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8화
제178장 기 싸움 氣戰
“가라.”
호북을 넘어 하남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들을 반겨 주는 마을.
그곳에 도착한 나는 팔짱을 끼며 유가장 남매들에게 어서 가라며 턱짓했다.
그에 유지는 유황의 뒤에 숨어 우리들의 눈치를 살폈고, 유황은 머뭇거리더니 이내 결심한 듯 나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혹 실례가 안 된다면, 유가장에 방문해 주시겠습니까?”
“나를?”
유황의 부탁.
그 의외의 부탁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에 유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파인 유가장에 천마신교의 소교주이신 은공을 초대하는 것은 손가락질받을 행동일지 모르나. 은공은 소교주이기 이전에 저희를 구해 주신 분입니다. 부모님에게 소개시켜 드리고 또 부족하지만 저희 남매의 목숨을 구해 주신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필요 없는데.”
우리 집 돈 많았다. 서역과의 거래를 꽉 쥐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코흘리개 애들 구해 준 것 가지고 생색도 내고 싶지 않았다.
뭐 큰일 한 거라고 가서 감사합니다 이야기를 들어야 한단 말인가?
번거롭고 낯부끄러웠다.
그에 나는 귀찮다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한 나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유황은 끈질기게 다시 입을 열었다.
“허면 저는 은인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야 하는 것입니까?”
“뭐, 어쩌라고?”
절대 나를 그냥 보낼 수 없다는 듯 유황이 단호하게 말하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그래서 뭐 어쩌자는 뜻인가.
“부디, 저희 유가장에 들러 주십시오.”
“됐다. 니들 구한 것 가지고 생색내기 싫어. 그리고 내가 가면 너희도 불편해질 거야.”
아무리 수라협성이라 불리며 정파의 인물들에게 인정받고 있지만 아직은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단계이다.
그러다 보니 아직 나의 존재는 정파인들에게 상당히 꺼림칙하게 여겨지고 있는 상태.
그것을 언급하며 다시 거절하자 유황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여협, 부디 은공과 함께 들러 주십시오.”
“야, 너 잔머리 쓰다가 죽는다.”
내가 아닌 서은설을 설득하는 유황의 행동.
그 행동에 나는 차가운 어조로 유황에게 경고했다.
전생에서도 이런 적이 많았다.
나에게 자기들의 부탁이 씨알도 먹히지 않자 나의 연인이었던 서은설에게 찾아가 부탁을 했던 족속들이 말이다.
다행히도 서은설은 현명한 여자였고, 나는 그런 인물들 모두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유황의 행동이 거슬렸고 그에 내가 차가운 어조로 경고하자 유황이 흠칫하더니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고집을 피웠군요.”
“됐다. 가라.”
“은공에게 저희 가문의 자랑인 공청주 空淸酒를 대접하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멈칫.
공청주 空淸酒.
하남의 명주 名酒로서 애주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술 중 하나로 꼽히는 명주다.
안 그래도 하남에 들른 김에 그것을 먹어 보려고 했는데, 유황의 집이 그것을 만드는 곳이라고?
유황의 중얼거림을 들어 버리고 만 나는 몸을 돌리려던 것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너희 집에서 공청주를 만드나?”
“예? 아…… 그렇습니다. 소림에서 키운 약초를 저희 가문의 비전으로 담그지요. 소림의 속가로서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저희 유가장은 무공이 아닌, 공청주로 유명해진 집안입니다.”
“너!”
유황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흥분한 어조로 유황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그에 유황은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을 크게 떴고 뒤에 있던 유지가 너무나도 놀라 그대로 굳어 버렸다.
물론 그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나의 정신은 오로지 한 곳에 집중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유황.
나는 그런 녀석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 자식! 어서 말했어야지! 가는 길 무섭지? 내가 데려다줄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녀석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이 녀석.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혼자 가려고 한 거야?
어쩔 수 없지.
내가 데려다줘야겠다.
그런 나의 행동에 유황은 벙 찐 표정을 지었고.
“하아.”
서은설은 한숨을.
절레절레.
위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변신.”
악여화가 갑자기 확 바뀐 나의 행동을 보며 단어를 내뱉었다.
거참.
악여화, 너 발음 조심해라.
괜히 거슬렸다.
* * *
“정말! 황이와 지아가 오고 있단 말인가?!”
하남성의 정주에 위치한 유가장.
그곳의 주인인 유천주가 총관의 보고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급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러한 장주, 유천주의 물음에 총관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남양에서 연통이 왔으니 지금쯤 정주에 들어섰을 것입니다.”
“허어! 정말 다행이구나!”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어린 남매들.
이제는 소장주로서 일을 배워야 하는 시기이기에 늘 보내던 거래에 유황을 따라 보내었고, 그런 오라비를 따라가고 싶다고 하도 칭얼거려 유지 또한 함께 동행시켰다.
평소 늘 해 오던 거래였기에 유천주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방심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거래를 하기 위해 나갔던 일행들로부터 소식이 끊겼고 그로 인해 어린 남매들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유천주는 소림에 연락하여 도움을 청했고, 속가제자로서 소림의 살림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유천주였기에 소림에서는 무승 武僧들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어린 자식들이 다시 돌아왔다니 아비인 유천주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없었다.
“잘되었습니다, 아미타불.”
그때, 유천주의 귀로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손님이 있다는 것을 깜빡한 유천주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앉아서 염주를 굴리고 있는 승려를 바라보았다.
“아…… 감사합니다. 사형.”
소림의 직전제자이면서 어린 시절 속가제자인 유천주를 잘 살펴 주었던 승려.
소림의 장로이면서 동시에 나한권 羅漢拳 이라 불리는 절정고수, 혜주를 향해 유천주가 고개를 숙여 보이자 혜주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자녀분들을 찾았으니 다행이지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사제임에도 불구하고 늘 예를 지켜 온 혜주.
존경하는 사형인 혜주를 보며 유천주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어서 나가 보십시오.”
“예, 그래야지요. 사형도 함께 가 보시겠습니까?”
곧 도착하는 아이들을 마중 나가기 위해 분주히 준비하던 유천주.
그가 가만히 앉아 있는 혜주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현재 유황은 소림의 무공을 배우고 있지만 아직 스승이 정해져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내심 혜주가 유황의 스승이 되기를 바라고 있던 유천주가 조심스럽게 제안했고.
그러한 유천주의 제안에 혜주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요. 산책 겸 좀 걸어야겠습니다.”
혜주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한 혜주의 승낙에 유천주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사형.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러지요.”
그렇게 유천주는 혜주와 혜주의 뒤를 따르는 두 명의 제자와 함께 유가장을 나섰다.
물론 유가장의 무인들도 있지만 소림의 장로와, 제자들과 동행하기에 유천주는 무인들을 물렀다.
소림의 장로와 제자들만큼 든든한 호위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혜주와 나란히 걷기를 잠시.
“아버지!”
유가장이 위치한 정주의 입구에 도착한 유천주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였다.
자신을 보며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드는 어린 소녀, 바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신의 딸, 유지가 말이다.
그에 유천주는 황급히 걸음을 옮겼고, 혜주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유천주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와락!
쪼르르 달려온 유지와 바삐 걸음을 옮긴 유천주가 만나 서로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다친 곳은 없느냐?”
“네!”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다친 곳이 없다는 유지의 말에 유천주는 속으로 부처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유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든든한 자신의 장남이 말이다.
“고생했다.”
“아닙니다. 은공들 덕분에 잘 돌아왔습니다.”
“아…….”
아들, 유황의 대답에 유천주는 그제야 유황의 뒤에 네 명의 남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 헌앙한 외모를 지닌 것이 딱 봐도 범상치 않은 선남선녀들이었다.
그에 유천주는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는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잘생긴 사내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유가장의 유천주. 은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 드립니다.”
“아니오, 고개를 드시오.”
아버지뻘인 유천주의 정중한 인사.
그 인사에 청년이 짧은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꿈틀.
뒤에 있던 승려.
어려서부터 예 禮를 중요시해 온 혜주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씨익.
그러한 혜주의 시선을 느꼈을까?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혜주와 시선을 마주쳤고 이내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
혜주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 * *
저건 뭐야?
찡그러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민머리의 승려.
그의 아니꼬운 눈빛에 나는 보란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어린아이를 놀리는 듯한, 얄미운 표정을 짓듯 말이다.
“아…… 은공, 이분은 소림사의 혜주 대사입니다. 나한권 羅漢拳으로 유명한 고수시지요. 사사로이는 제 사형이시기도 합니다.”
“그렇소?”
유천주의 친절한 설명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를 응시한 채 그대로 굳어 있는 혜주라는 스님을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바라보기만 할 것이오?”
“그대는 누구입니까?”
나의 물음에 혜주가 뜬금없는 말로 반문했다.
경계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이다.
그러한 혜주의 목소리에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을까?
그의 뒤에 있던 두 명의 승려가 앞으로 나서며 자세를 낮추었다.
그에.
스윽.
서은설과 위천 그리고 악여화가 각자의 무기에 손을 얹으며 자세를 낮추었다.
물론 위천은 권갑을 꼈다는 듯이다.
아무튼.
그러한 우리들의 대치에 유천주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런 유천주를 뒤로하고.
유천주의 옆에 서 있던 유황이 황당해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혜주를 바라보며 따지듯 물었다.
“뭐라?”
그러한 유황의 말.
그 말에 혜주의 두 눈가가 꿈틀거렸다.
어린놈이 언성을 높인 것도 모자라 뭐 하는 짓이냐고 따지듯 말하니 싸가지가 없어 보였나 보다.
뭐, 나도 동의하지만 녀석은 지금 나의 편을 들어 주고 있는 상태.
솔직히 나의 눈에는 녀석이 제법 기특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사백께서는 어찌 저의 은인에게 이리 무례하게 행동하시는 것입니까? 부디 이 못난 사질을 생각하여 적대적인 행동은 멈추어 주십시오.”
아무튼, 그러한 혜주의 불편한 심기가 가득한 반문에 유황이 황급히 예를 차리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나 보다.
“유황은 그만 물러가거라.”
“사백!”
“어서!”
씨알도 안 먹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혜주가 언성을 높이자 유천주가 황급히 유황을 잡아 이끌어 뒤로 물렸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짓고는 팔짱을 낀 채 혜주를 바라보았다.
“뭐 한바탕하자고?”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너는 누군데?”
“조금 전에 듣지 않았습니까?”
“본인 입으로 들어야지.”
혜주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스스로가 자기의 이름도 설명 못하는 머저리인가?
자신의 이름도 남이 설명해 주는 꼴이라니.
보기 흉했다.
그러한 나의 비꼼에 혜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
스윽.
“무엄…….”
혜주의 뒤에서 자세를 낮추던 한 승려가 앞으로 나서며 나에게 경고했지만.
휘잉!
턱!
그의 얼굴 바로 옆을 지나는 날카로운 파공성에 그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젊은 승려의 얼굴 옆을 지나 뒤에 있던 나무에 박힌 화살.
부르르.
너무나도 강력한 힘에 나무에 박혔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이 남아 있어 잘게 떨리는 화살의 모습에 혜주는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의 뒤에 서 있는 여인, 거대한 청색의 거궁 巨弓을 겨누고 있는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청안 靑眼……?”
서은설의 아름다운 두 눈동자.
그 두 눈이 푸른색이라는 것을 깨달은 혜주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혹……?”
“너, 이름 뭐냐고.”
나의 정체를 파악한 듯한 혜주의 말에 나는 그의 말을 끊고 다시 물었다.
본인 입으로 직접 자신을 소개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러한 나의 행동에 혜주의 뒤에 있던 젊은 승려들이 이를 갈았지만.
스윽.
“소림의 혜주라고 합니다. 부끄럽지만 나한권이라고 불리고 있지요.”
혜주는 다른 듯했다.
그는 나의 말대로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고, 그에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의 소교주, 위극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