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제110장 실행 實行
“부르셨습니까.”
사황성 최고 무력대인 백호대 白虎隊의 대주 이백.
그가 서은설의 방 안에 들어서며 고개를 숙였다.
그에 서은설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백호대주, 이곳까지 불러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당연히 와야지요.”
“이제 그만 고개를 들어 주세요.”
서은설의 말에 이백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
평소와 같이 아름다운 얼굴을 지니고 있는 서은설을 보며 그대로 굳어 버렸다.
“나 어때요?”
그런 이백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은 서은설.
그녀의 물음에 이백이 떨리는 두 눈동자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너무나도 놀라 잘게 떨리는 이백의 물음에 서은설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몸을 돌려 자신을 비추고 있는 동경 銅鏡 을 바라보았다.
“야율 언니로부터 온 선물이에요.”
“도대체…… 무슨 기물 奇物이기에…….”
서은설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백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에 미소를 지은 서은설이 동경 속에 비친 자신의 두 눈.
어린 시절 괴물이라 불렸던 원흉, 벽안 碧眼 이 아닌 이제는 검은색이 되어 버린 두 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색안막 色眼膜.”
“……?”
“천산에서 연락을 주고받던 야율 언니가 보내 준 서역의 기물입니다. 눈에 끼우면, 눈동자의 색깔을 변화시켜 주지요.”
“그런!”
생각지도 못한 기물 색안막.
그 기물의 설명을 들은 이백이 놀란 표정으로 대답하자 서은설이 다시 몸을 돌려 이백을 바라보았다.
“물론, 네 시진 (8시간) 이상 착용하면 눈에 안 좋아요. 착용 전과 후 깨끗하게 세척해야 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그것에 무슨 상관입니까. 눈 색을 바꾸어 주는 것을…….”
서은설의 설명에 이백이 대답했다.
어린 시절부터 서은설을 힘들게 해 왔던 원흉,
그 원흉을 사라지게 해 준다는데 그런 것이 대수이겠는가?
막말로, 반 시진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감사하다며 사용할 것이다.
그런 이백과 생각이 같았을까?
서은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맞아요.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죠.”
대체적으로 체격이 짧은 한인들과 달리 늘씬한 몸매와 시원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는 서은설.
하지만, 이곳에 오래 살아서이기 때문일까?
색안막으로 인해 검은색의 두 눈을 지니게 된 지금, 서은설은 조금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한인으로 보였다.
그런 서은설의 대답에 이백이 놀란 표정을 지우고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천산에 감사 선물을 보내야겠군요.”
“이미, 아율 언니에게 감사하다고 연통을 보내었어요. 스승님에게 따로 부탁을 해서 순수한 기운을 머금은 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선물했어요.”
서은설의 대답에 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야율령에게 지팡이는 최고의 선물일 테니 말이다.
그런 이백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은 서은설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 대주님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 이렇게 방으로 불렀어요.”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어린 시절부터 서은설을 봐 왔던 이백.
그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서은설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 호위 좀 해 주세요.”
“……?”
서은설의 갑작스러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이백.
그런 이백을 보며 서은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위극신, 이 녀석이 어디서 바람이 난 것인지 너무나도 안 오잖아요?”
“…….”
“무림공적들을 죽이며 이름을 날리면서 나는 만나러 안 오니……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어쩌겠어요?”
서은설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한기를 느낀 이백이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기도했다.
아니, 소교주, 위극신의 명복을 빌었다.
* * *
같은 시각, 명 제국의 수도 남경 南京.
“폐하.”
“방 학사.”
거대한 황궁의 대전 大殿.
그곳에서 각 부와 성에서 올라온 서류를 읽고 있던 주윤문은 대전으로 들어서는 중년인, 방효유를 보며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번왕들의 세력이 꺾이고, 전국이 안정되었으니 조금은 여유롭게 일하셔도 되옵니다. 옥체를 조금은 보존하시옵소서.”
그런 주윤문을 보며 방효유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간언 諫言을 올렸다.
그런 방효유의 간언에 주윤문은 싱긋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내 그대와 약속하지 않았소? 절대 흔들리지 않을 황권을 만들겠다고.”
그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황권을 쥐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제왕론 帝王論의 찬양자, 방효유를 보며 주윤문이 말하자 방효유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깊게 숙였다.
“앞으로의 명 제국이 너무나도 기대가 되옵니다.”
“하하!”
방효유의 대답에 주윤문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웃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관을 바라보았다.
“방 학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물러나도록.”
“예.”
대전에 울려 퍼지는 주윤문의 위엄 어린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내관은 물론 궁녀들과 서기관, 그리고 천장에 숨어 황제를 지키고 있던 무인들까지 모두가 물러났다.
그렇게 드넓은 대전에 주윤문과 방효유만이 남게 되고.
주윤문이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가까이 오시게.”
“황공하옵니다.”
주윤문의 말에 방효유가 고개를 숙이며 말한 다음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황좌에 오르는 계단 바로 앞에 멈추고는 무릎을 꿇었다.
“황 노사로부터 연락이 왔사옵니다.”
“응? 한창 바쁠 터인데?”
방효유의 말에 주윤문이 의문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방효유가 고개를 숙이며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북원의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 여유가 생겼다고 하옵니다.”
새로운 칸으로 인해 내부 분열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주윤문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잘되었네.”
“그렇사옵니다. 용호장군과 금오장군이 북원을 멸하자는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지만 황 노사와 제독동창이 알아서 잘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래, 황 노사와 제독동창이 더 고생해 줘야겠어.”
“예.”
주윤문의 대답에 방효유가 고개를 숙였다.
북원 北元.
원의 잔당인 그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지금이 최적의 기회다.
그렇기에 용호장군과 금오장군이 출정을 원하는 상태이고 말이다.
하지만 주윤문과, 방효유. 그리고 북부의 총사령관인 황자징의 생각은 달랐다.
“번왕들이 답답해하겠군.”
공통된 적인 북원이 있기에 내부의 힘을 한곳으로 집결할 수 있고, 또 그로 인해 번왕들의 세력을 줄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력을 다시 모을 수 있는 기회를 두 눈 뜨고 놓칠 번왕들을 떠올리며 주윤문이 고소하다는 듯 말하자 방효유 또한 미소를 지었다.
그 또한 주윤문과 같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서로 웃던 것도 잠시.
미소를 지운 방효유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황 노사로부터 이제 대계를 시작했으면 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어진 방효유의 대답에 주윤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방효유는 그런 주윤문의 얼굴을 보지 못했기에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자그마치 십칠 년 동안, 음지에서 이루어져 온 폐하의 대계! 드디어 시작할 때가 되었나이다!”
감격으로 인해 떨리는 방효유의 목소리에 주윤문은 두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황좌에 등을 기대며 두 눈을 감았다.
‘제길.’
무림말살대계 武林抹殺大計.
그 대계 하나로 뛰어난 신하들을 모았으며 그것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
그리고 지금.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십칠 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은 물론 자신의 뛰어난 신하들이 각 세력에 세작을 심었으며, 황궁의 정보를 차단하고, 무림의 정보를 수집, 각 문파의 비리와 비밀은 물론, 유명한 세가와 문파들의 무공을 연구하여 파훼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말살단 抹殺團의 수련도 끝이 났으니, 폐하께서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각 문파들의 무공의 파훼법을 수련한 무림 말살단이라는 비밀 병기들을 키워 내었다.
곧 있으면 시작될 대계가 기대되었던 방효유의 흥분 어린 음성에 주윤문이 감았던 두 눈을 떴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아직, 아직은 이르다.”
“예……?”
갑작스러운 주윤문의 말.
그 말에 방효유가 고개를 들어 주윤문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이르다.”
“하지만, 지금이 최적…….”
“위마참군 僞魔斬君, 그리고 무협공자 武俠公子.”
주윤문의 입에서 나온 두 명의 인물.
최근 무림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두 존재의 이름에 방효유가 입을 다물었다.
물론, 주윤문과 제독동창 염승은 알고 있었다.
그 두 명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아직 방효유는 알지 못했기에 움찔했고, 그에 주윤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존재들의 출현이다. 그리고 천산의 마교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조금만 더 지켜보도록 한다. 황 노사에게도 그렇게 전하도록.”
“…….”
주윤문의 명령.
황명에도 불구하고 방효유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주윤문이 눈가를 꿈틀거리며 방효유를 내려다보았다.
“방 학사.”
“송구하옵니다, 폐하.”
주윤문의 위엄 어린 목소리.
그 목소리에 굳어 버렸던 방효유가 황급히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용서를 구했다.
그에 주윤문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송구하다니?
무엇이?
쿵!
그렇게 의문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주윤문을 향해 이마를 한 번 더 찧은 방효유.
그가 입을 열었다.
“당연히 폐하께서 윤허를 하실 줄 알고 무림말살의 계획을 시작했나이다!”
“!!”
“송구하옵니다, 폐하!”
방효유의 말에 주윤문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에 방효유는 다시 용서를 구했고, 주윤문은 시리도록 차가운 얼굴로 방효유를 내려다보았다.
“무림말살의 첫 계획이 뭐였지?”
“무림맹주의 독살…….”
콰앙!
방효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은 주윤문이 황좌의 팔걸이를 강하게 내려쳤다.
그러고는 매서운 눈빛으로 방효유를 내려다보았다.
“짐의 황권을 그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던 그대들이, 짐의 황권을 무시하다니…… 어이가 없구나.”
“송구하옵니다!”
“감히!”
콰앙!
방효유의 계속된 사죄에도 불구하고 주윤문의 분노는 멈출 줄을 몰랐다.
주윤문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세가 뿜어져 나왔으며.
“크어억!”
기세와 동시에 뿜어져 나온 적색의 기운이 방효유를 후려쳤다,
뛰어난 두뇌를 지녔지만 무 武 에는 재능이 없었던 방효유는 주윤문의 강력한 기운에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콰앙!
거대한 굉음을 내며 벽에 처박혀 벼린 방효유.
주윤문은 그런 방효유를 바라보며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짐이 직접 움직인다. 그 누구도 나서지 마라. 황명이다.”
“폐…… 폐하…….”
“알겠나?”
방효유의 부름에 주윤문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그에 방효유는.
“황명을 받드나이다.”
떨리는 몸으로 자세를 잡으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