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화
제177장 싸가지 없는 X 無槪念女
쾅!
“끄아악!”
쿵!
퍼억!
쾅!
“크어어억!”
뿌드득!
호오? 녀석, 제법 야무지게 제압하고 있네.
나는 약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들 사이에서 미쳐 날뛰는 동생을 보며 살짝 감탄했다.
제대로 된 실전 경험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전투 실력이 제법 괜찮았다.
빈틈을 잘 찾았으며, 귀신같이 다음에 어떤 공격이 들어올 것인지 예측하고 미리 움직였다.
또 최소한의 동작으로 상대방을 확실하게 제압하는 위천의 실력은 솔직히 내가 봐도 흐뭇할 정도였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저벅.
걸음을 옮겼다.
“…….”
위천에게 하나하나씩 제압되고 있는 산적들.
그런 산적들의 뒤로, 줄에 두 손이 묶인 채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어린 남매.
십 대 중반으로 되어 보이는 소년과, 초반으로 보이는 소녀를 내려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름이?”
“유황입니다.”
“유지…….”
나의 물음에 소년은 두려움을 애써 감추며 대답했고,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납치당한 이 상황에도 부끄러워하는 소녀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혀를 한번 찼다.
이래서 어린아이들은 싫었다.
정확히, 십 대 초반의 아이들 말이다.
물론 내가 지나치게 잘생기긴 했지만,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철이 없는 소녀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위천에게 놀아나고 있는 일류의 고수, 두목으로 보이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저자가 너희들을 납치한 거지?”
“네.”
“집안이 어디냐?”
“하남의 유가장입니다.”
“유가장이라…….”
소년, 아니 유황의 대답에 나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유황을 바라보았다.
“그런 곳이 있었나?”
“네, 소림의 속가제자셨던 할아버지가 세운 가문으로, 아버지, 그리고 저까지 소림의 속가로 지내고 있습니다.”
“흐음, 하남의 속가라, 제법 유명하겠군.”
하남성.
그리고 그곳을 대표하는 세력, 천년소림 千年疏林.
그곳의 속가라는 유황의 이야기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속가제자라 하더라도 제자는 제자.
구대문파와 같은 대문파에서는 속가제자라 하더라도 직전제자와 같은 대우를 해 주었고, 그에 속가제자는 세상으로 나아가 일을 하며 문파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속가제자는 강한 무공을 배우고 자유를 누벼서 좋고, 문파는 속가제자로 인해 재정이 탄탄해지기 때문에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
그것이 바로 문파와 속가의 관계였다.
소림의 지역인 하남에서 속가제자가 문파를 세웠다는 뜻은 곧, 소림을 배경으로 두고 있다는 뜻.
아마 하남의 현 단위에서는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는 문파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유가장도 모르다니, 무림에 대해 잘 모르시나 보네요?”
유황의 옆.
어린 소녀, 유지의 발칙한 말에 고개를 돌렸다.
“유지!”
“왜? 유가장을 모르다니, 무림에 문외한 아니야?”
자신의 가문을 모른다는 것에 성이 났을까?
화들짝 놀란 유황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지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에 유황은 눈가를 꿈틀거렸고, 이내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동생이 철이 없어서…….”
“진짜, 철이 없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자신들을 구해 주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유황이 저자세로 나오며 용서를 구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려 했지만.
“오빠가 왜 고개를 숙여?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알고? 소장주라는 사람이 함부로 고개를 숙이면 어떡해? 생각이 없어?”
키야.
진짜 철이 없다, 아니 생각 자체가 없다.
현재 자신의 상황을 파악도 하지 못하고 나불대는 유지를 보며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어찌, 저렇게 멍청하고 안하무인일 수가 있을까?
딱 봐도 훌륭한 망나니가 될 재목이 아니던가?
개인적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이봐요. 어서 이 줄 좀 풀어 줘요. 아파 죽겠어요.”
유황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은 유지.
그녀가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을 어서 풀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꼈다.
“내가 왜?”
“무림인이 아닌가요?”
“맞지.”
“그러면 당연히 우리를 구해 줘야지요.”
“그러니까 왜?”
나의 대답에 짜증이 났을까?
유지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그러고는 매서운 눈으로 나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힘없는 사람이 납치를 당했는데 당연히 구해야지요!”
“그래, 그건 맞는데. 너는 나에게 구해 달라고 하면서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냐?”
“뭐요?”
나의 되물음에 유지가 쌍심지를 치켜세우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너희 알아서 도망가라. 가다가 다시 납치당해도 나는 모른다.”
“대협! 제발 구해 주십시오!”
몸을 돌리며 손을 흔드는 나의 말에 유황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배였다.
저 싸가지 없는 소녀를 구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미련 없이 걸음을 옮겼다.
다시 납치를 당하든,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든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다 자업자득이지.
“당신은 무인의 자격이 없군요!”
그래, 마음껏 욕해라.
나는 무시하련다.
“극신.”
그러한 나의 행동에 서은설이 다가와 나를 불렀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왜? 내가 구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
“어린아이야, 아직 철이 없는 거니 어른인 우리가 이해해 줘야지.”
“내가 왜?”
“우리가 어른이니까.”
나의 반문에 서은설이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내 애도 아닌데 내가 왜 신경 써야 해?”
“극신! 우리 애가 저렇게 되었을 때 지나가던 어른이 너처럼 행동하면 어떨 것 같아?”
“…….”
“우리가 먼저 다른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해. 그래야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도 좋은 어른들이 손을 내밀 거야.”
쩝.
할 말 없게 만드네.
나의 두 눈을 바라보며 조곤조곤하게 설명하는 서은설을 보며 나는 입맛을 다시었다.
진짜, 말로는 못 이기겠다.
그에 나는 다시 몸을 돌렸다.
그에 유황은 환한 미소를 지었고.
“흥, 저 여인에게 아까운 남자네.”
소녀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녀석, 여전히 싸가지가 없었다.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스윽.
유지의 앞에 멈추어 서서 쭈그려 앉아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에.
“뭐…… 뭐예요!”
유지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뒤로 빼며 소리쳤다.
그에 나는 여전히 진한 미소를 지었고.
이내.
빠악!
망할 싸가지 없는 아이의 뒤통수를 그대로 내려찍었다.
“진짜, 개념을 밥 말아 먹었네. 이러니까 부모가 자식 교육을 어떻게 했냐는 소리를 듣지. 멍청한 X.”
나중에 내 딸이 이럴까 봐 무서웠다.
* * *
“히끅! 히끅!”
“아씨.”
사사삭!
뒤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그 소리에 내가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리자 울음을 흘리던 소녀, 유지가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나의 눈치를 살피며 말이다.
그런 유지의 행동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왜, 애를 때린 거야?”
“저렇게 싸가지 없는데 그냥 구해 주기 싫잖아.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지.”
“하지만…….”
“은설, 나는 내 아이라 하더라도 저렇게 싸가지 없으면 맞고 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또다시 나를 설득하려는 서은설의 행동에 나는 내가 먼저 나서서 차단했다.
그에 서은설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지금 더 잔소리를 했다가는 나의 기분이 상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형.”
“왜?”
“형은 어떻게 여자도 때려?”
“싸가지 없는 것에 여자고 남자고가 뭐가 중요하냐? 맞을 짓 했으면 맞는 거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묻는 위천을 보며 나는 나의 신념을 밝혔다.
그에.
“와아.”
위천 녀석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마치 아주 좋은 이야기에 감동했다는 듯 말이다.
그에 나는 으쓱한 미소를 지었지만.
“천아, 남자든 여자든 때리는 건 안 좋은 거야.”
서은설이 불만스러운 어조로 나의 말을 막아서며 위천에게 말했다.
그에 위천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우리 집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에요.”
마도인 천마신교.
허구한 날 싸우고 주먹을 날리는 곳이 바로 본교다.
그렇다 보니 폭력에 제법 익숙한 위천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러고는, 서은설의 푸른 두 눈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누나네 집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마도를 걷는 본교만큼이나 화끈하고 단순한 사파, 그곳의 무인들이 모인 곳이 바로 사황성이다.
사파 특유의 기질을 언급하며 위천이 말하자 서은설이 입을 다물었다.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단번에 서은설의 입을 다물게 한 위천을 보며.
“제법.”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었다.
녀석, 나중에 결혼해도 여자한테 안 잡혀 살겠다.
아주 바람직했다.
“폭력, 반대.”
“아, 미안! 나도 폭력 싫어.”
취소다.
뒤이어진 악여화의 짧은 말에 화들짝 놀라며 입장을 바꾸는 위천을 보며 나는 혀를 찼다.
누구 동생인지.
답이 없는 놈이었다.
“저…… 은공, 혹시 은공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그때.
가만히 우리의 눈치를 살피며 모닥불을 쬐던 유황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유황을 바라보았다.
“왜? 나중에 복수하게?”
화들짝!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장난스러운 나의 물음에 유황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 쳤다.
그러고는 오해를 풀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저, 저희 남매를 구해 주신 은공의 성함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구해 준 건 저 녀석인데?”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이 우리를 구해 주셨지요.”
저 개념 없는 소녀랑 달리 이 녀석은 개념 있군.
홀로 산적들과 싸웠던 위천을 턱으로 가리키며 내가 말하자 유황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기특한 모습에 서은설과 위천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악여화는 무표정이었고, 나는.
“뭐래. 나는 싸가지 없는 애 교육만 시켰지.”
“극신!”
“알겠어.”
그만해야겠다.
장난스러운 나의 대답에 서은설이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불렀다.
그에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고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유황을 바라보았다.
“위극신.”
“위극신……?”
“그래, 내 이름이다.”
나의 대답에 유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게 우리들 사이로 잠깐의 침묵이 내려앉았고.
“혹시…… 수라협성 修羅俠星……?”
“그렇지, 최근에 그렇게 불리더군.”
녀석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번에도 대답했듯, 나는 누군가가 나의 정체를 물어본다면 숨길 생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에.
“혹시 마소권 魔笑拳……?”
“응, 안녕.”
유황은 고개를 돌려 위천을 바라보며 물었고 위천은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에.
“혹시 청안수화 靑眼秀花……?”
싱긋.
“부끄럽네요.”
푸른색의 눈과, 빼어난 꽃이라는 뜻을 지닌 서은설의 별호.
유황의 입에서 나온 그녀의 별호에 서은설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악여화를 제외하고 모두의 정체를 알아차린 유황.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마…… 아니, 천마신교의 소교주……?”
“정답.”
마교라 했으면 너 한 대 때렸을 텐데, 운이 좋네.
서둘러 말을 고친 녀석을 보며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한 나의 대답에.
“아…….”
유황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고.
털썩!
이내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기절하지 않은 소녀, 유지를 바라보았다.
역시 개념이 없어서 그런지 겁도…….
털썩.
아니었네.
유황의 뒤를 이어 기절해 쓰러지는 유지의 모습에 나는 생각을 수정해야 했다.
요즘 애들은 참, 겁이 많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