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화
제155장 왜 반말? 短語
“잘 자렴, 우리 공주.”
서역에 위치한 서대륙의 강력한 제국, 파사국.
그곳의 황성에서 푸른색의 호수와 같은 벽안으로 유명한 황후, 율리아나가 자신의 딸을 내려다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 저도 이제 스물두 살이에요.”
그런 율리아나의 시선에 입술을 삐죽인 적발의 아름다운 여인.
목뒤까지 오는 짧은 단발이 매력적인 공주, 아스나가 불만 어린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율리아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후후, 오늘은 우리 공주의 생일이잖니. 오늘 하루만 참으렴.”
“제가 늙어서 할머니가 되어도 이럴 거예요?”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는 나에게 어린아이란다.”
아스나의 불만 어린 대답에 율리아나는 나른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에 아스나는 입술을 삐죽였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율리아나와는 다른 시원한 미소였다.
그런 아스나의 미소에 율리아나 또한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쪽.
자신의 딸, 아스나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였다.
“좋은 꿈 꾸렴.”
“네, 어마마마.”
율리아나의 인사에 아스나는 미소로 화답했다.
그에 율리아나는 아스나의 이불을 다시 한번 더 정돈해 주고는 걸음을 옮겨 아스나의 침실을 나섰다.
“모시겠습니다.”
“아니, 혼자 걷고 싶구나.”
복도를 벗어나 정원으로 나온 율리아나.
그런 율리아나의 행동에 호위기사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지만 율리아나는 단호한 어조로 거절했다.
그에 호위기사는 열 걸음 뒤로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홀로 남게 된 율리아나.
그녀가 가만히 달을 올려다보았다.
은은한 빛을 내는 아름다운 달.
그 달을 보며 율리아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딸 생일 축하해.”
깊은 밤.
율리아나가 달을 보며 속삭이는 말은 침실에서 자고 있는 아스나가 아닌.
어딘가에서 자신과 같은 달을 보고 있을 또 다른 딸에게 건네는 인사였다.
* * *
“윤문!”
나의 연인, 서은설을 바라보며 아련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주윤문.
그런 주윤문의 모습에 나는 한걸음에 녀석에게 다가가 양어깨를 붙잡았다.
양어깨를 잡아 흔들며 낮은 어조로 주윤문을 부르자 녀석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멍한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주윤문.
혼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지은 녀석의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내공을 끌어 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정신 차려!”
우웅!
내공이 담긴 나의 낮은 음성.
그 음성이 주윤문을 자극했고.
“!!”
주윤문이 정신을 차렸다.
초점이 돌아와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주윤문의 두 눈.
그 두 눈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자세히 그녀를 봐 봐.”
서은설을 바라보며 다른 이름을 부르던 주윤문.
나는 녀석이 서은설의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과 착각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에.
주윤문이 고개를 다시 돌려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
서은설을 바라보며 다시 두 눈을 크게 뜬 주윤문.
그의 두 눈에는 반가움과 슬픔, 그리고 아련함이 담겨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두 눈동자에 담겨 있던 여러 가지의 감정이 점점 사라져 갔다.
“아스나가…… 아니군.”
서은설을 자세히 살펴본 후.
자신이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듯 주윤문이 실망 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스나?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다.
아니, 중원에서는 찾기 힘든 이름이었다.
저 멀리 서역에서나 사용할 법한 이름.
그 이름에 나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서은설.
그녀에게는 먼저 세상에 태어난 쌍둥이 언니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떴지만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아직 추측일 뿐이었기에 굳이 동요할 필요는 없었다.
“은설, 이리로 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후, 나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서은설을 이곳으로 불렀다.
큰 감정 동요를 보이며 눈물을 흘리던 주윤문.
그리고 그런 주윤문의 시선이 당혹스러운 서은설.
그 두 명의 어색한 사이를 하루빨리 없애야 했기에 내가 나서는 것이었다.
그런 나의 부름에 서은설은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다가왔다.
그에 나는 주윤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나의 연인, 서은설이야.”
“반갑습니다, 소저. 주윤문이라 합니다.”
“아…… 네, 반가워요. 극신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나의 소개에 주윤문은 언제 아련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멀쩡한 얼굴로 돌아와 인사를 건네었다.
그에 서은설은 당혹스러우면서도 고개를 숙여 주윤문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그에 주윤문은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좋은 이야기였겠죠?”
“네? 아, 네.”
갑작스럽게 바뀐 주윤문의 분위기.
그 분위기가 적응이 되지 않았을까? 서은설이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주윤문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그에 주윤문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우리를 향해 다가온 위천과 마독을 발견하였다.
그러고는 나와 닮았지만 닮지 않은 위천을 바라보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네가 천이구나!”
“네! 맞아요! 제가 천이에요!”
아마 처음일 것이다.
위천을 보며 편하게 말을 건넨 존재가 말이다.
본신이 황제라 그런지, 아니면 그냥 성격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주윤문은 위천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위천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손을 흔들며 자신이 위천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밝히며 말이다.
그런 위천의 말에 주윤문은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위천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녀석, 극신과 다르게 애교가 넘치는구나!”
“헤헤! 맞아요! 저 애교 많아요!”
“그래! 이 녀석, 편하게 형이라 부르거라!”
“네 형님!”
“님 빼고!”
“네 형!”
얼씨구, 잘 논다.
만난 지 단 몇 초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오랜 세월 만나 온 것처럼 인사를 나누는 둘을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양손 가득 술병을 들고 있는 익숙한 사내, 혈영을 발견하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처음 만났을 때 복면을 쓰고 있어 얼굴은 알지 못했지만 특유의 기운이 있었기에 나는 혈영을 알아보았고, 혈영 또한 나를 알기에 예를 갖추며 인사를 했다.
“잘생겼네요.”
“감사합니다. 말씀 편하게 해 주십시오.”
“그래.”
혈영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편하게 하라니 편하게 해야지.
나 말 잘 듣는다.
“천아, 은설이와 먼저 가 있어, 나는 윤문과 잠깐 대화하고 따라갈게.”
“네, 윤문 형 기다리고 있을게요.”
“연회장 말이더냐?”
“네!”
주윤문의 물음에 위천이 해맑게 대답했다.
그에 주윤문이 볼을 긁적였다.
“귀찮은데…….”
“안 올 거예요?”
주윤문의 대답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되묻는 위천.
그런 위천의 모습에 주윤문은 가슴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끼고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가야지.”
“와아.”
진짜, 저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었다.
시무룩한 표정 하나로 주윤문의 마음을 돌린 위천을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위천과 마독, 서은설이 물러나고 혈영이 편하게 대화하라는 듯 뒤로 물러났다.
그에 나와 주윤문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걸을까?”
나와 두 눈이 마주친 주윤문.
그런 녀석을 보며 내가 물었다.
이야기할 것도 있고, 답답하기도 하니 조금 걷자고 말이다.
그런 나의 제안에.
“개뿔, 술이나 마셔.”
녀석은 녀석다운 방법으로 역제안했다.
그런 역제안.
“좋지.”
나쁘지 않았다.
* * *
“이봐.”
“할 말 있나?”
본선 진출자를 위해 마련된 연회장.
그곳에 참가한 남궁정은 자신을 향해 다가온 사내, 오룡 五龍 중 맹호도룡 猛虎刀龍이라 불리는 후기지수, 팽악을 보며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그런 남궁정의 차가운 대답에 팽악이 인상을 찌푸렸다.
“여전히 싸가지 없군.”
“시비 걸 거면 꺼져라, 귀찮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남궁정에게 시비를 걸던 팽악이었기에 남궁정은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팽악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서자 새끼가, 센 척은.”
“적자라는 이유만으로 소가주 자리에 앉은 무능한 놈이.”
“이 새끼가!”
비릿한 팽악의 말.
그 말을 남궁정이 차가운 어조로 맞받아치자 팽악이 인상을 찌푸리며 남궁정을 위협했다.
그에.
피식.
“죽고 싶나?”
남궁정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응했다.
“마인들과 어울려 다니더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나 보지?”
“거기서 왜 마인들이 나오지?”
팽악의 입에서 나온 마인이라는 말.
그 말에 남궁정이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네놈이 정파의 자존심과 남궁세가의 위신을 떨어뜨리며 마교인들과 어울리지 않더냐? 그러다 보니 성격도 개차반이 된 거지.”
“지금 네 행동과 발언이 더 개차반인 것 같다만.”
팽악의 비난에 남궁정이 대답했다.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받아치는 남궁정의 모습에 팽악이 다시 열불이 올랐지만 애써 참아 내었다.
그러고는 주변에 들으라는 듯 다시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파의 명문가인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천마신교의 소교주와 의형제라니! 이 무슨 개족보란 말인가!”
팽악의 입에서 나온 큰 음성.
내공마저 실은 그의 음성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모여들었다.
아직 마교의 인물들이 참가하지 않아 이곳에 있는 인물들은 정파의 인물들.
모두가 팽악의 편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팽악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남궁정을 바라보았다.
“자존심은 전부 버리고 마교의 개가 되어 버린 남궁정. 너는 우리 무림맹의 수치다.”
“흐음…….”
팽악의 힐난에 남궁정이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의문 어린 눈빛으로 팽악을 바라보았다.
“내가 무림맹의 수치라고?”
“그래!”
남궁정의 물음.
그 물음에 팽악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에 남궁정이 입을 열었다.
“무림맹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당신이 더 무림맹의 수치이군요.”
하지만, 남궁정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튀어나와 남궁정의 말을 대신했다.
저벅.
본선 진출이 확정된 흑천단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서은설과 마독, 그리고 연회장 앞에서 만난 왕일과 함께 연회장에 들어선 위천.
그가 차가운 표정으로 팽악을 바라보았다.
그에 팽악은 움찔했지만 이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공자군.”
“네, 이공자예요.”
팽악의 말에 위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에 팽악은 위천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나에게 무림맹의 수치라 했나?”
“네.”
“웃기는군. 남궁정처럼 신념을 저버린 자가 수치이지. 왜 내가 수치지?”
피식 미소를 지은 팽악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위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에 위천이 입을 열었다.
“본교와 화합을 하기 위해 초청한 무림맹. 일개 후기지수가 그런 무림맹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잖아요.”
“뭐라?”
“당신 때문에 본교가 기분이 나빠서 화합을 포기하면?”
움찔!
위천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팽악이 움찔했다.
위천의 말이 맞았다.
어른들, 무림맹주와 장로들이 자존심을 조금 꺾어 가며 천마신교와의 화합 자리를 만들었다.
헌데 여기서 자신의 섣부른 발언으로 화합이 틀어진다?
위험했다.
정곡을 찌른 위천의 말에 팽악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위천은 걸음을 옮겨 팽악에게 다가섰다.
위천보다 머리통은 하나 더 큰 팽악.
위천은 그런 팽악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그리고, 왜 반말이야.”
그의 입에서 생각지 못한, 차가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