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제123장 패천권 敗天拳
“공녀와 말입니까?”
칠왕 七王 이라는 영광스러운 고수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기 위해 매일매일을 열심히 수련하고 있던 권강.
그는 오랜만에 자신의 연무장에 찾아와 다음 날 있을 대련에 관해 이야기하는 아버지를 보며 놀란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래. 열심히 수련 중이구나.”
권강의 놀란 물음에 권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탈의한 그의 상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권강이 쑥스러운 듯 코를 한번 훔치고는 입을 열었다.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 너는 이미 나에게 충분히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절정을 눈앞에 둔 뛰어난 무재.
젊은 시절 자신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는 아들을 보며 권진욱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아들인 권강과 마찬가지로 상의를 벗어 한쪽 편으로 던졌다.
“오랜만에 어울려 보겠느냐?”
“한 수 배우겠습니다.”
권진욱의 물음에 권강이 두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자세를 낮추었다.
금방이라도 권진욱에게 달려들 듯한 자세.
흐트러짐 없이 단단한 권강의 자세에 권진욱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자신의 가르침에 의해 매일 기본 운동을 하며 완벽한 무게중심을 찾은 권강.
무인으로서 상당히 이상적인 모습이었기에 권진욱은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에.
“오거라!”
기쁨을 담아 소리쳤고.
타앗!
권강은 진지한 눈빛으로 권진욱에게 달려들었다.
진심으로 쓰러뜨리겠다는 듯 말이다.
콰앙!!
* * *
“은설?”
다음 날.
나는 사황성의 무인들로 가득한 거대한 연무장에 들어섰다.
그러자 자신의 자리에 앉아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은설을 발견했고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의 순수한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
그 표정에 나는 그녀의 옆에 마련된 나의 자리에 앉으며 그녀를 불렀다.
흠칫!
갑작스럽게 들린 나의 음성에 놀랐을까?
그녀가 흠칫 놀라더니 이내 음성의 주인이 나인 것을 확인하고는 특유의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기었다.
“왔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평소와 달랐던 근심 가득한 서은설의 모습.
그 모습을 떠올린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그녀가 이러한 표정을 지은 경우는 상당히 드문 경우다.
그렇기에 나는 알고 싶었다.
그런 나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 순딩이 서은설.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얼굴에 ‘나 근심 있어요.’ 하는 글귀를 그냥 적어 붙여 놓은 서은설을 보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뭔데? 말해 줘.”
“…….”
“계속 그러면 나도 너에게 비밀 만들 거야.”
“무슨 비밀……?”
나의 말에 서은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몰래 사귀었던 여……자가 있을 리가 없지.”
위험했다.
목덜미가 서늘한 기분에 나는 황급히 말을 돌렸고, 서은설은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 부드러운 미소.
위험했다.
정말 위험했고 또 무서웠다.
천마와 처음 마주하였을 때만큼의 두려움을 애써 숨기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말해 줘. 왜 갑자기 그러는 거야?”
“사실…….”
휴우, 다행히 넘어갔다.
계속된 나의 물음에 서은설은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 새X 내가 죽여 줄까?”
나는 싸늘한 눈빛으로 연무장에 당당하게 서 있는 권강을 보며 말했다.
* * *
연무장의 위로 오른 서은설.
사황성의 무인들의 함성 소리와 응원 소리로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녀의 두 귀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오랜만이네.”
자신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 권강만이 눈에 보였다.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며 친한 척 인사를 건네는 권강.
그런 권강을 보며 서은설은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렇게 인사할 사이는 아니지 않아?”
“너무하네, 그래도 우리 소꿉친구잖아?”
서은설의 차가운 반응에 권강이 짐짓 상처받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에 서은설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등에 메여 있던 거대한 청궁 靑弓을 꺼내 들었다.
“소꿉친구 같은 소리 하지 마. 아이들의 선두에서 나를 괴롭혔던 네가 무슨 친구야?”
얼음장같이 차가운 서은설의 대답에 권강은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자세를 낮추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친구잖아? 너 같은 괴물이랑 누가 친구를 해 줘?”
“…….”
“없지?”
자신의 물음에 서은설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권강이 얄미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있어.”
서은설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잘생긴 미남, 위극신을 보며 대답했다.
“뭐?”
그에 권강이 인상을 찌푸렸고, 서은설은 위극신을 향해 시선을 고정 한 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권강에게는 한 번도 지어 준 적 없던 그런 미소를 말이다.
“있어, 어린 시절부터 나의 옆에 있어 주었던 고마운 사람.”
“…….”
“너와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친구이자 소중한 존재.”
“지랄.”
서은설의 말에 권강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콰앙!
서은설에게 달려가 주먹을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불구하고 서은설은 부드러운 발놀림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애꿎은 연무장 돌바닥이 박살 나며 돌 조각이 하늘로 비산했다.
가히, 강력한 주먹이었다.
졸지에 죄 없는 돌바닥을 부숴 버리게 된 권강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저 멀리 서서 자신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인사하거라, 공녀이다. 너보다는 어리지만, 그래도 친구처럼 잘 지내도록 하거라.’
어린 시절.
권강은 아버지의 소개에 맞은편에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피부와 이국적인 이목구비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소녀.
게다가 푸른색의 두 눈은 신비스럽기까지 시작했다.
언젠가, 아버지를 따라 동정호에 간 적이 있던 어린 권강은 그녀의 두 눈빛이 아름다운 호수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가 멍한 표정을 짓자.
‘안녕…….’
쑥스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인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향해 인사를 건네었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소극적인 그녀의 모습.
약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권강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푸른 괴물이다!”
아름답다는 속마음과는 너무나도 다른 말.
그 말이 권강의 입에서 튀어나왔고, 그날 이후 공녀, 서은설은 또래의 아이들에게 괴물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제길.’
어린 시절.
솔직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 권강이 이를 갈았다.
그러고는 침착한 표정으로 활시위를 잡아당기고 있는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세월이 흘러서일까?
어린 시절보다 더 예뻐졌다.
푸른색의 두 눈은 여전히 신비롭고 아름다웠으며, 늘씬한 몸매와 아름다우면서 시원한 이목구비는 뭇 남자들은 물론, 자신의 가슴까지 설레게 했다.
그에 권강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사내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소교주…….’
공녀인 서은설과 진심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알려진 소교주 위극신.
그의 모습이 보이자 권강이 속으로 이를 갈았다.
질투가 났다.
그런 권강의 눈빛을 느꼈을까?
위극신이 고개를 돌려 권강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봐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는 미남자.
위극신과 두 눈을 마주치자 권강은 순간 움찔했다.
그의 완벽한 외모에 순간 압도당한 것이다.
그렇게 권강이 움찔한 그 순간.
위극신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권강을 향해 중간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별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에 권강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려는 그 순간!
피융!
작게 들리는 소리에 화살이 날아올 것을 미리 파악한 권강이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애꿎은 바닥에 꽂힌 화살을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들어 다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아주, 나 활 쏩니다, 하고 광고를 하네?”
아직 궁술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것이라 파악한 권강이 그녀를 도발했다.
내심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조금 더 듣고 싶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피웅.
하지만 그녀는 그의 도발에 넘어오지도, 그의 기대에 응하지도 않았다.
그저 다시 화살을 쏘아 낼 뿐이다.
좀 전보다 더 큰 활시위 소리와 화살의 소리.
그에 권강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피융!
삭.
푸욱!
피융!
삭.
권강은 계속해서 서은설의 화살을 피해 내었고 서은설은 계속해서 그런 권강을 향해 화살을 쏘아 내었다.
그렇게 서은설은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 내고 있었고, 권강은 여유롭게 하나하나 피하고 있었다.
마치,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의 재롱을 보며 놀아 주는 그림처럼 보였고, 그 결과.
“역시…….”
“그래, 권강 공자님에게는 안 되지.”
“여인이 어떻게 공자님을 이겨?”
“맞아, 게다가 궁술이라니, 성주님의 제자가 저런 비겁한 무기나 쓰니 저게 어디 봐서 후계자야?”
“그러게, 진정한 후계자는 역시 권강 공자님인가 봐.”
사황성의 일반 무사들의 웅성거림이 더더욱 커져 갔다.
도저히 권강과 상대가 되지 않는 서은설의 모습에 모두가 적잖이 실망한 것이었다.
그런 무사들의 웅성거림을 들었을까?
여유롭게 화살을 피하는 아들, 권강을 보며 권진욱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거지!’
자신은 믿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공녀인 서은설을 누르고 당당하게 후계자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은 권진욱이 고개를 돌렸다.
늘 여유롭고 싸가지 없던 위극신의 잘난 낯짝이 얼마나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하지만 웬걸?
“……?”
그가 웃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연무장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위극신.
그의 모습을 발견한 권진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연무장 위를 바라보았다.
피웅!
사악!
푸욱!
변함없었다.
서은설의 화살은 애꿎은 바닥만을 괴롭혔고, 권강은 어린아이와 놀아 주듯 여유로운 몸짓으로 서은설의 화살을 하나하나 모두 피해 내고 있었다.
마치 계속해 보라는 듯 여유를 부리면서 말이다.
그에 권진욱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보아도 자신의 아들, 권강의 승리가 확실시 된 상황이었다.
헌데 이 상황에서 위극신이 웃는다?
도대체 왜란 말인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두 눈동자가 떨려 온 것도 잠시.
권진욱은 자신의 두 눈앞에 펼쳐진 갑작스러운 광경에 두 눈을 크게 떴다.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 내던 서은설.
그녀가 거대한 청궁을 옆으로 내던졌던 것이다.
그러고는.
우웅!
그녀의 몸에서 패도적인 기세가 뿜어져 나왔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흑단과 같은 긴 머리칼이 패도적인 기세로 인해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패천권 敗天拳!”
하늘을 깨뜨리는 주먹이라 불리는 패천권.
사황성주 백리관의 독문무공이며 지금의 패천황 覇天皇 이 있게 한 무공이었다.
“저런!”
심지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모습!
그 모습에 권진욱은 두 눈을 크게 떴고.
씨익.
위극신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