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제144장 친구 따라 황도 간다 友行皇都
“모과차 괜찮으냐?”
무림맹주의 집무실.
그곳에 천소화를 들인 천진이 자리에 앉은 천소화를 보며 물었고 천소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천소화의 긍정에 천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찻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우웅!
천진의 단전에서부터 일어난 심후한 내공.
그 내공이 작은 찻주전자를 빠르게 데웠고 잠시 후.
쪼르르.
연기가 폴폴 나는 찻주전자에 달달한 모과 청을 넣었다.
그렇게 따뜻하고 달달한 모과차를 완성한 천진은 걸음을 옮겨 천소화의 찻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쪼르르.
찻잔에 모과차 따라지는 소리와 함께 집무실에 향긋하게 퍼지는 달콤한 향기.
그 향기에 살짝 미소를 지은 천소화가 입을 열었다.
“모과차네요.”
“그래, 네가 좋아하던 거지.”
천소화의 웃음기 어린 말에 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에 천소화는 손을 들어 찻잔을 만진 다음 찻잔을 들어 모과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옛 생각 나네요.”
“그래, 네가 겨울에 고뿔이 걸리면 그녀가 늘 모과차를 끓여서 주었지.”
“네, 맞아요.”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했던 천소화.
그 체질로 인해 무공도 배우지 못했던 그녀는 겨울만 되면 정기적인 행사처럼 고뿔에 걸려 고생을 하곤 했었다.
겨울만 되면 고뿔에 걸려 괴로워한 천소화가 안쓰러웠던 천소화의 어미는 천소화에게 따뜻하면서도 어린 천소화의 입에 맞는 달달한 모과차를 자주 타 주었다.
그에 천소화는 오랜만에 마시는 모과차에 이제는 보지 못하는 어머니의 추억이 떠올라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기를 잠시.
“아이들이 잘 컸더구나.”
“네, 저에게 과분한 아이들이지요.”
추억에 잠겨 있던 천소화는 자신의 귀로 들려오는 천진의 목소리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이들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자동적으로 나와 버리는 천소화의 웃음.
그 웃음을 본 천진은 미소를 지었다.
“행복해 보이구나.”
“네, 저는 행복합니다.”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천소화의 확신 어린 대답.
행복하다는 그 대답에 천진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고개를 숙이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이야…….”
나중에는 자신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천진의 모습에 천소화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왜소한 노인이 되어 버린 아버지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행복하니 죄책감은 그만 내려놓으세요.”
“너에게 나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그 죄로 인해 그이를 만나게 되었고 극신이와 천이를 만나게 되었어요.”
“…….”
“그리고…… 여기 이 아이도.”
“……?!”
뒤이어 들려오는 천소화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천진은 두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였다.
자신의 배에 손을 얹고 미소를 지어 보이는 한 아이의 엄마이자 자신의 딸인 천소화가 말이다.
“회임을 한 것이냐……?”
“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천진의 물음.
그 물음에 천소화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천진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홑몸도 아닌 아이가 어찌 신강에서 이곳까지 왔단 말이더냐!”
놀라다 못해 언성이 높아져 버린 천진.
이제야 자신이 알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주는 천진을 보며 천소화는 미소를 지었다.
“그이와 조금이라도 함께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극신이가 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홑몸도 아닌 아이가…….”
“아버지.”
움찔.
천소화의 입에서 나온 아버지라는 말.
그 말에 천진은 움찔했다.
그제야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에 화들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자신의 몸을 다시 의자에 앉혔고 호흡을 고르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런 천진을 보며 천소화는 특유의 매력적인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천마신교의 대부인입니다.”
“그래.”
천소화의 입에서 나온 말.
정체성이 담겨 있는 말에 천진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신의 딸이 천마신교의 대부인이다.
어느 멀쩡한 아버지가 좋아하겠는가?
마인이 아닌 이상 좋아하는 아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런 천진의 모습을 알아본 것일까?
천소화가 소리 죽여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강하며, 천마신교의 안주인입니다. 그리고 지고한 존재인 천마의 부인입니다.”
“…….”
“저는 강합니다. 그러니 걱정은 넣어 두세요.”
천소화의 입에서 나온 강하다는 말.
그 말에 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이미 한 세력의 안주인이다.
게다가 두 아이, 아니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다.
엄마는 강하다.
이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닌 듯 그녀는 정말 강했다.
그제야 천진은 눈앞에 있는 여인이 자신의 딸이면서 동시에 천마신교의 대부인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한없이 어린아이 같던 아이가 언제…….’
너무나도 훌륭하게 자라서 어머니의 강한 모습을 보여 주는 딸.
그런 딸을 보며 천진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것을 가까스로 참아 내었다.
“아버지.”
“그래.”
가까스로 감정을 자제하던 천진.
그는 천소화의 이어진 부름에 고개를 다시 들어 천소화를 바라보았다.
“제가 아버지와 이렇게 독대를 하려 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어요.”
따로 위극신에게 천진과 자리를 만들어 달라 부탁했던 천소화.
절대 이런 개인적인 부탁을 하지 않았던 천소화가 처음으로 부탁을 했고 위극신은 흔쾌히 수락한 다음 머리를 굴렸다.
그것을 언급하며 천소화가 말하자 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말하라는 뜻이었다.
그에 천소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첫째는 좀 전에 말한 것처럼 아버지의 죄책감을 덜어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여인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으니 더 이상 스스로를 탓하지 마십시오.”
“나는 죄인이다.”
“이제는 죄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당당해지세요.”
힘없는 천진의 대답에 천소화가 두 눈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목소리에 실려 있는 강경함에 천진은 가만히 천소화를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는 곧은 두 눈동자였다.
그에 천진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감히…… 그러도록 하마.”
스스로를 죄인이라 생각했던 천진.
그가 스스로를 더 이상 죄인이라 생각하지 않기로 확실하게 대답하자 천소화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둘째.”
“그래.”
“극신이와 천이는 천마신교의 아이들입니다.”
“…….”
천소화의 말에 천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천소화는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림의 평화, 안녕을 위해서 아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마세요.”
“…….”
“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희생을 강요했던 아버지 천진.
그를 바라보며 천소화가 경고했다.
그에.
“미안하다…… 내가 정말 미안해.”
천진은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십오 년 전.
자신에게 그랬듯 손자인 위극신과 위천에게 혹여나 희생을 강요할까 걱정스러워하는 천소화의 모습에 천진은 가슴이 메어 왔다.
그래, 저 아이의 눈에는 자신은 그런 사람이다.
가족보다는 무림의 평화와 안녕을 더 생각하는 인물.
그에 천진은 계속해서 용서를 구했다.
그에 천소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대답을 받기 위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답해 주세요.”
아이들의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는 천소화의 말.
그 말에 천진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천소화의 두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 아이들에게는 너와 같은 상처를 주지 않겠다.”
* * *
“열여덟이야?”
“예.”
천풍의 안내로 전각에 들어선 마독.
그는 자신의 옆에 달라붙는 이공자, 위천을 보며 대답했다.
그에 위천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독을 바라보았다.
“친구네!”
“예?”
위천의 입에서 나온 친구라는 단어.
그 단어에 마독이 벙 찐 표정을 지으며 위천을 바라보았다.
그런 마독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의치 않은 위천은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마독의 어깨에 팔을 둘러메었다.
“우리 오늘부터 친구야.”
“저기…… 공자님…….”
“친구한테 공자님이라니. 친구면 말 편하게 해야지!”
마독의 당황스러운 음성에 마독이 짐짓 엄한 목소리를 내며 핀잔을 주었다.
그에 마독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그러려니 해.”
“……?”
자신의 앞에서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청년, 왕일을 보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난 왕일, 열여덟.”
“…….”
“친하게 지내자 친구.”
위천에게 옮은 것일까?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당연하게 친구라 칭하는 왕일의 행동과 위천의 행동에 마독은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래, 친구들아.”
마독.
그는 한때 풍류아로 이름을 떨치던 존재.
친화력 하나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어이, 꼬맹이들.”
“형님!”
“형님!”
“…….”
그때. 뒤에서 건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위천과 왕일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쪼르르 뛰어갔다.
순식간에 홀로 남게 된 마독.
그가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른 아이들과 같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자신을 부른 위극신에게 가기 위해서였다.
“천, 너는 마정대회에 나간다면서 수련 안 하지?”
“하려고 했어요!”
위극신의 물음에 위천은 주먹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에 위극신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왕일과 마독을 바라보았다.
“너희 둘도 따라와라. 천이랑 같이 수련시켜 줄 테니까.”
“아 저는 일이 많아서…….”
“저도 다른 무사님들 도와드려야 해서…….”
위극신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변명을 대며 몸을 피하려는 왕일과 마독.
어느덧 친한 벗처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그들의 모습에 위천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위극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형님 저도 갑자기 일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
되도 않는 위천의 변명.
그 변명에 위극신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러고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왕일과 마독을 노려보았다.
순수한 자신의 동생 위천.
그가 저 시커먼 놈(?)들과 다니더니 이상한 것을 배우고 따라 하고 있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었다.
친구 따라 황도 간다고 말이다.
딱 그 말뜻을 보여 주는 지금 이 상황에 위극신은 분노를 느꼈고.
“하하! 수련하고 싶습니다!”
눈치가 빠른 왕일이 황급히 웃으며 대답했지만 이미 늦었다.
쭈욱!
“으아아!!”
위극신의 양손에 잡혀 버리고 만 마독과 왕일의 귀.
귀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고통에 마독과 왕일은 괴로운 소리를 내질렀지만 위극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쭈욱!
더 강하게 잡아당길 뿐이다.
그렇게 힘을 주어 더 강하게 잡아당긴 위극신은 고개를 돌려 다시 위천을 바라보았다.
“갈 거지?”
“넵.”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묻는 위극신.
그런 위극신을 보며 귀가 아려 오는 것을 느낀 위천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세 명은 위극신과 함께 전각 뒤편에 마련된 수련장으로 갔고 잠시 후.
“끄아아아!”
“아아악!”
“하하! 재밌어요, 형님!”
수련장에는 곡소리와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반나절 동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