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제114장 재회 再會 (1)
“어서 오십시오!”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따르던 의형, 위극신이 떠난 당일.
남궁정과 아침을 먹던 왕일은 객잔 문이 열리자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걸음을 옮겼다.
“아주, 굽실거리는 게 간신이 따로 없네.”
옆에서 남궁정과 함께 앉아 밥을 먹던 남궁연화의 싸가지 없는 투덜거림이 들렸지만 가볍게 무시한 왕일은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에게 다가갔다.
“첫 방문이십니까?”
눈 아래 모든 얼굴을 가리는 하얀 면사에, 죽립을 깊숙하게 쓴 여인.
평균 성인 남성보다 키가 큰 여인의 모습에 왕일이 묻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
여인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그녀의 왼쪽 어깨 위로 삐죽 튀어나온 푸른색의 궁 弓이 보였다.
키가 큰 주인만큼이나 거대한 푸른색의 궁.
영롱한 푸른빛을 자랑하는 궁을 보며 왕일이 두 눈을 반짝였다.
“조용한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보이며 여인을 안내했다.
-소문주님!-
그런 왕일의 귀로 들려오는 수노의 다급한 전음.
그 전음에 왕일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에 수노는 긴장 어린 표정을 지으며 주방에서 나와 왕일을 지켜보았고, 가만히 밥을 먹던 남궁정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후루룩!
그런 둘과 달리 눈치 없는 남궁연화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퍼먹고 있었다.
아주 맛있게 말이다.
그런 남궁연화의 모습을 곁눈질로 한번 본 왕일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여기 앉으시지요.”
가장 구석진 곳, 계단 바로 옆이기에 사람들의 시야를 차단할 수 있는 자리이며 남궁정 일행이 잇는 옆자리로 여인을 안내하였다.
그에 여인이 고개를 들어 왕일을 바라보았고, 왕일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면사를 쓰고 계시기에, 일부러 이곳으로 안내했습니다. 혹, 창가 자리를 원하십니까?”
조금은 이국적인 눈매를 지닌 여인의 모습.
그 모습에 왕일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에 여인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의자에 앉았다.
모든 사람들에게 등을 지도록 말이다.
그렇게 여인이 자리에 앉자 왕일은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혹, 처음이시면 제가 음식을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
끄덕.
왕일의 물음에 여인이 고민한 것도 잠시, 친절한 왕일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하였다.
그에 왕일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가장 합리적이고 맛있는 음식으로 가져오겠습니다.”
끄덕.
그에 여인은 가격도 물어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객잔에 들어와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여인의 모습에 밥을 먹고 있던 남궁연화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우씨…….”
그러고는 늘씬한 몸매를 지닌 여인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왕일의 물음에 한마디도 안 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여인의 모습이 무례하게 느껴졌으며, 그런 여인에게 방실방실 웃는 왕일의 모습이 거슬렸다.
그리고,
“…….”
자신이 봐도 아름다운 몸매를 지니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 이를 갈았다.
그에 남궁연화가 남궁정에게 하소연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끼익.
남궁정이 의자를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주방을 향해 걸어가는 왕일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있으세요.’
주방 앞에 서 있는 수노에게 걸어가고 있던 왕일은 남궁정과 두 눈을 마주치자 입 모양으로 그에게 말했고, 남궁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턱.
그러고는 다시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았다.
은연중에 뿜어져 나오는 여인의 기운.
그 기운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남궁정은 직감했던 것이다.
자신이 의형인 위극신과 주윤문을 처음 알아봤을 때와 같은 묘한 기운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보다 강자다.’
그에 남궁정은 그녀가 최소한 자신과 비슷한 강자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저 여인은 정파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무기인 궁을 사용한다.
‘궁술을 사용하는 고수는 없어.’
이미 이름이 잊힌 전전 대 고수라면 모를까, 전대와 지금의 고수 중에 궁술을 사용하는 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남궁정.
그는 가만히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수상하기에 당장이라도 그녀를 조사하고 싶었지만…… 남궁정은 왕일을 믿었다.
녀석이라면 분명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남궁정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주방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 왔고 이내 은하객잔의 비밀 음식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주방에서 나온 음식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은 왕일은 능숙하게 음식을 들고 걸음을 옮겨 여인의 앞에 놓아두었다.
여인의 앞에 놓인 붉은색의 음식.
처음 보는 붉은 음식에 여인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왕일을 올려다보았다.
‘…….’
호수처럼 깊고 맑은 아름다운 두 눈동자에 왕일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
숙련된 점소이이자 객잔의 사장답게 영업용 미소를 다시 장착한 왕일이 입을 열었다.
“저희 주방장 비밀 메뉴, 닭볶음탕입니다.”
“…….”
“제 의형이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지요.”
왕일의 말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면사를 살짝 벗어 탁자 위에 얹어 두었다.
왕일은 면사가 벗겨지자 드러난 여인의 아름다운 외모에 두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역시.’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
그녀는 자신의 의형, 위극신의 약혼녀이자 사황성주의 제자인 서은설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렇게 서은설이 면사를 벗자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이 밖으로 드러났지만 계단 아랫부분에 위치한 벽과 마주하고 있기에 객잔 내 사람들은 그녀, 서은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면사로부터 자유로워진 서은설은 숟가락을 들었고, 이내 닭볶음탕 국물을 한 모금 먹었다.
“!!”
그에 서은설은 두 눈을 부릅떴고, 왕일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극신 형님이 좋아하던 음식…….”
“아악! 너무 매워!! 물 가져와!!”
“…….”
* * *
은하객잔에 위치한 최고급 접객실로 안내가 된 서은설.
그녀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차가운 물을 계속 들이켰다.
“하아…….”
차가운 물을 계속 들이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이 되지 않는 그녀의 혀.
혀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고통에 서은설은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계속 물을 들이켰다.
그렇게 다섯 잔 이상을 마신 서은설은 그제야 혀가 진정되는 것을 느끼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서 있는 왕일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
“정말 죄송합니다. 타 지역에서 오신 손님에게 매울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매운 음식으로 유명한 곳이 바로 사천성.
요 근래, 위극신이 닭볶음탕을 잘 먹는 것을 보고는 잊고 있었다.
사천성의 토박이가 아닌, 타 지역의 사람이라면 이 음식이 매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인지한 왕일이 진심으로 사죄를 하자 서은설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닐 테니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서은설의 용서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더 용서를 구한 왕일.
서은설은 그런 왕일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안 매운 음식으로 부탁해도 될까요?”
“네, 사죄의 의미로 이곳에서 제가 직접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그냥 맛있게 드셔 주십시오.”
“아니에요, 그럴 순 없어요.”
왕일의 말에 서은설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에 왕일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손님에게 돈을 받았다가는 제 의형한테 혼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의형……?”
왕일의 말에 서은설이 의문 어린 표정으로 왕일을 바라보았다.
아직, 위극신이 무협공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던 서은설이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사람들 또한 잘 알지 못했다.
일부러 소문을 막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무협공자가 평범한 점소이와 의형제를 맺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점소이와는 다른 또 다른 의제가 바로 남궁세가의 소가주였으니 왕일의 존재는 묻힐 수밖에.
그에 남궁정은 왕일의 눈치를 보았지만 왕일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별로 관심받고 싶은 성격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런 서은설의 의문 어린 물음에 왕일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정중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오문의 소문주, 왕일이 처음으로 본성의 공녀님에게 인사드립니다.”
공식적으로 사황성의 소속인 하오문.
그곳의 소문주 격인 왕일이 스스로 소문주라 칭하며 서은설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에.
턱.
“네가 왕노의 제자구나.”
천장에서 은신을 한 상태로 서은설을 지키고 있던 고수.
초절정 경지의 고수이자 백호대의 대주인 이백이 모습을 드러내며 묻자 왕일이 고개를 들었다.
“네.”
그러고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이백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늘 제자 놈이 속을 썩인다며 투덜대던 하오문주.
그런 문주에게 이런 훌륭한 제자가 있었던가?
딱 봐도 얍삽하고 머리 잘 돌아가는 놈이다.
‘하오문이 성장하겠구나.’
두 눈을 반짝이며 계속해서 자신과 서은설을 관찰하고 있는 왕일을 보며 이백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이백과 달리 서은설은 놀라지 않았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의형이라고 했나요?”
왕일이 칭한 의형.
그 존재에 대해 의문이 가득했다.
의문이 가득한 서은설의 물음에 왕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서은설의 두 눈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네.”
“혹시…….”
왕일의 대답에 서은설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에 왕일은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공녀님의 약혼자이신! 위마참군, 위극신입니다.”
“그 인간 어디 있죠?”
흠칫.
자랑스럽게 위극신이 자신의 의형이라 밝힌 왕일.
그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서은설의 싸늘한 목소리가 되돌아오자 흠칫했다.
그러고는 불안한 눈빛으로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멈칫.
그러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깊은 호수처럼 깊고 아름답던 그녀의 두 눈.
그 두 눈에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에.
“오늘 아침에 떠나셨습니다. 감숙으로.”
모든 것을 사실대로 고하였다.
왕일의 고함에 서은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타앗!
스윽!
그대로 접객실의 창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에.
“후우…….”
이백은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서은설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두 사람.
그 두 명이 열고 간 창문을 가만히 바라본 왕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았던 왕일이었다.
* * *
“저기 있네.”
감숙과 호북의 갈림길.
그곳에 한걸음에 달려온 서은설은 저 멀리서 한 사내를 발견하고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사내의 몸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기운.
어린 시절 늘 좋은 냄새를 풍기던 소년, 위극신이라는 것을 첫눈에 알아차린 서은설이 등에서 궁을 빼 들었다.
푸욱!
그러고는 바닥에 거궁을 깊게 박았고!
스윽.
활시위를 걸었으며.
동시에 놓았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사내를 향해 날아간 서은설의 화살.
강력한 기운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그녀의 화살은 무서웠다.
스윽.
그리고 그런 무서운 화살을 사내는 가볍게 몸을 돌려 피했다.
“아…….”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서은설을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십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서찰을 주고받으며 연심 戀心을 키워 온 서은설.
그녀는 매일 밤 상상을 하고는 했다.
자신의 마음을 앗아 갔던 어린 소년이 세월이 흘러 늠름한 사내가 되는 상상을 말이다.
십사 년의 시간 끝에 드디어 무림을 나선 그의 행방을 듣고 기대를 했던 것도 잠시. 기다리고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는 무심한 사내의 행동에 분노했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화를 내려고 했지만!!
“아…….”
자신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사내.
그 사내는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 더 늠름하고 잘생긴 사내가 되어 있었다.
‘잘생긴 게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