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화
제149장 왕 王
‘제법.’
하늘에서 내리는 매화 꽃잎과 나의 코를 찌르는 진한 매화 향.
내공을 운기하며 나를 바라보는 적화를 보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팔장로 적화.
그는 매화신검이라는 거창한 별호로 불리는 고수이면서 동시에, 태극검왕 청수 진인에게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소문이 잘못되었군.’
매화신검 적화.
그는 태극검왕 청수 진인에게 전혀 부족하지 않은 뛰어난 검수였다.
그의 몸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진한 매화 향과 강력한 기운.
그 기운을 느끼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스윽.
뇌선을 집어넣었다.
“소교주……?”
대련을 앞두고 무기를 집어넣는 나의 행동에 의문을 느꼈을까?
적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스르릉.
나의 허리춤에 걸려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오…….”
그런 나의 행동에 기분이 좋아졌을까?
적화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검을 강하게 쥐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의 모든 것을 담은 일격이 될 것이오.”
“언제든 오시오.”
비장하기까지 한 적화의 말.
그 말에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적화는 검을 들어 올렸다.
우웅!
그러자 허공에서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강력한 기운이 적화의 검에 빨려 들어가듯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우우웅!
적화의 검이 큰 소리를 내며 울었고 그와 동시에 적화의 검에서는 자색 赭色 의 기운이 솟아올라 검을 감싸 안았다.
강력한 내공을 유형화한 기운.
바로 화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의 전유물과도 같은 검강이었다.
“오오!”
“와아…….”
최소 칠왕급의 고수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검강.
그것도 자색의 선명한 검강에 사람들은 감탄 어린 표정을 지었다.
십대고수급의 대련이 아닌 이상 보기 힘든 검강이었으니 감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에 나 또한.
파아앗!
우우웅!
천마신공을 끌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나의 몸에서는 폭발적인 기세가 뿜어져 나왔고 칠흑색의 강기가 뿜어져 나와 나의 주변을 감싸 안았다.
검강?
그딴 거 필요 없었다.
왜냐고?
천마신공은 말 그대로 신공.
내 의지에 따라 권강, 수강. 때로는 검강.
그 모든 것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칠흑색의 강기와 동시에 붉어진 나의 두 눈.
천마신공을 최대한 끌어 올린 나는 가만히 적화를 바라보았다.
그런 나의 시선과 동시에 적화는 흠칫했고.
사아…….
무대를 가득 채우던 매화의 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차아아!
우웅!
거대한 폭풍과도 같은 폭발적인 나의 기세.
그 기세가 매화 꽃잎을 찢어발겼으며.
쿵!
나의 걸음 한 번에 더 거세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던 칠흑색의 강기.
그 강기가 모이고 모여 하나의 거대한 형태를 만들었으며 그와 동시에.
우웅!
나의 등 뒤에는 각각의 무기를 쥔 여섯 개의 손과 세 개의 얼굴을 지닌 사람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아수라다!”
“으으…….”
“저럴 수가…….”
아수라.
지옥 신의 등장에 사람들은 공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두려움이 가득한 사람들의 눈빛.
그런 사람들의 눈빛을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고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적화를 응시했다.
이 양반이 나랑 대련을 앞두고 멍을 때리면 쓰나?
그에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안 옵니까?”
꽈득!
나의 도발이 제대로 먹혔나 보다.
장난기 어린 나의 도발에 적화는 정신을 차라기 위해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그러고는.
우웅!
더 강하게 기운을 끌어 올렸다.
나의 폭발적인 기세에 대응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파아앗!
내 기세가 더 강했다.
제법 선전했지만 적화의 기운은 나의 천마신공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다시 사라져 버린 적화의 기운.
모든 내공을 끌어 올렸음에도 밀리는 자신이 분한 것일까?
적화가 입술을 다시 한번 깨물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휘둘러지는 자색의 검.
매화꽃이 가득한 그 검을 보며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스윽.
가볍게.
무심하게 검을 휘둘렀다.
한 손으로 무심하게 검을 휘두르자 나의 가벼운 행동과 다른 거대한 결과가 일어나고 말았다.
쩌적!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시간이 멈춘 듯 적화의 검이 멈추었다.
“!!”
“저런!”
뒤에서 천마의 놀란 눈빛과 당혹스러워 하는 천진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그것은 잠시 접어 두자.
그렇게 적화의 몸이 거짓말처럼 정지하고 잠시 후.
콰콰쾅!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적화의 신형은 끈 떨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퍼억!
파아악!
권마가 날려 보낸 제갈훈처럼 연무장 벽을 박살 내며 적화의 신형은 멈추었다.
‘조금 심했나…….’
나의 일검.
그 무심한 일검에 허무하게 날아가 버린 적화를 보며 나는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던 나의 기세와 칠흑생의 강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모든 기운을 갈무리한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어느새 조용해진 주변을 둘러보았다.
“…….”
“!!”
그러자 보였다.
입을 떡하니 벌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말이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타앗!
그대로 연무장을 벗어났다.
역시 이럴 때는 튀는 게 답이었다.
* * *
“후아.”
무림맹에서 조금 벗어난 저잣거리.
마정회동으로 인해 현재 호북 무한은 축제와도 같은 상황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천마신교의 행렬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고, 또 이틀 후부터 있을 마정대회의 구경과 참가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상태.
당연히 축제와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인파가 모이면 그만큼 수요도 많기 때문에 상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현재 무한의 저잣거리에는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거리를 밝히는 수많은 연등과, 거리를 가득 채우는 사람들의 소리.
개중에는 웃음소리도, 화내는 소리도 있었다.
연회장에서 벗어나 잠깐 두 눈을 감고 주변에 귀를 기울인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두 눈을 떠서 주변을 둘러보았고, 이내 제법 괜찮은 지붕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나는 저잣거리가 가장 잘 보이는 지붕을 찾아내었고 그곳에 자리 잡았다.
“좋네.”
평화로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거리를 가득 채우고 그것을 밝히는 수많은 연등들이 아름다웠다.
평화롭고 활동적인 모습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
그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문득 한 사내를 떠올렸다.
“이 자식은 뭐 하고 지내는 거야.”
나의 벗이자 이 제국의 황제인 주윤문.
시간이 흘렀음에도 보일 생각을 하지 않는 녀석을 떠올린 나는 이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래, 녀석은 이 제국의 황제였다.
이 나라에서 가장 바쁜 몸이며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벗인 내가 이해를 해 주어야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나는 그대로 뒤로 누웠다.
그러고는 두 눈을 감았다.
살랑.
그러자 느껴졌다.
나의 코를 간질이는 바람이 말이다.
그에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좋았다.
오랜만에 혼자 있는 이 시간.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왔던 나는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자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래도 한 번씩 이런 시간을 가져야 할 듯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짓던 순간.
씨익.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나의 바로 뒤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랜만.”
그 기운에 몸을 일으킨 내가 뒤돌아서자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는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사내는 바로, 좀 전에 문득 떠올랐던 나의 벗 주윤문이었다.
좀 전까지 녀석을 생각했던 나는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도 당황스러움보다는 반가움이 더 컸다.
그에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고 녀석 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한잔?”
품속에서 술병을 꺼내 든 녀석이 가볍게 흔들어 보이며 물었다.
정말 신기했다.
저 얇은 품에서 어떻게 저런 술병이 나오는 것일까.
무슨 주술의 주머니도 아니고 말이다.
속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주윤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빨리 와서 술 안 주고 뭐 해?”
“그래.”
장난기 섞인 나의 말에 주윤문은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고, 곧 우리는 저잣거리가 잘 보이는 지붕에서 나란히 앉아 술을 기울이게 되었다.
잠깐 아무런 말 없이 저잣거리를 바라보기만 한 우리 둘.
오랜만에 이렇게 함께 앉은 기분을 느끼며 잠깐의 시간을 보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볼일은?”
“잘 보고 왔다.”
“다행이네.”
녀석이 건넨 술잔을 기울이며 내가 묻자 녀석은 짧게 대답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몇 번의 술잔이 오가고.
“극신.”
“응.”
주윤문이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에 나는 술잔에 술을 따르며 가볍게 대답했다.
그리고.
“왕 할래?”
“…….”
멈칫.
이어진 주윤문의 말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왕 王.
한 나라의 군주로 선택받은 자만이 가능하다는 자리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왕을 하겠냐고 말한다면 농담으로 치부하고 웃으며 넘어가겠지만 그 말을 한 존재가 바로 이 제국의 황제다.
그에 나는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그런 나를 향해 주윤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신강 정체를 너의 땅으로 하사하고, 저기 동쪽의 조선이라는 나라처럼 너를 번왕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왕으로 인정할게. 물론 겉으로는 형제국으로서 수교를 해야겠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형태일 뿐. 하나의 나라로 존중해 줄게.”
“…….”
“왕…… 할래?”
미친놈일까.
적당한 밤.
저잣거리가 보이는 지붕 위에서 술을 기울이며 한 나라의 왕이 되지 않겠냐는 황제를 보며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신강의 땅은 조선이라는 동쪽의 나라보다 훨씬 컸다.
신강에 사는 민족들도 따로 있고 말이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는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이 있는 국가다.
반면 신강은?
수천 년 전부터 대륙의 땅으로 살아온 지역이다.
헌데, 갑자기 하나의 나라로 독립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에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윤문을 바라보았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진심이구나.”
흔들림 없는 주윤문의 눈빛.
그 두 눈빛에서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응.”
나의 물음에 주윤문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가만히 주윤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어?”
“하하…….”
나의 물음에 소리 내어 웃은 주윤문.
그가 고개를 돌려 저잣거리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 또한 고개를 돌려 저잣거리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시 후.
“극신.”
“말해.”
나를 부르는 주윤문의 떨리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무림을 멸할 생각이야.”
“!!”
주윤문의 입에서 생각지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