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5화
제175장 북명신공 北明神功
“…….”
금적금의 부탁으로 별실에서 나와 빈자리에 앉은 위천.
그는 가만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바라보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를 바라보며 위천은 좀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너, 아직 살아 있는 동물들을 수집하고 직접 죽이냐?”
자신의 형, 위극신의 입에서 나온 물음과.
“그것을 어찌……?”
그 물음에 대한 금적금의 대답.
자연의 생명체인 동물들을 늘 벗으로 생각해 왔던 위천의 입장에서는 끔찍한 이야기였다.
그렇다 보니 위천으로서는 복잡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죽이고 피를 섭취한단 말인가?
그런 잔인한 짓을 인간이라는 두겁을 쓰고 행한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한 위천의 심란한 모습이 신경 쓰였을까?
옆에 가만히 앉아 있던 악여화가 손을 들었다.
스윽.
그러고는 잘게 떨리는 위천의 손을 잡아 주었다.
“아…….”
그에 위천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였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서은설과 악여화가 말이다.
“죄송해요, 미안해.”
그러한 둘의 시선에 위천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사과를 건네었다.
하지만 아직 심란함이 가시지 않았기에 위천의 미소는 평소의 환한 미소가 아닌 억지 미소와도 같았다.
그에 악여화는 입술을 강하게 다물었다.
미소가 아름다운 방글이 위천.
그러한 위천이 자신이 좋아하는 미소가 아닌, 아무런 매력도 없는 미소를 보이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천아.”
그런 악여화의 행동을 뒤로하고.
서은설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위천을 불렀다.
그에 위천이 고개를 돌려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무차별한 살생은…….”
서은설의 이야기에 위천이 대답했다.
어떠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살생은 살생.
그것이 타당한 이유는 될 수 없었다.
그러한 위천의 언사에 서은설이 다시 입을 열어 위천의 말을 끊었다.
“너는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하느냐?”
“……?”
뜬금없는 서은설의 물음.
그 물음에 위천이 화를 내던 것도 잊은 채 멍한 표정으로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내가 알기로는 동파육으로 알고 있다.”
돼지고기를 큼지막한 덩어리째로 간장과 각종 재료로 조려 낸 음식, 동파육.
그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 위천이 서은설의 이야기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파육은 돼지고기야. 너는 동파육을 왜 먹니?”
“맛있어서…….”
“그래, 금 공자에게도 그러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
“만약 네가 금 공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상당히 이기적인 행동인 것 같아.”
“…….”
“만약 네가 고기를 먹지 않더라도 무작정 타인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아. 그러니 지켜보자.”
“네.”
서은설의 부드러운 음성.
그 음성에 위천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위천.
그는 솔직히 부끄러웠다.
그 누구보다 동파육을 좋아하며 하루 한 끼는 꼭 동파육을 먹는 이가 바로 자신이다.
헌데 그런 자신이 뭐라고 살생이니 어쩌니 이야기했단 말인가?
지극히 이기적인 언사였다.
그렇게 위천이 입을 다물자 서은설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스윽.
기막이 둘러진 별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야기가 길어지네.”
무슨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몰라도 꽤 길어지는 이야기에 서은설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 *
“이것을 마뇌에게 전하면 된다.”
금적금과 그의 일족, 흑야상단을 거두기로 마음먹은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피를 내어 주었다.
최고 양질인 나의 피를 마신 후 더욱더 강력한 기세를 내뿜는 녀석을 보며 나는 옆에 있던 서신에 글을 대충 쓰고는 건네었다.
“감사합니다.”
그에 금적금은 황공하다는 듯 서신을 받아 들었다.
“내가 딱히 도와주는 것은 없다. 그저 마뇌에게 추천해 주고 지켜볼 뿐.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할 수 있겠지?”
“예, 주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를 향해 주군이라 칭하며 최선을 다하겠다는 금적금을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번 생에서는 처음이었다.
나를 주군이라 부르는 존재가 말이다.
피라는 매개체로 거래를 하듯 받은 충성이지만 어쨌든 금적금의 목숨은 나에게 달려 있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더 믿음직한 수하일지도 몰랐다.
묘하게 믿음직스러운 금적금.
그는 이번 생에서 처음으로 온전한 나의 수하가 되었다.
나의 수하 일호가 되어 버린 금적금.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손을 들어 품속에 넣었다.
그러고는 안주머니에 있던 작은 가락지를 하나 꺼내어 녀석에게 던져 주었다.
“이걸 들고 본교의 아무 무인에게나 보여 주면 바로 본교로 안내할 것이다.”
“……?”
갑작스럽게 나타난 흑색의 가락지.
금색 용이 새겨진 가락지를 집어 든 금적금이 의문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귀찮다는 듯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나의 손님을 뜻하는 가락지니 잘 간직해. 잃어버리면 죽는다.”
부끄러워서 그런가.
괜히 신경질이 났다.
그러한 나의 신경질적인 말에 금적금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황공합니다! 주군!”
그러고는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소리쳤다.
거참.
누가 보면 내가 황제라도 되는 줄 알겠다.
과하디과한 녀석의 예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가 봐.”
어서 보내야지.
“예, 주군.”
본교의 무인을 통해 피를 주기적으로 전달해 주기로 약조를 한 지금.
나는 녀석에게 손을 흔들며 축객령을 내렸고 녀석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무릎을 펴고 일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별실을 나섰다.
녀석이 별실을 나서자 나는 둘렀던 기막을 거두었고, 이내.
끼익.
문을 열고 서은설, 위천, 그리고 악여화가 들어왔다.
“이야기는?”
“잘 끝났어.”
“고생했어.”
“내가 뭘.”
서은설의 부드러운 음성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위천을 바라보았다.
“불만이냐?”
“아닙니다.”
동물을 친구라 생각하며 사랑하는 위천.
녀석을 보며 내가 묻자 녀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살기 위해서 그리한 것이다. 그러니 이해하거라. 이제부터는 안 그럴 것이니.”
“정말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나의 확신 어린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위천.
녀석이 짐짓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뭐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방긋 웃으며 소년미를 뿜어야 할 녀석이 다 큰 청년처럼 행동하니 어색했던 것이다.
그러한 나의 물음에.
빵싯!
녀석이 언제 그랬냐는 듯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로 인해.
피식.
“호호.”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서은설이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그리고.
주욱.
악여화가 손을 들어 위천의 볼을 잡아당겼다.
“방글이.”
아주 만족한 어조와 함께 말이다.
* * *
“소가주님을 뵙습니다.”
호북 무한에 위치한 진주언가의 분가.
그곳의 분가주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언간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오셨군요.”
자신을 향해 부복을 하며 주군에 대한 예를 갖춘 풍권단주.
그의 인사에 언간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겨 주었다.
주군에게 예를 갖추는 무인과, 그 무인을 반겨 주는 주군의 이상적인 모습.
헌데 그 모습에서 이상한 것이 있었다.
풍권단주.
그는 진주언가의 제일무력대 풍권단의 단주로서 그의 주군은 가주인 언진게이다.
헌데, 어찌 소가주인 언간에게 주군에게나 보일 법한 극진한 예를 갖춘단 말인가?
게다가 풍권단주의 예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것과, 아무리 소가주라 하더라도 출입이 불가능한 분가주실을 제 방처럼 사용하는 언간의 행동은 무엇이란 말인가?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의문스러운 모습이었다.
“악 매는 찾았나요?”
“예, 현재 무한의 청하객점에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마소권 魔笑拳이 동행하고 있다 했지요?”
“그렇습니다.”
풍권단주의 대답에 언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불쾌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녀자가 밖으로 함부로 나돌아 다니다니…….”
“명령만 주시면 금방 데려오겠습니다.”
불쾌한 언간의 어조에 풍권단주가 고개를 깊게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언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천마신교를 건드리기에는 우리가 잃는 것이 많습니다. 우선 행적만 파악해 주십시오, 기회를 보고 제가 접근할 테니까요.”
“네.”
언간의 말에 풍권단주는 고개를 깊게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언간은 부드러운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마소권의 경지가 높으니 조심하세요. 단주는 본가에 있어서 중요한 무인입니다. 다치면 안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언간의 따듯한 격려.
그 격려에 풍권단주가 감동한 듯 힘 있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고생하세요.”
그러한 풍권단주의 대답에 언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풍권단주는 다시 예를 차리고는 물러났고 홀로 남게 된 언간이 걸음을 옮겨 분가주실을 나섰다.
저벅, 저벅.
우뚝.
“…….”
그렇게 한 동안 걸음을 옮긴 끝에.
언간은 분가에 위치한 지하 밀실에 도착했다.
가만히 밀실을 바라보며 쓰다듬던 것도 잠시.
그가 어느 부분에서 쓰다듬던 손을 멈추더니 이내.
쿠웅!
안으로 밀어 넣었다.
구구궁.
잠시 후.
언간이 손을 이용하여 한쪽 벽을 안으로 집어넣자 굳게 닫혀 있던 밀실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후 밀실의 문이 활짝 열렸고 언간은 익숙한 걸음으로 열린 밀실의 문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밀실에 들어선 다음 긴 복도를 계속 걸은 것도 잠시.
복도의 가장 끝에서 하나의 감옥이 언간을 맞아 주었다.
쇠창살로 이루어진 감옥 앞에서 걸음을 멈춘 언간.
그가 창살 너머.
사지가 속박되어 벽에 걸려 있는 괴인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입니다, 스승님.”
언간의 입에서 나온 싸늘한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푸근한 단어.
그 목소리와 단어에 죽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던 괴인이 고개를 들었다.
오랫동안 씻지도 못하였는지 시커먼 때와 덥수룩한 수염이 그의 얼굴을 덮고 있었고, 그로 인해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만큼은 정광이 어려 있었고 그 두 눈에 언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역시, 대단하시네요. 십 일이나 굶었는데 아직 눈빛이 살아 있어요.”
“네……놈…….”
오랜 시간 동안 음식은 물론, 물도 섭취를 하지 못하였는지 괴인이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한 괴인의 목소리에 언간은 다시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철컹!
손을 들어 강하게 쇠창살을 잡았다.
“어서, 북명신공 北明神功의 구결을 말해!”
쇠창살을 강하게 흔들며 강력한 기세를 내뿜는 언간.
일류의 경지로 알려진 소문과 달리 절정, 아니 그 이상의 기세를 내뿜는 언간의 모습은 상당히 놀라웠다.
후기지수 중 제일로 꼽히는 남궁정과 소림의 공명보다 더 강한 기세를 내뿜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놀라운 언간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퉤에.
괴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침을 뱉어 보였다.
가뜩이나 없는 수분.
그로 인해 소중한 침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한 괴인의 행동에 언간은 인상을 찌푸렸다.
“푸하하!”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언간은 곧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그에 괴인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그저 언간만 노려보았다.
한때, 원의 황족이었으나 원의 멸망 후 무인으로 돌아선 사내.
우연히 얻은 기연으로 절대의 고수가 되었으나 제자에게 배신을 당한 불운의 사내.
그가 바로 지금의 괴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