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제137장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女願
“감사합니다.”
사천당가에 마련된 또 다른 응접실에 들어선 왕일.
그는 둥그런 탁자에 둘러앉아 있는 두 명의 사내, 한때 삼황 三皇 이었던 당독과 현대 삼황 중 한 명인 천마 天魔 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껄껄, 아닐세. 오히려 그대가 급하게 오느라 고생하였네.”
누구와 달리 정중한 후배의 모습이 뿌듯했을까?
당독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보이며 오히려 급하게 이곳을 방문해 준 왕일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런 당독의 감사에 왕일은 영광스럽다는 듯 고개를 깊게 숙여 보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너구나.”
“예……?”
그런 왕일을 빤히 바라보던 천마.
그의 입에서 나온 짧은 말에 왕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마를 바라보았다.
“헙!”
절세미남인 자신의 의형만큼이나 너무나도 아름다운 외형을 지니고 있는 사내.
사십 대 초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천마의 모습에 왕일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런 왕일의 모습에 천마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이내 흥미로운 눈빛으로 왕일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뺀질이.”
왕일을 뺀질이라 평가하였다.
그에 왕일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좀 뺀질거리기는 합니다.”
“웃기는 놈이군.”
“그래서 극신 형님의 의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 그놈도 웃기지.”
“멋있는 분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천마의 말에 왕일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천마는 가만히 왕일을 바라보았다.
무미건조한 두 눈빛.
그 눈빛을 맞이한 왕일은 등줄기를 식은땀 한 줄기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
‘천마 그 인간, 은근히 인간적이야.’
왕일의 머릿속으로 언젠가 위극신이 해 주었던 한마디가 지나갔다.
그에 왕일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조금은 비굴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형님이 교주님을 닮아 멋지신 거였군요.”
“흐음.”
뻔히 보이는 왕일의 아부.
그 아부에 당독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만족스러운 듯 턱을 쓰다듬는 천마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많은 무사들과 교인들에게 찬양을 받아 오는 것이 당연할 천마.
그가 고작 저런 사소한 아부에 기분 좋은 티를 내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당독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놈이 나를 닮을 리가 없지.”
천마가 자신의 아들을 꽤 괜찮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위극신을 부정하는 말과는 달리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천마를 보며 왕일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이름을 살살 팔면 대화가 잘될 것이라는 위극신의 조언.
그 믿기지 않던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그에 왕일은 웃으며 자신의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위천을 바라보았다.
“이 친구도 교주님을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아니.”
이어진 왕일의 아부.
그 아부에 천마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에 왕일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천마는 그 누구보다 진지한 어조로 왕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천이는 소화를 닮았다.”
“…….”
“눈웃음이 제법 매력적이지.”
“아…….”
“누구 아들인지 참.”
대놓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은 덤이었다.
* * *
“후배 천풍, 오랜만에 선배님에게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나 왔어.”
사황성주의 집무실.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천풍이 예를 갖추며 포권을 취했고, 나는 반가움을 표하며 가볍게 인사했다.
제법 친해졌기에 가벼운 예만을 표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여동생인 백리진은 대충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런 백리진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백리진을 살짝 흘겨보던 백리관은 이내 피식 미소를 짓고는 먼저 천풍을 바라보았다.
“후배의 방문을 환영하네, 모두 자리에 앉게.”
천풍의 인사를 받아 주고, 나를 바라보며 자리를 권하는 백리관.
그런 백리관의 권유에 나와 천풍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을 대신 한 다음 그가 권한 의자에 앉았다.
“밖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동생과 제법 친해진 것 같더군.”
“하하, 제가 길을 잃었을 때 도움을 주셨거든요.”
자리에 앉은 천풍.
그를 바라보며 백리관이 묻자 천풍이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천풍을 가만히 바라본 백리관.
그가 갑자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마음에 든 물건을 발견한 듯 말이다.
그런 백리관의 행동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오라버니……?”
백리진이 살기가 가득한 음성으로 억지웃음을 지으며 백리관을 바라보았다.
그에 백리관은 황급히 끄덕이던 고개를 멈추었고 이내 헛기침을 한번 한 다음 나를 바라보았다.
“소교주, 이번 도움은 고마웠네. 그대가 활약한 것을 사황성의 무인들이 알게 되었고 동맹을 인정하는 분위기야.”
“그거 다행입니다.”
백리관의 정리된 말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사황성에 남아 있던 부성주 사권의 추종자들, 그리고 천마신교와의 동맹을 반대하던 세력들까지.
모두 이번 한 번에 정리가 되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백사문의 처단을 시작으로 사황성주 백리관은 그동안 참아 왔던 칼을 빼 들었고, 여인이라는 이유로 서은설을 반대하던 모든 사람들이 몸을 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정리된 사황성의 내부 상황.
그것을 인지한 백리관이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곧 떠나려는 것인가?”
“예, 은설과 함께 떠나고 싶습니다.”
백리관의 물음에 나는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그에 옆에 있던 백리진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백리관은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기를 잠시.
생각을 정리한 듯 백리관이 손을 내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소교주.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나?”
“예, 말씀하십시오.”
진지한 백리관의 어조.
그 어조에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에 백리관은 나의 두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약 십여 초.
그가 입을 열었다.
“십사 년 전 한번 만난 것 이외에는 만난 적도 없는 사이가 아닌가. 헌데 어찌 조금의 고민도 없이 은설과 혼인을 한다는 것이지? 솔직히 이번 혼약은 나의 반장난으로 시작했네. 헌데 은설이는 물론이거니와 자네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지.”
“…….”
“나는 은설이가 행복했으면 하네. 자네가 그렇게 해 줄 수 있다고 자신하는가?”
이어진 백리관의 물음.
부성애 父性愛가 가득한 백리관의 물음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백리관은 모를 것이다.
전생에서 내가 서은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또 나를 가장 먼저 구원해 준 이가 서은설이었으며, 늘 나의 곁을 지켜 준 이 또한 서은설이었다는 것을.
사랑받을 이유가 너무나도 많아 오히려 나에게 너무나도 아까운 여인이 바로 서은설이다.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주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린 나는 확신 어린 미소를 지으며 백리관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진심이 가득 담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예, 저 자신을 희생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것입니다.”
전생에서는 저 때문에 불행하게 죽었거든요.
진심이 가득 담긴 나의 대답에 백리관은 물론 백리진, 그리고 천풍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에 나는 다시 백리관을 바라보았다.
“은설이는 충분히 사랑스러운 여인입니다. 오히려 저에게 아까운 아이지요. 십사 년 동안 우리는 서로의 매일을 공유해 왔습니다. 비록 옆에는 없었지만 마음은 늘 함께 있었고, 저는 그녀가 있어 그리고, 그녀 또한 제가 있어 외로움을 이겨 냈습니다.”
“…….”
“자그마치 십사 년입니다. 그 중요한 인연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그 이후의 남은 세월은 그녀의 옆에서 마음도 몸도 함께하겠습니다.”
“…….”
“그러니 부디,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마지막은 조금 과장했나?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딸처럼 서은설을 생각하는 백리관.
그를 향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따님을 달라는 식상한 나의 말.
그 말에 집무실에는 침묵이 내려앉았고 나는 백리관의 대답이 들려올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짝짝.
침묵이 지속되는 가운데.
돌연 손바닥이 부딪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나는 고개를 들었고, 이내 볼 수 있었다.
“역시 언니의 아들이네!”
“내 조카 멋지다!”
나를 향해 박수를 치는 백리진과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천풍을 말이다.
조금은 과장스러운 그 둘의 행동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백리진과 천풍.
제법 잘 어울릴지도…….
“크흠.”
아무튼.
그런 둘의 과장스러운 행동을 뒤로하고 헛기침을 한 번 한 백리관.
그의 헛기침에 백리진과 천풍은 박수를 멈추고 손을 내렸고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백리관을 바라보았다.
“은설이를 잘 부탁하네.”
“감사합니다.”
백리관의 입에서 나온 허락과도 같은 말.
그 허락에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깊게 숙였다.
* * *
“멸살단의 단원들은 그럼 모두 각 세력에 흩어져 잠입해 있는 것이냐?”
호북의 객잔에 들어선 주윤문.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 자신에게 보고를 올리는 혈영을 보며 물었다.
그에 혈영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천마신교의 본전에는 아직이지만 각 지부에 한 명씩은 있으며 무림맹에 가장 많이 잠입해 있습니다. 송구하지만 사황성에는 최근 내부 정리가 있어 몸을 사리고 있어 자세히 연락하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렇구나.”
혈영의 자세한 설명에 주윤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혈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황성의 내부 정리에 관한 보고는 염승에게 하지 않도록 하거라.”
“명을 받듭니다.”
주윤문의 명령에 혈영은 고개를 깊게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주윤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 물러가라는 축객령이었다.
하지만 그런 주윤문의 축객령에도 불구하고 혈영이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주윤문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느냐?”
“황 노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
주윤문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 혈영.
그의 대답에 주윤문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혈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또한 방 학사에게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
“저번처럼 또 주군이 모르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되어 이렇게 보고를 드립니다. 만약 심기를 어지럽혔다면 송구하옵니다.”
주윤문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복잡한 표정을 짓자 혈영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용서를 구했다.
“아니.”
그에 주윤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용서를 구하고 있는 혈영을 바라보았다.
“고맙구나, 알려 주어서.”
“황공하옵니다.”
주윤문의 말에 혈영은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대답했고 그런 혈영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은 주윤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둘에게는 대충 원하는 정보만 알려 주거라, 너무 자세히는 하지 말고. 그리고 은밀하게 경륭을 불러오거라.”
“알겠습니다.”
황제의 직속 병력 중 하나인 금의군.
그곳의 수장인 이경륭을 부르라는 주윤문의 명령에 혈영은 아무런 의문도 없이 대답했다.
그에 주윤문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녀석은 내가 믿을 수 있는 수하이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녀석과 상의를 하거라.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녀석이니.”
“알겠사옵니다.”
이어진 주윤문의 보충 설명에 혈영은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답했고.
스르륵.
이내 그대로 사라졌다.
그렇게 객잔에 홀로 남게 된 주윤문.
그가 고개를 돌려 창밖 너머의 호북성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민이 너무 된다, 극신아.”
자신을 믿고 따르던 수하.
그리고 자신을 믿어 주며 즐거운 삶을 알려 준 벗.
그 둘 사이에서 주윤문은 아직도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고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회귀 후 냉정해진 그의 성격과 달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