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제105장 위마참군 僞魔斬君
“크크크.”
깊은 밤.
사천성이 보이는 언덕에 들어선 한 중년 사내가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사천이라…… 매운 것을 평소 많이 먹으니 피에서도 매운맛이 나려나? 짜릿하겠군.”
주로 어린아이들, 때로는 젊은 여인들의 피를 빨아 먹고 버린다는 흡혈마 吸血魔가 달빛 아래에서 소매로 침을 닦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서…… 가야지. 그래야 한 명의 피를 더 먹지.”
저 멀리 보이는 사천성의 성도.
깊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유구한 역사를 지닌 성도답게 아직도 수많은 횃불이 걸려 있는 성도를 보며 흡혈마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있으면 느낄 수 있을 쾌락을 상상하며 말이다.
그때.
“흡혈마.”
멈칫.
흡혈마는 뒤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무림공적으로 낙인찍혔음에도 불구하고 초절정이라는 경지 때문에 무림맹은 물론 사황성에서도 잡지 못했던 대마두가 바로 흡혈마이다.
무림공적 중 다섯 손가락에 드는 강자.
그런 강자인 자신의 기척을 속이고 뒤를 점한 사내의 목소리에 흡혈마는 긴장 어린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양쪽 허리춤에 걸린 짧은 두 개의 단도를 꺼내 들며 말이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몸을 완벽하게 돌린 흡혈마.
그는 자신의 기감을 완벽하게 속인 사내를 바라보았고 이내 두 눈을 크게 떴다.
금색의 용이 장식된 검은색 비단옷, 검은색 죽립과 면사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일색인 사내였다.
그런 사내의 모습에 비록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흡혈마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마…… 망할…….”
사내의 뒤,
그의 복장과 뒤에서 일렁이는 칠흑색의 강기 때문이었다.
마에 사로잡혀 그저 본능만을 탐하며 악행을 저질러 무림공적으로 구분되어 버린 마인들.
그런 마인들을 거짓된 마라 칭하며 직접 죽이고 다니는 마도의 종주, 천마신교의 소교주.
바로 위마참군 僞魔斬君 이었다.
그의 등장에 흡혈마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짧은 시간 동안 다섯 명의 무림공적을 사살한 위마참군의 무공 수위는 최소 초절정의 경지로 평가되고 있었다.
즉, 초절정 초입인 자신이 목숨을 걸고 덤벼도 상대하기 힘든 사내라는 뜻이다.
그에 흡혈마는 모든 내공을 끌어 올려 그대로 도주를 시도했지만!
콰앙!
서걱!
위마참군, 천마신교 소교주의 검이 더 빨랐다.
그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강기가 그의 도주로를 막으며 그를 옭아매었고,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검이 흡혈마의 목을 베어 버렸다.
위마참군의 짧은 공격 한 번에 목이 분리된 흡혈마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삶을 마감했고, 위마참군, 위극신은 그런 흡혈마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쓰레기 같은 놈.”
그렇게.
이제는 당당하게 칠천신군 七天神君에 이름을 올린 위마참군 僞魔斬君 위극신은 여섯 명의 무림공적을 사살하였다.
* * *
사천분가의 연회는 그렇게 취소가 되고 이틀 후.
“정말…… 괜찮으십니까?”
남궁패의 직속상관이며, 창천단의 단주로서 남궁세가의 장로에 버금가는 권력을 지닌 남궁무.
그는 세가주 검왕 劍王 남궁준광의 명을 받고 사천분가로 달려왔고, 곧 남궁영에게 주어진 모든 직위를 해제하고 그의 처분을 소가주인 남궁정에게 맡긴다는 전언을 전달했다.
그에 남궁정은 남궁영의 단전을 폐하고 남궁이라는 성을 다시는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에 어린 시절부터 남궁영이 얼마나 남궁정을 지독하게 괴롭혀 왔는지 아는 남궁무가 조심스럽게 묻자 남궁정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연화를 생각해서입니다.”
남궁영과 어머니가 같은 남궁연화.
그들의 친모는 남궁연화를 낳다가 죽었고, 그로 인해 남궁영은 남궁연화를 증오했다.
어머니를 잡아먹은 년이라며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남궁연화는 늘 외로워했고, 남궁정이 그런 그녀를 친동생처럼 보살펴 주었다.
어머니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비록 남궁연화는 남궁정을 친오라비처럼 따르지만 남궁영은 남궁연화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혈육이다.
그렇기에 남궁정은 남궁영을 죽이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그런 남궁정의 말에 남궁무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잘 크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창천단의 단주이면서 동시에 남궁세가의 어른이기도 한 남궁무.
그의 칭찬에 남궁정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숙질 사이로 훈훈하게 대화가 나누어지던 순간.
콰앙!
“오라버니!”
그들이 위치하고 있는 응접실 문이 강하게 열리며 남궁연화가 들어왔다.
명문가의 여식으로서 보여 주어야 할 기품과는 너무나도 먼 남궁연화의 행동.
그 행동에 남궁정은 인상을 찌푸리며 남궁연화를 바라보았다.
“예를 갖추거라! 창천단주도 계신다.”
“어, 무 숙부! 안녕하세요!”
남궁정의 경고를 들은 척도 하지 않은 남궁연화가 남궁무를 보며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에 분노한 남궁정이 다시 언성을 높이려던 순간!
“허허! 소가주 나는 괜찮습니다. 그래 연화야. 더 예뻐졌구나?”
남궁무가 나서서 남궁정을 말렸다.
그러고는 남궁연화를 보며 반가운 어투로 말을 건네자 남궁연화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 숙부는 더 늙으셨어요, 어서 장가가셔야겠어요?”
“응?”
“연화!”
버릇없는 남궁연화의 발언에 남궁무는 순간 당황했고 남궁정은 화들짝 놀라며 남궁연화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에 남궁연화는 배시시 웃으며 남궁무의 팔에 팔짱을 꼈다.
“숙부. 화난 거 아니죠? 반가워서 그래요.”
“하하, 그래.”
남궁연화의 귀여운 말투와 행동에 남궁무는 결국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여우 같은 조카였다.
그에 남궁연화가 반짝이는 눈으로 남궁무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숙부님도 위마참군 이야기 들으셨죠? 사실이에요?”
“흡혈마를 죽인 일 말이냐?”
“네! 정말인 거예요?”
남궁무의 물음에 남궁연화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그에 남궁무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와아!”
그런 남궁무의 대답에 남궁연화는 박수를 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소교주의 나이가 이립 而立 (30)이 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 무림의 재녀였던 천소화 소저와 천마가 혼인을 한 지 이십삼 년 정도 되었으니 말이야.”
“헐…….”
남궁무의 대답에 남궁연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뜻은 소교주가 스물두 살이거나 그 아래의 나이라는 것이 아닌가?
위마참군.
그는 차후 천하를 논할 고수라고 평가되는 육천신군…… 아니 이제는 칠천신군이라 불리는 곳에 포함되어 있다.
그중 가장 어린 나이에 포함되었던 사람이 바로 천풍이었고 그 당시 천풍의 나이가 마흔이었다.
헌데 스물두 살이라는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칠천신군에 이름을 올렸다고?
이거 완전 괴물이 아닌가?
“하하.”
그런 남궁연화의 반응에 남궁무 또한 동감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정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정파의 인물 중에서 무협공자와 같은 대협이 있어서 다행이야.”
마도의 종주인 마교의 소교주.
그자가 어린 나이에 뛰어난 고수인 것은 무림인들에게 있어서 좋지 않은 소식이다.
아니 끔찍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무와 협을 행하는 신진고수 무협공자 덕분에 무림인들은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
무협공자 또한 젊은 나이였으며 칠천신군에 속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타 무림인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남궁무의 말에 남궁정은 그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 남궁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정아.”
“예.”
남궁무의 따뜻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남궁정이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좀 전까지는 격식을 갖추는 소가주와 창천단주의 사이였지만 지금은 그저 숙부와 조카 사이였다.
그에 남궁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세상은 넓다. 당장 너의 의형인 무협공자, 그리고 젊은 나이에 칠천신군에 오른 소교주까지.”
“…….”
“너도, 늘 정진하거라.”
“예, 숙부님.”
남궁무의 말에 남궁정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남궁무는 다시 허허롭게 웃으며 남궁연화를 바라보았다.
“우리 연화! 이 숙부가 맛난 거 사 줄 테니 같이 나가겠느냐?”
“음…… 뭐 사 주실 건데요?”
“뭐든!”
남궁연화의 물음에 남궁무가 호기롭게 대답했다.
그에 남궁연화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탕!”
“……?”
“은하객잔에서 얼큰한 탕에 따뜻하고 고소한 쌀밥 말아 먹고 싶어요!”
늘, 남궁정과 함께 다녀 이제는 남궁연화까지 위극신에게 물들고 말았다.
* * *
‘설마…… 아니겠지.’
남궁무와 남궁연화의 뒤를 따라 은하객잔으로 걸음을 옮긴 남궁정.
그는 앞에서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는 두 숙질 사이에 끼지 못하고 홀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스물두 살의 나이, 그리고 초절정의 무공 수위.’
공교롭게도 자신이 진정으로 존경하고 따르고 있는 의형, 극신과 같았다.
마도의 종주, 마교의 소교주 위마참군이 말이다.
물론 두 존재가 동일 인물일 리는 절대 없겠지만 남궁정은 불안했다.
그저 본능이랄까?
왠지…… 동일 인물일 것만 같았다.
그렇게 깊이 생각에 빠진 것도 잠시.
피식.
남궁정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서 오십시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할 때쯤.
남궁정의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형님!”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어 주는 점소이.
바로 왕일이었다.
그런 왕일의 인사에 남궁정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별일 없느냐?”
“물론이죠!”
“형님은?”
“아마 방에 계실 거예요.”
남궁정의 물음에 왕일이 대답했다.
그에 남궁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숙부, 남궁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는 형님에게 먼저 인사드리고 와도 되겠습니까?”
“그래, 만약 식사 전이라면 데리고 오거라. 자랑스러운 후배 무인에게 한 끼 정도는 충분히 사 줄 수 있으니.”
남궁정의 말에 남궁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에 남궁정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고개를 돌려 왕일을 바라보았다.
“숙부님이야. 잘 부탁해.”
찡긋.
“염려 마십쇼!”
남궁정의 부탁에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씨익 미소를 짓는 왕일.
그런 왕일의 모습에 남궁정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겼다.
사천의 가장 큰 객잔인 은하객잔은 삼 층 건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두 개의 건물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이다.
한 개의 건물에는 일 층부터 삼 층까지 모두가 식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층에서 연결된 통로를 지나야만 여행객들이 머무는 여관이 나왔다.
이 층으로 올라 통로에 들어선 남궁정.
그는 익숙한 중년 사내를 보며 눈인사를 살짝 건넸고, 중년 사내는 고개를 깊게 숙이며 길을 비켜 주었다.
그렇게 통로를 통과하고 최고급 방들이 위치한 삼 층으로 올라선 남궁정.
그는 자신의 의형이 약 한 달 전부터 머물고 있는 방문 앞에 멈추어 섰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형님, 저 정입니다.”
“…….”
“형님……?”
남궁정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 방 안.
그에 남궁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방문을 두드리려던 순간.
끼익.
남궁정의 두드림으로 인해 방문이 열리고 말았다.
그에 남궁정은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남궁정은 안으로 들어섰다.
왕일이 방에 있다고 했으니 방에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궁정은 안으로 들어섰고 이내 입을 열었다.
“형님?”
혹시 잠을 자는 것일까?
방 안을 둘러본 남궁정이 침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만약 자고 있다면 조용히 나갈 생각이었다.
굳이 숙면을 방해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고개를 돌려 침대를 확인한 순간!
“…….”
남궁정은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새하얀 침대 위.
그 침대 위에는 금색의 용이 그려져 있는 검은색의 비단 옷과, 면사 그리고 죽립이 있었던 것이다.