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제131장 죄인 아닌 증인 罪人不證人
쨍그랑.
“이것이 네 선택이더냐.”
마독의 강한 휘두름.
그 한 번에 날카로운 예기를 자랑하던 단검이 날아가 벽에 부딪혔고 맑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그런 단검의 모습에 마사는 고개를 돌려 마독을 바라보며 물었고
두려움에 질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독은 마사의 두 눈을 피하지 않았다.
“제가 살고 싶다 하여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들부들.
두려움에 질려 전신은 물론 그의 두 눈동자까지 떨려 왔다.
하지만 마독은 이미 결심을 굳혔는지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말했다.
실로 사내다운 모습이었다.
처음 보는 듬직한 마독의 모습에 싸늘한 표정을 짓던 마사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네 눈에는 내가 인간이 아니겠구나.”
“같은 인간을 제물로 바쳐 강해진 욕망의 괴물이지요.”
마사의 물음에 마독은 호흡을 고르며 대답했다.
너무나도 두려워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호흡을 골랐던 것이다.
그런 마독의 모습에 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마독의 두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허면 네 아버지도 괴물이겠구나.”
“!!”
“네 어머니도, 네 조부도, 네가 그토록 좋아하던 백사문의 무인들까지 모두가 괴물이겠어.”
“설마!!”
마사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마독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그에 마사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모두가 제물을 바쳐 사기를 흡수하여 강해졌지. 왜 우리 백사문이 단시간에 이렇게 강해졌겠느냐?”
“…….”
“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다. 아니 너에게는 괴물이겠구나. 그런 괴물의 집안에서 너는 장자로 태어났다. 즉 너도 괴물이겠지.”
“그…… 그럴 리가…….”
자신을 향해 따뜻하게 미소 지어 주던 어머니.
술 먹고 사고 치는 자신을 혼내면서도 따뜻하게 위로해 주던 아버지.
자신을 향해 소문주님 소문주님! 하면서 때로는 짓궂게 또 때로는 부드럽게 자신과 놀아 주던 수많은 무사들.
그들 모두가 마사와 같은 괴물들이라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쳐 스스로의 욕망을 채운 괴물?
그동안 자신이 알아 왔던 모든 것을 부정당한 마독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에 마독이 손을 들어 머리를 움켜쥐었다.
“나도…… 괴물…….”
그런 집안에서 장자로 태어나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자라 온 자신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명으로 강해진 가문. 그 가문에서 맛난 것을 먹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며 지금까지 자라 왔다.
즉 자신이 평소처럼 술을 마시고, 맛난 것을 먹고 어린 시절부터 쌓아 온 즐거운 추억들 모두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라는 제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뜻은 곧 자신 또한 다른 괴물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너무나도 큰 사실을 알게 되어 괴로워하는 마독의 모습이 웃겼을까?
마사가 피식 미소를 짓더니 이내 손에 들려 있던 방울 지팡이를 들었다.
“혹시나 쓸모가 있을까 중요한 약속도 저버리고 지켜봤더니 역시 구제 불능 쓰레기였구나.”
“…….”
마사의 신랄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마독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직 크나큰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에 마사가 그의 손에 들린 방울 지팡이를 들었다.
그리고.
탁!
짧고 힘 있게 바닥을 내려찍었다.
끼이이익!
꺄아아!
방울 지팡이가 바닥을 내려찍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위에서 귀신과 같은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고.
펄럭!
짤랑짤랑!
강한 바람이 불어와 마사의 옷이 펄럭거렸으며 그의 방울 지팡이가 하염없이 떨리며 맑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기괴한 소리에 정신을 차린 마독이 고개를 들어 마사를 바라보았다.
그에 마사는 싸늘한 미소로 마독을 보며 입을 열었다.
“죽어라.”
“아…….”
자신을 죽이려는 숙부, 마사의 모습.
그의 입에서 나온 싸늘한 말에 마독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회색의 바람을 보며 몸을 돌려 두려움에 질려 있는 여인과 무감정한 아이를 끌어안았다.
지켜 주지 못한 미안함과, 자신의 가족들로 인해 억울하게 죽는 그들에 대한 죄책감에 사죄를 하며 말이다.
그렇게 마독은 태어나서 자신의 안위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겁쟁이로 자라 왔으나 마지막은 타인의 목숨을 지키는 훌륭한 용기를 보였다.
그렇게 마독의 생이 마감되려던 순간!
부웅!
그의 전신을 뒤덮던 끔찍한 기운과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너…… 너는!”
그런 마독의 귀로 들려오는 경악한 마사의 음성.
그 음성에 마독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보였다.
흑색의 바탕으로 이루어진 비단옷과 그 위에 덧입은 회색의 두루마기.
“잘했다.”
바로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존재.
천마신교의 소교주 위극신이었다.
* * *
‘짜식…….’
기특했다.
도련님을 살려 달라는 훈의 간절한 부탁에 나는 기척을 숨기고 철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겁에 질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인과 아이를 목숨 걸고 지키려는 마독의 모습을 말이다.
솔직히 어떻게 상황이 흘러갔고, 왜 마사가 그를 죽이려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단 하나.
‘기특한 새X…….’
순 겁쟁이에 놀리는 맛이 있던 놈이 엄청 기특한 행동을 했다.
그에 나는 마독을 덮치려는 마사의 기운을 깔끔하게 없애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녀석을 칭찬해 주었다.
너 이 자식.
술 잘 마시면 형이 키워 줄게.
“네가 왜!”
아무튼.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놀랐을까?
마사가 경악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왜?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냐?”
“이곳은 나의 사가다!”
“어쩌라고, 내 발로 이곳에 온 건데.”
녀석의 외침에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근데 이거 뭐냐.”
감옥 안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와 다름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둘러보며 물었다.
흠칫.
그에 마사는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딱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마사의 모습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나중에 천천히 알아봐야겠네.”
부성주인 권진욱의 세력 중 가장 큰 기둥인 백사대주 마사.
그를 한 번에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이!!”
그런 나의 모습에 분노했을까?
마사가 얼굴을 붉혔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나랑 한판 붙게?”
“…….”
권진욱과 싸우던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장난스러운 나의 도발에 마사가 거짓말처럼 입을 다물었다.
지도 아는 것이다.
나한테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겁쟁이 새X.”
“…….”
진짜 겁쟁이였다.
마독이 누구 닮아 겁쟁인가 했더니 저 녀석을 닮은 것이 틀림없었다.
거듭된 나의 도발에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마사를 보며 나는 검을 허리춤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손목을 가볍게 돌리며 마사를 바라보았다.
“일단 맞자.”
“!!”
* * *
“음…….”
위극신에게 신호탄을 주고 대원들을 모아 대기하고 있던 이백.
그는 하늘을 수놓는 익숙한 신호탄에 서둘러 걸음을 옮겼고 이내 짧은 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사의 사가에 위치한 누가 봐도 수상한 동굴.
그 안으로 수하들과 함께 들어선 이백은 자신을 반기는 위극신과.
꿈틀!
바닥에 누운 채 간간이 꿈틀거리는 반시체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 안에 보세요. 수상하더라고.”
그런 이백의 모습에 위극신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손을 들어 안쪽을 가리켰다.
그에 이백은 고개를 들어 공동의 안쪽.
반으로 잘린 거대한 철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
그러자 보였다.
수십 개의 감옥 안에 갇힌 수많은 사람들이 말이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이백은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생강시와 다름없는 사람들의 모습에 이백이 묻자 위극신은 고개를 돌려 마독을 바라보았다.
“얘한테 들으세요.”
“공자는……?”
위극신의 말에 이백은 그의 옆에 가지런히 서 있던 마독을 그제야 발견하고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백사문의 소문주, 마독입니다. 제가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백의 놀란 음성.
그 음성에 마독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대답했다.
그에 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수하들을 바라보았다.
“포박은?”
“끝났습니다.”
이백의 물음에 수하 중 한 명이 반시체와 다름없는 마사를 포박한 끈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런 수하의 모습에 이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소교주님과 함께 마사를 데리고 성으로 돌아가겠다. 너희들은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풀어 주고 보호하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이백의 명령에 대원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그에 이백은 고개를 돌려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함께 가시지요.”
“그 전에.”
그런 이백의 말에 위극신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마독이 앞으로 나섰다.
“……?”
갑작스럽게 나서는 마독의 행동에 이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같았으면 인상을 찌푸렸을 것이다.
아무리 백사문의 소문주라 하더라도 이백은 사황성의 무력대주.
타 세력의 장로와도 같은 존재이다.
지금 마독의 행동은 그런 존재에게 지키는 예의치고는 상당히 무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우선은 소교주인 위극신의 앞이었으며 마독 그는 이 끔찍한 참사의 유일한 증인이었기 때문이다.
“말하게.”
그렇기에 이백은 마독에게 편하게 말하라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마독은 고개를 한 번 숙여 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우선 백사문을 제압해야 합니다.”
“……?”
“그들…… 모두가 한통속입니다.”
“야.”
이어진 마독의 말에 위극신이 싸늘한 표정으로 마독을 바라보았다.
그에 마독이 고개를 돌려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네.”
“백사문은 너네 집이야.”
“맞습니다.”
“헌데 백사문을 제압하라고?”
“그들 모두 죄인이니까요.”
위극신의 물음에 마독이 허망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위극신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자식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공자.”
“예.”
그런 마독의 모습에 이백이 그를 불렀고 마독은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그러면 자네 또한 죄인이 되네. 증인이 아닌 공범.”
“…….”
이백의 설명에 마독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에 이백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인정하는가?”
“예, 저 또한 공범입니다.”
이백의 물음에 마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양손을 모아 앞으로 내밀었다.
마사와 같이 죄인에게 하는 것처럼 포박을 해 달라는 뜻이었다.
그에 이백은 고개를 돌려 수하를 부르려고 했지만.
“내가 책임지지.”
위극신이 앞으로 나섰다.
갑작스러운 위극신의 행동에 이백은 물론 마독까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런 마독의 눈빛은 잠시 무시하고.
위극신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이백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이 녀석을 책임지고 데려갈 테니, 포박은 하지 마세요.”
“…….”
“아직은, 증인으로 내버려 두세요.”
“알겠습니다.”
이어진 위극신의 말에 이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굳이 포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마독의 모습으로 보아 그가 도망가지 않을 것 같았고, 설령 도망가더라도 부성주였던 권진욱을 제압했던 고수, 위극신이 직접 성으로 데려간다.
그 누가 도주할 수 있겠는가?
아마, 사황성주가 아닌 이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이백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위극신의 도움으로 마독은 공범이 아닌 증인으로 사황성으로 돌아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