, 이내 가벼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주군의 위치. 그거나 알려 주세요. 우리가 알아서 찾아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