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제120장 이 혼인 반댈세 反對
호북의 무한.
정파의 연합으로 무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만들어진 무림맹의 회의실에는 오랜만에 모든 장로들이 참석하였다.
콰앙!
“이렇게 갑자기 일정을 미루다니! 이런 법이 어디 있소!”
“그렇습니다! 본 맹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으면 이런 행동을 취한단 말입니까!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빈자리 하나 없이, 인원 모두가 참석한 회의실.
삼장로이자 검천 劍千이라는 별호를 지닌 단목천의 분노 어린 발언에 옆에 있던 육장로, 도왕 刀王 팽진혁이 덩치만큼이나 큰 목소리로 동조했다.
무력 서열대로 장로 순위를 매기는 천마신교와 달리 입맹 入盟 순서대로 장로들의 순번을 매기는 무림맹.
거칠게 항의하는 두 명의 장로를 보며 무림맹의 군사이자 제갈세가의 가주이기도 한 제갈명이 부드러운 어조로 그 두 명을 향해 입을 열었다.
“삼장로, 육장로. 조금은 화를 가라앉히시지요. 맹주님 앞입니다.”
제갈명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삼장로와 육장로가 상석에 위치한 노인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 둘과 두 눈이 마주친 창천검황 蒼天劍皇 천진.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광 어린 눈빛을 지닌 천진의 모습에 삼장로와 육장로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슬그머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흥분으로 인해 뜨거웠던 공기가 조금 가라앉자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제갈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시일을 늦추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그들이 이곳으로 오는 것이니까요.”
“…….”
제갈명의 말에 장로들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들이 불편한 이유를 알고 있다.
진정으로 무림맹을 무시하는 마교의 안하무인 행동?
아니다, 그것은 명분일 뿐.
사실은 그들의 가문과 문파에 속한 상단들이 정마회동의 일정에 맞추어 일정을 짰기 때문이다.
말이 정마회동이지, 모든 무림의 시선이 한군데로 모이고, 또 그로 인해 수많은 인파들이 모이는 큰 축제와도 같은 행사.
그런 행사에는 큰돈이 굴러지기 때문에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두 눈에 불을 켜고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갑자기 일정을 뒤로 늦춘다?
그동안 계획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니 그들이 불만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들은 명문정파의 거인들.
무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마련된 무림맹에서 그들의 개인적인 욕심을 내보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무 말 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장로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은 제갈명은 다시 아이를 달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이동 경로입니다.”
“경로라니?”
제갈명의 말에 칠장로, 운월이 되물었다.
그에 제갈명이 운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청해, 그리고 사천을 지나 본 맹으로 방문한다 합니다.”
콰앙!
“지금…… 뭐라 했소……?”
제갈명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강하게 탁자를 내려친 운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금방이라도 죽일 듯한 눈빛으로 제갈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미타불, 운월시주. 조금은 진정하시지요.”
그런 운월의 감정적인 행동에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스님, 일장로 혜각이 그를 향해 말했고, 주변에 있던 사장로, 청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운월은 살기를 가라앉힌 다음 다시 제갈명을 바라보았다.
“정녕…… 그 악도들이 청해를 지난단 말이오?”
약, 이십오 년 전에 일어났던 정마대전 正魔大戰.
수많은 마인들이 중원으로 넘어왔고, 신강에서 중원으로 통하는 첫 번째의 문과 같은 청해성의 곤륜파 崑崙派가 그들을 막아섰다.
피에 미쳐 무자비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악마와도 같은 그들의 공격은 고작 한 개의 문파에 불과한 곤륜파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수많은 제자들이 마교의 마인들에게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렇기에 마교를 철천지원수로 생각하고 있는 곤륜파였고 그런 곤륜파의 장로인 운월이 이렇게 격한 반응은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을 모두 아는 장로, 그리고 무림맹주 천진과 제갈명이었기에 큰 질책을 하지 않았고 말이다.
아무튼, 그런 운월의 물음에 제갈명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분명!”
제갈명의 확언과 동시에.
운월의 분노 어린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분노와 비통함,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운월의 절규와도 같은 음성에 회의실에 있던 모든 장로들이 운월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모든 장로들과, 무림맹주 천진의 시선까지 자신에게 모이자 운월은 금방이라도 피눈물을 흘릴 듯 핏발 선 두 눈으로 입을 열었다.
“분명…… 그 마인들의 또 다른 속셈이 있을 것입니다……. 분명…… 사소한 것으로 시비를 걸어 죄 없는 백성들과 무인들을 죽이려고 할 테지요. 아니, 확실합니다. 그들은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칠장로, 조금은 진정하시게.”
분노로 가득한 운월의 절규와도 같은 발언에 그동안 계속해서 가만히 있던 천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회의실에 울려 퍼지는 낮고 단단한 천진의 목소리.
그 음성에 운월의 분노로 불안하던 공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에 운월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붉어진 두 눈으로 천진을 바라보았다.
“왜요?”
“칠장로!”
“예를 갖추시오!”
무림맹주에 대한 예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운월의 태도.
그 태도에 가만히 있던 사장로 청수와 팔장로 당대 매화신검 梅畵神劍 적화가 그를 말렸다.
하지만 이미 운월은 분노로 인해 이성을 잃은 상태.
그 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운월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맹주의 딸이 그곳에 있어 그렇소? 아? 그러고 보니 맹주의 손자가 위마참군 僞魔斬君 이라 불리며 되도 안 되는 협행을…….”
콰앙!
선을 넘는 운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거대한 굉음이 회의실 안에 울려 퍼졌다.
회의실에서 보이는 처음 보는 광경에 모든 장로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무림맹의 맹주이자 창천검황이라는 위대한 별호를 지닌 무인.
그 어떠한 경우에도 화를 잘 내지 않는 담백한 사내, 천진이 운월의 목을 잡고 벽에 처박아 버렸던 것이다.
그러고는 금방이라도 사람을 죽일 듯한 눈빛으로 운월을 노려보았다.
“나는 무림의 평화를 위해 딸을 희생했다.”
“…….”
살기가 가득한 천진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회의실에 있던 모든 장로들이 입을 다물었다.
운월 또한 마찬가지.
아니, 그는 자신을 정면으로 덮쳐 오는 절대고수의 기세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진은 기세를 거두지 않았다.
아니.
꽈악!
오히려 운월의 목을 쥔 손에 힘을 더 강하게 쥐며 다시 입을 열었다.
“희대의 악마라고 불리는 천마에게 딸을 보낸 나다. 이십삼 년 전. 무림맹주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희생을 강요하던 곳 중 하나가 바로 너희 곤륜파다. 그런 나의 앞에서 그딴 더러운 망발을 내뱉어?”
“무량수불! 맹주!”
“아미타불…… 맹주님 참으십시오.”
숨을 쉬지 못해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 붉어진 얼굴을 한 운월의 모습에 사장로 청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진을 말렸고, 일장로인 혜각이 기운을 내뿜어 천진의 화를 다스렸다.
항마의 힘이 담긴 불교의 기운.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혜각의 기운에 천진은 분노를 천천히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운월의 목에 쥔 손에 힘을 풀었다.
털썩.
그러자 운월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허어억! 허억!”
목을 부여잡으며 그동안 공급받지 못했던 산소를 공급받기 위해 괴로운 소리를 내며 헐떡거렸다.
그에 천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운월을 내려다보았다.
“무림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이 나다. 그런 나의 희생에 대한 모욕을 주는 것을 참지 못한다. 또한!”
움찔!
화경의 절대고수만이 뿜어낼 수 있는 매서운 기운!
그 매서운 기운과 동시에 천진이 돌아서자 앉아 있던 모든 장로들이 움찔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런 장로들의 모습을 본 천진.
그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더 이상의 희생을 나에게 강요하지 마시오.”
“…….”
장로 모두들에게 하는 경고와도 같은 천진의 말.
그 말에 장로들 모두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천진은 몸을 돌려 회의실을 나섰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휑하니 말이다.
“음……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그런 천진의 퇴장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제갈명이 서둘러 회의를 정리했다.
* * *
“오랜만이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성주님.”
사황성의 대전.
나는 상단 위에 위치한 의자에 앉아 나를 반기는 백리관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숙부라 칭할 수 없었기에 나는 성주라 칭하였고, 스승님 또한 나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
“오는 길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 들었소.”
“귀찮은 파리 한 마리가 붙었기에 물리치고 왔습니다.”
“파리라니요!”
나의 대답에 오른편에 시립해 있던 사내, 흑소대의 대주, 전흑진이 울컥하며 나를 향해 말했다.
전생에서 내가 아닌, 오로지 사황성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충신.
아끼던 수하 중 한 명이었던 그의 모습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정말 파리였습니다.”
“그게 무슨!”
나의 대답에 전흑진은 분노로 인해 붉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황성의 부성주인 권진욱.
내가 알기로 전흑진은 권진욱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황성의 부성주이기에 늘 그에게 예를 갖추었던 존재다.
그러니 지금도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겠지.
그것을 아는 나는 다시 피식 웃고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
그러자 보이는 죽어 있는 파리 한 마리.
전흑진은 그것을 보고 얼굴을 굳혔고.
후욱.
나는 바람을 불어 파리를 날려 버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백리관을 바라보았다.
“환기를 좀 잘하셔야겠습니다.”
“…….”
능청스러운 나의 말에 대전에 있던 모든 무력대주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고.
“푸하하!”
상단에 위치한 의자에 앉아 있던 백리관이 대소 大笑를 터뜨렸다.
듣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지는 웃음.
그 웃음소리에 나 또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소교주 성격이 천마와는 너무나도 다르군!”
“옛날 부터 그렇게 느끼셨지 않습니까?”
백리관의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백리관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의 옆에 있는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집 나간 서방 찾아온다더니 데리고 왔구나.”
“스승님!”
백리관의 입에서 나온 장난스러운 말.
그 말에 서은설이 화들짝 놀라며 언성을 높였다.
그에 백리관은 진한 미소를 짓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소교주.”
“예.”
나의 대답에 백리관은 대전 양옆에 시립해 있는 무력대주들을 쓰윽 둘러보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자네와 제자의 이 혼인. 반댈세.”
“저도 반대입니다!”
“저도입니다!”
백리관의 발언과 동시에 양옆에 있던 대주들 중 두 명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에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나선 두 명 모두 내가 아는 인물이다.
바로, 전생에서 나에게 충성을 바쳤던 무인, 흑풍대주 黑風隊主 조천흑과, 혈랑대주 血狼隊主 진천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나랑 합도 잘 맞던 양반들이 갑자기 왜……?
“저도 반대입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혹스러웠던 것도 잠시.
나는 뒤에 가만히 서 있던 이백마저 앞으로 나서며 동조하자 배신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백 당신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