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제147장 곤륜파의 무인 崑崙武人 (1)
“칠장로 운월이라 하오. 유운선검 流雲善劍 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지만 나의 검은 선하지 않소. 그러니 조심해야 할 것이오. 나의 날카로운 검이 그대의 심장을 찌를지도 모르니.”
지랄도 풍년이었다.
십칠 년 전, 야룡이를 보는 것만 같은 운월의 자기소개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매서운 기세를 내뿜으며 나를 노려보고 있는 운월의 두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의 소교주. 잘생김을 담당하고 있다.”
“정녕 나를 무시하는 것이오!”
장난스러운 나의 대답.
그 대답에 운월이 분노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에 나는 진심을 담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운월을 바라보았다.
“진심인데.”
“소교주!”
이것 참.
너무하네, 사람의 진심도 몰라주고 말이다.
나의 진심 어린 대답에도 불구하고 운월은 나의 진심을 부정하는 듯 격분하며 언성을 높였다.
뜻하지 않게 도발이 제대로 들어가 버리고 만 지금 이 상황.
핏발 선 두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운월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진심이건 도발이건 넘어가고.
저렇게 눈깔 빠지도록 노려보는데 이제 슬슬 맞춰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나는 무복 안주머니에서 옥색의 섭선, 뇌선을 꺼내 들어 펼쳤다.
챠르륵!
맑고 고운 소리와 함께 세상에 드러난 뇌선.
그 뇌선을 가볍게 흔들며 얼굴에 바람을 부친 나는 내공을 끌어 올렸다.
괴선의 독문무공인 호접선무 虎蝶扇舞를 펼칠 것이냐고?
아니, 그래도 천마신교의 소교주인데 그럴 수가 있나. 당당하게 마공을 보여야지.
헌데, 왜 뇌선을 꺼내 들었냐고?
그야 X나 약하니까 그렇지.
나는 칠왕급이 아닌 이상 검을 뽑아 들 생각은 없었다.
왜냐고?
‘멋지잖아.’
섭선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고수를 제압하는 모습이 얼마나 멋지단 말인가?
속으로 실없는 생각을 하던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천마신공을 끌어 올리며 운월을 바라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손속에 자비는 두지 마시오. 이것은 결투. 다치는 것은 당연하오.”
우웅!
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천마신공의 기세와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연회장은 물론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졌다.
그에 사람들은 경악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약관을 갓 넘긴 젊은 소교주가 이러한 신위를 보여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아까의 천마처럼 작은 목소리를 모두에게 전달한 것은 물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색의 강대한 기운에 사람들은 경악했고.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넘긴 나는 곧 주화입마에 走火入魔에 빠질 것 같은 모습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운월을 바라보았다.
“먼저 들어오시오.”
그러고는 선수를 양보했다.
고수가 하수에게 아량을 베풀듯 말이다.
운월보다 강한 나였기에 나는 당연히 하수인 그에게 아량을 베풀었지만 저 삐뚤어진 곤륜의 도사는 모욕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우웅!
보란 듯이 보다 더 강력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으니 말이다.
모든 내공을 끌어 올렸는지 부르르 떨리기 시작하는 운월의 검.
그의 검에 투명한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고.
“검에는 눈이 없으니 조심하시오!”
타앗!
같잖은 경고와 함께 나를 향해 짓쳐들어왔다.
거참.
가소로웠다.
* * *
“저런!”
소교주를 향해 빠른 속도로 짓쳐 드는 운월.
그런 운월의 모습에 장로들은 물론 상석에 앉아 있던 천진까지 인상을 찌푸리며 놀란 음성을 내뱉었다.
핏발 선 두 눈으로 소교주, 위극신에게 달려드는 것도 상당히 불안했다.
헌데 보란 듯이 살기까지 일으키다니?
검에 어려 있는 살기에 장로들은 이마를 짚었고 천진은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살수가 일어난 대련을 막기 위해 일어서려던 찰나!
“모두 가만히 있도록.”
천진과 무림맹 장로들의 귀로 천마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꼭 그들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매서운 기세를 내뿜으며 무대를 노려보고 있던 광랑대원들과 흑천단원들에게도 하는 이야기였다.
그런 천마의 말에 마인들 모두가 검을 뽑으려던 행동을 멈추었고 장로들과 천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천마를 바라보았다.
무림맹의 장로가 소교주에게 살수를 쓰고 있었다.
그에 가장 격분할 존재가 천마이거늘 오히려 그냥 놔두라니?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움찔!
그때, 천마의 모습을 본 장로들과 천진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의자에서 등을 떼어 앞으로 몸을 기울인 상태로 무대에 집중하고 있는 천마.
그가 웃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자식이 살수에 노출되었는데 웃고 있다니?
기괴하기 짝이 없는 천마의 모습에 공포를 느낀 장로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고 천진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런 천마를 바라보았다.
“무인과 무인으로서 겨루는 정정당당한 대련일 뿐. 본교에서는 당연한 일이니 모두 나서지 말도록.”
천마의 입에서 나온 단호한 말.
그 말에 장로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멍한 표정으로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그중에서 특히, 육장로인 팽진혁은 허탈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무림맹은 잔인한 손속이라는 명분으로 천마신교를 압박해 갔다.
헌데 그 명분으로 천마신교를 압박하기는커녕 이제는 오히려 무림맹의 장로가 천마신교의 소교주에게 살수를 펼치기 시작했다.
잔인한 손속보다 더 심한 살수 殺手를 말이다!
그에 무림맹의 입장은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명분을 빼앗겼으니 말이다.
그중 가장 선두에서 천마를 압박하던 육장로 팽진혁은 운월의 행동에 허탈감을 느꼈고 말이다.
좀 전과는 정반대가 되어 버린 지금 이 상황에 무림맹의 수뇌부들은 모두 허탈한 표정을 지었지만 단 한 명만은 그러지 않았다.
무림맹의 맹주인 천진.
그는 여전히 흥미로운 표정으로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는 천마를 싸늘한 눈으로 응시할 뿐이었다.
자식에 대한 걱정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천마의 모습에 실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천소화와의 독대 후, 천진은 천마가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족인 딸아이와 손자들에게 잘 대해 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 천마는 천마였던 것이다.
자식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천마의 모습에 천진은 깊은 실망감을 느꼈고 그에 자신이라도 나서기 위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
-아버지, 가만히 계세요.-
그의 귀로 들려오는 익숙한 전음에 그대로 몸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무대 아래.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젓는 천풍의 모습을 발견했다.
자신을 만류하는 천풍의 행동에 천진은 의문 어린 눈빛으로 천풍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말리는 천풍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극신이가 이깁니다.-
-그게 무슨 소리더냐! 상대는 유운선검이다! 아무리 녀석이 강하더라도 아직은 어린아이일 뿐!-
천풍의 확신 어린 말에 천진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대답했다.
그에 천풍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소화의 모습을 보십시오.-
천풍의 말.
그 말에 천진이 고개를 돌려 천소화를 바라보았다.
“!!”
그러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그 누구보다 위극신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천소화.
그 아이가 아무런 걱정 없는 표정으로 담담히 무대 위를 지켜볼 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극신이의 약혼녀인 서 소저를 보십시오.-
그런 천진의 귀로 들려오는 천풍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천진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은은한 미소까지 짓고 있는 천소화가 말이다.
그에 천진은 말문이 막혔고.
-아시겠습니까? 천마와 소화, 그리고 약혼녀인 서 소저까지. 극신이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 극신이를 믿고 가만히 있습니다.-
말문이 막힌 천진의 귀로 웃음기 섞인 천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극신을 잘 아는 그들.
그들이 동요하지 않고 위극신을 지켜보기만 한다?
그 뜻은 위극신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천풍의 전음과 그들의 모습에 천진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스윽.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자신이 나서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이 되었던 것이다.
그에 천진은 조금은 편해진 마음으로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천마를 마음대로 평가한 자신의 실책을 자책했다.
‘늙으면 역시 죽어야 해…….’
늙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멍청한 장로들에게 물들었기 때문일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마음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몹쓸 행동을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던 천진이었다.
그렇게 천진이 스스로를 자책하는 사이.
쾅!
섭선과 검이 부딪치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굉음이 무대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에 상념에서 벗어난 천진이 고개를 들었고.
“!!”
허공을 수놓은 운월의 화려한 검과 섭선 하나로 그 검 하나하나를 막아서고 있는 위극신의 모습이 보였다.
당당하게 서 있는 위극신을 향해 무섭게 짓쳐들어오는 검.
그 수많은 검을 피하지 않고 일일이 막아서며 완벽하게 운월의 모든 초식을 제압하고 있는 위극신의 행동.
수준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하수에게 고수가 보일 법한 위극신의 모습에 천진은 물론 이곳에 있던 모두가 경악 어린 모습으로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소교주인 그가 칠천신군에 들 정도로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칠왕에 근접한 장로를 가볍게 제압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내부를 수습하고 있는 사황성이었기에 부성주의 죽음은 극비에 부쳤고, 그러다 보니 아직 사권왕 권진욱의 죽음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경악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약관의 젊은 사내가 칠왕에 근접하는 무공 순위를 보여 주고 있으니 말이다.
아 물론 천마신교의 인물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왜냐고?
위극신이 말도 안 되게 강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약하다.’
정말 약했다.
쓸데없이 화려하기만 한 보법과 검을 걷어 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곤륜파.
중원에서 가장 산세가 험한 곤륜산에 위치한 도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문파로서 산세가 험한 지형상 신법과 보법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는 문파였다.
그들이 펼치는 무공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구름을 노니는 용과 같다 하여 붙여진 운룡대구식 雲龍大九式과 용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검법, 태허도룡검법 太虛屠龍劍法 이 있다.
구름을 노니는 용처럼.
무당과 같이 부드러움이 강조된 것이 곤륜파의 검법이거늘 자신을 공격하는 운월의 검에는 부드러움은커녕 파괴적인 기세밖에 없었다.
“본교의 인물과 같군.”
그 파괴적인 공격에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나의 말이 또 도발이 되었을까?
운월이 더 붉어진 눈으로 나를 향해 짓쳐 들었다.
이것 참.
무슨 말을 못 하겠다.
본교에 대한 악감정이 너무나도 강한 운월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펼쳐진 뇌선을 접었다.
탁!
쾅!
펼쳐져 있던 뇌선이 접어지자 고르게 퍼져 있던 나의 천마신공이 한곳으로 응집되며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고 그 폭발에 의해 운월의 검은 뒤로 튕겨 났다.
꽈득!
뒤로 튕겨 났음에도 검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검을 쥔 운월.
나는 그런 운월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허리에 힘 풀어.”
퍽!
그러고는 불필요하게 힘이 들어가 있는 운월의 허리를 찍었다.
나의 공격에 그대로 일격을 허용하고 만 운월.
그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타앗!
그는 다시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에 나는.
“어깨가 너무 올라갔다.”
퍽!
“팔꿈치가 뻣뻣해.”
탓!
“허리에 또 힘이 들어갔군.”
퍽!
스승이 제자를 지도해 주듯.
나는 운월의 자세를 지적해 주었다.
강한 힘이 들어가 있어 부드러움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부위를 뇌선으로 지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