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천마신교는 이상하다-107화 (107/275)

제107화

제107장 술 酒

“오라버니?”

“…….”

“오라버니!”

“……왜.”

남궁세가 사천분가.

은하객잔에서 조식을 마치고 분가로 돌아온 남궁정은 방 안까지 따라와 계속해서 자신을 부르는 남궁연화를 보며 아미를 찌푸렸다.

“뭐예요?”

“뭐가.”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평소 늘 차가운 양반이 이렇게 예민하게 구냐구요.”

“…….”

남궁연화의 물음에 남궁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상대해 주기 귀찮았다.

그런 남궁정의 반응에 남궁연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팔짱을 끼며 남궁정을 바라보았다.

“이봐 이봐, 아까부터 계속해서 짜증 어린 표정을 짓고.”

“내가?”

남궁연화의 말에 남궁정이 물었다.

그에 남궁연화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팔짱을 풀어 계속해서 찌푸려져 있는 남궁정의 미간을 눌렀다.

“이것 좀 펴요. 주름 생길라.”

“…….”

“어서요.”

남궁연화의 계속된 강요에 남궁정이 힘을 풀었다.

남궁연화가 지적하기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자신의 미간이 찌푸려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남궁정의 미간이 다시 펴지자 남궁연화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잘될 거예요.”

“…….”

“요즘 오라버니 행복하잖아요?”

“내가……?”

남궁연화의 말에 남궁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에 남궁연화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네, 맨날 찬바람 쌩쌩 날리던 양반이 이제는 한 번씩 미소를 짓잖아요. 게다가 어른들의 명령에 반하며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기도 하고.”

“…….”

“이제야 좀 무인 같구만.”

남궁연화의 이어진 말에 남궁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술을 좋아하게 된 것은 별로지만.”

피식.

남궁정의 손에 들린 술잔.

차를 마시는 것처럼 술을 달고 사는 남궁정을 지적하는 남궁연화의 말에 남궁정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에 남궁연화 또한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겨 방문 앞에 섰다.

“지금, 그대로만 해요.”

“…….”

“그럼, 나는 놀러 간다!”

쿵.

고민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정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든 남궁연화가 방문을 나섰고, 홀로 남게 된 남궁정은 손에 들린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흐음…….”

쓰다.

그리고 짜릿했다.

정신이 반짝 차려지게 해 주는 달콤한 술.

그 술맛에 남궁정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탁자 옆 창문을 바라보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분가의 무사들과 사용인들.

그리고.

“훗.”

창가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의 얼굴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감정이 없으며 얼음처럼 차갑다 하여 인형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자신이었다.

처음 형님들을 만났을 때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익숙하다고 생각되었다.

작지만 큰 변화.

이 변화에 남궁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의형, 위극신을 만나야겠다.

* * *

“고맙다.”

“아닙니다.”

은하객잔의 뒤뜰.

드넓은 연못과 연못 위에 위치한 정자에 앉은 나의 인사에 왕일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관리가 잘된 잔디와, 꽃 그리고 나무들이 가득한 정원 庭園.

이곳은 말 그대로 은하객잔의 뒤뜰로서, 객잔의 손님 중 숙박하는 손님들을 위해 왕일이 만든 특별한 휴식 공간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대화를 나누거나, 산책하는 숙박객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지만 나의 부탁으로 왕일은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 그 누구도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고는 내가 부탁한 대로 연못 위에 마련된 정자에 술상을 차려 주었다.

그렇게 나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준 왕일에게 나는 진심으로 고맙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늘 고마운 아이였다.

“형님.”

“그래.”

“본문의 어른들이 형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그래, 한번 봐야지.”

왕일의 말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왕일 덕분에 절대악 絶對惡인 마교의 소교주는 위마참군이라는 별호로 불리며 정도 무림인들에게 인정과 존중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느리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천천히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마교의 사람들도 사람이라고 말이다.

작은 변화지만 이 작은 변화는 세월이 흘러 큰 변화를 이루어 낼 것이다.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나이기에 나는 하오문에게 상당히 고마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마뇌가 이끌고 있는 정보조직, 비마각보다 더 말이다.

그런 나의 긍정에 안도했을까?

왕일이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찾아가겠다.”

“예?”

그리고 이어진 나의 말에 왕일이 미소를 지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늘 도움 받고 있는데, 내가 찾아가야지.”

“아니 굳이 안 그러셔도…….”

손을 들어 왕일의 말을 막은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되었다. 어차피 이제 떠날 때가 되었으니.”

“떠나시는 겁니까?”

나의 말에 왕일이 떨리는 어조로 물었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오래 있었지 않았느냐.”

사천에서 탕만 먹고 바로 감숙으로 떠나 사황성을 찾는 것이 원래의 일정이었다.

감숙으로 가서 은설과 만나야 하고, 호북으로 가서 무당파에도 들러야 했다.

“…….”

제법 긴 시간 동안 나의 품속에 보관된 낡은 서책.

바로 신선도인 神仙道人 청학의 모든 깨달음이 담긴 서책을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무당파에서의 볼일이 끝이 나면 같은 호북, 무한에 위치한 무림맹 武林盟 에 가 볼 생각이었다.

전생에서 나를 아는 척하지 않았던 외조부.

왜 그러했는지 연유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거참…… 지금 생각해 보니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런 일을 내버려 두고 사천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소비했다고?

물론, 이곳에서 보낸 시간만큼 좋은 추억도 많았다.

왕일을 만났고, 정이를 만났으며 벗 윤문을 만났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때였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집어 한 모금 들이켰다.

“형님.”

“그래.”

“저도 따라…….”

“기각.”

왕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녀석의 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한 내가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그에 왕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맞다.”

“그러니…….”

“아니, 너는 지금 이 자리에서 네가 할 일을 하거라.”

“하지만…….”

“왕일아.”

계속해서 반론하려는 왕일의 말을 내가 막아서자 왕일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무 나에게 맞추지 말거라.”

“…….”

“너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나에게만 맞추지 말고 때로는 뒤로 돌아보며 너를 따르는 이들을 돌보아 주거라.”

“…….”

“그게, 내가 원하는 의제 義弟 의 모습이다.”

“알겠습니다…….”

나의 말에 왕일이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내키지는 않겠지만 나의 말이기에 듣는다는 왕일의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나가 보거라.”

“왔나 보군요.”

나의 말에 왕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야기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정이 형님이라면 분명 형님을 이해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겠지.”

왕일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왕일은 진한 미소를 지은 다음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그렇게 왕일이 물러나고.

저벅.

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넓은 뒤뜰에 남궁정이 들어섰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차가운 표정이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이 어색해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어서 와 앉거라. 술이나 마시자.”

“알겠습니다.”

나의 말에 남궁정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정자 위에 올랐다.

그러고는 나의 맞은편에 앉으며 술병을 들었다.

“그래.”

그에 나 또한 술병을 들었다.

흠칫.

술잔이 아닌 술병을 드는 나의 행동에 남궁정이 흠칫했고, 나는 피식 웃은 다음 술병을 내밀어 남궁정의 술병에 부딪쳤다.

“첫 잔은 알지?”

그러고는 웃으며 말한 다음 술병을 들었다.

꿀꺽, 꿀꺽.

술로 가득 찬 술병을 들어 내가 한 번에 들이켜자 남궁정 또한 서둘러 술병을 들었다.

꿀꺽. 꿀꺽.

그러고는 나처럼 병째로 들이켜기 시작했다.

한 번에 말이다.

그렇게 술을 마신 것도 잠시.

“크으.”

술 한 병을 모두 비운 내가 술병을 내려놓으며 시원한 소리를 내었다.

거참.

속이 화끈거리면서 뜨거운 것이 위장을 지나 오장육부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알려 주고 있었다.

묘하게 짜릿했다.

“크으으!”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남궁정이 그답지 않게 괴로운 소리를 입 밖으로 내며 몸을 비틀었다.

아이고, 춤 잘 춘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남궁정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던 나는 결국, 소리 내 웃고 말았다.

“하하!”

그런 나의 웃음에 괴로움의 춤을 멈춘 남궁정.

나를 바라보던 녀석 또한 결국 웃고 말았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니 어색한 공기가 사라진 것만 같았다.

그에 나는 다시 새로운 술병을 집어 들어 뚜껑을 열었다.

뽕!

시원한 소리를 내며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주향 酒香.

그 주향을 느끼며 나는 남궁정의 앞에 위치한 술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쪼르르!

맑은 소리를 내며 술잔에 가득 채워지는 술.

그렇게 남궁정의 잔을 가득 채운 내가 술병을 다시 나의 잔으로 가져갔다.

“제가…….”

“됐다.”

자작하는 나의 모습에 남궁정이 상체를 일으켰지만 나는 웃으며 녀석을 만류했다.

쪼르르.

그에 남궁정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시 자리에 앉았고, 잠시 후. 남궁정과 마찬가지로 나의 잔에도 술이 가득 채워졌다.

탁.

조금 전보다 가벼워진 술병을 탁자 위에 다시 올려놓은 나는 고개를 들어 남궁정을 바라보았다.

“정아.”

나의 입에서 나온 낮은 목소리.

그 낮은 목소리에 남궁정이 고개를 들어 나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전혀 흔들림 없는, 올곧은 눈빛이었다.

그에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나는 천마신교의 소교주다.”

“…….”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역시, 나의 짐작대로 녀석은 나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름은 위극신이며, 스물두 살이다. 보다시피 아주 잘생긴 미청년이지.”

“…….”

거참, 이 정도 농담에는 웃어 줘야지.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남궁정을 보며 괜히 머쓱해진 나는 술잔을 들었다.

녀석이 생각을 정리하려는 동안 홀로 술을 마실 생각이었다.

그렇게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같이 마시지요.”

남궁정이 술잔을 들며 앞으로 내밀었다.

그에 나는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는 녀석의 눈빛.

그런 녀석의 눈빛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녀석은 이미 이곳에 오기 전부터 모든 생각을 정리한 상태였다.

“미안하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저에게 있어서는 형님을 의형으로 모신 것이 큰 행운이었습니다.”

나의 사과에 남궁정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잔을 내밀어 남궁정의 잔과 부딪쳤다.

“고맙다.”

그러고는 한 번에 들이켰다.

그에.

“별말씀을.”

남궁정 또한 술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