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천마신교는 이상하다-156화 (156/275)

제156화

제156장 연인 戀人

“그…… 그것이.”

위천의 입에서 나온 차가운 말.

왜 반말하냐는 위천의 차가운 물음에 팽악은 눈에 띄게 당황해하며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자신을 향해 왜 반말하냐고 물어보는 눈앞의 청년.

갓 소년티를 벗은 어린 청년의 모습은 만만해 보였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배경은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무림의 최고수라 불리는 삼황 중 한 명인 천마의 아들이자, 무림의 지배 세력 중 한 곳인 천마신교의 이공자.

십대고수는 물론, 무림맹의 장로에 앉아 있는 자신의 아버지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위천이었다.

게다가 좀 전에는 무림맹의 행사를 언급하며 자신의 잘못을 꾸짖지 않았던가?

아무리 단순하고 막 나가는 팽악이라 하더라도 오대세가 중 한 곳인 하북팽가의 소가주에 오른 것이 단순히 운이 아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팽악은 똑똑한 인물도, 정치적으로 경험이 풍부한 인물도 아니었기에 순간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고 결국 허둥지둥하는 못난 모습을 보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팽악이 못난 모습을 보이자 그의 뒤, 무림맹의 인물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팽악의 옆에 섰다.

“좋은 자리이니, 신교의 이공자께서 이 친구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팽악의 어깨를 살짝 친 다음 위천을 바라보는 젊은 사내.

갑작스럽게 등장한 사내가 탐탁지 않았을까?

위천은 그답지 않은 차가운 눈빛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유명이라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매화검룡 梅畵劍龍이라 불리고 있지요.”

또 다른 오룡 중 한 명인 매화검룡 유명.

무당파의 제자이며 무림맹의 장로인 매화신검의 직전제자인 그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소개하였다.

그에 위천은 살짝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매화신검 적화 대협의 제자분이었군요. 그분께서는 괜찮으신가요?”

“네, 소교주 덕분에 얻은 깨달음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스승님을 대신해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군요.”

악의 없는, 순수한 걱정이 담긴 위천의 물음에 유명은 진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에 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얼굴을 붉히고 있는 팽악을 바라보았다.

“저 또한 좋은 자리이기에 그냥 넘어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넘어가기 전에 본인에게 직접 사과를 들어야겠군요.”

“물론이지요, 이보게. 이공자님에게 사과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위천의 똑 부러진 말에 유명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팽악을 바라보았다.

사과를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런 유명의 행동에 팽악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뒤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었기에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죄송합니다, 이공자. 저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지요.”

그러고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건네었다.

그런 팽악의 사과에 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남궁 형님에게도 사과를 하십시오.”

“예?”

“무림맹의 일원이지만, 본교의 귀빈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분에게 본교를 언급하며 무례를 저질렀으니 응당 사과를 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위천의 입에서 나온 말.

타당하기 이를 데 없는 위천의 말에 팽악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보게, 참으시게.”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처럼 붉어진 팽악의 얼굴.

그런 팽악의 모습에 유명이 황급히 낮은 어조로 주의를 주었다.

그에 팽악은 애써 화를 가라앉혔다.

유명의 말이 맞았다.

지금은 자신이 참아야 할 때.

그에 팽악은 차가운 눈으로 남궁정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을 열었다.

“좀 전에는 내가 무례했다. 사과하지.”

“그래, 조심 좀 하도록.”

팽악의 사과에 남궁정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남궁정의 대답.

그 대답이 팽악의 자존심을 긁었던 것이다.

그에 분노로 다시 얼굴이 붉어졌지만.

“…….”

팽악은 참아 내었다.

얼굴을 붉히면서 가까스로 참아 내는 팽악의 모습에 남궁정은 다시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겨 서은설에게 다가갔다.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남궁정입니다.”

“반가워요, 극신이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사천의 은하객잔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서로를 알지 못했기에 인사를 나누지 못했던 남궁정과 서은설이었다.

그에 남궁정이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고 서은설은 환한 미소로 반겨 주었다.

그녀 또한 남궁정을 알고 있었다.

위극신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서은설과 인사를 마친 남궁정은 다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왕일의 옆에 뻘쭘한 표정으로 서 있는 청년, 마독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네가 마독이구나.”

남궁정의 입에서 나온 친근한 말.

차가운 인상과 성정과는 너무나도 다른 부드러운 어조에 마독을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 예. 반갑습니다.”

솔직히 마독의 입장에서는 조금 복잡했다.

‘이것 참.’

만나는 사람마다 오랜 세월 만난 지인처럼 격식 없이 대화를 걸어온다.

그것이 한때 사파의 명문가였던 백사문의 소문주로서 자라 온 마독에게는 적응되지가 않았다.

하지만 남궁정의 목소리와 표정에 호감이 어려 있었고 주변 사람 모두가 자신을 어디 가문의 자식이 아닌, 마독 그 자체로 대해 주었기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이 복잡하면서도 동시에 좋았기에 마독은 미소를 지었고 그런 마독의 생각을 읽은 것일까?

남궁정 또한 같은 미소를 지었다.

“왕일과 벗이 되었고, 극신 형님의 의제가 되었다고 들었다. 나 또한 형님의 의제. 편하게 형이라고 부르거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마독은 졸지에 남궁세가의 소가주를 의형으로 모시게 되었다.

사황성의 명문가 출신으로 천마신교의 소교주, 그리고 이제는 남궁세가의 소가주까지.

졸지에 두 세력의 대표 격인 소주인과 의형제를 맺게 되어 버린 마독은 이 상황이 웃기면서도 좋았다.

남궁정의 말에 마독은 웃으며 대답했고 그에 호칭 정리를 마친 남궁정이 다시 위천을 돌아보았다.

“극신 형님은?”

“윤문 형님과 대화 중이에요. 곧 올 거예요.”

“그렇구나. 윤문 형님과…….”

위천의 대답에 남궁정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정의 모습은 상당히 매력적이었기에 숨을 죽이고 그를 바라보던 여인들이 얼굴을 붉혔고 남자들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얼음이라 불릴 정도로 차가웠던 남궁세가의 소가주.

그가 계속해서 미소를 짓고 있으니 놀라웠던 것이다.

그렇게 무림맹 측 인물들이 놀라고 있는 반면.

“오늘도 개가 되시는 겁니까?”

그런 모습을 자주 봐 왔던 의제, 왕일은 놀라기는커녕 장난스러운 어조로 남궁정에게 말했다.

“그럴 리가. 오늘은 네 차례가 아니더냐.”

“하하, 두고 보시지요!”

왕일의 장난스러운 말을 가볍게 받아친 남궁정.

그런 남궁정을 보며 왕일은 시원하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위극신과 주윤문.

이 둘이 모여서 술을 마시면 그날 하루는 끝이라고 보면 되었다.

헤롱헤롱한 상태로 먼저 빠지거나, 기억이 삭제되어 다음 날 아침을 맞거나.

사천에 있던 동안 번갈아 가며 술에 취해 개가 되었던 남궁정과 왕일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 저기 자리가 있으니 우선 앉으시지요.”

그런 일행들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짓던 위천.

그가 천마신교인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를 발견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곧 걸음을 옮겼다.

물론, 남궁정 또한 함께 말이다.

* * *

“아스나가 누구야?”

무림맹에서 내준 전각의 구석에 위치한 정자.

그곳에 아무렇게나 앉은 내가 주윤문이 꺼낸 술잔을 받아들이며 물었다.

그런 나의 물음에 주윤문이 잠깐 움찔했다.

그러고는 술병을 꺼내 뚜껑을 열며 입을 열었다.

“내 연인.”

“색목인이었나?”

“그래.”

“그렇군.”

주윤문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나의 예상이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질문은 그걸로 끝인가?”

“대충 알겠으니까.”

“그런가…….”

“너도 대충 알고 있잖아?”

고개를 끄덕이는 주윤문을 보며 나는 술잔에 술을 채우며 물었다.

우리는 어렴풋이 서로를 알고 있었다.

서로가 시간을 거슬러 온 회귀자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절대 입 밖으로 그 사실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것은 인과율을 거스르는 일.

그 일을 입 밖으로 내밀었다가는 큰 후폭풍이 되어 우리를 덮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 무거운 일을 꺼내기란 쉽지 않았다.

아무튼, 많은 뜻이 담긴 나의 물음에 주윤문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찰랑이던 그녀의 짧은 붉은 머리칼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붉은 머리칼이라…….”

“처음에는 황가의 색과 비슷해서 호감이 갔다. 황권이 약했기에 상징과도 같은 그 색을 원했던 거겠지.”

명 황실의 상징과도 같은 진한 붉은색.

그 색과 같아 호감이 갔다는 주윤문의 말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그랬기에 주윤문의 심정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회귀 전, 어린 시절.

검은색이었던 우리들의 눈과 달리 푸른 호수처럼 아름다웠던 서은설의 푸른 두 눈.

나는 그 두 눈에 매력을 느꼈었다.

그런 나의 끄덕임에 주윤문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곧, 그녀의 활발한 성격과.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웃음이 눈에 들어왔지. 숙부들 때문에 골치가 아파 힘들 때도 그녀의 웃음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이 상쾌해졌지.”

“그렇군.”

주윤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막상 두 귀로 들으니 무거웠다.

주윤문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힘든 길을 걸어왔었는지.

모든 것이 듣지 않아도 상상이 되었던 것이다.

보수적인 제국.

그 제국의 주인인 황제.

그가 색목인을 황후로 받아들이기 위한 길은 험난했을 것이다.

감히 내가 짐작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내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주윤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똑같이 생겼다.”

“은설과?”

“응.”

주윤문의 말에 나는 웃으며 물었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주윤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쩌면, 우리 둘은 전생부터 인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뭐?”

“아니야.”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주윤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나는 싱겁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중에, 전부 말해 줄게.”

“내가 알아야 할 것이 있나?”

“알면 신기할 사실 정도?”

네 연인에게 쌍둥이가 있었고 그 쌍둥이의 연인이 나다.

상당히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아니던가?

그런 나의 말에 주윤문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벌써?”

아쉬웠다.

조금 더 단둘이 술을 마시고 싶었고, 또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 내가 아쉬운 어조로 묻자 주윤문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래, 천이가 기다리잖아.”

“얼씨구?”

저 자식, 벌써 천이의 매력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녀석의 시원한 대답에 나는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 너는 천이를 보러 가거라.

나는 우리 은설이 보러 가야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