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화
제172장 회동 會同
“그 대신.”
나 아직 말 안 끝났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악여화를 바라보는 위천.
그런 녀석을 보며 내가 다시 입을 열자 녀석이 언제 웃었냐는 듯 긴장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동행한다.”
“예……?”
내가 동행하겠다는 말.
그 말에 위천이 벙 찐 표정을 지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는지 상당히 놀랐나 보다.
우선, 나는 그런 녀석을 무시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서은설.
나는 그녀의 푸른 두 눈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은설, 정말 미안한데…….”
“알겠어.”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나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나올 것인지 집작을 하였을까?
서은설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서은설과 단둘이 무림행을 하며 추억을 만들려고 했던 기존의 계획.
그 계획을 일방적으로 비트는 나의 행동은 상당히 이기적이었기에 서은설이 불같이 화를 내도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저 그녀의 눈치를 보며 용서를 구할 수밖에.
하지만.
“정말 괜찮아, 나도 천이가 걱정되고, 또 우리 악 동생이랑 같이 추억 만드는 것도 좋아.”
오히려 서은설은 악여화를 가볍게 안으며 정말 괜찮다는 듯 나를 향해 말했다.
그에 나는 진심으로 고맙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정말 고마워.”
“그래, 나한테 잘해.”
“응.”
정말 잘할게.
장난스럽게 응하는 서은설을 보며 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알겠냐?”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위천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정색을 했다.
그에 위천은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악여화를 바라보았다.
끄덕.
“괜찮다고……? 재미있겠다니? 재미없을 거야…….”
위천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악여화.
그러한 악여화의 행동에 위천이 흔들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자식이.
대놓고 싫은 티 내네.
악여화의 대답에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박수를 한 번 치고는 입을 열었다.
짝!
“그럼 결정! 오늘 쉬고, 내일 움직인다.”
“예…….”
“응.”
나의 결정에 위천과 서은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악여화가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네 명이서 함께 다니기로 했고, 목적지는 산동악가가 있는 산동 지역으로 정해졌다.
* * *
현 무림을 대표하는 십대고수 삼황 三皇 칠왕 七王.
그리고 그다음 세대를 이을 것이라 알려진 중년 세대의 대표 고수 육천신군 六天神君.
마지막으로.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진 이성 二星 까지.
무림의 역사상 최초로 이루어진 정마대회, 혹은 마정대회가 끝이 나고 무림을 대표하는 고수들의 이름에 두 명이 추가가 되었다.
바로, 천마신교의 소교주에게 패배하여 사망한 사황성의 부성주 사권왕 死拳王 권진욱을 대신하여 매화신검 梅畵神劍에서 매화검왕 梅畵劍王 으로 변경된 화산파제일검 적화. 그리고 정마대회, 혹은 마정대회라 불리는 고금 최초의 대회에서 우승하여 약관을 갓 넘긴 나이에 십대고수와 같은 경지를 보여 준 젊은 절대고수, 적룡성 赤龍星 윤 문.
이렇게 두 명의 고수가 전 무림에 명성을 떨치며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마신교의 소교주임에도 불구하고 무림공적을 직접 사살하고, 그 현상금으로 피해자들에게 기부를 한 협객.
마인임에도 불구하고 무림을 수호한다는 정파의 무림인들보다 더 협객의 모습을 보여 주어 사람들에게 거짓된 마를 참하다, 라고 하여 위마참군 僞魔斬君이라 불렸던 고수.
십대고수 다음으로 불리는 육천신군을 칠천신군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이번 대회의 우승자인 적룡성 윤문과 우정을 나누고, 협을 행하였으며 마지막 번외의 경기에서 인외 人外의 대련을 보여 준 천마신교의 소교주, 위극신에게 수라협성 修羅俠星 이라는 기괴한 별호가 주어졌다.
수라라는 사이한 글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뒤에는 정의를 듯하는 협이라는 글자가 오는 괴상한 별호.
사람들은 수라협성 위극신과 적룡성 윤문을 같은 경지로 추정되는 칠왕의 고수들과 나란히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위극신과 윤문의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그에 사람들은 그들을 떠오르는 별, 그리고 무림을 환하게 밝혀 줄 찬란한 별이라고 하여 별 성 星, 진한 우정을 나눈 두 명을 엮어 이성 二星 이라는 영광된 별호를 붙여 주었다.
천마신교의 소교주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세력들의 무인들에게 인정을 받은 수라협성 위극신, 그리고 출신을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 준 협객의 모습과 모든 무인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에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적룡성 윤문까지.
이번 대회가 끝이 나자마자 삼십 년 전부터 변함이 없던 무림이 큰 변화를 보였다.
그에 사람들은 기대했다.
무림을 밝혀 줄 찬란한 별.
이제 곧 은퇴를 앞둔 절대고수들과 같은 경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후기지수의 나이인 위극신과 윤문이 보여 줄 찬란할 무림의 미래, 그리고 이성을 중심으로 장강의 끝물을 밀어낼 새로운 물, 육천신군과 그들의 뒤를 이을 무림의 후기지수들까지 말이다.
그렇게 정마대회, 또는 마정대회는 무림의 큰 변화를 남김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기대를 심어 주었고, 그와 동시에 정마회동 正魔會同, 또는 마정회동 魔正會同 이 시작되었다.
“북원 北元의 동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무림맹과 천마신교의 회동.
무림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첫 번째 안건은 바로 북원의 잔재였다.
한때 저 멀리 서역의 땅까지 지배하였으나 지금은 한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명 제국에 의해 북쪽으로 밀려난 원 元.
그들은 호시탐탐 제국을 노리고 있었고 그것은 곧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명이 건국되기 전, 원의 천하일 때 무림은 암흑기라 불리며 모든 세력들이 몸을 사렸다.
유목 민족인 원.
그들은 유목 민족 특유의 강건한 기풍을 중시하는 자들로서 문 文 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자신의 민족이 제일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관무 불가침 조약과 같은 상식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천마신교는 그것을 무시하고 삼십 년 전 전쟁을 일으켰지만 그때는 원이 몰락하던 시기였으며, 전국이 혼란스러웠던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원이 몰락하지 않고 처음과도 같은 강한 황권과 군사력을 유지하였다면?
아무리 서역과의 교류를 꽉 쥐고 있는 천마신교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행동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럴 정도로 무림의 모든 세력들이 경계했던 원 元.
그들의 잔재인 북원의 등장에 장로들이 신음을 흘렸다.
현 노년의 나이에 접어든 장로들.
바로 그들이 원의 눈치를 살피며 몸을 사렸던 세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 맹의 군사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북원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제갈명의 말.
그 말에 천마신교의 군사인 마뇌가 물었다.
“우리는 서로의 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적은 바로 북원. 그것을 확실히 하였으면 합니다. 그리고 본 맹과 귀교의 동맹을 강화할 무력 대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
“후기지수들을 중심으로 하여 무력대를 만든다면 분명 미래에는…….”
“왜, 우리의 적이 북원입니까?”
마뇌는 물론 천마신교의 인물들을 설득하기 위해 계속 입을 열던 제갈명.
그는 자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끊고 들어오는 마뇌의 언사에 눈가를 꿈틀거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한 제갈명의 불쾌한 표정을 보았지만 마뇌는 짐짓 모른 척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의 적은 엄밀히 따지면 북원이 아닌 귀 맹입니다.”
“이보시오!”
마뇌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도왕 刀王 이라는 별호로 불리는 육장로, 팽진혁이 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에.
“육장로는 목소리를 낮추는 것이 좋겠군요.”
가만히 앉아 있던 천마신교의 삼장로.
창마가 서늘한 눈빛으로 팽진혁을 바라보며 경고했다.
그에 팽진혁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창마의 서늘한 눈빛과 비교되는, 뜨거운 눈빛으로 창마를 노려보았다.
“지금 귀교의 군사가 무례를 저질렀소.”
“군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뭐라?”
창마의 대답에 팽진혁이 눈가를 꿈틀거렸다.
그에 창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본교를 마인들의 집단이라 여론을 조장하며 본교가 중원에 나오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있는 곳이 귀 맹입니다. 본교의 입장에서는 북으로 쫓겨나 호시탐탐 기회를 살피는 북원보다는 중원을 제집인 양 차지하고 있는 귀 맹이 더 적이겠지요.”
“이보시오!”
창마의 논리 정연한 말.
사실에 근거한 말에 팽진혁이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그에.
피식.
“말하시오. 계속 이보시오만 합니까?”
피식 미소를 지은 창마가 도발하듯 말했다.
할 말이 없어 계속해서 언성만 높이는 자신의 행동을 비난하는 창마의 행동에 팽진혁은 금방이라도 도를 뽑으려고 했지만.
“그만.”
상석에 앉아 있던 천진이 내공을 실어 창마와 팽진혁 사이에 흐르던 후끈한 공기를 차단했다.
더 이상 과열되지 않도록 알맞게 흐름을 끊은 천진의 행동에 창마는 아쉽다는 표정을, 팽진혁은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교되는 두 명의 모습을 번갈아 본 천진.
그가 팽진혁을 바라보았다.
“육장로, 신교의 입장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예?”
자신이 잘못 들었을까?
천진의 입에서 나온 믿기지 않는 말에 팽진혁이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에 천진은 다시 입을 열어다.
“이곳은 서로를 위한 화합의 자리.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어갑시다.”
“맹주님!”
“크흠!”
천진의 입에서 나온 불편한 말.
그 말에 팽진혁은 분한 표정을 지었고 나머지 장로들이 불편하다는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였다.
그러한 장로들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천진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은은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마뇌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귀교에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오?”
“솔직히 제법 많습니다.”
“말하시오. 이 자리는 그것을 위해 마련된 자리이니까.”
마뇌의 말에 천진이 대답했다.
그러한 천진의 모습에 장로들은 불편한 표정으로 천진을 바라보았다.
천마신교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천진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그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무림맹주 천진을 아주 잘 알고 있기에 절대 본 맹이 피해를 볼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한 천진의 허락에 마뇌가 고개를 돌려 천마를 바라보았다.
끄덕.
그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뇌는 고개를 살짝 숙인 다음 다시 무림맹의 장로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첫 번째. 본교는 중원의 상단들과 직접적으로 교류를 하려 합니다.”
“이미 교류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뇌의 이야기에 제갈명이 불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높은 수수료를 챙기며 중원의 상단들과 교류를 하고 있는 천마신교다.
천마신교를 통하지 않으면 서역의 물건을 들일 수가 없었기에 무림맹은 알면서도 높은 수수료를 쳐주었다.
그래야 서역의 물건을 들일 수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한 사실이 제법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제갈명의 불퉁한 말에 마뇌가 고개를 돌려 제갈명을 바라보았다.
“본교의 상단이 직접 중원에 나서겠다는 뜻입니다.”
“!!”
그동안 천마신교는 높은 수수료를 챙겼지만 그래 봤자 고작이다.
만약 천마신교가 직접 중원으로 나가 물건을 판다면?
중간 수수료는 생략되며 모든 수익을 천마신교가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적대 세력인 무림맹이 용납할 수 없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가뜩이나 돈이 많은 단일 세력, 천마신교가 더욱더 강세한 세력을 자랑할 테니 말이다.
약 이십오 년 전 끝이 난 정마대전 正魔大戰.
그때 맺은 협정 중 하나가 바로 직접적인 거래를 금한다는 것이었고, 그것으로 천마신교의 힘을 제재하던 무림맹은 갑작스러운 마뇌의 발언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제안은 바로 대놓고 천마신교의 힘을 키우겠다는 뜻이니 말이다.
마뇌의 입에서 나온 제안에 장로들은 합심하여 모두가 거절했고 그로 인해 천마신교 측에서 또한 무림맹의 제안, 북원의 토벌대를 만들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게 서로의 양보도 없는 회의가 지속되었고 해가 지고 나서야 길었던 첫날의 회동은 끝이 났다.
아무런 결과도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