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제148장 곤륜파의 무인 崑崙武人 (2)
“…….”
무림맹의 칠장로라는 직위와 동시에 유운선검 流雲善劍 이라는 별호를 지닌 고수 운월.
“발목이 너무 돌아갔어.”
퍽!
그는 발목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소교주, 위극신의 지적에 본능적으로 발목을 틀었다.
“그래.”
그런 자신의 행동에 살짝 미소를 짓는 위극신.
그 이후에도 위극신은 계속해서 자신의 자세를 지적했다.
그러한 행동이 반복되자 분노에 눈이 멀었던 운월은 머리가 차갑게 식어 가는 것을 느꼈다.
끓어올랐던 화가 가라앉자 운월의 머리는 맑아졌고 이내 침착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맑아진 머리가 되어 버린 운월은 위극신의 지적을 조금씩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왜냐고?
위극신의 지적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검이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허리.”
탁!
오십 년 전.
어린 나이에 스승님에게 지도를 받던 추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 어린 시절.
그때와 같은 느낌을 약관을 갓 넘긴 까마득한 후배에게서 느끼게 되니 운월로서는 상당히 묘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운월의 기분을 전혀 알지 못하는 위극신은 계속해서 운월의 자세를 지적했고, 운월은 위극신의 지적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고쳐 나가기 시작했다.
“아!”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운월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깨달음에 가벼운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곧 운월의 의식을 멀게 만들었고. 곧 주변의 그 어떠한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검에 깊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 * *
‘뭐야 이 이 새X.’
천마신교에 대한 인식을 바꿀 겸, 나의 강함을 보여 주기 위해 지도 대련 하듯 운월의 문제점을 지적하던 나는 몽롱한 표정을 짓는 운월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눈에 핏발이 선 채로 분노하던 악귀의 모습이 아닌 변태 영감처럼 괴상한 미소를 짓는 운월.
그런 운월의 모습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오오!”
무림맹의 장로들이 탄성을 내뱉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무대 위의 정중앙.
내가 뒤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운월은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두 눈을 감고 은은하게 미소를 지은 채 말이다.
그가 휘두르는 검은 가벼워 보였으나 그 속에 내재된 힘은 강력했다.
심지어 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은 계속해서 가벼워졌고 내재된 힘은 강력해졌다.
‘신검합일 身劍合一.’
몸과 검이 하나가 되는 경지로 절대의 경지에 오르기 전 반드시 필요한 경지.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 무아지경에 빠진 운월을 보며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나의 지적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인가?
고작 이 가벼운 지적 때문에?
나로 인해 벌어진 작금의 상황.
그 상황에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운월을 바라보았다.
그런 나의 마음을 모른 채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던 운월.
둥.
‘얼씨구.’
검을 휘두르다 못해 이제는 허공에까지 몸을 띄워 검을 휘두르는 운월.
그가 좀 전과는 달리 부드러운 동작으로 마치 춤을 추듯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헙!”
하늘과 함께 공존하는 구름.
그런 구름 사이로 노니는 용과 같은 모습의 검무 劍舞에 사람들은 기함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나는…….
‘뭐냐, 진짜.’
가볍게 생각하고 행동했던 지도 대련.
그로 인해 운월이 깨달음을 얻으니 기분이 묘했다.
어이가 없는 나와 놀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계속 검무를 이어 가던 운월.
그가 약 일각 동안 마음껏 검을 휘두르다가 검을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떠 있던 운월의 신형은 무대 바닥으로 내려섰다.
탓.
신형이 바닥에 닿자마자 두 눈을 뜬 운월.
떠진 두 눈에서 밝은 광채가 잠깐 흘러나왔다.
깨달음을 얻었고 그것을 갈무리했다는 증거.
두 눈을 뜬 운월의 두 눈빛은 좀 전과 달라져 있었다.
조금 더 진중해졌다랄까?
한층 도인과 가까워진 운월의 모습에 나는…….
‘아씨.’
부담스러웠다.
왜냐고?
그 진중한 두 눈빛이 곧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변하여 나를 향했으니 말이다.
“소교주.”
오우 야.
꿀 발라 놨네.
운월의 입에서 나온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
그 망할 목소리에 나는 흠칫하며 운월을 바라보았다.
“고맙소이다.”
와우.
나를 바라보는 두 눈은 목소리보다 더 달콤했다.
내가 은설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저럴까?
보기 싫었다.
아무래도 앞으로 조금 조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느끼하다 못해 토할 것 같은 운월의 눈빛과 감사의 인사에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무엇이 말이오?”
“본도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았소이까.”
“나는 그냥…….”
운월의 말에 나는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본교의 인식에 대한 변화와, 나의 강함을 알리기 위해서 한 행동이다.
절대 가르침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을 대놓고 표현하기는 뭐해서 내가 대답을 얼버무리자 운월은 다 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하였다.
“곤륜파의 운월. 소교주의 가르침에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그에 본도는 본 파와 귀교의 원한을 잠시 접어 두고 소교주를 나의 친우이자 은인으로 생각하겠소.”
운월의 입에서 나온 우렁찬 말.
내공까지 담긴 그의 말에 연회장에 참석한 모든 무인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곤륜파와 천마신교의 악연에 관해서는 모든 문파들이 알고 있다.
중원 무림의 모든 문파 중 사상자가 가장 많은 곳이 곤륜파였으며 그 사상자의 원인은 모두 천마신교였다.
신강 방향으로는 소변도 보지 않는 곳이 바로 곤륜파.
그런 곤륜파의 무인이 천마신교와의 악연을 접어 둔다?
물론 문파 전체가 아닌 운월 한 명의 개인 생각이지만 그래도 놀랄 일이었다.
게다가 운월은 일반 제자도 아닌, 바로 장문인의 사제였다.
곤륜 제일의 검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 존재가 천마신교와의 악연을 접어 둔다는 뜻은 곳 곤륜파 전체가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나 또한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 저기…….”
굳이, 본교와 곤륜파의 악연을 접어 둘 필요는 없었다.
본교의 입장에서 중원의 길목을 틀어막고 있는 곤륜파는 눈엣가시 그 자체였다.
그에 기회가 된다면 지워 버리려고 하는 것이 바로 본교이다.
나 스스로도 곤륜파를 봉문시켜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이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런 나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운월은 계속해서 나를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
“소교주의 가르침 덕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태허도룡 검법의 참된 모습을 알게 되었소.”
참된 모습……?
그게 뭔데.
“처음부터 끝까지 힘에 중점을 둔 나의 행동을 지적한 소교주의 행동. 처음에는 분노하였으나 나중에는 소교주의 가르침으로 인해 검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소.”
그건 진짜 멍청해 보여서…….
검을 휘두를 때 힘을 주다 보니 그로 인해 운월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검이 어디로 올지 다 보였고 나는 그것을 지적했을 뿐이다.
물론 부드러움도 부족하긴 했지만 그것에 대한 가르침은 딱히 준 적이 없는데?
“소교주의 가르침 덕분에 본문의 가르침을 다시 새기게 되었소. 본문은 구름 속을 노니는 용의 모습을 형상화한 무공. 즉 용처럼 자유로워야 했소.”
그렇지, 그게 곤륜이긴 하지.
운월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 틀림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본 파는 그만 타락하고 말았던 것 같소. 자유로움이 아닌 규율에 얽매여 있었으며 부드러움 대신 강함에 치중되어 있었소.”
“…….”
“그것에 대한 가르침을 내려 준 소교주의 행동. 본인은 진심으로 탄복했소이다.”
얼씨구.
또 고개 숙인다.
마지막 말을 마치며 다시 운월은 나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에 나는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드시오.”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란 나의 말에 운월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미안했고, 고맙소이다.”
“아니오.”
“소교주 덕분에 본 파는 앞으로 더 발전해 갈 것입니다.”
그만.
진짜 그만해라.
계속해서 내 얼굴에 금칠하는 운월의 행동에 나는 이제 당황스러움을 넘어 짜증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런 나의 기색을 느꼈을까?
운월이 허허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소교주가 부끄러워하니 그만하겠소.”
아니 안 부끄럽다고!
운월의 말에 나는 결국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런 나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운월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상석에 앉은 천마와 천진에게 예를 갖추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장로들이 모여 있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
나의 강함에 놀란 것이 아닌 생각지도 못한 장로 운월의 행동에 연회장에는 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 속.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것 참.
장로들과 각 지역의 권세가들에게 나의 강함을 보여 주고 나의 위상을 올리려고 했다.
헌데 생각지 못한 운월 때문에 주인공 자리를 그만 빼앗기고 말았다.
그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장로들이 앉은 자리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흥은 조금 오르셨소이까.”
“…….”
나의 물음에 침묵으로 대답한 장로들.
그런 장로들의 모습에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상석을 바라보았다.
“교주님, 맹주님. 어떻게 흥은 조금 오르셨는지요.”
끄덕.
“좋은 구경 했소이다.”
나의 물음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고 천진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다음 몸을 돌렸다.
이미 주인공 자리는 글렀다.
자리에 돌아가서 술이나 마셔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소교주!”
누군가가 나를 불렀고, 그 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나를 부른 존재를 바라보았다.
“반갑소이다. 본인은 팔장로 적화라고 하오.”
매화신검 梅畵神劍.
화산파 제일의 검이라 불리며 태극검왕 太極劍王 청수 진인 다음으로 남궁세가주와 함께 나란히 검의 고수라 불리는 존재이다.
그의 소개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나 또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반갑소. 매화신검 대협.”
“감사하오.”
나의 대답에 싱긋 미소를 지은 적화.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염치없는 부탁인 것을 압니다만…… 본인과 한번 겨루어 주지 않겠소이까?”
“…….”
적화의 부탁.
그 부탁에 나는 적화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무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적화의 두 눈빛.
그 두 눈빛을 읽은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무인이군.’
그는 무인이었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로지 무를 추구하는 진정한 무인 말이다.
그런 적화의 모습에 나는 호기심을 느꼈고 이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시지요.”
그러고는 그의 부탁을 수락했다.
그에 적화는 한 번에 무대 정중앙으로 올랐고 나 또한 다시 걸음을 옮겨 무대 정중앙에 섰다.
그렇게 서로를 마주하고 나란히 서게 된 나와 적화.
갑작스러운 대련 성사로 인해 사람들은 다시 연무장에 집중했고 천마와 천진 또한 흥미로운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최근 벽을 마주했소이다.”
“…….”
“그 벽을 깨트릴 조언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소이다.”
“노력해 보죠.”
적화의 진심 어린 부탁.
그 부탁에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에 적화 또한 미소를 지었다.
스르릉.
미소를 지은 적화가 검을 뽑았고 나는 품속에 집어넣었던 뇌선을 꺼내 들었다.
“한 번에 가겠소.”
“오세요.”
적화의 입에서 나온 비장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살랑.
하늘에서 매화 꽃잎이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