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화
제185장 오해, 광기 誤解, 狂氣
“악 소저!”
저잣거리에서 볼일을 성공리에 마치고 객잔으로 걸음을 옮기던 위천.
기분이 너무나도 좋아 휘파람까지 불어 가며 걷던 위천은 골목 끝에서 보이는 악여화를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한 위천의 부름에 악여화가 고개를 돌렸고, 이내 위천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물론 위천 또한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마주친 거리의 정중앙에서 만난 둘.
위천은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악여화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나, 마중 나온 거야?”
끄덕.
위천의 기대 어린 물음에 악여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기대에 맞는 대답에 위천은 기분이 좋은 듯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고마워! 그럼 이제 같이 돌아갈까?”
도리도리.
객잔에서 기다리고 있을 자신의 형과 서은설을 떠올린 위천이 말하자 악여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극신과 서은설의 냉전을 전혀 모르고 있는 위천은 악여화의 부정에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싸워. 냉전.”
“응……?”
악여화의 말에 위천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형이 싸웠다고?
그럴 리가.
우리 형은 마음에 안 들면 다 패고 다니지 싸울 인물은 아닌데 말이다.
“은설 언니, 화났어.”
“!!”
누군가와 싸우는 위극신의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던 위천은 이어진 악여화의 설명에 두 눈을 크게 떴다.
그 천사 같은 누나가 화를 냈다고?
도대체 자신의 형은 무슨 죄를 저질렀단 말인가!
비상이다.
“가 보자!”
도리.
그에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위천은 서둘러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악여화가 그런 위천을 잡았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방해.”
“…….”
아, 오히려 방해가 되려나…….
악여화의 말에 위천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싸움에는 제삼자가 끼어들 필요가 없었다.
제삼자가 간섭하고, 위로해 주더라도 결국은 서로 다시 웃으며 만날 테니 말이다.
그에 위천은 다급한 기색을 지웠다.
그러고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악여화의 손을 잡았다.
“그럼 우리는 산책이나 가자.”
“응.”
자신의 손을 잡은 위천의 행동.
그 행동에 속으로 살짝 미소를 지은 악여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위천은 악여화의 손을 잡지 않은 나머지 손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조금 전에 샀던, 아름다운 옥가락지.
그것을 악여화에게 전해 주고 고백을 하려 했던 것이다.
사실 분위기를 보고 악여화를 따로 불러내어 고백을 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이 딱 좋았다.
평소와 다를 바가 없으며 서로에게 집중한 이 시각.
아무것도 아니지만 단둘이 있기에 특별한 지금.
고백하기 최적의 순간이었다.
그에 위천이 옥가락지를 꺼내려던 순간!
“여화야.”
위천의 귀로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내의 목소리보다는, 그 사내의 목소리에 담긴 친근한 어조에 반응한 위천.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싱긋 미소를 짓고 있는 백색 서생 옷을 입고 있는 공자와 말이다.
그 공자와 눈이 마주친 위천은 경계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에 공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위천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정중한 어조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을 열었다.
“제 약혼녀의 손을 놓아주시겠습니까?”
“……?”
“아무리 신교의 이공자라 하더라도 불쾌하군요.”
공자의 입에서 나온 약혼녀라는 말.
그 말에 위천은 악여화의 손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 * *
똑똑.
“잠깐 이야기 좀 해.”
“나중에.”
서은설의 방문 앞.
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린 나는 서은설의 차가운 대답에 이마를 짚었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까지 틀어질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다.
그에 나는 다시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똑똑.
“우리 나가자.”
“…….”
“나 돈 많아, 다 사 줄게.”
“…….”
흐음…… 역시 이것도 안 먹히나.
어린아이를 달래듯 원하는 거 다 사 준다는 나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서은설에게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에 나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생, 현생을 통틀어 서은설과 함께한 세월은 사십 년이 넘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녀의 마음을 풀게 할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역시, 내 여자라서 그런가.
어려운 여자였다.
매력 있어.
속으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살짝 미소를 짓던 그때.
끼익.
“……?”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그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내.
“다 사 줄 거야?”
열린 문 틈 사이로.
나를 올려다보며 뾰로통한 표정으로 묻는 서은설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웃음기 어린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응, 전부 다.”
“나 안 풀렸어.”
“조금 전에는 내가 말 너무 세게 해서 미안해.”
“…….”
“우리 나가자.”
나의 사과에 서은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에 나는 손을 내밀었고.
스윽.
서은설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손만 내밀었다.
나의 손을 잡지는 않았다.
그런 서은설의 귀여운 행동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허공에 고고하게 떠 있는 서은설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그녀를 이끌었다.
“가자.”
그렇게 우리는 화해를 하고, 손을 잡은 채로 계단을 내려와 객잔을 나섰다.
“어디 가고 싶어?”
“그냥, 걷고 싶어.”
“조용한 곳으로?”
“아니, 활기찬 곳으로.”
음…….
의외네.
당연히 조용한 곳에서 산책하고 싶을 것이라 예상했던 나의 물음과 달리 활기찬 곳에서 산책을 하고 싶다는 서은설의 말에 나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속으로 놀라던 그때.
서은설의 아름다운 입술이 열렸다.
“조금 전, 네가 잘못한 건 아니야.”
“…….”
“근데 내 입장에서도 생각을 해 줘, 너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지는 마.”
“알겠어.”
서은설의 작은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에 집중해서 서은설이 하는 모든 말을 들었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를 올려다보는 서은설의 두 눈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누구의 말이 옳든, 강압적으로 또 일방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을게.”
“응…….”
“미안해.”
“아니야. 나도 미안해.”
나의 눈과 마주하고 있는 서은설의 푸른 두 눈.
웃음으로 인해 살짝 접히는 두 눈을 보며 나도 미소를 지었다.
위천과 마찬가지로 서은설의 미소는 나에게 있어 무장해제해 버릴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화해를 했고, 서로를 조금 더 알아 갈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가장 활기차며, 사람들이 가득한 곳.
저잣거리로 말이다.
* * *
“고맙습니다.”
위천이 악여화의 손을 놓자 공자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위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진주언가의 언간이라고 합니다. 방금 이야기했다시피 여화의 약혼자이지요.”
“…….”
공자, 아니 언간이 예를 갖추며 정중히 포권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천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상대의 인사를 무시하는, 상당히 무례한 경우였지만 언간은 내색하지 않고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명성이 자자한 천마신교의 이공자, 마소권 魔笑拳 소협을 뵙게 되어 영광이군요.”
정중한 어조로 언간이 다시 인사를 건넸음에도 불구하고 위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화.”
그저 고개를 돌려 악여화를 바라볼 뿐이었다.
위천의 낮은 목소리.
낯선 그의 목소리에 악여화가 고개를 돌렸다.
흑요석처럼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악여화의 두 눈동자.
그것을 보며 위천이 입을 열었다.
“약혼자야?”
끄덕.
“…….”
위천의 물음에 악여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의 당황한 기색도 없이 말이다.
그에 위천이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움찔!
생전 처음 보는 위천의 싸늘한 표정.
그리고 그의 눈길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정에 악여화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그에 황급히 오해를 풀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지만.
스윽.
악여화의 입은 느린 편이었다.
위천은 이미 몸을 돌린 상태였고, 그에 악여화가 당황해하며 그를 붙잡기 위해 황급히 손을 뻗었지만.
스윽.
위천이 악여화의 기척을 읽고 몸을 피했다.
그러한 위천의 행동에 악여화의 손은 허공을 유영했고, 위천은 조금의 미련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에 악여화는 위천을 황급히 붙잡으려고 했다.
“…….”
하지만 그녀의 입이 잘 열리지가 않았다.
감정 표현이 서툰 그녀이기에 어떻게 그를 붙잡아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또 무서웠다.
위천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
자신이 좋아하는 밝은 미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눈빛을 마주하기가 말이다.
“여화.”
그런 악여화의 뒤로.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언간이 부드러운 어조로 악여화를 불렀다.
그에 악여화는 고개를 돌렸고.
“가자.”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언간을 볼 수가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짓고 있는 미소.
분명 화사한 미소였지만…….
“아니야…….”
방글이와 같이 따뜻하지 않았다.
진심은 하나도 없는 듯한 차가운 미소.
그 미소에 악여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것은 미소가 아니었다.
가면일 뿐이었다.
“여화……?”
고개를 가로젓는 악여화의 행동에 언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스윽.
악여화는 몸을 돌렸다.
어서, 위천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설명해야 했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 저자는 태중 혼약일 뿐, 나의 감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상대라고.
나는 너뿐이라고.
위극신의 조언대로 확실하게 위천에게 전해야 했다.
그에 악여화는 다급히 걸음을 옮겼지만.
덥석.
자신의 손목을 잡아 걸음을 방해하는 언간의 행동에 걸음이 붙잡히고 말았다.
무례한 언간의 행동에 악여화는 고개를 돌려 무표정한 얼굴로 언간을 바라보았다.
“놔.”
“와? 말할 줄 아는구나? 난 또 실어증 失語症 인 줄 알았지.”
“…….”
어린 시절.
말을 잘 하지 않는 자신을 비정상이라며 놀리던 존재.
어느 정도 철이 들고 나서는 사람들 앞에서 점잖은 척했지만 자신은 알았다.
저 인간은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을.
그것을 알았는지 언간 또한 악여화와 단둘이 있을 때는 본색을 보였고 말이다.
“약혼자가 있는 여인이 외간 남자와 손을 잡고 다니면 되겠어?”
“손 치워.”
악여화의 머리칼을 가볍게 스치는 언간의 손.
그 손을 피하며 악여화가 서늘한 어조로 경고했다.
그러한 악여화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언간은 전혀 무섭지 않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스윽.
오히려 손을 더 멀리 뻗어 악여화의 어깨를 잡았다.
“너, 행동거지 똑바로 해.”
“…….”
환한 미소를 짓던 좀 전과는 다른 광기 어린 표정.
그 표정에 악여화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우웅!
내공을 일으켜 언간의 몸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탁!
언간의 손에 막히고 말았다.
졸지에 다시 언간의 손에 손목이 잡히고 만 악여화.
언간은 그런 악여화의 손을 들어 자신의 볼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고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악여화를 바라보았다.
“넌 내 여자야.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