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제157장 청 바 지 靑春今!
“반갑습니다 이공자. 소림의 공명이라고 합니다.”
천마신교인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
그곳에서 웃으며 좋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위천은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인상 좋은 대머리의 청년 하나가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나이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자신보다 많아 보이는 젊은 스님, 공명의 예의 바른 인사에 위천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꾸벅.
“천마신교의 이공자, 위천이에요. 반가워요 공명 스님.”
고개를 살짝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팽악에게 보여 주었던 차가운 모습에 내심 긴장을 했던 공명과 무림맹의 인사들은 생각보다 예의 바른 위천의 모습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위천이 숙였던 고개를 들자 공명은 언제 놀랐냐는 듯 다시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좀 전에 위 공자가 말한 대로 이곳은 귀교와 본 맹의 화합을 위한 자리이지 않습니까? 하여, 제가 위 공자에게 한 잔 술을 따라 주고 싶은데 괜찮을는지요?”
“아! 저는 괜찮아요!”
예의 바른 공명의 말.
술을 따라 주겠다는 제안에 위천이 손을 들어 보이며 거절했다.
그런 위천의 거절에 무림맹의 인사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위천을 바라보았다.
먼저 친하게 지내자며 다가가 술을 건넨 공명의 행동.
금주 禁酒를 생활화하는 소림의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술을 건네겠다는 공명의 행동은 무림맹의 입장에서 먼저 굽히고 들어가겠다는 뜻과 같았다.
헌데 그런 공명의 제안을 거절하다니?
공명의 입장을 무시하는,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그런 위천의 거절에 무림맹의 인사들이 술렁였지만 공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처음과 같은 미소를 계속 유지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위 공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 같군요.”
자신 또한 심기가 상한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는 공명의 모습에 무림맹의 인사들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소림이구나, 라며 말이다.
그런 공명의 사과에 위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사실, 술은 맛없어서 안 좋아하거든요.”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미소를 짓는 위천.
그런 위천의 모습에 공명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악의라고는 전혀 없는 위천의 모습에 그가 진짜 술을 안 좋아해서 거절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에 공명은 마음이 한편 편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저는 술을 마셔 보지 않아 모르지만, 상당히 쓴가 보군요.”
“네! 엄청 맛없어요! 우리 형은 그걸 왜 마시는지…….”
“하하, 소교주님께서는 술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완전 항아리째로 마셔요! 사람이 아니에요! 그 모습도 멋있긴 한데…… 저는 역시 그렇게 못하겠어요.”
공명의 웃음기 어린 말에 위천이 흥분 어린 어조로 말했다.
소년의 티를 갓 벗은 어린 청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순수한 소년미가 남아 있는 위천의 모습에 공명은 언제 그를 조심했냐는 듯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저는 소교주님을 만나면 피해야겠군요.”
“아, 스님들은 술을 못 마시죠?”
“네, 맞습니다.”
공명의 말에 위천이 물었다.
그에 공명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공명의 모습에 위천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잘됐네요. 마실 필요 없어요. 맛없어요.”
“하하, 그런가요?”
상상만 해도 맛이 없다는 듯 몸서리를 치는 위천의 행동과 말.
그 모습에 공명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공명이 웃으며 위천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위천의 옆에서 계속 불만 어린 표정을 짓고 있던 마독이 입을 열었다.
“이봐, 천. 술이 얼마나 맛있다고?”
“그래, 이건 천이가 잘못했어.”
마독의 불만 어린 말에 옆에 있던 왕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에 위천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마독과 왕일을 보며 두 눈에 힘을 주었다.
“무슨 소리야. 술을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법. 취향 존중 좀 해 줘.”
“하하!”
두 눈에 힘을 주며 강력한 어조로 위천이 반발하자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궁정이 소리 내어 웃었다.
미소는 짓지만 소리 내서 웃은 적은 없었던 남궁정이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남궁정을 바라보았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것일까?
남궁정이 웃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계속 어려 있었다.
웃음을 멈추고 위천을 바라본 남궁정, 그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천아, 너도 술이 맛나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도 존중해야겠구나.”
“아…….”
정곡을 찌르는 남궁정의 말에 위천이 탄성을 내뱉었다.
남궁정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자신이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것을 깨달은 위천은 고개를 돌렸다.
“미안, 취향 존중할게.”
그러고는 마독과 왕일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며 자신의 무례를 사과했다.
그런 위천의 사과에.
“응, 취존 부탁해.”
“취존 말 좋네. 우리도 취존할게.”
장난스럽게 말을 줄인 마독의 말을 왕일이 웃으며 받은 다음 위천에게 말했다.
그에 위천 또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가볍게 서로 대화를 나누는 위천과 마독, 왕일 그리고 남궁정까지.
이 네 명의 격의 없고 편안한 모습에 공명은 물론 모든 무림맹의 인사들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스윽.
천마신교의 이공자라는 배경과 팽악에게 보여 주었던 차가움에 그를 꺼리던 무인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고.
“하하, 유 공자 좀 전에 이공자와 인사를 나누셨지요?”
공명은 웃으며 무림맹의 인사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위천과 대화를 하도록 이어 주었다.
그렇게 연회장의 분위기는 천마신교의 진영으로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천마신교를 두려워하지만 아직 젊은 나이였기에 호기심이 왕성한 젊은 무인들.
그들이 자신의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위천은 물론, 흑천단의 단원들에게까지 다가갔던 것이다.
젊은 무인들의 술 권유에 흑천단원들은 거절했지만 뒤이어 떨어진 위천의 허락에 결국 술을 마셨고, 이윽고 조금은 허물어진 경계를 느끼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연회장은 무림맹과 천마신교의 화합이라는 취지대로 서로 예를 갖추고 대화를 나누며 알아 가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 * *
시끌시끌!
“뭐야?”
“오, 내가 예상한 분위기랑 다르네.”
연회장에 도착한 나와 주윤문.
나는 서로 눈치를 살피며 조용하고 재미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연회장이 예상외로 시끄러운 모습을 보이자 놀란 표정을 지었고 옆에 있던 주윤문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참.”
나의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
무림맹의 수뇌부들과 있었던 연회장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나의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지은 주윤문.
그가 고개를 돌려 한 곳을 바라보더니 이내 나의 팔꿈치를 살짝 쳤다.
“극신, 저기 봐.”
“응?”
주윤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고 이내.
“헐.”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미소 짓고 잇는 익숙한 어린 청년, 내 동생 위천이 보였다.
“이 연회장을 지배하고 있어.”
“미치겠네.”
주윤문의 말 그대로 연회장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는 위천.
그가 웃으면 다른 사람들 모두가 웃었다.
그 모습에 나는 이마를 짚었고.
“가자!”
어린아이처럼 흥분한 주윤문이 환한 미소로 나를 이끌었다.
이 자식.
자기도 저 사이에 껴서 놀고 싶은가 보다.
한 친화력 하는 주윤문은 서둘러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런 주윤문의 손에 이끌려 갔다.
그렇게 연회장에 도착한 나와 주윤문.
주윤문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연회장 한가운데서 웃고 있는 위천에게 다가갔다.
와락!
“형!”
위천의 뒤에서 덮치듯 위천의 목에 팔을 두른 주윤문.
갑작스러운 덮침(?)에 놀란 것도 잠시, 곧 그가 주윤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위천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녀석, 재미있어 보인다? 이 형도 끼워 주라.”
“물론이죠! 공명 스님! 윤문 형이에요.”
“아! 압니다, 유명한 적협공자를 이곳에서 보게 되니 반갑습니다!”
위천의 인사에 공명이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이내 정말 반갑다는 미소를 지으며 주윤문을 바라보았다.
그에.
“하하! 반갑습니다, 스님! 머리털이 없는데도 이렇게 잘생기시다니! 남자는 머리빨이라고 했는데…… 공명 스님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인 것 같습니다!”
만약, 보통의 사람이 이러한 발언을 내뱉었다면 상당히 무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내뱉은 사람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잘 녹아드는 친화력 갑 주윤문이었으며 동시에 시원한 미소와 매력적인 이목구비가 호감을 더했다.
게다가 적협공자라는 별호로 상당히 친숙한 인물이었기에 조금은 짓궂은 그의 말을 공명은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하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칭찬 맞습니다! 이것 참! 사람들이 모이니 이렇게 좋군요! 모두 술잔을 드시지요!”
공명의 대답에 주윤문은 웃으며 대답한 다음 술잔을 들었다.
순식간에 연회장의 분위기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온 주윤문.
그런 주윤문의 행동에 사람들은 엉겁결에 술잔을 들었고.
“자! 청춘은 바로 지금! 모두 다 같이 청바지!”
“청바지!”
우렁찬 주윤문의 말에 사람들은 홀린 듯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주윤문의 말을 따라 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말을 따라 했고 주윤문은 씨익 웃으며 술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그에.
꿀꺽!
모든 사람들이 주윤문을 따라 술잔을 기울였다.
“키야아!! 이거지!”
비어 버린 술잔을 들어 머리 위로 털어 버리는 주윤문의 모습.
그 모습에 사람들은 주윤문을 따라 소리 내며 술잔을 흔들어 보였다.
“푸하하! 자 자! 술잔 받으시오!”
“아 저는 불교의 가르침을 따라…….”
“아! 취향 존중합니다! 자 유 공자! 받으시오!”
어색한 공명의 거절에 주윤문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옆에 어색하게 서 있는 유명에게 다가갔다.
“어! 저를 아십니까……?”
“대화산파의 제자가 아닙니까! 자! 팔 떨어집니다, 어서 받으십시오.”
“아. 예…….”
호들갑 넘치는 주윤문의 권유에 유명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주윤문의 술잔을 받았다.
그렇게 주윤문은 계속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술잔을 돌렸고.
“청바지!”
“청바지!”
얼큰한 얼굴로 건배사를 외치는 주윤문과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마를 짚었다.
“미친놈.”
진짜 미친놈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저런 놈이 나의 벗이라는 게.
“재밌겠네.”
자랑스러웠다.
재미있게 잘 놀고 있는 주윤문의 모습에 나는 씨익 웃었고 이내 술에 취해 평소에는 보여 주지 않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주는 흑천단원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흑천단에서 막내 격인 어린 단원들.
그런 단원들이 제 나이대와 같은 모습을 보이니 내심 보기 좋았던 것이다.
“언제 왔어?”
그렇게 흐뭇한 미소를 짓던 것도 잠시.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은은한 달빛을 받은 검은 머리칼과 푸른 두 눈이 아름다운 여인, 바로 서은설이었다.
나를 향해 웃으며 말은 건 서은설을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방금.”
“보고 싶었어.”
“어머.”
갑자기 이렇게 고백을 해 버린다고?
웃으며 보고 싶었다 말하는 서은설의 모습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술 마셨구나…….”
조금은 붉어진 얼굴과 살짝 풀어진 두 눈.
그런 서은설의 모습에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잠깐 잊고 있었다.
나의 연인 서은설.
그녀는 술 한 잔만 먹어도 취해 버리는 술 쓰레기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 나의 말에 서은설은 배시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스윽.
나의 팔에 팔짱을 끼며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좋다!”
나에게 몸을 의지하며 두 눈을 감은 서은설.
그런 서은설의 말에 나는 당혹스러웠던 것도 잠시.
이내 미소를 지었다.
“좋네.”
오랜만이다.
이런 푸근하고 편한 기분.
정말 좋았다.
“청바지!”
저 망할 청바지 소리만 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