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제133장 만남, 그리고 진입 相逢, 進入
“실례합니다!”
감숙성의 성도인 난주의 저잣거리.
수많은 인파 사이로 걸음을 옮기던 천풍은 고급스러운 비단옷을 입고 있는 여인을 발견하고는 실례를 무릅쓰고 그녀를 멈추어 세웠다.
“저 말인가요?”
천풍의 부름에 걸음을 멈춘 여인.
면사를 쓰고 있어 이목구비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늘씬한 몸매를 지니고 있는 여인이 몸을 돌려 천풍을 바라보았다.
그에 천풍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무인인 듯하여 이렇게 불러 세웠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천풍의 사과에 여인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그에 천풍이 고개를 들었고 살짝 다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황성이 어디 있습니까?”
“…….”
“큰 성이라는 것은 아는데…… 도저히 보이지가 않아서…….”
여인.
혈화 血花 라는 별호로 유명한 절정고수이자, 사황성주의 친동생인 백리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불러 세운 사내를 바라보았다.
“여협……?”
그런 백리진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린 천풍.
그가 소저가 아닌, 무인을 뜻하는 여협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자 면사 속에 가리어진 백리진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당당한 무인으로서 살아왔지만 여인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늘 짜증이 났었던 백리진.
그런 그녀에게 무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당연하다는 듯 여협이라고 호칭을 수정하는 천풍의 모습은 백리진에게 있어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렇기에 천풍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빛에는 한 줄기의 호감이 어려 있었다.
“진심으로 사황성이 어딘지 몰라 물어보시는 거지요?”
“……? 물론입니다. 여협, 죄송하지만 제가 한시가 급하여…….”
백리진의 물음에 천풍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러고는 다급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고 백리진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저를 따라오세요.”
“역시 사황성의 무인이셨군요!”
몸을 돌려세우며 말하는 백리진의 모습에 천풍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젊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절정급의 내공을 지니고 있는 여인.
틀림없이 사황성의 무인이라 생각했기에 그녀를 불러 세웠던 천풍은 자신의 짐작이 맞자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걸음을 옮기는 백리진의 모습에 천풍은 웃음을 멈추고는 서둘러 백리진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걷기를 잠시.
아니, 잠시도 아니고 한 열 발자국 정도?
우뚝.
백리진이 걸음을 멈추었다.
“여협……?”
잘 가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는 백리진의 행동에 천풍은 연유를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백리진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천풍을 바라보았다.
“여기예요.”
“네……?”
“여기라구요.”
“…….”
이어진 백리진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은 천풍.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난주에 들어서자마자 보였던 거대한 성이 보였다.
감숙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성의 모습에 천풍은 당연히 황제의 숙부들이자 번왕인 왕이나 성급의 책임자인 안찰사 按察使의 거처, 또는 행정구역이라고 생각했었다.
헌데, 이 성이 사황성이라고?
감숙을 대표하는 감숙성보다 더 커다란 성을 천풍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후훗.”
그런 천풍의 모습이 웃겼을까?
천풍의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자신의 못난 모습을 깨달은 천풍은 멍한 표정을 서둘러 지우고는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안내해 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고개를 돌린 천풍.
그는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어느새 면사를 벗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
웃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백리진의 모습에 놀라웠고, 또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예상하지 못한 그녀의 아름다움에 천풍은 두 눈을 크게 떴고, 백리진은 그런 천풍을 보며 미소를 지웠다.
그러고는 정중히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청룡신군 靑龍神君 천풍 대협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사황성의 무인인 백리진이라고 합니다.”
“아……? 혈화 血花.”
백리진의 자기소개.
육천…… 아니, 위마참군이 포함되어 이제는 칠천신군이 되어 버린 차세대의 절대고수들.
그 고수 중 위마참군이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젊었으며, 무림맹주의 아들이기까지 한 천풍을 모를 리가 없었던 백리진이었기에 그의 정체를 언급하며 정중히 천풍의 방문을 환영했고.
“아…… 예…….”
천풍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마주 숙였다.
* * *
“하 짜식, 바로 말 없어지네.”
오늘부터 동생 된 지 하루 째인 마독.
그것을 기념할 겸, 위로도 해 줄 겸 겸사겸사 녀석과 술 한잔하러 나왔던 나는 성을 나가는 길에 서은설을 만났고, 자연스럽게 그녀가 합류하였다.
그녀가 합류하자마자 얼굴을 붉힌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마독을 보며 내가 피식 웃자 녀석이 더더욱 얼굴을 붉혔다.
“너무 아름다우시니까…….”
“어쭈?”
녀석의 대답에 내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에 마독은 화들짝 놀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아름다우셔서 그런 것입니다! 인간의 미를 초월한? 그런 느낌. 그러니 형님과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나도 인간의 미를 초월했다?”
“초월은 물론 그냥 다 깨부수지요.”
나의 물음에 녀석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고.
“고마워요.”
서은설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미소에 녀석은 다시 얼굴을 붉혔다.
“아닙니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주 그냥.
사춘기 소년이 따로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사황성을 거닐던 우리는 곧, 사황성의 정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
“어!”
나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절친한 동생이자 전생 현생을 모두 포함하여 내가 미안한 감정을 지니고 있는 여인.
바로 스승님, 아니 성주 백리관의 동생 백리진이었다.
이곳에 온 이후로 그녀에게 인사를 하지 못해 불편했던 터라 나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녀를 어머니처럼 따르는 서은설 또한 마찬가지.
나와 서은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
그때.
나는 백리진의 옆에 서 있던 사내.
처음에는 호위무사라 생각하여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에 고개를 돌렸고, 곧. 내가 아는 인물이라는 것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사천에서 만났던 인연.
바로 나의 숙부인 천풍이었다.
그와 두 눈이 마주친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고, 나의 두 눈을 가만히 바라보던 천풍이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거침없는 그의 발걸음.
‘아씨, 뭐라 하지?’
나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만나기는 싫었다.
해서 만남에 관하여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마주친다고?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라 불편했다.
그렇게 내가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동안 천풍은 나의 앞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와락!
그가 갑자기 나를 부둥켜안았다.
“음…….”
갑작스러운 그의 애정 행각에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벌건 대낮에 건장한 사내가 끌어안고 있다.
상당히 흉한 그림이 아닐 수가 없었기에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기…… 이것 좀…….”
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를 놓지 않는 천풍.
그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마음껏 안아라.
오늘 하루만 허락해 준다.
그렇게 나는 포기를 했고, 잠시 후.
그가 나를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나의 어깨를 잡고 나를 바라보았다.
“닮았구나.”
“어머니랑요?”
천풍의 물음에 나는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어머니를 닮아 매력적인 나의 눈웃음.
그 눈웃음을 보며 천풍 또한 미소를 지었다.
가만 보면…… 어째 나는 아버지보다 숙부인 천풍을 더 닮은 것 같았다.
나와 비슷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천풍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 코가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거참. 회귀 부작용인가? 너무 감성적으로 변해 버렸다.
중원을 공포로 몰아넣은 절대악 천마의 아들이 가져서는 안 될 정도로 말이다.
아무튼.
그런 천풍을 보며 나는 콧잔등을 훔쳤고 천풍은…….
뚝뚝.
얼씨구.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마흔을 넘긴 중년인 천풍.
물론 외적인 모습은 삼십 대 초반으로 깔끔한 미남자지만 그것은 넘어가고.
중년 사내가 나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모습은 가히 보기 좋지 않았다.
그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왜 울고 그러십니까.”
“우리 소화는…… 소화는 잘 지내고 있느냐?”
“……? 물론입니다. 숙부님의 벗인 지화 무인께서 잘 지켜 주시고 계십니다.”
천풍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했다.
그에.
“아아…… 다행이구나…….”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듯 천풍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천풍의 모습에 나는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니 무슨, 생전 연락 안 하는 사람처럼 안부를 묻고 그래?
그에 나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어머니와 연락 안 하십니까?”
“…….”
나의 물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천풍이 얼굴을 굳혔다.
그러기를 잠시, 그가 얼굴을 풀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전부 다 이야기해 줄 터이니,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느냐.”
“아…….”
천풍의 권유.
그 권유에 나는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님 저는 괜찮습니다, 다음에 가시지요.”
“응, 나도 괜찮아. 고모 만난 김에 같이 놀면 돼.”
그런 나의 난처함을 눈치챈 마독과 서은설은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둘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가시지요.”
아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숙부, 천풍을 바라보며 말했다.
* * *
“마교다!”
“으아악!”
평화로운 사천성 성도.
갑자기 들이닥친 수많은 마인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소리쳤다.
마교 魔敎, 정식 명칭은 천마신교 天魔神敎.
어린아이들의 고기를 즐기며, 순수한 처녀들의 피를 술 마시듯 마시는 악마들.
사악한 본성, 마에 사로잡혀 그저 본능만 탐하는 무자비한 악마들이 모인 곳이 바로 천마신교다.
그런 천마신교가 갑작스럽게 평화로운 사천성의 성도에 나타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도망을 치려 했지만 이내 체념했다.
자신들은 무공을 익히지 못한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어찌 마인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저 무림맹의 무사들이 서둘러 이곳으로 와 자신들을 구하기 바랄 뿐이었다.
헌데…….
“귀찮은 녀석! 비켜라!”
거친 말투와 달리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이들을 밀쳐 낸 거대한 덩치의 마인들.
“제길! 노친네가 눈이 삐었어?”
노인을 향해 매서운 눈을 치켜뜨며 소리치는 모습과 달리 노인의 손을 잡고 부축해 주며 옆으로 안내해 주는 마인.
“이봐!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아이가 울잖아!”
“아…….”
“어서 달래 줘!”
갑작스러운 마인들의 등장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와 그런 아이의 옆에서 있는 사내에게 호통을 치는 마인.
“꺄악!”
“죽고 싶어? 조심히 다녀.”
치마를 밟아 넘어지려던 여인의 허리를 받쳐 주며 호통을 치는 마인들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냐?”
마인들의 가장 선두에서 말을 몰던 아름다운 남자.
그 미남자가 자신들의 앞길을 막아선 노인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말이오?”
한참 아래의 연배로 보이는 미남자의 무례한 질문에도 반공대로 대답한 노인.
그런 노인의 물음에 미남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아들, 네가 괴롭혔냐고.”
“…….”
천마신교.
마황 魔皇 이라 불리는 천마 天魔 위관악이 사천성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