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화
제127장 압니다! 알고말고요! 知
“참, 혹시 내 부탁 하나 들어주겠느냐?”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빈 술병을 흔들어 보이며 아쉬운 표정을 짓던 백리관.
그가 술병을 내려놓으며 말하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한 부탁이든 나는 백리관의 부탁을 들어줄 의향이 있었다.
전생에서 그는 나의 아버지와 같은 스승님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런 나의 대답에 백리관이 씨익 미소를 짓더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기왕 네가 시작한 거, 전부 네가 처리해 보는 것은 어떠하냐?”
“부성주의 세력 정리 말입니까?”
백리관의 물음에 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런 나의 대답이 뜻밖이었을까?
백리관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에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입을 열었다.
“현재, 성내에는 은설과 저와의 약혼으로 본교의 세력에 흡수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다.”
나의 이야기에 백리관은 숨길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시원하게 인정했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본교에서는 그런 생각, 일절 없습니다.”
“알고 있다.”
“그거 다행이군요.”
백리관의 확신 어린 대답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사황성의 공공의 적인 부성주의 세력은 소교주인 제가 앞장서서 정리를 해야 본교와의 동맹에 대한 여론도 좋아지고, 또 소교주의 약혼녀인 공녀의 영향력도 자연적으로 커지게 되니 일석이조의 방법이지요.”
“맞다.”
나의 이야기에 백리관이 정답이라는 듯 시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러고는 새삼스럽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똑똑하구나?”
“생각하는 것을 싫어해서 그렇지, 한번 생각하면 천재 소리는 그냥 듣습니다.”
놀란 백리관의 물음에 나는 장난스레 대답했다.
특유의 거만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에 백리관은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나는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저는 물러가 보겠습니다.”
“벌써?”
“아쉬우십니까?”
“…….”
장난스러운 나의 물음에 백리관이 잠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진짜 아쉬웠나 보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밤에 좋은 술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아이 달래듯 부드러운 나의 말에 얼굴을 굳혔던 백리관이 그제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참, 전생을 포함하면 나도 제법 오래 살았기 때문일까?
스승님이 제법 귀여워 보였다.
크흠, 아무튼.
나는 그런 백리관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집무실에서 벗어났다.
쿠웅!
그렇게 집무실의 문을 열고 나온 나는 다시 문을 닫았다.
그런 다음 몸을 돌리려던 순간!
“극신!”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는 아름다운 여인.
바로 나의 사랑, 전부 서은설이었다.
그녀의 등장에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정말, 은설만 보면 나는 무장해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미소 뭐야.”
그런 나의 미소가 서은설에게는 수상했을까?
어느새 나의 앞에 도착한 서은설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흘겨보며 물었다.
그에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앞 머리칼을 마구 헝클었다.
“아아! 내 머리!”
그에 서은설은 깜짝 놀라며 손을 들어 헝클어진 앞머리를 정리했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런 서은설을 지나쳤다.
“같이 가!”
그런 나의 뒤로.
서은설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내 그녀가 달려와 나의 옆에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머리, 빗질한 건데…….”
헝클어진 자신의 앞 머리칼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서은설이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불퉁한 표정으로 앞 머리칼을 정리하는 서은설의 모습이 말이다.
그에 나는 볼록해진 서은설의 볼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충분히 예뻐.”
“!!”
생각지 못했을까?
웃음이 가득한 나의 서은설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러고는 그녀의 새하얀 얼굴이 붉어졌다.
마치 잘 익은 사과처럼 말이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지금부터, 부성주의 세력들을 정리하러 갈 거야.”
“응…….”
나의 이야기에 아직도 부끄러운지 서은설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서은설의 손을 살짝 당겼다.
그제야 서은설의 고개가 들렸고, 나는 서은설의 두 눈과 눈을 마주친 다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같이 가자.”
“응!”
그런 나의 말에 서은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나 지금이나 저 웃음은 정말 해맑았다.
마치 나의 동생, 위천처럼 말이다.
* * *
“후우…….”
숙부의 부름으로 사황성에 들어선 마독.
그는 자신의 앞에 위치한 문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이내 굳건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오? 왔느냐!”
문을 열자마자 자신을 반겨 주는 익숙한 목소리.
바로 자신이 어린 시절 그토록 좋아했던 숙부, 마사였다.
그의 인사에 마독은 정중히 예를 차리며 고개를 숙였다.
“숙부님을 뵙습니다.”
“녀석, 기특하다만 섭섭하구나.”
정중하게 예를 차리는 조카, 마독을 보며 마사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에 마독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예를 갖추어야지요. 저도 이제 열여덟입니다.”
“그래,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마독의 대답에 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빈 의자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우선 앉도록 하자.”
“예.”
마사의 권유에 마독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어린 시절에는 숙부가 마냥 좋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왠지 모르게 숙부가 거북했고, 어려웠다.
그에 마독은 지금 이 상황이 불편했다.
하지만 마사는 그런 마독의 기분을 모르는지 연신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차 한잔하겠느냐?”
“괜찮습니다.”
“그래, 알겠다.”
마독의 대답에 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 또한 의자에 앉았다.
“네 나이가 벌써 열여덟이구나.”
“예.”
마사의 이야기에 마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그에 마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 명의 무인으로서 책임을 다할 때가 되었구나.”
움찔.
마사의 입에서 나온 말.
태어나서부터 무재 武才가 없었던 마독은 마사의 입에서 나온 책임이라는 단어에 움찔하고 말았다.
그에 마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독을 바라보았다.
“걱정 말거라. 이 사령마가 네 숙부이다. 너는 내 뒤를 이어 사령마라는 별호를 받게 될 것이다.”
“!!”
마사의 부드러운 말.
그 말속에 담긴 달콤한 유혹에 마독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마사를 바라보았다.
그에 마사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나만 믿거라.”
“정말……이십니까……?”
믿음직한 마사의 말에 마독이 떨리는 음성으로 묻자 마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에 마독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린 시절.
백사문의 소문주이면서도 뛰어난 무재를 보이지 못해 가문의 어르신들을 실망시켜 왔던 자신이다.
그런 자신에게 모든 것을 물려준다는 초절정고수의 제안.
당연히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 그래. 오늘 저녁부터 수련을 시작할 터이니. 내 개인 사가로 오거라.”
마독의 큰 인사에 마사는 기분이 좋은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에 마독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녁때 뵙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가고.”
“네!”
마사의 말에 마독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불편함은 온데간데없는 순수한 마독의 모습이었다.
그 단순한 모습에 마사는 피식 웃었고, 마독은 마사의 집무실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마사는 다시 집무실에 홀로 남게 되었다.
그러자 좀 전 마독에게 지어 주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차가운 얼굴을 한 마사.
그가 문을 열고 나간 마독을 보며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멍청한 새X. 저런 놈이 본문의 소문주라니. 아버지가 아시면 땅을 치고 한탄하시겠지.”
사황성을 이루고 있는 거대 세력 중 한 곳인 백사문.
사황성이 등장하기 전까지 감숙성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백사문의 후계자가 저런 멍청한 모습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은 마사였다.
“뭐, 그것도 오늘로써 끝이지.”
그렇게 짜증 난 것도 잠시.
마사는 피식 웃고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고는 두 눈을 감았다.
“대업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도록 하거라, 어린 조카야.”
* * *
“미쳤어! 미쳤어!”
마사의 집무실을 열고 밖으로 나선 마독.
그는 도저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듯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그러고는.
차악!
냅다 자신의 볼을 후려치기까지 했다.
“아프다…….”
그러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붉어진 오른 뺨.
그 뺨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고통에 마독은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꿈이 아니야!”
이내 고통인 것을 인지한 마독이 다시 환하게 웃었다.
“뭐 하십니까?”
그런 마독의 기괴한 모습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에 마독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훈을 바라보았다.
“훈!”
“예.”
“내가 고수가 되면 꼭 너를 챙겨 줄게!”
“…….”
“그러니 나만 믿어!”
가슴을 탕탕 치며 말하는 마독을 보며 훈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뭐야, 못 믿는 거야?”
그런 훈의 행동에 마독이 인상을 찌푸리자 훈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나만 믿어!”
훈의 정중한 인사에 마사가 가슴을 당당하게 치며 대답했다.
“자! 가자!”
“오늘은 술 안 마십니까?”
당당한 걸음으로 앞서 나가는 마독을 보며 훈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마독이 몸을 돌려 훈을 바라보았다.
“무인이 술을 마시다니!”
“……?”
“장원으로 돌아가 몸이라도 풀어야지!”
“…….”
평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마독의 대답에 훈은 순간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매일매일 한 잔의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며 늘 술을 마시던 그다.
헌데, 갑자기 뭐?
무인? 몸을 풀어?
지X한다.
속으로는 욕설이 튀어나왔지만 훈은 애써 그 마음을 눌렀다.
그러고는 당당하게 걸음을 옮기는 마독의 뒤를 따랐다.
멈칫!
“……?”
그때.
앞서 걸어가던 마독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자 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그렇게 당당히 걸어가던 양반이 왜 갑자기 못 본 것을 본 것처럼 걸음을 멈춘단 말인가?
그에 의문을 느낀 훈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소교주님과 공녀님을 뵙습니다.”
마독의 앞에 멈추어 선 선남선녀.
바로 천마신교의 소교주와 사황성의 공녀에게 정중히 예를 갖추며 고개를 숙였다.
“어…… 어…… 인사드립니다.”
그런 훈의 인사에 굳어 있던 마독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음에도 불구하고 마독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한 모습과 언행으로 고개를 숙였다.
예에 상당히 어긋난 행동이었다.
그에 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X 된 것 같다고 말이다.
아무튼, 그런 마독의 인사에 소교주.
위극신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또 보네.”
“예…… 또 봅니다…….”
위극신의 인사에 겁을 집어먹은 마독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훈은 속으로 탄식했다.
예, 또 보다니.
가문의 영광이니, 운이 좋다느니, 아부를 떨어도 모자랄 판에 저런 멍청한 발언을 내뱉다니! 이 무슨 최악의 경우란 말인가!
그에 훈이 낙담하는 사이.
위극신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마독을 바라보았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알겠나?”
“예!! 압니다! 알고말고요!”
위극신의 물음에 군기가 바짝 든 신입 병사처럼 차렷 자세를 취한 마독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위극신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재미있었나 보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피식 미소를 지은 소교주는 마독의 뒤. 마사의 집무실을 슬쩍 보고는 입을 열었다.
“백사대주를 만났나?”
“예, 제 숙부님이시라…….”
“왜 만났어?”
“저를 고수로 키워 주신다고 해서…….”
“……?”
아니, 저걸 곧이곧대로 말하냐…….
훈은 자신의 소주인, 마독의 멍청함인지 순진함인지 모를 성격에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대에서 백사문은 망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