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화
제121장 무인 武人 (1)
뭐지……?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 나는 순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런 나의 모습이 재미있었을까?
“하하!”
전생에서 스승이었던 백리관이 유쾌하게 웃었다.
정말 재미있는 광경을 보았다는 듯이 말이다.
그에.
“하하.”
“죄송합니다, 소교주.”
혈랑대주 친천이 소리 내어 웃었고, 흑풍대주 조천흑이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사과를 건네었다.
마지막으로.
“그러게 왜 우리 공녀님을 힘들게 합니까?”
이백의 질책 아닌 질책이 뒤따랐다.
그에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웠다.
이 양반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되었던 것이다.
그에 나는 다시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백리관을 향해 정중하되, 과하지 않게 예를 차리며 고개를 숙였다.
“천마신교의 소교주, 위극신입니다. 사황성주님의 제자이자, 귀성 貴城 의 무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공녀인 서은설 소저와 혼약을 나누고 싶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이 상황에서는 내가 숙이고 들어가는 게 맞다.
이들 모두가 서은설을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장난 반, 진담 반의 반대를 내보였으니 말이다.
그런 나의 정중한 어조에 진천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멈추었고, 조천흑은 나를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마음에 드는 사위를 바라보는 듯 말이다.
아무튼, 그 둘은 넘어가고.
서은설에게 아버지나 다름없는 스승님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하하.”
나의 물음에 백리관이 다시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서은설을 힐끔 보더니 이내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미 대답은 나왔군그래.”
백리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서은설의 모습이 말이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고, 이내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은설, 십사 년 동안 만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매일 서신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해 왔어.”
“응…….”
나의 말에 서은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서은설의 손을 잡았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너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 아주 특별한 존재. 그런 네가 나와 함께해 주었으면 좋겠어.”
“…….”
“우선 연애부터 시작해 보자. 부담 가지지 마.”
대답을 하지 못하는 서은설을 보며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에 서은설이 고개를 들었다.
움찔!
고개를 든 서은설의 날카로운 눈빛.
그 눈빛에 나는 본능적으로 움찔거렸다.
아니 왜……?
“혼인부터 해!”
“……?”
“혼인부터 하고 연애해! 또 나 버리고 다른 데로 훌쩍 떠나려고? 내가 가만히 기다릴 것 같아?”
“아니…… 그럴 리가, 애초에 내가 왜 너를 떠…….”
“우선 내 거부터 해!”
“넵.”
알겠습니다.
박력 넘치는 서은설의 말에 나는 무력대의 말단 대원처럼 군기 어린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에.
화아악!
서은설은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였는지 깨달았는지 다시 얼굴을 붉혔고.
“하하!”
“푸하하하!”
이곳에 있던 모두가 소리 내 웃었다.
진정으로 공녀인 서은설을 생각하는 사황성의 무인들 모두가 말이다.
* * *
“부성주, 그자 뭡니까?”
사황성에 위치한 응접실에 들어선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백리관에게 물었다.
사황성의 부성주 권진욱.
그가 성주인 척 행동하며 까불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성주보다 먼저 손님을 맞이하러 나온 적은 없었다.
그것을 잘 알기에 나는 백리관과 단둘만이 남게 되자 백리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에 백리관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너는 숙부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부성주 이야기를 먼저 하느냐?”
“대전에서 충분히 이야기 나누었지 않습니까.”
“쩝, 나에게는 친절했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되니 그 친구에게 대하듯 하는구나.”
당돌한 나를 보며 백리관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한 가족이 되지 않습니까? 내숭 떨어서 뭐 하겠습니까.”
“본인 입으로 내숭이라 하는구나.”
“사실이니까요.”
백리관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에 백리관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진정으로 재미있다는 듯 말이다.
전생에서도 이랬다.
스승님은 이렇게 선을 가볍게 넘는 것을 좋아했다.
아니, 스승님의 입장에서는 이 정도의 까불거림은 선이 아닌 애교일 것이다.
워낙 천마 그 양반이 예민해서 그렇지 이게 정상!
아무튼, 그런 스승님, 백리관을 보며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고 백리관 또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서로 미소 짓기를 잠시.
백리관이 자세를 바로잡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나에게 제자는 은설이 단 한 명뿐이다.”
“그렇죠.”
“그러다 보니 성주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지.”
나의 대답에 백리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설이가 있잖아요?”
“뭐……?”
“아니, 제가 알기로 주로 궁술을 사용하지만, 숙부님의 패천권 敗天拳도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걸로 아는데 아닌가요?”
“배우긴 배웠지.”
나의 물음에 백리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배우기는 무슨.
이미 어느 정도 성취도 이룬 상태인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사황성주의 직계제자입니다. 심지어 무학마저 이은 존재이며 스물두 살의 나이에 일류 끝자락에 오른 고수가 아닙니까?”
정파의 최고의 후기지수, 그리고 본교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강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서은설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서은설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다니?
어불성설 語不成說 이다.
내가 진정으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백리관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공허한 백리관의 두 눈빛과 마주친 것도 잠시.
백리관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입을 열었다.
“진심이구나.”
“네.”
진심이다.
이렇게 완벽한 후계자가 있다. 헌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하하…….”
그런 나의 대답이 웃겼을까?
백리관이 조용히 소리 내어 웃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백리관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맞다. 나에게는 든든한 후계자가 있지.”
“네, 맞습니다.”
“그래, 맞아…… 그랬어.”
나의 대답에 백리관이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나는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지금 사황성이 어떻게 굴러가고, 또 어떠한 상황인지 순식간에 파악이 되었던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딴지 거는 것입니까?”
“그래, 정통성도 없고, 색목인에다가 여인이다. 일반 무인들은 물론, 수뇌부들 중에도 은설이에 대한 반대가 상당히 많아.”
나의 물음에 백리관은 숨기지 않겠다는 듯 속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성주님이 아직 미혼이시니 정통성은 넘어가고, 색목인이긴 해도 한인으로 자라 온 아이입니다.”
“맞지.”
나의 설명에 백리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여자에 대한 인식도 안 좋고 말이야.”
“아니, 성주님.”
백리관의 이야기에 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
그에 그가 의문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진정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패도를 걷는 사파입니다. 뛰어난 후기지수가 후계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무력을 논해야지, 왜 색목인이니, 여인이니. 이런 것을 따지는 것입니까?”
“!!”
나의 물음에 백리관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무인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 * *
“아까 왜 그러셨어요.”
또 다른 응접실.
서은설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이백, 조천흑, 진천을 차례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에 이백과 조천흑은 싱긋 미소를 지었고 진천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공녀님을 힘들게 하는데 그냥 허락하기에는 좀 아니꼽지 않습니까?”
“공감하네.”
장난스러운 진천의 말에 미소를 짓고 있던 조천흑이 동조했다.
그에 서은설은 나름 날카로운 눈빛으로 조천흑을 노려보았다.
그에.
“오늘은 비가 오려나 보군.”
조천흑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날이 화창한데?”
“그렇습니까? 이상하네요.”
그런 조천흑을 보며 이백이 말하자 조천흑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이백은 피식 미소를 지었고.
“하아…….”
서은설 또한 피식 미소를 짓고는 이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공녀님.”
“네, 말씀하세요.”
그런 서은설을 보며 진천이 말하자 서은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에 진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의 소교주. 확실히 괜찮은 사내였습니다.”
진천의 말에 옆에 있던 조천흑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 소교주라는 직책임에도 불구하고 연인을 위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과, 진정으로 공녀에게 허락을 구하는 모습까지. 마지막 공녀에게 찍소리 못 하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아니, 조 형, 그게 왜 마음에 듭니까? 사내로서 여인에게 찍소리도 못 하다니!”
조천흑의 말에 진천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 조천흑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 어떠한 존재에게도 당당한 사람이 바로 소교주일세, 그런 소교주가 공녀님에게는 그런 태도를 취해 보이니 그 뜻은 곧 진심으로 공녀님을 아낀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아…….”
“나는 그렇기에 소교주가 마음에 드네.”
진천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조천흑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얼굴을 붉히고 있는 서은설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소교주는 그 누구보다 공녀님을 아껴 줄 것입니다.”
“…….”
“응원하겠습니다.”
“예! 저도 응원…… 아니 그냥 팍팍! 도와드리겠습니다!”
조천흑의 응원에 옆에 있던 진천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그에 서은설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하하!”
그런 서은설의 모습에 세 명의 무력대주는 소리 내 웃었다.
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서은설.
아픈 손가락과도 같았던 어린 조카가 이제는 어엿한 여인이 되어 사랑을 시작하니 보기 좋았던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미소를 짓던 것도 잠시.
“실례합니다.”
“들어오세요.”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벌컥.
그러자 백호대 의복을 입은 백호대원이 안으로 들어서고는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대전으로 모두 모이라는 성주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지금 말이더냐?”
대원, 아니 수하의 보고에 이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대전에서 소교주를 맞이한 것도 좀 전인데 다시 부른다고?
자신들도 아니고 모두를?
그 뜻은 부성주인 권진욱과, 부성주를 따르는 백사대주와 흑룡대주. 마지막으로 중립인 흑소대주까지 모두 모인다는 뜻이다.
그런 의문 가득한 이백의 물음에 대원이 고개를 숙이며 짧게 대답했다.
“네.”
그에 이백은 물론 모두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스윽.
사황성주의 명령이다.
의문은 잠시 접어놓고 따르면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의문은 풀릴 테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대전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