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제173장 자살 自殺
“부끄럽구나.”
호북의 성도인 무한의 입구에 위치한 거대한 성문.
그것의 가장 높은 성벽에 걸터앉은 사내가 망연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기울어져 가는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으나 결과는 최악.
그 결과로 인해 심리적으로 괴로웠던 사내는 멍하니 성문 입구에서부터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했기 때문일까?
자잘한 흉터는 물론 오랜 농사일로 인해 검은색이 되어 버린 피부.
등에는 자신들의 덩치와 비슷한 봇짐을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괴로워하기는커녕 행복하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괴로운 생활을 보내면서도 그래도 행복하다는 듯 웃는 사람들을 보며 사내가 다시 중얼거렸다.
“나는 이리 심란하고 괴롭거늘 저 사람들은 즐겁구나.”
너무나도 심란한 자신과 달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사내가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피식.
“미친X이군.”
그러한 자신의 발언과 생각에 정신을 차린 사내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비겁한 변명이었다.
자신은 저들보다 더 배부른 삶, 따뜻한 삶, 편안한 삶을 보내었다.
하지만 자신이 부족하여 그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였다.
하지만 저들은 자신과 달리 자신들의 괴로운 삶에서도 작은 행복을 찾고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저들을 보며 억울해한다?
부끄러웠다.
그러한 자신의 행동이 경멸스러웠던 사내.
그가 자신이 입고 있는 비단옷과는 전혀 다른, 누런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하하!”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자신이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에 비하니 자신이 너무 초라해졌던 것이다.
그에 사내는 웃음을 터트렸고 이내.
벌떡.
웃음을 멈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잉.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사내의 앞 머리칼을 흔들었다.
그런 바람에 기분이 좋았을까?
사내가 편안하게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들려왔다.
바람 소리와,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것도 잠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자신을 믿고 상단의 미래를 맡겼던 아버지를 떠올린 사내는 나지막이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했고.
“죄송합니다, 어머니, 총관. 서 단주.”
자신이 진정으로 따르고 좋아했던 인물들을 떠올리며 용서를 구했다.
스윽.
그렇게 용서를 모두 구한 사내.
그가 바람에 몸을 싣듯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기울어져 가는 상단을 위해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했던 금적금.
그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기울어진 신형으로 인해 발이 허공을 밟는 순간!
덥석!
새하얀 손이 별안간 나타나 금적금의 뒷목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금적금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었고.
“이건 뭐 하는 놈이야?”
그런 금적금의 귀로 분노 어린 음성이 들려왔다.
그에 금적금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행동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화를 내는 상대의 행동에 기분이 상했던 것이다.
그에 고개를 돌린 금적금은 곧.
“!!”
자신을 구한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 * *
“극신.”
“응?”
이른 아침.
시끄러워진 소문으로 인해 조용히 떠나기 위해 일찍 움직여 무한을 막 나서려던 순간.
나는 나를 부르는 은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기 봐 봐.”
고개를 돌린 나와 눈이 마주친 서은설.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녀의 행동에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저건 뭐야?”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호북 무한에 위치한 성문.
그곳의 가장 높은 곳에서 위태롭게 일어서 있는 청년의 모습이 눈에 보였던 것이다.
느낌이 싸한 청년의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고 옆에 있던 위천이 고개를 돌려 청년을 발견하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자살 自殺 하려나 봐요!”
청년이 자살을 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위천의 말에 옆에 있던 악여화가 동의하는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극신.”
그런 녀석들을 뒤로하고.
서은설이 나를 불렀다.
나의 두 눈을 빤히 들여다보는 서은설의 푸른 두 눈.
그 두 눈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구해 달라는 뜻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어!”
그때.
위태롭게 서 있던 청년의 신형이 앞으로 기울여졌고 지켜보고 있던 위천이 화들짝 놀라며 언성을 높였다.
“귀찮네.”
그에 나는 한숨을 다시 한번 더 내쉬고는 움직였다.
귀찮지만 어쩌겠는가.
생명은 소중한 것을.
내공을 운공하여 순식간에 성벽 위에 올라선 나는.
덥석.
손을 뻗어 청년의 뒷목을 잡았다.
나의 손에 의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된 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짜증이 가득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 뭐 하는 놈이야?”
나의 음성에 반응을 하는 것일까?
녀석이 고개를 돌리더니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에 기분이 더 나빠지려는 것도 잠시.
“소교주!”
녀석이 놀란 음성으로 소리쳤다.
나, 제법 유명해졌나 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이건 아니지.
쓸데없는 생각에 고개를 살짝 흔들어 잡념을 털어 버리고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단번에 나를 알아차린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녀석의 위아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보라색의 고급진 비단으로 만들어진 비단옷을 잘 차려입은 청년.
목에 걸린 목걸이와 손가락에 끼어진 반지는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로 값비싼 물건이었다.
그에 나는 알 수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바보 같은 선택을 한 이 녀석이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집안의 자제라는 것을 말이다.
“왜 죽으려고 한 거냐?”
귀티가 줄줄 흐르는 녀석을 보며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뭐 하나 부족해 보이지 않는 녀석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다니?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나의 물음에 청년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누구나 다 힘든 일이 있으니 죽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에 나는 인자한 눈빛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말해 봐.”
허공에 매달린 녀석을 성벽에 다시 내려다 준 내가 인자한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분명 엄청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말이다.
그에 청년이 흠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를 실망시켜 드려서…….”
“아버지를 실망시켜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고?”
“네…… 저 때문에 상단이 망할 것 같아서…….”
“아, 네가 잘 못해서 상단에 피해를 끼친 거네?”
“네…….”
빠악!
이거 돌대가리네.
녀석의 대답에 나는 언제 인자하다는 표정을 지었냐는 듯 인상을 와락 찌푸리고는 녀석의 뒤통수를 그대로 내려쳤다.
“크어억!”
“형님! 참아요! 참아!”
그러한 나의 행동에 청년은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괴성을 질렀고 뒤늦게 따라온 위천이 화들짝 놀라며 달려와 나를 말렸다.
“야, 너 이름 뭐냐?”
그런 위천의 만류를 뒤로하고.
나는 차가운 음성으로 괴로워하는 청년을 향해 물었다.
그에 청년이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한 대 더 맞을까 두려웠는지 황급히 입을 열었다.
“금적금입니다.”
“그래, 금적금.”
“네.”
빠악!
한 대 더 맞아라.
나의 부름에 대답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다시 뒤통수를 후려쳤다.
“형님! 진정하세요!”
“천아, 빠져라.”
“넵.”
계속해서 나를 말리려는 위천을 향해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언제 나를 말렸냐는 듯 짧게 대답하며 뒤로 물러섰다.
“대체 왜…….”
제법 아픈지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금적금.
그가 의문 어린 음성으로 나에게 물었다.
그런 녀석의 멍청한 질문에 나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히익!
찌푸려진 나의 인상에 녀석이 화들짝 놀랐지만 그건 무시하고, 나는 놀라 뒷걸음질 치는 녀석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죽으면 네 아버지는?”
“……?”
“네 아버지가 받을 상처는 생각 안 하냐? 비겁하게 혼자 죽음으로 도망치려고 해? 그러면 이 세상에서 살아 나가야 할 네 아버지, 가족들. 그리고 상단원들까지.”
“…….”
“그들이 받을 상처 따위는 생각지도 않냐? 이런 이기적인 새X를 봤나!”
아.
이야기하다 보니 더 열받는다.
남는 사람은 생각지 않고 혼자 도망치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보여 준 금적금을 보며 나는 분노했다.
이런 이기적인 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
그 심정을 우리가 감히 어찌 헤아릴 수가 있단 말인가?
“형, 진짜 그만해요.”
“후우…….”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는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가 위천의 진지한 음성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사내도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달은 것 같아요.”
평소답지 않게 격하게 흥분했기 때문일까?
나의 옆으로 다가온 위천이 멍한 표정을 짓는 금적금을 가리키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녀석의 행동에 나는 호흡을 골랐고 이내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렸다.
금적금, 이름부터 짜증 나는 놈이었다.
그렇게 내가 몸을 돌리고 걸음을 옮기자.
“같이 가.”
서은설이 뒤따랐다.
“따라와요. 따뜻한 차라도 한잔 사 줄 테니까.”
저놈이 뭐가 예쁘다고.
그러한 우리 둘의 뒤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행동한 금적금을 향해 같이 갈 것을 권유하는 위천의 행동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저 자식은 마음이 너무 여려서 탈이었다.
* * *
“죄송합니다.”
잠시 후.
다시 무한으로 돌아와 하오문의 무한 객점인 청하객점의 별실로 들어선 일행들.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신 후 어느 정도 진정되었는지 금적금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너, 앞으로 절대 죽으려고 하지 마.”
그런 녀석의 사과에 나는 팔짱을 끼며 녀석에게 경고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매서운 나의 경고에 잠깐 움찔한 금적금이 진심으로 그리하겠다는 듯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기적인 녀석의 행동에 분노했던 것도 잠시. 진심으로 사과하며 뉘우치는 녀석의 모습에 분노가 가라앉았던 것이다.
“금 형은 어느 상단의 자제입니까?”
그렇게 분위기가 일단락이 되자.
주윤문을 보며 친화력을 배운 위천이 금적금을 친근하게 부르며 다가갔다.
그에 금적금 또한 싫지 않은 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흑야상단의 자제입니다. 부족하지만 소단주로서 일을 배우고 있지요.”
“흑야상단!”
금적금의 대답에 위천과 악여화, 서은설은 물론 나까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흑야상단 黑夜商團.
비록 최근에는 그 세가 기울었지만 그래도 아직 중원 삼대상단 중 한 곳으로 불리는 전통 있는 상단이었다.
딱 봐도 좋아 보이는 옷을 입고 있어 부족한 집안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흑야상단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다.
그에 나는 금적금을 빤히 바라보았다.
살짝 처진 눈꼬리.
웃을 때마다 끝이 접혀 인상이 좋아 보였다.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였으며 사내치고 피부가 여인의 피부처럼 부드러웠다.
그에 나는 곧 금적금의 얼굴과 겹쳐지는 사내를 떠올리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광상왕 狂商王!’
잊고 있었다.
삼대상단으로 불렸지만 제일을 다투는 다른 상단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던 흑야상단을 단번에 중원 제일상단으로 끌어올린 인물.
‘대박이군.’
뛰어난 수완과 냉철한 통찰력, 그리고 뒤따라 주는 역대급 운까지.
마치 신이 그를 도와주듯 손대는 것마다 성공하며 흑야상단을 일으켰던 그를 보며 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마뇌가 말한 적이 있었다.
본교에서 장사를 제대로 해 보려고 한다고.
그러니 혹시 무림행을 하다가 괜찮은 인물이 보이면 영입을 부탁한다고 말이다.
그에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왜냐고?
그야, 내가 놀기도 바빴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나의 눈앞에 나타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본교의 소교주로서 일을 해 줘야지.
‘운도 좋지.’
그나저나 진짜 운이 좋았다.
상단을 이끌 인재가 필요하니 전생에서 높은 위치에 올랐던 상인이 나의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소교주님……?”
그러한 나의 진득한 시선을 느꼈을까?
금적금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너, 아직 살아 있는 동물들을 수집하고 직접 죽이냐?”
“!!”
중원 최고의 상인이라 불림에도 불구하고 광상왕 狂商王, 혹은 피에 미쳤다 하여 혈상 血商 이라는 별호로 불려야 했던 괴인 怪人.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엽기적인 행각을 이어 나가던 금적금을 바라보며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고, 나의 물음에 금적금은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