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제169장 작별 作別
“그 친구 어디 있습니까?”
홀로 생각을 정리한 환마.
그가 자세를 바로 하며 궁금하다는 어조로 물었다.
거참, 어련히 만나게 해 줄 텐데 성격도 급하다.
“오 년 동안 마음에 드는 제자감이 없었나 봅니다?”
자그마치 오 년이나 감찰사의 자격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제자를 찾았던 사장로 환마.
급해 보이는 그를 보며 내가 장난스러운 어조로 묻자 환마가 볼을 긁적였다.
“장로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제자를 들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훗날에는 제 뒤를 이어 장로에 앉히고 싶습니다.”
“사장로로 말입니까?”
“글쎄요.”
장난스러운 나의 물음에 환마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이 양반이.
은근 야망이 있다.
입맹 순서로 장로를 정하는 무림맹과는 달리 본교에서는 강함의 정도로 장로 순서를 정한다.
순서에 대한 욕심을 살짝 내보이는 묘한 환마의 대답에 나 또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본교는 늘 강자를 존중하니 말이다.
“교주님에게 인사는 드렸습니까?”
“물론이지요.”
나의 물음에 환마와 마뇌가 대답했다.
하긴, 당연했다.
본교의 일인자이자 이들의 주군은 내가 아닌 천마였다.
당연히 천마에게 먼저 인사를 했겠지.
그에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들어가 보십시오. 사장로의 제자감인 녀석과, 군사가 마음에 들어 할 녀석이 있을 것입니다.”
“하오문의 소문주 말입니까?”
역시, 정보가 빠르다.
본교의 정보를 통제하는 비마각 飛魔閣의 각주이기도 한 마뇌의 물음에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이와는 또 다른 천재입니다. 키워 보시지요.”
“호오, 흥미롭군요.”
천재라는 나의 말.
평소 잘 하지 않는 나의 확언에 마뇌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꾸벅.
둘 다 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만 들어가 보겠다는 것이다.
이 양반들.
몸이 달아올랐다.
상급자인 나에게 그만 물러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다니, 본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에 마뇌와 환마 또한 나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고 말이다.
그런 둘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이내 두 중년인은 황급히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두 명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
나는 다시 몸을 돌렸다.
생각지 못한 만남에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그에 나는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본교에 배정된 전각을 넘어 무림맹의 무사들에게 인사를 받으며 걸음을 옮기기를 잠시.
나는 무사들에 의해 통제되어 한적해진 어느 연무장에 도착했다.
“왔냐?”
그렇게 내가 연무장에 들어서자마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주윤문이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겨 주었다.
중원 무림의 심장과도 같은 무림맹.
그곳의 성스러운 연무장 한가운데서 술병을 기울이는 주윤문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스윽.
그러고는 녀석의 옆에 앉아 또 다른 술병을 집어 들었다.
“왜 불렀어?”
이곳에 오느라 말랐던 목을 축인 것도 잠시.
내가 술병을 내려놓자 주윤문이 물었다.
“가려고.”
곧 시작될 예정인 연회 宴會.
나는 그곳에 가지 않고 은설과 함께 조용히 무림맹에서 벗어날 것이다.
나의 일차적인 목표는 본교의 인식을 바꾸는 것.
순수하고 맑은 위천과 최고의 친화력을 지니고 있는 주윤문 덕에 본교의 인상은 상당히 좋아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처럼 미련 없이 떠날 수가 있었다.
“나 버리고?”
나의 대답에 주윤문이 짐짓 처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지랄.”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누가 보면 내가 지 연인인 줄 알겠다.
장난스럽게 받아친 나의 대답에 주윤문 또한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붉은빛으로 물든 노을을 올려다보았다.
“나 황궁으로 돌아갈 거다.”
“벌써?”
“그래, 너를 만나러 잠깐 나온 거야. 내 신하들이 잘못한 것을 바로잡기도 해야 했고.”
놀란 나의 물음.
그 물음에 주윤문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생각은?”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씨익.
녀석의 대답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나의 조언이 먹혔나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한 녀석.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곧바로 자신의 신념을 바꾼 녀석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내 도움은 필요 없어?”
진심이다.
녀석이 무엇을 요구하더라도 나는 들어줄 것이다.
녀석의 변화에는 나의 책임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나의 진심을 느꼈을까?
녀석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다. 하지만 괜찮아.”
“그래?”
“응, 내가 해야지.”
나의 물음에 주윤문이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붉은 노을빛을 담고 있는 주윤문의 두 눈동자.
그 두 눈 속에서 흔들림 없는 심지를 느낀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혈영이라고 했나?”
“네.”
주윤문의 수신호위, 혈영.
나의 부름에 혈영이 짧게 대답했다.
“뭐야? 내가 허락 안 했는데 왜 모습을 드러내?”
나의 부름에 모습을 드러낸 혈영.
그런 혈영을 보며 주윤문이 어이가 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에.
“아…… 죄송합니다!”
혈영이 눈에 띄게 당황해하며 용서를 구했다.
“나보다 이 녀석이 더 윗사람으로 보이지?”
“아닙니다.”
“네 주인은 누구지?”
“폐하이십니다.”
“헌데, 왜 이 친구 말을 들어?”
“폐하의 벗…….”
“그래, 내 벗이니까 나보다 높다?”
“송구하옵니다!”
애 잡겠다.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혈영을 계속해서 몰아붙이는 주윤문.
그런 녀석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은 내가 입을 열었다.
“그만해. 내가 혈영에게 미안해지잖아.”
“크크, 알겠다. 혈영 난 괜찮으니 그만 고개를 들어.”
나의 말림에 주윤문이 웃으며 대답한 다음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하고 있는 혈영에게 말했다.
“황공하옵니다.”
그에 혈영은 다시 한번 고개를 더 숙여 보인 다음 고개를 들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정말 사내답게 생겼다.
수신호위로 살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혈영의 얼굴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윤문, 잘 부탁해.”
“물론입니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보필할 것입니다.”
“혹, 도움이 필요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에게 와.”
“어허, 나 안 약해.”
이어진 나의 말에 혈영 대신 주윤문이 대답했다.
그에 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혈영만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녀석이라면 절대 나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을 것이야. 그러니 그대가 독단적으로라도 나에게 와 줘.”
“…….”
“부탁하지.”
“저는 폐하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이어진 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기대가 무색하게도 혈영은 짧게 대답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윤문의 수신호위라면 다른 수신호위와는 달라야지.”
“…….”
“그대는 인형이 아니잖아?”
흠칫!
어, 제법 효과가 있었나 보다.
나의 마지막 말에 혈영이 눈에 띄게 흠칫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윤문을 바라보았다.
“극신의 말이 맞아. 혈영. 너는 인형이 아니야, 네 생각대로 움직여. 나는 최대한 존중할 테니까.”
그러한 나의 시선에 주윤문이 위엄 어린 목소리로 혈영에게 말했다.
그에.
“황명을 받드나이다!”
혈영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 제법 황제 태 나는데?”
“황제다, 너 그 발언 상당히 위험한 거 알지?”
순간 황궁에 온 듯한 기분.
그럴 정도로 주윤문의 몸에서 황제의 위엄이 뿜어져 나왔었다.
그에 내가 장난스레 이야기하자 주윤문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송구하옵니다.”
“그만해.”
그런 녀석의 장난에 나 또한 장난스레 대답했다.
과장을 하며 고개를 숙여 보이자 주윤문이 피식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그렇게 우리 둘이 장난을 치는 동안 대화가 끝난 것을 알아차린 혈영은 다시 본연의 위치로 돌아갔고 나와 주윤문은 술병을 부딪친 다음 다시 들이켰다.
“또 보자.”
“그래.”
그렇게 술 한 병을 비우고.
나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주윤문은 조금의 아쉬움도 없이 대답했다.
우리는 서로가 알고 있었다.
이 이별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에 나는 미련 없이 돌아섰고, 주윤문 또한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 * *
“떠나시는 겐가?”
“네.”
무림맹의 맹주실.
그곳을 찾은 나는 연회복을 입고 나서려던 천진을 만날 수 있었고, 잠깐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이곳으로 들어섰다.
천진이 직접 내려 준 차를 한 모금 마신 나의 대답에 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게 자라 주어 고맙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이곳은 공석이 아닌 사석.
나의 외조부인 천진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가 말했다.
그에 천진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미소를 지었다.
“고맙구나.”
“아닙니다.”
“그래, 어디로 갈 생각인가?”
나의 대답에 천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
거참.
차 좀 마시고 싶은데 계속해서 말을 거시네.
전생과는 달리 호감이 가득한 천진의 물음에 나는 속으로 고소를 지었다.
원래 말 많은 사람은 싫어하지만…… 핏줄이라 그런지 천진의 이러한 행동이 싫지 않았다.
“천천히 무림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소교주로서?”
“제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으니까요.”
천진의 물음에 내가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천진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귀찮겠구나.”
“감당해야지요.”
나는 본교의 소교주다.
그 어떤 귀찮음이 있더라도 나는 나의 정체를 부정하거나 숨길 생각은 없었다.
그러는 것이 바로 본교의 소교주로서의 무게일 테니까.
흔들림 없는 나의 대답에 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해.”
“감사합니다.”
만족스러운 천진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잠깐의 침묵이 찾아왔고 우리 둘은 조금은 식어 버린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뇌선은?”
“돌려 드립니까?”
어머니를 통해 받은 천진의 물건, 뇌선.
옥색의 철로 만들어진 부채를 언급한 천진을 보며 내가 질문으로 대답했다.
그에 천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나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검만큼이나 자주 사용해 주겠느냐?”
“섭선을 말입니까?”
무림의 풍류공자들이나 사용할 법한 섭선.
그것을 많이 사용해 달라는 천진의 부탁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에 천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나와 인연이 있었던 사내의 물건이다. 훗날 찾으러 오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맡겼지만 그는 찾아오지 않았지.”
“…….”
“그것을 네 어미에게 전했던 것은 그 친구가 네 어미를 찾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친구가 네 어미를 지켜 주기를 바랐지. 하지만 그 친구는 끝내 등장하지 않았더구나.”
“그렇습니까.”
“그래, 하지만 나는 그 친구와의 인연이 이렇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그렇기에 나와 그 친구의 인연을 이제는 너에게 넘겨주고 싶구나.”
“…….”
“너에게 해가 될 친구는 아닐 것이다.”
뭔가 귀찮은 일에 엮인 것 같았다.
진지한 어조로 말하는 천진을 보며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에.
“싫으냐……?”
시무룩한 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씨, 내가 또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어째 알고.
노인네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시무룩하니 가슴 한편이 불편했다.
게다가 나의 외조부가 아닌가!
비록 이번에 처음 봤다고 하더라도 핏줄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에 결국.
“알겠습니다.”
나는 천진의 부탁을 수락하고 말았다.
그런 나의 수락에 천진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후우, 착한 내가 고생해야지 뭐.
그렇게 나는 무림맹에서의 연회가 시작되기 전.
서은설과 함께 무림맹을 떠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