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화
제174장 변절자, 거두다 變節者, 回收
“그것을 어찌……?”
어라, 부정 안 하네.
나의 물음에 부정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어떻게 알았냐는 듯 묻는 녀석을 보며 나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은 금적금의 엽기적인 행동이 소문나기 전.
그렇기에 당연히 부정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금 형……?”
나의 물음과, 금적금의 반응에 가만히 있던 위천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나가는 고양이, 개. 허공을 날아다니는 새까지.
모든 동물들을 좋아하며 자연과 어울리는 동물 그림을 자주 그리고는 했던 위천이 떨리는 음성으로 그를 부르자 금적금이 위천의 두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부끄럽다는 듯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사과를 하는 금적금.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는 직감했다.
엽기적인 행동에는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다고 말이다.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행한 행동이 잘못된 것을 안다는 듯한 녀석의 모습에 나는 물론 모두가 직감했을 것이다.
그에 나는 가만히 금적금을 바라보았다.
그런 나의 시선에 금적금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고 이내 정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
끄덕.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나와 단둘이?”
“네.”
나의 물음에 녀석이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에.
“알겠어요.”
“나가 있을게.”
위천과 서은설, 그리고 악여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그들이 별실을 나섰고, 넓은 별실에는 나와 금적금 단둘만이 남게 되었다.
“소교주님.”
“그래.”
“정말 죄송하지만…… 기막 氣膜을 둘러 주시겠습니까?”
꿈틀.
이 자식이.
주변을 물린 것도 모자라 기막까지 둘러 달라는 녀석의 부탁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가를 꿈틀거렸다.
이것, 저것 부탁하는 금적금의 행동이 귀찮았던 것이다.
그런 나의 기색을 읽었을까?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극비 極秘인 이야기라…….”
“후우…….”
착한 내가 참아야지.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변명하듯 말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웅!
그러고는 녀석이 원하는 대로 기막을 둘러 주었다.
이제 여기서 나누는 우리 둘의 이야기는 그 누구도 듣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기막을 두른 것을 확인한 녀석이 안도의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별거 아니면 알지?”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싸늘한 어조로 경고했다.
이렇게까지 나를 귀찮게 했는데 만약 별것도 아닌 이야기다?
절대 가만 안 놔둘 것이다.
그런 나의 경고에.
“저는 혈마의 血魔의 후예입니다.”
“오우.”
생각지 못한 엄청난 대답이 돌아왔다.
혈마 血魔.
백여 년 전까지 존재했던 본교의 신성한 의식을 담당하는 사제 司祭로서 호법, 장로, 군사와 같이 본교의 수뇌부를 이루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백여 년 전.
당대의 사제였던 혈마가 죽고 나서 본교에서 사제라는 직책은 사라지고 말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도 모른다.
천마라면 알고 있을까?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혈마는 물론 혈마의 일족까지 모두가 사라졌다.
아무런 흔적도, 기록도 없이 말이다.
헌데 그러한 혈마의 일족이 흑야상단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지 못한 금적금의 이야기에 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혈마의 일족은 멸족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대 교주님의 허락을 맡아 신교를 떠났었습니다.”
“왜지?”
녀석의 대답에 나는 의문 어린 표정으로 되물었다.
“사제로서 익혔던 혈마공 血魔功. 그것을 끔찍한 마공이었습니다. 피를 취하지 않으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는 마공이었지요.”
“그게 뭔 상관이지?”
금적금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공인 것이 뭐 어때서?
본교가 마도인데 말이다.
게다가 듣자 하니 피만 섭취하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뜻은 곧 전생의 그처럼 동물의 피를 섭취하면 된다는 뜻.
물론 살아 있는 동물이 아닌 죽은 동물이어야겠지만.
아무튼.
나의 의문에 녀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죽은 동물들의 피를 섭취하며 혈마공을 수련해 오던 어느 날. 신교에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신탁?”
그런 것도 있었나?
혈마가 사라진 후.
본교에서는 제사라는 의식이 사라졌다.
그저 매년 한 번 천마의 위대함을 기리는 정도?
딱 그 정도였다.
헌데 신탁이라니?
생각보다 상당히 본격적인 종교의 이야기에 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금적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네, ‘혈마의 일족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상으로 나가 때를 기다려라.’라는 신탁이었습니다.”
“호오?”
“그에, 당대 혈마는 신탁을 거부했습니다. 천마 신을 모시는 사제로서 신탁을 거부한 당대 혈마는 천마 신의 미움을 받아 점점 광증 狂症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동물의 피가 아닌 인간의 피를 섭취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오…….”
진짜 마공이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거짓된 마공 말이다.
순수한 마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마공으로 인해 본교의 인식은 좋지 않았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두 발로 뛰어다녔다 보니 나는 당연히 거짓된 마공이 싫었다.
그러한 나의 기색에 금적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에 당대 천마께서는 당대 혈마의 목숨을 직접 거두시고는 다음 대 혈마에게 신탁을 따르라 하였지요. 다행히 그분은 신탁을 따랐고 중원으로 나와 상단을 차렸습니다. 그분이 바로 본 상단의 초대 상단주님이시지요.”
“헌데, 왜 본교에서는 모르지?”
녀석의 대답에 나는 의문 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흑야상단은 본교의 상단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헌데, 왜 아무도 모르고 있단 말인가?
소교주인 나까지 말이다.
“당대 천마께서 급작스럽게 돌아가셨으며, 그로 인해 초대 상단주께서는…….”
“알겠군.”
마지막 말을 흐리는 녀석을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대답을 안 들어도 알 것 같았다.
중원으로 나와 생활해 보니 본교가 얼마나 답답한 곳인지 깨달았던 것이겠지.
하나의 신. 그 아래로 모인 단일 세력이 바로 천마신교다.
그렇다 보니 개인의 자유와 의지가 제법 제한이 많이 되었다.
게다가 본교에서는 당연하게 이루어졌던 생사투 生死鬪가 중원에서는 원수가 아닌 이상 벌어지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렇다 보니 중원은 평화로웠고 아늑했다.
그러한 곳에서 장로들과 같은 직위였지만 무위로 장로들에게 밀렸던 사제, 혈마의 일족에서는 중원 무림이 더 편안하고 안전했을 것이다.
이해가 갔다.
게다가.
“사랑하는 여인이 무림맹의 무사였습니다.”
사랑의 힘은 그 누구도 못 말렸다.
“그래서, 정체를 숨기고 중원의 여인과 결혼을 했다?”
“네.”
아주 사랑꾼 납셨군.
녀석의 대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는 좀 전과는 다른, 시리도록 차가운 눈으로 금적금을 보며 물었다.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녀석은 곧 변절자이다.
본교를 배신한 변절자의 핏줄.
당장 사지를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녀석이지만 나는 다른 마인들과 달랐기에 흥분하지 않고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허나, 아무리 침착하게 물었다고는 해도 나 또한 역시 본교의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나의 몸에서 서늘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고, 그러한 기세에 정면으로 노출된 녀석이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쿵!
“저희를 살려 주십시오!”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무릎을 꿇으며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살려 달라?”
살려 달라는 녀석의 요구에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솔직히 딱히 죽일 마음은 없었다.
이미 백여 년 전에 벌어진 일. 굳이 그것을 들추어내서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배신의 대가로 어느 정도의 재물만 뺏는 선에서 끝날 것이다.
“본 상단이 망할 것 같습니다. 제발 신교와의 교역권을 본 상단에게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이어진 녀석의 간절한 어조.
그 어조에 턱을 쓰다듬던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내가 왜?”
변절자이자 배신자인 흑야상단.
내가 왜 그들을 도와줘야 한단 말인가?
양심이라는 것이 없는 것들일까?
먼저 본교를 배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본교와의 교역권을 요구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싸늘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에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간절한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한 번 배신은 어렵지만 두 번부터는 쉽지.”
이미 배신한 전적이 있는 혈마의 일족.
나는 그들을 신용할 수가 없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믿지?”
“제가 소교주님의 피를 마시면 됩니다.”
“!!”
이런 미친놈을 봤나.
대놓고 나의 피를 마시겠다는 금적금을 보며 나는 순간 굳어 버렸다.
너무나도 신박하게 미친놈이라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순간 뇌 정지가 왔던 것이다.
“소교주님은 모든 마공의 시초인이자 부모와 같은 무공인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습니다. 혈마공을 익힌 저로서는 소교주님의 피를 받아먹는 것은 곧 뛰어난 영약을 섭취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저는 소교주님에게 충성을 바칠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소리지?”
“한번 섭취한 피를 주기적으로 섭취하지 않는다면…… 저 스스로의 피를 섭취하게 되고 이내 말라 죽게 됩니다. 가장 양질의 피를 인식하여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소교주님의 피를 섭취한다면 그 어떠한 피라도 저에게 있어서는 양질의 피가 아니게 되겠지요.”
되게 희한했다.
금적금의 말을 정리하자면 혈마공은 그동안 섭취한 피 중 가장 양질의 피를 기억하고 그것을 요구한다.
그것을 주기적으로 섭취하지 않을 경우 스스로의 피를 섭취하게 되고 나중에는 말라 죽게 된다.
천마신공을 익힌 나의 피를 마신다면 금적금은 최고 양질의 피를 섭취하게 되어 뛰어난 성취를 보일 것이고, 또 나의 피를 주기적으로 섭취하기 위해 나의 명을 따를 것이다.
만약 나의 명을 어긴다면 나는 피를 주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금적금은 피가 말라 죽게 될 테니 말이다.
“만약 나보다 더 양질의 피가 나타난다면?”
“정말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씨익.
이 자식, 말 잘하네.
좀 전에 죽으려고 했던 모습과는 달리 능글맞게 나를 향해 되묻는 금적금을 보며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자연스럽게 아첨하는 모습.
나쁘지 않았다.
“현재 흑야상단의 상황이 어떻지?”
“심각합니다. 만약 이번 위기를 넘기지 못한다면 저희 상단은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소교주님을 만나 이렇게 모든 것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진작에 나에게 만남을 청하여 밝히면 될 것을 왜 이제야 말하지?”
“기회가 없었습니다.”
“기회?”
금적금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적금.
그는 흑야상단의 소단주이다.
충분히 나에게 만나고 싶다는 기별을 보낼 수 있는 위치.
헌데 기회가 없었다니?
“타 상단의 견제가 있었습니다.”
“견제라…….”
“예, 이미 그들은 각자의 정보망으로 인해 본 상단이 신교와 관계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 유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교와 만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았다?”
“그렇습니다. 어떻게든 만나려고 했지만…… 도저히 무리였습니다. 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상태에서…… 기적처럼 소교주님을 만났습니다.”
운이 겹치고 또 겹쳤다.
전생에서도 최고의 운을 보여 주었던 금적금.
이번 생에서도 벌써부터 최고의 운을 보여 주는 녀석을 보며 나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았다.
녀석은 대운 大運을 몰고 다니는 사내에다가 제법 뛰어난 수완을 지닌 상인.
게다가.
“절정이라…….”
지니고 있는 무공도 제법이었다.
꾸준히 동물들의 피를 섭취해 왔기 때문인지 몰라도 녀석의 경지는 제법이었다.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배신자이며 변절자인 혈마의 후예.
아무래도 나는 그들을 거두어야 할 것 같았다.
‘X나 굴려야지.’
그리고 미치도록 굴릴 것이다.
배신한 죗값을 톡톡히 치를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