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제122장 무인 武人 (2)
“이렇게 모여 주어서 모두 고맙군.”
사황성에 위치한 대전.
성주 전용의 옥좌에 앉은 백리관의 겉치레와 같은 인사에 양옆에 시립해 있던 모든 무력대주가 고개를 숙였다.
왼쪽 편에는 성주로서가 아닌, 무인 백리관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백호대주 이백, 흑풍대주 조천흑, 혈랑대주 진천이 자리하고 있었고, 반대인 오른쪽 편에는 백사대주 마사, 흑룡대주 구룡, 흑소대주 전흑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한 인물들 사이로.
공녀인 서은설은 백리관의 바로 아래 하단에 위치한 곳에 서 있었고, 나 또한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
나는 사황성의 손님이며 천마신교의 소교주이지만 이곳은 사황성주가 주인으로 있는 장소이다.
게다가 나는 천마가 아닌 소교주이며 성주인 백리관보다 한 배분 아래의 후배이기에 서은설과 같은 위치가 딱 적당했다.
그런 나와 서은설의 반대편, 오른편 하단에는 부성주인 권진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상당히 거슬리는 모습에 백리관이 눈가를 꿈틀거렸지만 이내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역시, 백리관도 부성주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선을 돌린 백리관은 고개를 들어 대전에 서 있는 모든 무력대주들을 둘러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후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본 성의 수뇌부들인 그대들을 불렀다.”
장로들이 아닌 무력대주가 수뇌부를 이루고 있는 사황성이었기에 현재 대전에 있는 인물들이 바로 사황성을 이루고 있는 핵심 인물들이었다.
그런 인물들을 보며 백리관이 말하자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사가 두 눈을 반짝였다.
저놈 저거, 눈빛부터가 노골적이다.
후계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눈을 반짝이는 놈을 보며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셨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때.
가만히 있던 권진욱이 백리관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에 백리관이 대답했다.
“현재 사황성 최고의 후기지수는 누구인가?”
“부성주님의 아들인 권강 공자가 최고의 후기지수로 불리고 있습니다.”
백리관의 되물음에 마사가 특유의 야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
아, 너무 컸나 보다.
나의 피식 미소 소리에 이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그에 머쓱해진 나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와 다르군.”
기왕 이목 집중된 거, 써먹어야겠다.
입을 열고 나온 나의 발언에 대전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서늘해졌다.
“어떤 정보를 알고 계시는지요?”
그런 공기 사이로, 나를 바라보며 마사가 물었다.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알기로는 사황성 최고의 후기지수는 서은설 공녀이다. 아닌가?”
“공녀님은 한 번도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헌데 그런 소문을 어디서 들으셨는지 궁금하군요.”
나의 대답에 마사가 대답했다.
거참, 들었다면 들은 거지 말이 많았다.
그에 나는 짜증 어린 눈빛으로 마사를 바라보았다.
흠칫.
그런 나의 눈빛에 본능적으로 흠칫한 마사.
그가 흠칫하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짓고는 마사를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
“못 믿겠으면 붙으면 되겠군.”
“……?”
나의 입에서 나온 말.
그 말에 마사는 물론 부성주인 권진욱과 모든 무력대주가 의문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누가 최고의 후기지수인지 결판을 내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서은설 공녀인지, 아니면 부성주의 아들인지.”
“…….”
“승자가 후계자가 되면 되겠군.”
“더 이상 본 성의 일에 간섭은 거절하겠소.”
나의 말에 가만히 있던 권진욱이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어이구, 무서워라.
살벌한 그의 경고에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뭐가 간섭이지?”
“지금 이 안건은 사황성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오, 소교주인 그대가 참석하는 것도 이상하지.”
“내 약혼녀가 사황성의 공녀이니 충분히 간섭 가능하지.”
“약혼을 들먹이며 계속해서 본 성의 일에 간섭을 하시겠다는 말입니까?”
나의 대답에 이번에는 가만히 있던 흑소대주, 전흑진이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로지 사황성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충신 전흑진.
그의 물음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내 약혼녀가 이렇게 무시를 당하고 있으니 두고 보기가 싫다는 것이오.”
“…….”
“성주님에게 묻겠습니다.”
“허락하겠네.”
나의 물음에 백리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서로를 믿지 못해 흩어져 있던 사파의 세력을 패도 覇道 로써 통일한 존재가 성주님이시며, 성주님이 만든 곳이 이곳, 사황성입니다.”
“그렇네.”
나의 말에 백리관이 고개를 끄덕였으며, 모든 무력대주들이 입을 다문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성주님의 뒤를 이어 또 다른 패도의 길을 걸을 존재. 그 존재가 바로 사황성의 후계자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맞습니다.”
“동의합니다.”
나의 의견에 이백, 그리고 좀 전에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전흑진이 동의했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여인이건, 색목인이건 아무것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무력이 강한지, 패도적인 길을 걸으며 사파의 무인들을 잘 통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런!”
나의 말에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파악한 마사가 언성을 높였다.
제법 빠르게 눈치챘지만 이미 늦었다.
아직 나의 말이 끝나지가 않았으니 말이다.
“패도적인 모습과 무인들을 잘 통솔하는 모습은 후계자가 된 이후의 일. 우선은 무력 武力이 먼저 입니다.”
“…….”
이어진 나의 말에 마사가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하건 사황성주인 백리관을 부정하게 된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역시, 야비한 만큼 똑똑한 자였다.
그런 마사의 행동에 나는 짐짓 아쉬움을 느꼈다.
성주에 대한 모독을 묶어 한 번에 보낼 기회가 날아갔으니 어찌 안 아쉽겠는가?
아무튼, 그러한 아쉬움을 접어 둔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권진욱을 바라보았다.
“부성주는 어떻게 생각하오?”
“…….”
“설마, 부성주의 아들이 내 약혼녀에게 질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아무런 대답이 없는 권진욱을 보며 나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에.
“그럴 리가.”
물었다.
나의 도발에 가뿐하게 넘어온 권진욱.
그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대답은 정해진 거군?”
“그래, 무력으로 후계자를 정해야겠지.”
나의 물음에 부성주가 대답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돌려 피식 미소를 짓고 있는 백리관을 바라보았다.
“저와 부성주의 생각은 같습니다.”
“저 또한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끄응…….”
마사를 제외한 모든 무력대주가 동의를 했고, 마사는 신음을 흘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 권진욱이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사를 바라보았다.
“설마, 내 아들이 공녀에게 질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아닙니다…….”
권진욱의 살벌한 물음에 마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
“그러면 그대도 동의하는 걸로 알지.”
백리관이 재빠르게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내일 이 시간. 부성주의 아들과 공녀인 서은설의 대련을 치르도록 하겠다. 승자는 사황성의 후계자가 될 몸. 모든 무인들에게 공개적으로 대련을 벌이도록 하겠다.”
“명을 받듭니다!”
깔끔한 백리관의 결정에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고.
꽈악.
나는 미소를 지으며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은설의 손을 잡았다.
* * *
“어찌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신 것입니까.”
부성주의 집무실.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마사가 그답지 않게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에 권진욱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사를 바라보았다.
“정말, 내 아들이 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권진욱의 물음에 마사가 짧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공녀는 소교주와 혼인을 할 몸입니다. 혼인을 하면 그를 따라 천산으로 갈 예정이지요. 저절로 사라질 존재입니다. 헌데, 왜 그런 같잖은 도발에 넘어가신 것입니까?”
콰앙!
“크윽!”
마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권진욱은 마사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에 마사는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었고, 권진욱은 살벌한 눈빛으로 마사를 바라보았다.
“같잖은 도발?”
“…….”
“내 아들은 무조건 이긴다. 오히려 잘되었지. 이렇게 정리해야 공녀를 지지하던 세력도 찍소리 못 할테니까.”
“…….”
“그러니 그만 물러가도록.”
마사의 목을 놓아준 권진욱이 싸늘한 눈빛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그에 마사는 헛기침을 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반대로 우리 세력이 무너질 것이라는 것은 왜 생각지 못하시는 겁니까…….’
아들이라는 단어에 두 눈이 멀어 멍청한 행동을 하고 만 부성주 권진욱.
그를 가만히 바라본 마사가 몸을 돌렸다.
이제 되었다.
자신은 할 만큼 했다.
‘연락해야겠군.’
스스로를 천군 天軍이라 소개하며 대업을 돕겠다던 무력대.
그들을 떠올리며 마사는 부성주의 집무실에서 벗어났다.
* * *
“왜 그런 도발을 한 거야?”
싸늘하다.
소교주인 나에게 배정된 방.
그곳에 들어선 나는 두 귀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방 안에 위치한 탁자를 향해 서은설의 손을 잡아끌었고, 그녀를 앉혔다.
“우리 은설이, 겁먹었어?”
그러고는 놀렸다.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며 내가 싱긋 미소를 짓자 그녀가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그러고는 짐짓 나를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겁먹었을 거 같아?”
“아니야?”
“내가 이겨! 그것도 이 한 주먹으로!”
나의 물음에 서은설이 주먹을 들어 보이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됐네. 아주 발라 버려.”
“……?”
“그럼 된 거 아니야? 네가 정당한 후계자가 된다면 사황성의 문제도 모두 해결되잖아.”
정단한 후계자의 부재로 인해 이분화가 되어 버린 작금의 사황성.
그런 사황성의 현실을 언급하며 내가 말하자 서은설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말이야.”
“응.”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찌푸려진 얼굴로 입을 연 서은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손바닥으로 턱을 괴며 대답했다.
거참, 누구 여자 친구인지 찌푸린 얼굴도 예뻤다.
“내가 사황성주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해.”
“왜 불가능해?”
“너를 따라가야 하니까.”
나의 물음에 서은설이 나의 두 눈을 보며 대답했다.
거참, 고맙다.
무조건적으로 나와 혼인을 한 후 나를 따르겠다는 그녀를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탁자 위에 손을 얹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은설.”
“응.”
고운 손을 만지작거리며 내가 그녀를 부르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성주님은 정정하셔.”
“그렇지.”
이제 사십 대 중반이다.
절대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기에 여든까지는 거뜬히 살 수 있다.
전생에서는 비록 독살로 인해 일찍 돌아가셨지만 이번 생은 다르다.
‘내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아.’
내가 스승님을 살릴 것이다.
그러니 오래 사실 수 있다.
나와 은설의 결혼식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며, 우리의 아이를 안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나의 말에 서은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설의 손을 강하게 쥐었다.
“우리가 빨리 아이를 낳아서 후계자로 키우면 돼.”
“!!”
“뭐가 문제야? 나만 믿어.”
오빠만 믿어.
네 명 정도는 거뜬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