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천마신교는 이상하다-181화 (181/275)

제181화

제181장 혈승 血僧

털썩.

벌써 끝이야?

재밌었는데…….

녀석을 도발하며 검을 찌르기를 몇 번.

나는 전신의 기력을 다 소모하고 그대로 기절해 버린 공진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아쉬운 표정을 짓던 것도 잠시.

나는 신법까지 사용해 가며 빠른 속도로 다가온 혜주가 공진을 부축하면서 반장을 하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에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입을 열었다.

“소림에서 왜 이런 무인을 키우는 거요?”

“소림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흐음…….”

혜주의 흔들림 없는 대답에 나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소림을 지키기 위해서라…….

뭐 지키는 것은 좋았지만 공진에게는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니던가?

아무리 소림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무림 세력이었다.

그에 나는 가만히 기절해 있는 공진을 내려다보았다.

“힘들겠군.”

기절해 있는 녀석의 얼굴에 깊게 내려앉은 그림자.

안쓰러웠다.

그에 나는 고개를 들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혜주를 바라보았다.

“너무 숨기려고만 하지 마시오. 그러다 폭발해 버리고 말 테니.”

“……?”

“숨기고, 또 참다 보면 결국 폭발하기 마련. 숨통을 틔워 주란 말이오.”

소림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살기가 가득한 마공을 익힌 공진.

소림의 제자로서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못하는 존재.

오로지 소림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그런 존재인 공진을 한 번 더 내려다본 나는 몸을 돌렸다.

오지랖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그럼 다음은?

도움을 주었으니 받을 건 받아야지.

“힘들군.”

“…….”

“대환단은 안 되더라도 소환단은 주겠지? 명색이 천년소림인데 말이야…….”

“준비하겠습니다.”

뻐근한 어깨를 풀듯.

내가 어깨를 돌리며 주변 사람 모두에게 다 들리는 혼잣말을 하자 그 의미를 파악한 혜주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다음 걸음을 옮겼다.

“고생하셨습니다.”

걸음을 옮기자 두 주먹을 쥐고 지켜보던 위천이 고개를 숙이며 나를 반겨 주었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평소보다 처진 녀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래, 너도 봐서 알겠지만 세상에는 기인이 많다. 소림의 제자가 마공을 익히는…… 저런 비상식적인 일도 허다하지.”

“네.”

“그러니 항상 결론을 내리지 말고, 자만하지 말거라. 늘 의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래.”

토닥,

녀석의 대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려고?”

“할 일 했으니 목에 낀 때 좀 벗겨 줘야지.”

“예쁜 말 좀 사용해.”

“얼굴이 예쁘니 용서해 줘.”

“……사실이라 할 말이 없는 게 더 분해.”

“후후, 가자!”

잠시 말문이 막힌 서은설.

그녀가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나는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여기서 더 까불면 술 못 마실 것 같으니 살살 풀어 줘야 했다.

* * *

“으음…….”

“일어났느냐?”

약초 향이 가득한 방 안.

약초 향에 정신을 차려 신음을 흘리던 공진은 귀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두 눈을 떴다.

그러고는 낯선 천장에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혜주를 바라보았다.

“송구합니다.”

멋대로 천마신교의 이공자인 위천의 대련을 받아 준 것과, 무공의 기운에 사로잡혀 소교주에게 대련을 청한 것도 모자라 기절한 못난 모습까지 보이고 만 공진.

그에 공진이 진심으로 사죄하듯 고개를 숙였다.

“되었다.”

그러한 공진의 사과에 혜주는 고개를 살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탕약을 들어 공진의 앞에 내밀었다.

“마시거라. 내상에 좋은 탕약이다.”

“감사합니다.”

혜주가 내민 탕약을 받아 든 공진.

그는 아직 따뜻한 탕약의 온도를 느끼며 혜주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고는 한 번에 탕약을 들이켰고, 혜주는 공진이 내려놓는 빈 탕약 그릇을 받아 주었다.

“제가 의식을 잃은 지…….”

“두 시진(네 시간) 정도 되었다.”

“아…….”

공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혜주가 그가 묻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아는 듯 빠르게 대답했다.

그에 공진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깐 의식을 잃은 것 같은데 두 시진이라니?

“몸은 어떤 것 같으냐?”

그런 공진의 모습을 뒤로하고.

혜주가 물었다.

그에 공진은 놀란 기색을 지우고는 두 눈을 감고 가볍게 몸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

늘 자신의 가슴을 답답하게 옥죄어 오던 기운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자의 말이 맞았나 보구나.”

놀란 표정의 공진.

그러한 공진의 모습에 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에 공진은 고개를 들어 혜주를 바라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이었다.

그에 혜주가 입을 열었다.

“네가 익힌 무공의 이름이 무엇이더냐.”

“멸마혈공 滅魔血功입니다.”

“그래.”

공진의 대답에 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마도에도 리 理가 있다는 것은 아느냐?”

“물론입니다. 그 어떤 사소한 것에라도 하나의 이치가 있는 법이니까요.”

혜주의 물음에 공진이 대답했다.

그에 혜주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소림에 달마대사가 계신다면, 무당파에는 장삼봉이 있다.”

“예.”

불교를 대륙에 전파했으며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모여 만든 곳이 바로 소림이다.

그리고 도교의 사상을 널리 전파한 것이 장삼봉이었으며 동시에 무술가이기도 했던 그는 태극이라는 가르침 아래에 수많은 무공들을 창안하여 무당파를 창건하였다.

“허면 마도에는?”

“천마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공진의 대답에 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도의 길을 걷다가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고,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이치를 세웠고, 그 이치가 곧 천마신공이 되었지.”

“…….”

“모든 마공은 천마신공을 아버지로 둔다. 이 말을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혜주의 물음에 공진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혜주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진이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에 혜주는 공진의 의문을 풀어 주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모든 마공의 시초는 천마신공이다. 천마신공은 마공의 중심이자 근원인 순수한 마기를 다루기 때문이지.”

“…….”

“네가 익히고 있는 무공 또한 마공이다.”

“예.”

멸마혈공.

마를 멸하기 위해 스스로 마인이 되어 피를 바치는 무공.

그것이 바로 공진이 익힌 멸마혈공이었다.

“그 당시, 초대 천마의 가르침을 곡해한 천마가 무림을 탐낸 적이 있었다. 그때, 무림은 멸망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지.”

“…….”

“그때, 소림 또한 멸문을 할 뻔하였다.”

“그렇습니까?”

“그래, 항마 降魔의 기운을 지닌 소림이었기에 마교의 가장 우선적인 표적이 바로 소림이었던 것이지.”

“…….”

혜주의 자세한 설명에 공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마공을 사용하는 마교인의 입장에서 항마의 기운을 사용하는 소림이 가장 거슬렸을 테니 말이다.

“그 당시 방주셨던 사조께서는 마교를 늘 두려워하셨고, 그러한 마교로부터 소림을 지키기 위해 달마대사께서 남긴 무공과 다른 마공을 조합하여 하나의 무공을 창안하셨다.”

“그것이……?”

“그래, 바로 네가 익힌 무공. 멸마혈공이지.”

공진의 물음에 혜주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천마신공을 익힌 소교주는 너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천마신공의 마기를 운공하여 너를 옥죄던 기운을 해소시켜 주었다.”

“그렇……군요…….”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기억났다.

자신을 조롱하며 장난치듯 검을 찌르던 소교주, 위극신이 말이다.

헌데 그런 위극신이 자신을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

뭔가 찝찝했다.

그에 공진이 어색한 표정을 짓자 혜주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결과를 보거라. 한결 숨쉬기 편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웃기지 않느냐? 마교를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거늘, 그 무공을 익힌 네가 마교의 소교주에게 은혜를 받았다.”

“…….”

“정말,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저는…… 어떡합니까?”

허허롭게 웃으며 혜주가 말하던 것도 잠시.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어조로 묻는 제자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무슨 뜻이더냐?”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혜주는 물었다.

공진의 생각을 말이다.

그러한 혜주의 물음에 공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마교를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인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쓸모가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제가 어찌 마교를 경계하겠습니까. 그의 앞에 서면 한없이 약해지는 저인 것을.”

“진아.”

공진의 말이 끝이 남과 동시에.

혜주는 웃으며 잘게 떨려 오는 공진의 손을 잡았다.

그에 공진이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들었다.

하염없이 떨려 오는 공진의 두 눈동자.

그 두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한 혜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머지 손으로 공진의 손을 다독여 주었다.

“너는 마교를 경계하는 무인이 아닌, 소림을 지키는 무인이다.”

“…….”

“마교…… 아니 천마신교가 아니더라도 너는 소림의 제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

혜주의 말에 공진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소림의 이대제자 중 가장 강한 제자였지만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존재라 늘 숨어 살았다.

자신과 동생을 살려 준 소림.

그곳에 은혜를 갚는다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고, 명예와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감정을 자그마치 이십 년이나 숨기고 살아왔다.

헌데 이제부터는 당당하게 살아가도 된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에 공진이 놀란 표정으로 혜주를 바라보자 혜주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소림의 제자, 권룡 공명의 친형으로서 소림을 지키는 혈승 血僧. 비록 생명을 중시하는 소림과 다르지만 소림을 지키기 위해서는 너 같은 존재도 필요한 법.”

“…….”

“나는 살계를 허락받은 집단을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그들의 수장으로 너를 앉힐 것이고.”

“스승님…….”

“이제부터 너는 당당하게 소림을 지키는 무인이 되거라. 남들이 너를 향해 소림의 제자도 아니다, 잔인하다 손가락질하더라도! 너는 꿋꿋하게 네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소림을 지키거라.”

“…….”

“알겠느냐?”

잘게 떨려 오는 공진의 어깨.

그 어깨를 보며 혜주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그에 공진은 대답 대신.

뚜욱.

한 줄기 눈물을 떠어뜨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러한 공진의 대답에 혜주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떨려 오는 공진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공진의 어깨가 진정이 될 때까지, 계속 말이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잠시 후.

공진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그에 혜주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게, 소림의 역사상에 이름을 남길, 소림을 멸문으로부터 몇 번이나 구해 준 혈승 血僧 이라는 존재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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