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제136장 소문 所聞 (2)
하남성의 성도이자, 정도 최고의 정보통이며 십만 방도로 이루어진 개방의 본거지인 개봉.
중원 어디든 거지가 없는 곳은 없었기에 개방의 제자들은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모아 개봉으로 보내었다.
중원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인 아닌 이곳 개봉에 도착한 개방의 후개, 취걸은 개봉에 들어서자마자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과감하게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수많은 거지들의 인사를 받으며 걸음을 옮긴 취걸은 한 방문 앞에 도착했고 조금의 지체도 없이 강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스승님!”
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거대한 취걸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거대한 의자에 앉아서 귀를 후비고 있던 거지 노인, 개방의 방주이자 풍령개 風令愷 라 불리는 초절정의 고수, 구토가 두 눈을 부릅뜨며 방문을 박차고 들어선 취걸을 노려보았다.
“이 새X가 어디서 언성을!”
취걸에게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옆에 있던 타구봉을 들어 보이자 그 누구보다 당당하던 취걸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어린 시절부터 저 타구봉에 매일같이 맞아 가며 수련을 했기에 본능적으로 겁을 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취걸 그도 이제는 어엿한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고수.
더 이상은 두렵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을 애써 무시한 취걸, 그는 다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부리부리한 두 눈으로 구토를 바라보았다.
“아 확실하다고요! 진짜 무협공자가 위마참군이라니까!”
짜증이 가득한 취걸의 목소리에 구토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쩌라고.”
“X! 천마신교 소교주가 이목을 속이고 또 다른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고요! 그게 뭐겠어요? 그 이름을 이용해서 이상한 짓을 해 보겠다는 거지!”
“야.”
이상한 것에 꽂혀서 쓸데없는 것만 조사하더니 이내 선을 넘어 버리는 취걸의 모습에 귀를 후비던 구토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런 구토의 목소리에 취걸은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었고, 구토는 조용해진 취걸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정보는 그저 파악하는 것일 뿐, 절대로 확신해서는 안 된다.”
“스승님! 천마신교의 소교주입니다!”
정보를 다루는 모든 제자들에게 내려오는 이야기.
절대적으로 정보를 믿어서도 안 되고 확신해서도 안 된다는 가르침을 말하자 취걸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대답했다.
그에 구토는 싸늘한 눈빛으로 취걸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게 뭐?”
“예?”
“소교주인 게 뭐 어떻다고?”
“스승님!”
구토의 이어진 물음에 취걸이 다시 언성을 높였다.
그에 구토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소교주가 위마참군의 별호를 어떻게 얻었지?”
“…….”
무림공적을 처치하자 별호를 얻었고, 열 명의 악인을 처리하자 모든 사람들은 그를 협객으로 인정하였고 칠천신군에 소속시켜 그의 협행을 찬양했다.
마교의 소교주인 것을 떠나, 무림의 평화를 깨뜨린 악당을 죽여 죄 없는 민초들의 억울한 원한을 풀어주고 목숨을 구해 준 영웅으로 말이다.
그것을 잘 아는 취걸은 입을 다물었고, 구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무협공자라는 별호를 얻는다 하여 소교주가 얻는 이득은?”
“…….”
없다, 오히려 방해만 될 것이다.
솔직히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지만 취걸은 애써 그것을 무시했고 부정했다.
이미 취걸은 소교주가 다른 뜻이 있다고 확신을 했고 그 확신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에휴, 이 병X.”
그런 답답한 제자의 모습에 구토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린 제자들이나 할 법한 실수를 장차 자신의 뒤를 이어 방주가 될 녀석이 하니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그에 한숨을 한 번 더 내쉰 구토가 고개를 들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자, 취걸을 다시 바라보았다.
“내가 동일 인물인 것을 몰라서 그냥 내버려 뒀겠느냐?”
“……?”
“다 이유가 있으니 너는 수련이나 해 이 자식아. 너보다 한참 어린 소교주가 칠천신군에 올랐는데 넌 뭐 하냐?”
“아니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됩니까?”
구토의 핀잔에 정신을 차린 취걸이 평소와 같은 억울하다는 표정과 싸가지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구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혀를 차고는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십니까!”
“몰라 이 자식아!”
취걸의 무름에 구토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하고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사라졌다.
별호에 어울리는 절세의 신법을 보여 주며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구토.
그가 사라져 이제는 비어 버린 의자를 보며 취걸은 인상을 찌푸렸다.
터벅.
털썩.
그러고는 걸음을 옮겨 개방의 방주에게만 허락되는 의자에 앉았고 이내 턱을 쓰다듬으며 두 눈을 반짝였다.
“소교주…… 분명 뭔가 있어…….”
스승인 구토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취걸은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구토의 가르침과 핀잔은 오히려 취걸의 전의를 불태워 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사실은 전혀 모른 채 계속해서 신법을 펼친 구토.
하남성에서 호북성까지 채 반 시진(1시간)도 안 되어 도착한 구토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무림맹에 위치한 맹주실 창문으로 들어섰다.
“자네도 참, 늙어서 뭐 하나?”
자연스럽게 창문으로 들어서려던 구토.
그는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친우, 천진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거참, 한두 번도 아니고 그냥 넘어가게.”
“껄껄. 그러지. 어서 와 앉게.”
벗인 구토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천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구토에게 자리를 권했고, 구토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그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몸은 좀 어떤가?”
시비를 부르지 않고 직접 차를 우리는 천진을 보며 구토가 물었다.
그에 천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매일매일이 다르네.”
“정녕 그냥 당하고 있을 것인가?”
“어쩌겠나.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그런 것을.”
구토의 물음에 천진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구토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더러운 새X들. 그런 놈들이 무림의 기둥이라니!”
“허허.”
구토의 욕설에 천진은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천진의 모습이 답답했을까? 구토가 천진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는 화도 안 나는가?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제는 토사구팽까지 시키려고 하네. 괘씸하지 않냐 이 말이야.”
“다 내 죄지.”
구토의 물음에도 천진은 여전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구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착해도 이런 착한 친구가 없었다.
자신이 독을 먹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벌을 받는 것이라며 처먹고 있었다.
이런 멍청한 친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에 구토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손자는 봐야 하지 않겠나?”
멈칫.
처음이었다.
차를 준비하던 천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것이 말이다.
그것을 발견한 구토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사황성에서 꽤 화려하게 다니더군.”
“호오?”
구토의 말에 천진이 흥미를 보였다.
그에 구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속죄를 한다는 명분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천진.
그에게서 삶에 대한 욕심을 이끌어 낼 소재가 생겼기에 너무나도 다행이었던 것이다.
그에 구토는 다시 자신이 알아 온 모든 정보.
위마참군 僞魔斬君 위극신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천진에게 해 주었고, 천진은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구토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 * *
“언제 출발할 생각이냐?”
술잔을 두어 번 주고받은 나와 천풍.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어머니를 만나는 것에 대한 흥분 때문인지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묻는 천풍을 보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미 사황성의 정리는 마친 상태입니다. 오후에 성주님을 뵙고,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내일 출발하시겠습니까?”
“내일…… 말이더냐.”
나의 물음에 천풍이 아쉬운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내일 일찍 출발하시지요. 그러면 오후에는 도착할 것입니다.”
“그래. 그러자꾸나.”
아이를 달래는 듯 부드러운 나의 목소리에 천풍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십사 년을 기다렸는데 하루를 못 기다리겠느냐.”
“잘 생각하셨습니다.”
웃으며 말하는 천풍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몇 번 술잔을 더 주고받은 다음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그만 푹 쉬시지요. 저는 성주님을 뵙고 마저 정리하겠습니다.”
“아, 그러면 같이 가자꾸나. 사황성을 방문했는데 주인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나의 이야기에 천풍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객으로서 집주인에게 인사를 올리지 않는 것은 확실히 예가 아니었다.
게다가 이곳을 방문한 객이 누구인가?
바로 칠천신군 七天神君 중 한 명이며 무림맹주의 아들인 청룡신군 靑龍神君 천풍이다.
무림에서 영향력이 아주 강한 인물이 사황성에 방문하고 성주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예를 떠나 성주를 무시하는 일.
그렇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천풍과 함께 방문을 나섰다.
꾸벅.
방문을 열고 나와 성주의 집무실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차세대 절대고수라 불리는 칠천신군 중 두 명이 나란히 있기 때문일까?
사황성의 모든 무인들이 예를 갖추며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마 魔 와 정 正.
사 邪 의 소속인 자신들과 사상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에 나와 천풍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황성의 무인들의 인사를 일일이 받아 주었고 잠시 후.
우리는 사황성주, 백리관의 집무실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 숙모님.”
집무실의 앞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익숙한 얼굴.
백리관의 동생 백리진의 모습에 나는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에 백리진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인사는 잘 나누었나요?”
“예, 덕분에 잘 나누었습니다. 숙부님을 잘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호호, 아니에요. 제가 한 게 있나요.”
나의 감사 인사에 백리진은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고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잘 자라 주었네요. 소화 언니가 역시 아들 하나는 기가 막히게 키운다니까요.”
“하하, 감사합니다.”
조금은 과장스러운 백리진의 말에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런 백리진의 말에 가만히 있던 천풍은 두 눈을 반짝였고 이내 백리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소화와 아는 사이십니까?”
“네, 친한 언니예요. 십사 년 전 얼굴을 보고 만나지는 못했지만 매달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요.”
갑작스러운 천풍의 물음에도 백리진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에 천풍은 볼을 긁적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 소화는 행복해 보이던가요?”
자식인 나에게는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
그 질문을 백리진에게 건네는 천풍을 보며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무슨, 첫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질문하는데 왜 저리 쑥스러워한단 말인가?
웃겼다.
백리진 그녀 또한 나와 마찬가지 마음이었을까?
그녀가 손을 들어 입을 가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천풍과 두 눈을 마주쳤고, 이내 확신 어린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아…….”
“천마, 그는 소화 언니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언니 또한 마찬가지이며, 언니의 아들인 소교주와 이공자 또한 그녀를 사랑하지요. 언니는 사랑을 받고, 베풀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고, 또 그러는 중입니다.”
“정말입니까……?”
천마가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말이 믿기 어려웠을까?
천풍이 백리진을 보며 물은 다음 사실이냐는 듯 고개를 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제가 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교주님과 천이가 매일같이 싸웠습니다. 어머니의 옆자리에 앉기 위해서.”
“어머.”
“……?”
장난스러운 나의 대답에 백리진은 입을 가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고, 천풍은 나의 말이 사실인지 농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뭐, 결국은 교주님의 자리였지요. 사실 교주님보다 어머니가 더 교주님을 사랑하거든요.”
“소화가?”
나의 대답에 천풍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 했지만.
“아닐 거예요.”
백리진이 끼어들어 나의 말을 부정했다.
그에 나와 천풍은 고개를 돌려 백리진을 바라보았고, 백리진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에는 천마가 더 언니를 사랑해요. 확실하답니다.”
그러고는 확신하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허어…….”
천풍은 믿기지 않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그렇게 집무실의 앞에서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고 우리가 계속해서 떠들고 있자.
-이제 그만 들어오시게!-
집무실의 안에서 백리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참.
우리 스승님.
어서 우리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나 보다.
그런 백리관의 목소리에 나와 천풍, 백리진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이내 집무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