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화
제109장 쓰레기 廢棄物 (2)
“잠깐, 산책 좀 하고 올게.”
남궁정에게 뒤뜰의 문을 열어 주고 객잔으로 나온 왕일.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수노에게 말하자 수노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안 기다리시고, 나가시렵니까?”
의문이 가득 담긴 수노의 물음에 왕일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뒤뜰의 문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하오문도 두 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굳이 내가 이곳에서 지키며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그 말에 하오문도들은 영광이라는 듯 고개를 숙여 보였고 왕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다시 돌렸다.
하오문도들을 믿지만 그것 말고도.
‘남궁 형님이라면 극신 형님을 이해할 텐데 뭐.’
이미 정답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굳이 자신이 이곳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그에 왕일은 수노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 주고는 걸음을 옮겨 은하객잔의 문을 나섰다.
왁자지껄.
은하객잔의 문을 나서자마자 저잣거리의 시끌벅적한 음성이 왕일을 반겼다.
“일아! 사과 안 필요하냐?”
“일 오라버니! 여기!”
“일아! 나중에 객잔에 갈 건데 닭볶음탕 오늘 되냐?”
왕일이 저잣거리에 나서자 각자의 삶에 충실하던 모든 사람들이 왕일을 알아보고는 서로 말을 건네었다.
사천에서 가장 큰 객잔.
그곳을 운영하는 주인이며 돈이 많은 대인이었지만 이곳 주민들에게 있어서의 왕일은 아주 친근한 점소이였다.
또 누군가에는 조카였으며, 또 누군가에는 믿음직한 형 오빠이기도 했다.
그에 왕일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에게 웃는 낯으로 하나하나 대답해 주며 걸음을 옮겼다.
왕일은 이게 좋았다.
그 누구도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고, 자신 또한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란 말인가?
만약, 위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은 늙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사람들과 교류를 나누며 객잔에서 일을 했었을 것이다.
하오문의 일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으며 말이다.
그렇게 위극신을 만나지 않았다는 상황을 상상하던 것도 잠시.
“한 푼 줍쇼!”
웬 거지 하나가 왕일에게 다가와 다 찌그러진 개밥 통을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거지의 등장에 당황한 것도 잠시.
상상을 멈춘 왕일이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한 번씩, 이렇게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건네고 했었으니 말이다.
그에 은자 주머니를 꺼내려던 순간.
멈칫.
찌그러진 개밥 통을 내밀고 있는 거지의 허리춤을 보고 말았다.
보란 듯이 새겨져 있는 여섯 개의 매듭.
십만 방도의 대문파였으며, 하오문과 같이 정보를 취급하고 있는 거지들의 모임 개방 丐幫.
그곳의 장로나 후계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섯 개의 매듭에 왕일은 손을 멈추었고 이내.
스윽.
은자 주머니를 꺼내기 위해 넣었던 품속에서 빈손을 꺼내었다.
“엥? 왜 빈손이 나옵니까?”
그런 왕일의 행동에 거지, 아니 십만 방도 개방의 후개인 취걸이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말했다.
그에 왕일은 서늘한 눈빛으로 취걸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무엇을 말이오?”
“한가하지 않으니 대답해.”
취걸의 물음에 왕일이 싸늘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취걸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본문에 첩자가 있었나?”
인상을 찌푸리며 욕설을 내뱉는 취걸을 보며 왕일이 낮은 어조로 물었다.
그러고는 빠른 속도로 품속에서 날카로운 비도를 꺼내 들며 자세를 낮추었다.
그 공격적인 왕일의 자세에 취걸이 당황한 것도 잠시.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니 시X! 은하객잔의 사장이 이리 쫌팽이요? 왕일 당신이 은하객잔의 주인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오! 그런 사람에게 한 푼 달라 했다고 이리 무섭게 덤벼드오?”
“…….”
“진짜! 인성 뭐 같은 양반이네! 에라이 시X 먹고살기 X나 팍팍해졌네. 거지들은 다 나가 죽으라는 거야 뭐야?”
너무나도 큰 취걸의 목청에 주변 사람들은 각자의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왕일과 취걸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왕일은 인상을 찌푸렸다.
정보를 다루는 하오문의 소문주인 왕일.
그에게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은 좋지 않았다, 하물며 그 원인이 개방의 후개 때문이다?
‘최악이군.’
최악이었다.
그에 왕일이 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아이고! 거지는 서러워 살겠나! 은하객잔의 젊은 주인이 하루살이와 같은 불쌍한 거지를 죽이려고 하네!”
“이봐…….”
“아이고! 서러워라! 어머니! 아버지!”
“아니…….”
“아이고!!”
“아 씨!”
왕일의 계속된 부름에도 취걸의 곡소리는 끝나지 않았다.
그에 왕일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고는 품속에서 은자를 꺼내어 취걸의 개밥 통에 던져 주었다.
쨍그랑!
뚝.
취걸의 찌그러진 개밥 통에서 울려 퍼지는 맑고 고운 소리.
그 소리에 거짓말처럼 취걸의 곡소리가 멈추었다.
씨익.
그러고는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생하소!”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졌다.
그에 왕일은 인상을 찌푸린 채로 사라져 가는 취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거지 새X가…….”
왕일은 알고 있었다.
취걸이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고, 또 구걸을 가장해 자신을 간 보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에 자존심이 상한 왕일은 무서운 눈으로 취걸의 뒷모습을 째려보다가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제깟 것이 어쩔 거야?’
그래 봤자 거지.
개방의 후개고 나발이고, 자신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에 왕일은 바닥에 침을 한번 뱉고는 몸을 돌렸다.
계속해서 산책을 이어 가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찝찝한 기분도 잠시. 왕일은 사람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청두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그에 왕일이 오른편으로 몸을 돌렸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보다는, 조금 돌아가더라도 새로운 길을 가 보는 것이 좋으니 말이다.
그렇게, 새로운 길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것도 잠시.
“오라버니……?”
왕일의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목소리와, 얼굴, 그리고 인상착의를 거짓말처럼 기억하는 왕일이기에 그 목소리가 남궁정의 동생, 남궁연화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에 왕일은 고개를 돌렸고.
“흐음…….”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한 사내를 끌어안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 남궁연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에 왕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스윽!
퍽!
남궁연화의 품에 안긴 사내.
그 사내가 그대로 남궁연화를 제압해 단검을 목에 겨누는 것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여인의 행동을 배신하는 사내의 모습이 보기 흉했던 것이다.
그렇게 사내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렸던 것도 잠시.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동자를 떨고 있는 남궁연화의 모습에 왕일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남궁연화의 목에 단검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차가운 미소를 짓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수노에게 보고를 받아 왕일이 잘 알고 있는 사내였다.
‘역시 정신 못 차렸네.’
사내가 남궁세가의 쓰레기이자 남궁세가에게서 버려진 대공자, 남궁영이라는 것을 파악한 왕일이 걸음을 옮겼다.
솔직히 평소의 왕일이었다면 이 상황을 모른 척 지나갔을 것이다.
자신은 정보를 다루고 그 정보를 휘두르는 정보원이지, 무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외다.
왜냐고?
남궁영에게 제압당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저 여인은, 자신의 의형인 남궁정이 아끼는 동생.
남궁연화가 잘못된다면 남궁정이 슬퍼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 * *
“멍청한 년.”
밀려드는 절망감에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도 잠시.
남궁영은 제 발로 찾아온 멍청한 남궁연화의 목에 칼을 겨누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
지금 자신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을까?
남궁연화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크큭.”
그에 남궁영은 비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가자.”
그러고는 제압한 남궁연화를 앞에 세우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계속 나아가 자신을 내쫓은 사천분가로 갈 것이다.
그리고 남궁연화의 목숨을 담보로 돈과 자신의 안전을 요구할 것이다.
멍청한 남궁정이라면 남궁연화를 살리기 위해 돈을 줄 것이고, 또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이다.
남궁정은 그런 병X 같은 놈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남궁영이 걸음을 옮기려던 그 순간!
“거참, 불알 달고 쪽팔리지도 않나?”
남궁영의 귀로 저잣거리의 파락호들이 사용할 법한 상스러운 말이 들려왔다.
그에 남궁영은 흠칫하고는 남궁연화의 목에 칼을 더 깊게 겨누었다.
자신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였다.
그러고는 다시 여유를 챙긴 남궁영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였다.
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말이다.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은 채 삐딱한 자세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청년의 모습에 남궁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는 누구냐?”
남궁영의 물음에 청년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나가던 점소이.”
점소이, 아니 왕일의 대답에 남궁영이 다시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알량한 의협심으로 나서지 말고 꺼져라.”
평소 같았으면 절대 용서치 않았겠지만 지금 자신은 단전이 없는 상태이다.
남궁연화를 제압한 상태로 왕일을 상대할 수 없었던 남궁영이 평소에는 절대 내뱉지 않았을 경고를 내뱉자 왕일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안 되겠는데.”
“뭐?”
“그 여인, 내가 아는 여인이라서.”
스윽.
“꺄악!”
왕일의 말에 남궁영이 얼굴을 굳히고는 남궁연화를 제압한 손에 힘을 주었다.
꺾인 팔로 인해 어깨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남궁연화는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런 남궁연화의 비명에 씨익 미소를 지은 남궁영은 그녀를 보란 듯이 앞으로 내세우며 입을 열었다.
“이 여인이 다치기를 원하나?”
“아니, 원하지는 않지.”
“그러면 비켜라.”
왕일의 말에 남궁영이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에 왕일은 고개를 돌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인, 남궁연화를 바라보았다.
“도와줘?”
“…….”
왕일의 물음에 남궁연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에 인상을 찌푸린 왕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를 인질로 삼은 쓰레기야. 안 도와줘?”
도리.
이어진 왕일의 물음에 남궁연화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늘 밝은 미소와 함께, 당찬 성격을 보이지만 남궁연화는 어린 시절 부터 여리고 착한 심성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렇기에 희정이 눈물을 흘리며 부탁한 남궁영을 외면하기가 어려웠고 또 그가 느끼고 있는 절망감이 어느 정도 짐작되었기에 이렇게라도 작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
돈과 안전을 위해서 남궁영은 자신을 절대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만 참으면…….
다 괜찮을 것이다.
그래,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그런 남궁연화의 대답에 왕일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옆으로 비키며 입을 열었다.
“정이 형님만 불쌍하네.”
“크큭.”
왕일이 작은 목소리와 함께 자리를 비켜 주자 남궁영은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왕일의 습격에 언제든지 대비할 수 있도록 경계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남궁영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순간.
왕일은 두 눈을 감고 남궁영의 손길에 움직이고 있는 남궁연화를 바라보았다.
“제 핏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금 네 모습을 보며 정이 형님이 슬퍼하겠다. 아, 생각하니까 짜증 나네.”
왕일의 말이 끝나기도 전.
말을 내뱉으면서 짜증이 치밀어 오른 왕일이 차가운 눈빛으로 남궁연화를 바라보았다.
“생각이 바뀌었어, 네 의견 따위보다는 우리 정이 형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지.”
지금 이렇게 남궁영을 보낸다면 피해를 보는 것은 저 여인도, 남궁세가도 아닌 바로 남궁정이다.
남궁영을 죽이지 않고 살려 준 것이 남궁정이었으며, 남궁연화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존재도 남궁정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왕일은 손을 들어 품속에 집어넣었다.
휙!
그러고는 비도를 꺼내 가볍게 던졌다.
왕일의 손에 의해 빠른 속도로 날아간 날카로운 비수.
푹!
그 비수는 거짓말처럼 남궁영의 미간 정중앙에 꽂혔으며.
쿠웅!
남궁영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뜬 채 뒤로 쓰러졌다.
너무나도 날카로운 비수.
그 비수로 인해 한 번에 절명한 것이다.
남궁세가의 쓰레기로 이십이 년이라는 인생을 살아왔으며, 친혈육인 여동생마저 자신을 위해 이용하려 했던 희대의 쓰레기, 폐물.
남궁영의 마지막치고는 조금은 싱거운 죽음에 남궁연화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피슉!
남궁영의 미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와.
움찔! 움찔!
아직 살아 있는 신경들로 인해 움찔거리는 남궁영의 시체를 보며 남궁연화는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그렇게 남궁영의 죽음을 인식한 남궁연화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왕일을 노려보았다.
그에 왕일은.
“뭐? 어쩌라고?”
피식 미소를 지으며 남궁연화에게 대답했다.
그 누구보다 얄밉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