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제162장 잘린 매화 切梅畵
“교주님, 아직 저는 부족합니다. 부디 그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천마의 입에서 나온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
그 말에 나는 진심이 담긴 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알도록.”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더 이상 이야기하기 싫다는 듯 천마가 이야기를 끝내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
나의 시선을 피하는 어머니와 놀란 표정 그대로 굳어 버린 위천을 볼 수가 있었다.
보아하니 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었고, 위천은 모르고 있었다.
그에 나는.
우웅.
내공을 끌어 올려 기막을 둘렀다.
지금부터 이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흘러 나가지 않을 것이다.
수신호위인 일살의 귀에까지도 말이다.
“싫습니다.”
그렇게 기막을 두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당당하게 선 채로 천마를 바라보았다.
꿈틀.
그런 나의 대답에 두 눈가를 꿈틀거린 천마.
그가 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
내가 지독하게도 무서워했던 그 눈빛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천마의 그 눈빛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이제 스물둘입니다. 그런 제가 지존의 자리에 오르다니요? 게다가 아직 교주님께서는 패배도 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라.”
“…….”
나의 대답에 천마는 싸늘한 어조로 다시 말했고 그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에 천마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짜증 나는 놈.”
“…….”
정말…… 너무 설쳤나 보다.
매화신검 적화와 대련이 있었던 날.
그날 오랜만에 만난 무인과의 대련에 심취하여 그만 전력을 잠깐 보이고 말았다.
그 모습을 잠깐 보았던 천마.
그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고 이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공절검 空切劍.”
공절검 空切劍.
말 그대로 허공을 가르는 검으로서 화경의 고수들이 꿈을 꾸는 경지인, 현경의 경지에 접어 들어야 사용이 가능한 기술이다.
고금을 통틀어 몇 없는 고수들이 펼쳤다고 알려진 기술로서 몇몇 무인들은 공절검이라는 기술을 부정하기도 했다.
너무나도 허황된 이야기라며 말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공절검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베어 그 순간의 시간 자체를 정지시켜 버리는.
나아가 존재 자체를 사라져 버리게 하는,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인외 人外 의 기술이었다.
그 기술을 언급하는 천마를 보며 나는 얼굴을 굳혔고, 그에 천마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묻지.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나?”
“…….”
여기서는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천마의 물음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그에.
“!!”
쨍그랑.
“헐…….”
천소화는 두 눈을 크게 떴고 위천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리며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런 두 명은 잠깐 무시하고.
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 천마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움찔.
나의 입에서 나온 아버지라는 단어.
그 단어에 천마가 움찔했다.
아주 미세한 움직이었지만 절대의 경지를 넘어선 나에게는 훤히 보였고, 그에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천마를 바라보았다.
“저, 은설과 여행도 한 번 못 했습니다.”
“뭐?”
“저 하나 믿고 사황성을 나선 우리 은설이. 그런 은설이가 제대로 여행도 한 번 못 하고 추억도 없이 천산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습니까?”
“그게 나랑 뭔 상관이냐.”
“제가 아버지 아들이고, 은설이는 아버지의 며느리입니다.”
“…….”
“자고로 사위 사랑은 장모,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입니다.”
“처음 듣는 소리구나.”
“아버지께서는 장모님이 안…… 크흠, 어머니 죄송합니다.”
이런.
뜻하지 않게 선을 넘어 버렸다.
천마를 설득하기 위해 있는 말 없는 말을 내뱉던 나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어머니에게 사과를 했다.
그에 어머니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니다, 그래 네 말이 맞지. 사위 사랑은 장모,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지.”
“소화.”
어머니의 말에 천마가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에 어머니는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천마를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그 자리에 있어 줘요.”
“하지만…….”
“부탁드려요.”
“…….”
자신의 손을 잡으며 부탁해 오는 천소화의 모습에 천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극신.”
“네.”
“이 회동 會同이 끝이 나고 바로 떠나라.”
“알겠습니다.”
천마의 말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저도 갈래요!”
위천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맞다, 녀석도 여행이 가고 싶을 것이다.
천산에서 태어나 천산에서 자라 온 녀석.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래, 가족인데 같이 가면 어떻겠는가?
그에 내가 함께 가서 맛난 거 먹자고 막 입을 열려던 찰나.
“아들, 눈치 챙기렴.”
어머니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위천을 만류했다.
부드러운 미소 속에 담긴 단호함.
그 단호함에 위천은 움찔했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극신아.”
“네, 어머니.”
무섭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부르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은설이에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렴. 후회 없도록.”
“네.”
“친구, 동생들 불러서 술 먹고 다니면 이 어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란다.”
움찔.
“대답해야지.”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머니.
* * *
와아아아!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가 가득한 연무장.
그 연무장의 위에 오른 주윤문이 맞은편에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는 사내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
“하하, 오랜만입니다, 윤 공자.”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는 주윤문을 보며 화산파의 제자, 유명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받아 주었다.
“엥? 형이라고 하라니까.”
“그때는 술에 취해 제가 실수했습니다.”
주윤문을 형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던 위천과 왕일. 그리고 어린 시절 자신의 벗이기도 했던 남궁정을 보며 술에 취한 유명은 자기도 형이라 부르겠다 하였다.
그것을 주윤문은 좋다고 수락했고 말이다.
그것을 언급하며 유명이 명문가의 제자답게 정중한 자세로 사과를 했다.
그에 주윤문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었다.
“아쉽네. 매화의 동생이 생겨서 좋았는데.”
“하하, 그러면 이것은 어떻습니까?”
“뭘?”
아쉽다는 주윤문의 대답에 웃으며 대답한 유명.
그에 주윤문이 의문 어린 어조로 물었다.
“이 대회에서 제가 지면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뭐야,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 거네.”
유명의 제안에 주윤문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일견 유명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워낙 시원스레 말했기에 농담으로 들려왔다.
그에 유명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스르릉.
검을 뽑아 자세를 취하였다.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준비되면 와.”
유명의 말에 주윤문이 웃으며 대답했다.
스르릉.
주윤문의 허리춤에서 뽑혀 나온 적색의 검.
흔치 않은 적색의 검신을 지닌 검을 보며 유명은 두 눈을 반작였다.
화산파의 신물 매화검.
그것과 비슷한 색을 띠고 있는 검의 모습이 신기했던 것이다.
“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뭔데?”
“그 검, 이름이 무엇입니까.”
검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유명의 질문.
그 질문에 주윤문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홍무 紅武”
“재미있는 이름이군요.”
명 제국의 태황제인 홍무제 洪武帝.
위대한 태황제의 연호와 비슷한 발음에 유명이 씨익 미소를 지었고 주윤문 또한 진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황실을 별로 안 좋아해서.”
“그 말,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래.”
장난스러운 주윤문의 대답에 유명이 말했고, 그에 주윤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대화가 끝이 나고.
타앗!
유명이 먼저 움직였다.
우웅!
유명의 검에서 가볍게 일어난 검명 劍鳴.
그 맑은 소리에 환호성을 지르던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는 대련에 집중했다.
이제부터 제대로 된 대련의 시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챙!
유명의 내공으로 인해 검명을 떨쳤던 검.
그 검을 주윤문은 가볍게 쳐 내었다.
그에 유명은 튕겨 내는 힘을 이용해 한 바퀴 돌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스윽.
그러한 유명의 공격에 주윤문은 뒤로 반걸음 물러나 가볍게 검을 피하였고.
“빈틈.”
유명의 빈틈에 가볍게 찔러 넣었다.
탓!
그러한 주윤문의 공격에 유명은 허리를 뒤로 완전 꺾었고 이내.
탓!
그 탄력을 받아 뒤로 한 바퀴 돌며 거리를 벌렸다.
“제법.”
좁은 거리.
공격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거리를 벌린 유명의 행동은 옳았다.
그에 주윤문은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유명을 바라보았다.
“역시, 저희의 수준을 벗어나셨군요.”
후기지수가 아닌, 그 윗대의 실력을 단 한 수로 보여 준 주윤문.
그러한 주윤문의 한 수에 유명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주윤문은 검을 들어 어깨에 걸쳤다.
“그러니, 형이라고 불러.”
“하나만 묻겠습니다.”
“뭐?”
“공자의 꿈은 무엇입니까.”
“…….”
유명의 입에서 나온 뜬금없는 말.
그 말에 주윤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꿈?
그것이 무엇일까.
아스나와의 혼인?
절대 황권?
무림의 멸망?
아직 제대로 정하지 못했다.
확실한 건 무림의 멸망은 아니다.
그럼 절대 황권?
모르겠다.
무림의 멸망을 원하지 않으면서 절대 황권을 원한다?
그렇다면 자신은 신하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무림멸망 하나로 모여든 신하들.
그러한 신하들을 모두 죽이고 다시 정리를 해야 하나?
아니다, 그렇다면 폭군이 되어 버리며 유림 儒林 에서의 반발 또한 엄청날 것이다.
아직 제국이 세워진 지 채 반백 년도 되지 않았기에 전통이 부족한 지금 이 상황.
그러다 보니 제이의 홍건적의 난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에 주윤문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유명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제 꿈은. 화산의 검이, 천하제일검이 되는 것입니다.”
우웅!
유명의 포부.
자신감이 가득한 그의 포부와 동시에 유명의 검이 강하게 울었고 연무장 위로 매화잎이 떨어졌다.
이십사수매화검법 二十四手梅花劍法
육식 六式 매화낙락 梅花落落.
하늘에서 매화 꽃잎이 떨어졌다.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붉은 꽃잎을 보며 주윤문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제법이군.”
갓 약관에 접어든 어린 나이.
그러한 나이에 일대제자들이나 선보일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쳐 보이는 유명을 보며 주윤문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도 그에 예를 갖추겠다.”
아직 어린 무인이 최선을 다한 한 수를 보여 주고 있었다.
회귀를 통해 중년의 나이를 넘어선 주윤문.
황제이기 전에 무인인 그가 살짝 미소를 지었고 곧 검을 들었다.
우웅!
그러자 거대한 검명이 울려 퍼졌고.
이내.
웅!
더 강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이내 적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와 주윤문의 검을 감싸 안았다.
“검기!”
그러한 주윤문의 검, 홍무의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적협공자 赤俠公子 윤문.
그는 갓 약관을 넘어선 사내로 아직 후기지수로 불릴 나이이다.
헌데 그러한 자가 절정을 넘어 초절정의 경지에 들어서야 보일 수 있는 검기를 보이다니?
내공을 유형화시켜 검을 더욱더 단단하게 만드는 기술, 검기.
그러한 기술이 생각지도 못하게 후기지수들의 대련에 모습을 보였고 그에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서걱!
“아…….”
하늘에서 떨어지던 매화 꽃잎이 반으로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