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제141장 마천살성 魔天殺性
“사숙.”
호북의 무당.
당대의 무당제일검이자 칠왕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태극검왕 청수 진인은 무당산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암자를 만들어 그곳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오늘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암자에서 운기를 하던 청수 진인은 운기를 마치자마자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곧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소년의 티를 갓 벗은 십 대 후반의 어린 청년의 얼굴이 말이다.
그런 청년의 부름에 청수 진인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태진 太眞 이구나. 무슨 일이더냐.”
무당은 예로부터 각 세대마다 명호가 정해져 있었다.
현재 무당파의 장문인과 무당파의 일각을 담당하고 있는 장로들이 청 자 배를 사용하며 그들의 제자이자 실질적으로 모든 업무를 수행하는 일대제자들이 바로 태 자 배이다.
무당파 제일검이자 정무각의 각주인 청수를 사숙이라 부른 청년.
태진이라는 명호를 가지고 있으며 일대제자임에도 불구하고 허 자 배인 이대제자의 막내와 나이가 같은 그는 무당파 역사상 손에 꼽히는 무재를 지니고 있어 무당파에서 심혈을 기울이며 키우고 있는 아이였다.
또한 청수가 처음으로 욕심이라는 감정을 내비치며 제자로 삼고 싶어 하는 아이였기도 했다.
“스승님의 부탁을 받은 이는 언제 볼 수 있습니까?”
하지만 청년은 이미 스승이 있는 몸.
십 년 전 훌쩍 떠난 신선도인 神仙道人 청학이 바로 태진의 스승이었다.
늘 스승을 그리워하며 다른 스승을 섬기는 것을 거부했던 태진의 물음에 무림맹의 일로 골치가 아프던 청수 진인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태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는 마교의 소교주다.”
“예, 소식 들었습니다.”
“그런 이를 만나고 싶단 말이더냐?”
태진의 대답에 청수 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고 태진은 그래도 만나고 싶다는 듯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에 청수 진인은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돌려 아름다운 무당산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때 사형의 유품 遺品 을 받았어야 했다. 그와의 인연이 욕심나 그런 부탁을 하였으니…… 이 또한 욕심을 부린 나에게 오는 벌이겠지.”
“…….”
“우리는 마교의 소교주를 귀빈으로 맞이하여야 한다. 청학 사형의 모든 것이 그의 손에 들려 있기 때문이지.”
“…….”
“그것도 모자라 무당파의 기대주인 너를 그자에게 보여야 하느냐?”
“그분은 제 스승님의 곁을 지켜 주신 분입니다. 저에게 은인과 같은 분이니 은혜를 갚아야 함이 당연합니다.”
태진을 설득하기 위해 길게 입을 연 청수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태진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했다.
그에 청수는 고개를 돌려 태진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어 태진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전신에서부터 느껴졌다.
그가 마교의 소교주이건 무림의 영웅 무협공자이건 자신의 은인이라는 것은 변함없다고 말이다.
그에 청수 진인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무량수불…….”
그러고는 짤막하게 도호를 외웠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욕심이었다. 도대체 누구를 탓할 수 있단 말인가?
그에 청수 진인은 계속해서 두 눈을 감고 도호를 읊었고 태진 또한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잠시 후.
청수 진인과 대화를 마친 태진이 청수 진인이 기거하고 있는 암자에서 내려왔다.
“또 각주님에게 다녀오셨습니까.”
그런 태진의 귀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
그 목소리에 태진이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허참…….”
삐딱한 자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이대제자. 허참이 말이다.
이대제자 중 둘째이며 이십 대 후반인 허참의 모습에 태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불렀고 그의 부름에 허참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아 진짜…… 배분이 뭐라고…….”
“배분은 무당파의 근본과도 같다. 예를 갖추어라.”
그런 허참의 말에 태진은 화가 났지만 화를 내지 않고 손윗사람으로서 훈계하듯 그를 타일렀다.
그런 태진의 말에 허참은 대놓고 피식 미소를 지었다.
태진의 가르침에 동의는커녕 비웃는 그의 행동에 태진은 혀를 차고는 걸음을 옮겼다.
이대제자 중에서 저렇게 무례한 아이들이 많았다.
최근에 들어 그것이 상당히 거슬렸지만 어릴 때부터 늘 받아 오던 취급이었기에 태진은 늘 무시로 일관했다.
그렇다고 사숙으로서의 근엄은 버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자신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기는 태진의 모습에 허참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사숙이 되어 버린 어린놈.
각주님들과 장문인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정무각주인 청수 진인의 제자 제안을 거절하는 건방진 놈이었다.
내심 그런 태진을 질투하던 허참은 어린데도 불구하고 늘 자신을 아랫사람 취급하는 태진을 끔찍하게 싫어해 왔고, 오늘도 저렇게 혀를 차며 떠나는 태진의 모습에 허참은 가슴속으로부터 뜨거운 것이 울컥 튀어나오고 말았다.
“청학 태사숙도 너무하지 않으십니까?”
우뚝.
허참의 입에서 나온 청학이라는 이름.
자신에게 있어 금지어와도 같은 말에 태진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 태진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을까?
허참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홀로 남겨 둔 제자에게 마교의 소교주를 은인으로 남겨 두다니…….”
“…….”
“십 년 전 버리듯 내팽개칠 때는 언제고 제자에게 이렇게 큰 짐을 지우게 만드니…… 정말 너무하십……. 크윽!”
허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허참은 자신의 목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지금 감히 사숙의 앞에서 태사숙을 욕보이는 것이더냐.”
콰득!
“크허헉!”
허참의 목을 쥔 태진의 손아귀.
그 손아귀의 힘이 더욱더 강해지자 허참은 괴로워하며 신음을 내뱉었다.
그런 허참의 모습이 기괴하여 불쌍한 마음이 생길 법도 하건만 태진은 전혀 그렇지 않은 듯 여전히 싸늘한 눈빛으로 허참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부터 너는 말투가 싸가지가 없었지.”
“커헉!”
“어린 사숙인 나한테는 까불기만 하는 정도라서 그냥 넘어갔는데, 이건 선을 넘었다.”
번들!
“커헉!!”
태진의 두 눈에 번들거리는 살기!
그 살기에 허참의 두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태진의 두 눈에 어린 살기로 인해 자신이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주륵.
그에 허참은 태어나 처음으로 공포에 질려 바지에 오줌을 지려 버리고 말았다.
점점 젖어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의 모습에 고개를 살짝 숙인 태진.
그가 바닥을 점점 적셔 가는 물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스윽.
털썩.
“크허허헉!”
젖어 든 땅 위로 허참을 떨어뜨렸다.
자신의 오줌으로 인해 엉망이 되어 버린 도복과 바닥.
하지만 허참은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커허헉!”
그동안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해 너무나도 괴로웠기 때문이다.
괴상한 소리를 내며 호흡을 고르는 허참의 모습을 태진이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싸늘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입에서 다시 한번 스승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날에는…… 정말 죽인다.”
“히끅!”
태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기운!
유능제강 柔能制剛을 근본으로 수련을 하며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무당파의 기세에 어울리지 않는 태진의 폭발적인 기운에 허참은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딸꾹질을 하였다.
그에 태진은 피식 미소를 짓고는 걸음을 옮겼고.
털썩.
허참은 그대로 옆으로 기울어 기절하고 말았다.
그렇게 태진이 떠나고 기절한 허참만이 이 공간을 이루었고, 잠시 후.
스윽.
하늘색 바탕의 도복을 입은 청수 진인이 그곳에 나타났다.
그러고는 태진이 사라진 방향을 가만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천살성 魔天殺性…….”
무당산에서 느껴져서는 안 될 살기에 반응하여 한달음에 달려온 청수 진인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허참의 목을 조르던 태진의 새하얀 두 눈을 말이다.
살기가 번들거리는 새하얀 두 눈.
사람들은 그것을 백마안 白魔眼 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살성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불리는 마천살성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 * *
“누구신가.”
무림맹의 맹주실.
마른 천으로 난을 닦으며 시간을 보내던 무림맹주, 천진은 뒤에서 느껴지는 낯선 기운에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에.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천진의 귀로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천진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무림맹주가 기거하는 집무실이다.
무림맹의 외성안에 위치하고 있는 내성, 그런 내성의 가장 깊숙한 곳이 바로 이곳 집무실이다.
그 뜻은 무림맹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고수들의 이목을 속일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으로 이곳을 방문한 손님은 최소한 경지에 오른 고수라는 뜻이었다.
헌데도 이렇게 젊은 목소리이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에 천진은 놀란 표정 그대로 고개를 돌렸고 이내 헌앙한 사내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젊은 소협이 대단하구만.”
“감사합니다.”
천진의 순수한 감탄에 사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감사를 표하면서도 고개는 숙이지 않는 사내의 모습에 천진은 두 눈을 반짝였다.
고개를 숙이지 않음에도 느껴지는 정중함과 그의 기세에서 느껴지는 당당함.
절대자가 지녀야 할 기세를 청년이 지니고 있었기에 청년의 정체가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에 천진은 웃으며 빈자리를 가리켰다.
“앉게.”
“예.”
천진의 권유에 사내는 짧게 대답하고는 자리에 앉았고 천진은 직접 이곳을 찾은 손님을 위해 차를 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후.
“향이 좋군요.”
집무실에 가득 퍼지는 은은한 향에 사내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에 천진 또한 미소를 지었다.
“딸아이가 좋아하던 차일세.”
“하하, 그렇군요.”
“차를 좋아하는가?”
사내의 대답에 천진은 사내의 앞에 놓인 잔에 차를 따르며 물었다.
그에 사내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좋아합니다. 대명 제국의 사람으로서 어느 누가 차를 싫어하겠습니까?”
차 문화가 오랜 시간 전부터 내려오는 대륙이었기에 사내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어느 정도 살림이 괜찮은 서민들도 차를 즐겼으며, 술이 아닌 차를 마시기 위한 다루 茶樓까지 존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사내의 대답에 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잔에 차를 한 잔 따르고는 자리에 앉았다.
“한 잔 들고 이야기하세.”
자리에 앉은 천진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차를 먼저 권했고 사내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다음 차를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어떤가?”
“뜨겁군요.”
“허허, 그래, 뜨겁지.”
사내의 대답에 천진은 소리 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대는 누구인가?”
무림맹주의 집무실에 사람들의 이목을 속이고 들어왔으며, 젊은 나이에 경지에 오른 고수.
또한 절대자의 기세를 지니기까지 한 사내를 보며 천진이 물었다.
그에 사내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제 숙부를 죽인 사람입니다.”
“…….”
갑작스러운 사내의 대답.
전혀 생각지 못한 대답에 천진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두 눈을 크게 떴다.
젊은 나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니고 있는 절대자의 기운.
마지막으로 숙부를 죽인 사내.
이 세 가지의 조건에 부합하는 사내는 이곳 대명 제국에서 단 한 명뿐이었다.
바로.
스윽.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대명 제국의 황제, 혜제 주윤문.
그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천진이 사내, 아니 주윤문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었다.
그에 주윤문은 웃어 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예를 풀고 앉으시지요.”
“제가 어찌 폐하와 겸상을 하겠나이까.”
“제 친우의 조부이십니다.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으시니 앉으십시오.”
“친우……?”
주윤문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천진이 고개를 들어 주윤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에 주윤문은 싱긋 웃음을 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야기해 드릴 테니 앉으십시오. 이야기하기 불편합니다.”
“……예, 폐하. 황공하옵니다.”
주윤문의 이어진 말에 천진은 잠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조심스럽게 주윤문의 맞은편에 앉았다.
“우선, 이것 받으십시오.”
천진이 자리에 앉자 주윤문은 품속에서 작은 옥함을 꺼내 탁자에 올려 천진에게 밀었다.
갑작스러운 주윤문의 하사에 천진은 의문 어린 표정으로 주윤문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해독약입니다.”
“!!”
천진의 물음에 이어진 주윤문의 대답.
주윤문의 대답에 천진은 두 눈을 크게 뜨며 주윤문을 바라보았다.
그에 주윤문은 다시 입을 열었다.
“부디…… 이것을 먹어 주십시오.”
“폐…… 폐하, 제가 독에 중독되었다는 것은 어찌…….”
“묻지 말고, 먹어 주십시오.”
“…….”
천진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주윤문은 먹어 달라는 부탁만 하였다.
그에 천진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고, 그런 천진을 바라보며 주윤문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나중에…… 다 정리가 되면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
“일단 지금은, 제 친우가 슬퍼하는 것을 보기 싫습니다. 그러니 부디 먹어 주십시오.”
자신을 향해 고개까지 살짝 숙여 보이는 주윤문의 모습에 천진은 두 눈을 크게 떴다.
혜제 惠帝 주윤문.
그가 누구인가.
대명 제국의 주인이자 만인지상의 황제이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한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슬퍼하는 친우의 모습이 보기 싫다며 부탁하는 주윤문의 행동에서 진심을 느낀 천진은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그 상태로 입을 열었다.
“혹, 폐하의 벗이 극신이옵니까?”
“맞습니다.”
천진의 입에서 나온 손자의 이름.
위극신이라는 이름에 주윤문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천진은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헌앙한 미청년.
절대자의 기세를 내뿜으면서도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는 청년의 모습에 천진은 미소를 지었다.
스윽.
그러고는 탁자 위에 있는 옥함에 손을 얹었고 그런 천진의 행동에 주윤문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